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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가는데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어제인지 그제인지부터 다리를 절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다리를 절기 시작한 것은 작년 구월부터다. 그 무렵 지병인 허리병이 다시 도진 뒤에 허리는 곧 나았는데 대신 왼쪽 다리를 절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허리 때문이라고 했다. 몇달 전부턴가는 오른쪽 엉덩뼈 부근에 혹이 생긴 것처럼 앉아 있기가 몹시 불편한 상태가 되었다. 의사 말로는 그것도 허리 때문이라고 했다. 두 세 차례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자 병원 가는 것도 그만 두었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산과 들로 마구 쏘다녔다.
매일같이 동네 야산의 흙길을 밟으며 딱딱해진 몸에 부드러움을 초대했고 주말에는 모악산을 오르내리며 근육을 키웠다. 그 사이 지리산에도 몇 번 다녀왔다. 험하기로 소문난 노고단 코재(걸어가면 코가 닿을 정도로 경사가 가팔라서 붙여진 이름이다)에 다녀온 것은 지난 주말의 일이다. 그 일곱 시간의 산행이 마지막 화룡점정이 된듯하다. 어제 보니 엉덩뼈에 붙어 있던 혹 같은 것이 사라지고 없었다. 방바닥에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물론 다리도 절지 않게 되었다. 신기했다. 물론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신기하고 말 것도 없는 일이다.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에 쓴 시(어떤 야만)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내 앞을 걸어오고 있었다. 외딴 길이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그녀는 다리를 조금 절고 있었다. 하지만 감쪽 같이 속일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다리를 아주 많이 절지 않고 조금 전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쓰일 것도 같았다. 어쨌거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는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나의 걸음걸이도 불편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외딴 길에서 만난 그녀는 멀리서 오는 나를 의식하면서 지나가야 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나를 스쳐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이 자신처럼 걸음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사정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마치 자신의 불편한 걸음걸이를 흉내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으니.
피해갈 수 없는 외딴 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다리를 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외려 무심할 수도 있었으나 나로서는 몹시도 괴로운 상황이었다. 마침내 그녀가 나를 지나쳐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나는 문득 사회적 편견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아니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녀가 자신의 신체적 불편함보다도 마음의 불편함이 더 크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사회적 편견 때문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것도 바로 그 편견에서 온 남짓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나는 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원어민 알렉스 선생님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쓴 시도 보여주었다. 아직은 우리 글에 익숙하지 않은 알렉스 선생님께 보여주기 위해 어설픈 영어 실력으로 미리 영역해서 가져갔던 것이다. 나중에 몇 군데 알렉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수정하기도 했다. 차이를 견디지 못하는 사회적 편견이 없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A Savage
A woman in a remote street
Coming up to me
Leg limping
Rather then her leg limping
She seems to look somewhere for a moment
Before taking her next step
In the air
Her body is floating for a while
And in time, it comes down
Those moments of hesitation
Seem to be saying
There is soul in the gait
Elegant and beautiful
It is the beauty that is created
When left foot and right foot
Touch the earth to a different rhythm
That which does not accept the difference
Is a savage
어떤 야만
외진 길에서 만난 한 여자
다리를 절면서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다
다리를 전다기보다는
발을 내 딛기 전
잠시 어딘가 해찰을 하는 듯하다
허공 속에서
몸이 잠깐 떠 있다가
이윽고 내려오는 모양새다
그 망설임의 순간들이
걸음걸이에도 영혼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우아하고 아름답다
왼 발과 오른 발이
땅에 당도하는 시간의 차이가
빚어낸 아름다움이다
그 차이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야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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