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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배경에서 제기된 질문은 젠더가 어떻게 규제되며, 그런 규제는 어떻게 강제되고, 또 그 규제는 그것이 강제된 주체들에게 어떻게 결합되어 삶이 되는지를 묻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젠더가 규제된다는 것은 젠더가 규제에 선행하여 존재한다는 가정을 필요로 하는데, 정말 젠더 규제에 앞서 존재하는 젠더가 있는가? 아니면 젠더화된 주체는 규제에 복종하면서 생겨나고, 그 특정한 복종 형식 안에서 또 그 복종 형식을 통해서 생산되는 것인가? 복종은 규제가 젠더를 생산하는 과정 아닌가?
푸코 계열의 연구에서 비롯된 복종과 규제에 대해 적어도 두 가지 주의사항만큼은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1) 규제 권력은 이미 존재하는 주체에게 작용할 뿐 아니라 그 주체의 형상과 형식을 만든다. 게다가 권력의 모든 사법적 형식은 권력의 생산 효과를 가진다.
2) 규제에 복종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은 그 규제로 인해 주체화가 된다는 뜻이며, 다시 말해 바로 규제화를 통해 주체로서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푸코의 말에 따르면, 젠더는 단지 권력이 작용하는 더 큰 규제 작용의 한 사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나, 나는 젠더가 그 자체의 분명한 규제 체제와 규율 체제를 필요로 하고 또 확립한다고 주장하려 한다.
나는 젠더가 하나의 규범이라고 생각한다. 젠더가 규범이 된다는 것은 젠더가 항상 미약하게만 특정 사회적 행위자에 의해 구현된다는 의미이다. 규범은 사회적인 것을 읽어낼 잣대를 부여하고 무엇이 사회적인 것의 영역에 나타날지 그 기준을 정하면서, 행위의 사회적 인식 가능성을 지배하고 또 특정 종류의 실천과 행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한다. 규범의 바깥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사유에 패러독스를 야기한다. 규범이 사회적 영역을 인식 가능하게 만들고 그 영역을 규범화하는 것이라면, 규범 바깥에 존재하는 것도 규범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젠더는 정확히 어떤 사람‘인’(being)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가진’(having) 것도 아니다. 젠더는 남성성과 여성성 개념을 생산하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기제지만 그런 관점을 해체하고 의문시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는데, 규범을 설정하려는 장치 자체가 바로 그 설정을 뒤흔드는 작용을 할 수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개념의 정의 자체가 불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녀의 이분법만이 젠더 영역을 이해하는 독점적 방식이라 주장하는 규제적 젠더 담론은 지배적 사례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그 사례의 붕괴를 생각해볼 가능성은 배제하는 규제적 권력 작용을 수행한다.
상징적 위치와 사회적 규범
라캉 용어 사전에서 상징계는 규제의 문제와 분명히 관련된다. “상징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욕망을 규제하는 법의 영역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한 친족 관계에서는 가족 내에 다양한 ‘위치’가 성립되는데, 부모는 자식과 성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이고, 어머니는 아버지하고만 성관계를 맺는 사람이 된다. 이런 금지 관계는 각 가족 구성원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속에 기호화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은 최소한 그 ‘위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징적이거나 규범적인 개념에 따라 성적으로 교차된 관계 속에 있다는 말이다.
나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상징계’로 변형된 문화 개념이 어떻게 현대 문화 연구 분야에서 통용되는 문화 개념과 완전히 다른지를 보여주려 한다. 또한 나는 ‘욕망을 규제하는’ 규칙을 변함 없고 영원한 법의 영역 안에 확립하려는 모든 주장은 젠더의 사회적 변형이 가능한 조건을 이해하려는 이론에는 별 효용성이 없다고 주장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상징계 자체가 사회적 실천의 집적물이기에 상징적 법과 사회적 법을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며, 친족의 근본적 변화는 정신분석학의 구조주의적 전제를 새롭게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도 보여주려 한다.
『친족의 기본 구조』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생물학에서 근친애 금기가 꼭 필요한 지점은 없으며, 그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법칙에 따르는 문화적 현상이라고 밝힌다. 이는 라캉의 상징계 개념의 기반이자, 상징계를 생물학적 영역 및 사회적 영역과 구분하려는 노력의 기반이 된다. 라캉에게 문화 속에서 보편적인 것은 그 문화의 상징적이거나 언어적인 규칙으로 이해되며, 그런 규칙이 친족 관계를 지탱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라캉에게 상징계는 언어가 취하는 사회적 형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언어 구조라는 개념의 관점에서 정의된다. 구조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그것은 모든 언어 사용에 있어서의 소통성이 가능해지는 보편적 조건을 형성한다. 이런 움직임 때문에 결국 친족에 대한 상징적 설명과 사회적 설명이 구분되는 상황이 조성된다.
친족 연구가 구조주의 언어학 연구와 결합할 때 나타나는 문제의 하나는 친족 위치가 근본적인 언어 구조의 위상으로 격상된다는 점이다. 이런 친족 위치는 언어로 진입을 가능케 하는 위치이며, 그 위치가 없이는 어떤 의미도 발생할 수 없으며, 그에 따라 언어와 관련해 어떤 본질적인, 초시간적인 위상을 가진다.
‘규범’은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변형되는 틀이기 때문에, 구조주의가 언어나 친족 안의 ‘위치’라고 제시한 것이 ‘규범’과 꼭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규범이 상징적 위치와 꼭 같은 것도 아니다.
상징계를 사회적 영역과 구분하면 유일법과 법칙들을 구분하는 것도 용이해진다. 위치를 바꿀 수 없는데 상상적 수단을 써서 어떤 유일법의 위치를 바꾸려고 노력하면 견제를 당할 것이며, 젠더에 대한 권위적 해석에 대항하려는 투쟁은 좌절되고 결국 권위에 복종하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욕망은 근본적으로 조건부라는 데 확실히 동의할 수 있고, 욕망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들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상징적 권위에 대항한다는 것은 필연적 시간성 속의 규범이 그 내부로부터의 변화와 전복에 열려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상징계는 성에 대한 가정을 규제하는 영역으로 이해되는데, 여기서 성은 남성적 위치와 여성적 위치라는 다른 위치의 집합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사회학 담론에서 비롯된 젠더 개념은 라캉과 포스트 라캉의 관점에서 등장한 성차에 관한 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 레비-스트로스의 모델에서 남녀의 위치는 특정한 형태의 성적 교환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젠더는 특정 양식의 재생산을 위한 성적 유대를 보장하고 다른 형태는 금지하는 작용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젠더는 주체가 사회적으로 규제되고 생산되는 성적 관계들을 금하기도 하고 명하기도 하는 어떤 지표인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성적 교환을 지배하는 규칙들과 그에 따른 섹슈얼리티 규제에 기초해서 가능한 주체 위치를 생산하는 규칙들은, 그 규칙에 따라 살면서 그런 위치를 차지하는 개개인들과 구분된다. 위와 같은 법칙의 규제를 받는 인간의 행동은 법의 본질을 변화시킬 역량이 없고, 법의 목적은 자신이 규제하는 내용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어떤 법 개념의 결과로 보인다. 젠더가 상징적 법의 규제를 받는다는 생각에서 사회적 규범의 규제를 받는다는 개념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떻게 자신이 규제하는 대상에 무관심한 법에 이의를 제기할까?
젠더가 어떤 규범이라면, 그것은 주체가 인식될 수 있는 장을 생산하는 사회 권력의 형식이고 젠더 이분법이 제도화되는 장치이다. 젠더에 지배되는 실천들과 무관해 보이는 규범으로서 젠더의 이상성은, 바로 그런 실천들이 다시 제도화한 결과물이다. 이 말은 실천과 그 아래서 실천이 작동 중인 이상화의 관계는 우연적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이상화 자체도 어쩌면 잠정적인 것으로, 탈이상화나 권위 박탈을 겪으면서 문제와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젠더와 그것이 자연스레 구현된 사례 간의 거리는 규범과 규범이 합체된 복합물(규범+규범에 의한 실천에 의해 만들어진 이상성) 사이의 거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규범은 사회적 실천 속에 행해지고, 일상적인 신체 생활의 사회적 관례 속에 또 그 관례를 통해 재이상화되고 다시 제도화되는 만큼만 규범으로 존속한다. 규범은 그 구현물을 통해, 규범에 근접하고자 하는 행위를 통해, 그 행위 속에서 또 그 행위로 인해 재생산되는 이상화를 통해 제 스스로가 재생산된다.
푸코는 규범이 종종 법의 형태로 나타나며, 규범적인 것은 헙번, 법전, 입법 활동으로 표면화된다는 데 주목한다. 나아가 푸코는 규범이 판단의 기술에 속하며, 분명 권력과 관련은 있지만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한다기보다는 “권력이 자신의 전략을 되돌아보고 그 대상을 분명하게 정하게 하는 어떤 내적 논리”의 특징을 띤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의 삶이나 생활을 권력의 대상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힘인 동시에, 생정치의 국면을 창조해서 눈앞의 ‘삶’도 앗아갈 수 있는 권력이기도 하다.”
에발드에 따르면 규범은 규제 항목들을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변화시켜서, 그로 인해 푸코식 용어로 말하자면 사법적 권력이 생산성을 띠게 되는 움직임을 표시한다. 규범은 부정적이던 사법적 규제 항목을 긍정적인 규범화의 통제로 변화시킨다. 따라서 규범은 사법적 규제 항목으로 생각되던 권력을 (a) 어떤 조직화된 규제 항목의 집합으로, 또한 (b) 어떤 규제적 메커니즘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변화를 표시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변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규범과 추상화의 문제
이제 이 문제는 담론 속의 무엇이 이런 주체의 생산을 초래하는가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한다. 훈육이 개인을 ‘생산한다’고 푸코가 주장할 때 그가 뜻한 바는 규제적 담론이 개인을 관리하고 활용한다는 뜻일 뿐 아니라 규제가 개인을 적극적으로 구성한다는 뜻이다.
규범은 공통의 기준을 생산하는 척도이자 수단이고, 규범적 사례가 된다는 것은 규범에 철저히 들어맞는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공통성의 추상화에 복종하게 된다는 의미다. 에발드는 이런 모든 규제 속에 규범이 당면한 내적 한계뿐 아니라 모든 사회 현상을 규제할 규범의 능력을 이해하기 위해 협의에서의 규범에 더 초점을 맞춰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규범이란 개체화를 하는 동시에, 끊임없는 개체화를 가능하게 하고, 비교 가능성을 창출하는 바로 그 기준이다. 개체화의 공간은 어떤 관계의 표현에 불과하며, 타인과의 맥락 속에 무한히 나타나야 할 관계의 표현이다. 따라서 규범은 비교 가능성의 원칙이자 어떤 공통된 기준이며, 이런 기준은 그 집단이 자기 말고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을 때 외적인 지칭이나 수직성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한 집단의 순수한 지칭 속에 설정된다.
에발드에 따르면, 푸코는 규범화에 대한 사유에 다음과 같은 부분을 덧붙였다. “규범적 개체화는 외부적인 것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것은 정상적인 것과 다른 본질을 갖지 않는다. 규범이나 규범적 공간은 외부를 알지 못한다. 규범은 자기를 넘어서려 할 만한 모든 것을 통합하므로 어떤 차이를 보여준다 한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외부적인 것이라 주장할 수 없으며, 사실상 그것을 타자로 만들 타자성을 가진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규범의 내재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규범 행위를 규제적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정말 꺼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규범을 주체에게 행사되는 금지의 관점에서 형성된 ‘억압’의 한 형식으로 보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이런 주체는 스스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거나 이런 종류의 통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마슈레는 규범은 규범 행위 안에서 규범 행위를 통해서만 존속된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행위의 위치를 사회적 개입의 장소로 가져갔다. “이런 관점에서는 규범 자체를 규범 행위의 결과에 앞서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불가능하므로, 규범은 바로 그 규범의 결과로 작용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규범은 그것이 적용된 장 외부에 있지 않다. 마슈레에 따르면 규범은 그 적용의 장 생산에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적용의 장을 생산하면서 스스로를 생산하기도 한다. 규범은 적극적으로 현실을 참조하며, 현실을 참조하는 반복된 규범의 힘 덕분에 규범이 규범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젠더 규범들
위에서 전개한 개념이라 규범들에 따르면, 젠더 규범이 생산한 현실의 장이 이상화된 차원에 있는 젠더의 표면적 외관을 만드는 근거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젠더 규범이 재생산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몸의 실천을 통해 환기되고 인용되며, 몸의 실천은 그 인용 과정에서 규범을 변화시킬 능력도 가진다.
그러므로 규제의 중요한 한 가지 의미는 인간이 젠더의 규제를 받는다는 것이며, 이런 종류의 규제는 누구에게나 문화적 인식 가능성의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젠더 규범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규제 권력이 자신의 지속적인 규제 열망을 지원해줄 합당한 이유로 재빨리 활용될 수 있는 비정상 사례를 생산해낸다는 것이다.
또한 젠더는 어떤 규제적 규범이지만, 다른 종류의 규제들이 작용하는 가운데 생산된 것이기도 하다. 예로 캐서린 매키넌의 논법에 따르자면, 성희롱 관련법이 전제하는 경향은 성희롱이 직장 내 여성의 체계적인 성적 복종의 결과로 간주한다. 이러한 섹슈얼리티의 명시적 규제는 그 안에서 젠더에 관한 특정한 암묵적 규범을 수행하는 또 다른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불평등한 섹슈얼리티가 굳어진 형태가 젠더라면, 불평등한 섹슈얼리티는 젠더에 선행하고 젠더는 섹슈얼리티의 결과물이 된다. 그러나 젠더라는 선험적 개념 없이 불평등한 섹슈얼리티를 개념화하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매키넌은 섹슈얼리티의 형태 바깥에서 구성되는 젠더는 없다고 주장하며, 암묵적으로는 이와 같은 예속적이고 착취적인 섹슈얼리티 형태 바깥에서 구성되는 젠더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분석을 기반으로 그는 다른 종류의 규제를 세운다. 즉 젠더를 가진다는 것은 이미 종속적 이성애 관계로 진입했다는 뜻이고, 이런 관계의 외부에서 젠더화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으며, 종속적이지 않은 이성애적 관계도, 이성애가 아닌 관계도 없어 보이고, 동성 간 성희롱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젠더를 섹슈얼리티로 변형한 이러한 형태는 퀴어 이론 안에서 두 가지 문제로 이어진다. 첫 번째 경향은 섹슈얼리티를 젠더와 분리시키는 것으로서, 이는 하나의 젠더를 가진다는 게 그 사람이 특정한 방식으로 성행위에 참여한다는 전제가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 경향은 젠더는 가부장적 이성애주의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퀴어 섹슈얼리티로 맥락화되면 젠더는 다른 형태를 취한다고 주장한다. 젠더는 그 자체가 내적으로 불안정하며, 트렌스젠더의 삶이 바로 섹슈얼리티와 젠더 사이에서 인과론적 결정을 내리는 모든 구분선이 무너진 증거라는 주장이다.
젠더 위반에 따르는 사회적 처벌에는 이성애적 예속에 벗어난 경우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성애적 예속을 섹슈얼리티와 젠더만의 독점적 장으로 가정하는 논리에 기초해서 남성의 여성 성희롱을 금지하는 것은 이성애 안에 젠더 규범을 생산하고 유지하려는 규제 수단이 된다.
규제는 개개인이 사회적으로 상호 교환될 수 있게 만드는 범주에 달려 있어서 그에 따라 규범화 과정에도 깊이 관련된다. 단순히 특정한 행위(성희롱, 연금 사기, 성적인 발화)를 제한하려 하는 규제는 대부분의 경우 표시도 남기지 않으면서 다른 행위를 수행한다. 그것은 인간됨의 경계를 생산하는 것인데, 다시 말해 그들이 사는 삶의 조건이 되면서도 그 삶을 초월해 삶을 무너뜨리는 추상적 규범에 따라 인간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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