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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그램명 : 전북CBS 라디오 <생방송 사람과 사람> (FM 103.7Mhz)

2. 방송 일시 : 2020년 5월 14일 목요일 오후 5시 33분-52분

3. 담당 : 전북CBS 소민정 PD,송규호 PD

4. 진행 :박민 소장 (MC, 참여미디어연구소)

5. 출연 : 김환희(인간무늬연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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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학생들과 선생님 간에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됐어요?

네. 사실 김영란법 이후에 사탕 한 알이라도 학생에게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선물이나 간식 등을 주고받는 문화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이긴 해요. 다만 편지를 쓰거나, 칠판에 감사문구를 적는 깜찍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 정도의 감사 표현은 이메일로도 가능할 것 같긴 합니다.

1학기는 아예 비대면수업을 쭉 갈 수도 있겠어요?

네. 제가 방역전문가는 아니라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이태원 사태가 지역감염으로 이어지며 개학연기 장기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온라인수업은 잘 따라와 주는지?

사실, 온라인 수업은 아이들을 수업에 잘 따라오고 있는지, 듣는 척 시늉만 하고 있는지 분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학생에게 강제로 학습을 강요할수도 없지요. 사실 이러한 점은 오프라인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배움에 대한 의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점은 오늘 책소개를 하면서 더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온라인수업이니 돌봄이니 방역이니 해서 선생님들께 알게 모르게 지워지는 짐들이 많을 듯한데. 어깨가 무거우시죠?

네. 교육부가 BC 그러니까 코로나 이전에는 교사의 전문가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AC-코로나 이후부터는 ‘방역 전문가’라고 전문가 대접을 해주는 게 당황스럽습니다. 사실, 교사들도 어렵지만, 가정에서 아이들을 붙들고 있어야 할 학부모들의 고난이 극심하실 것 같아 걱정됩니다.

학생 없는 스승의 날 풍경. 무척 어색하긴 한데. 오늘 용정동책방에서 스승에 관한 책을 살펴보려고 하죠?

네. 사실 요즘 많은 선생님들이 스승의 날을 학교에서 기념하기보다는 차라리 ‘노동자의 날’에 쉴 수 있는 다른 노동자들처럼 쉬는 날이기를 원합니다. 스승은 사라지고 소위 ‘선생’만 남아버린 초라한 학교의 현실 때문인데요. 그래서 우치다 타츠루의 ‘스승은 있다’ 이 책을 준비했습니다.

우치다 타츠루의 스승은 있다. 부제가 재밌어요.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 운도 없는 당신에게 스승은 있다. 무슨 내용을 담은 책인가요?

사실, ‘스승의 날’이라는 말만 빼고는 요즘은 스승이라는 말 자체를 잘 쓰지 않잖아요? 스승이 없는 이 시대에, 어떻게 하면 스승을 만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우치다 타츠루 누군가 살펴봤더니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의 저자더라고요?

네. 프랑스 현대 사상에 대한 저작을 중심으로 50권이 넘는 다양한 저서를 집필한 원로 지식인입니다.

철학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 교육에 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어왔다고?

네. 그의 책은 한국에서 특히 교사들에게 인기가 많은데요. 교육에 대한 책을 여럿 쓰기도 했고, 그 스스로가 개풍관이라는 합기도 도장을 열어 무도 수련과 철학 수련을 같이하는 새로운 학습공동체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책 스승은 있다. 일본어 원제는 ‘스승은 훌륭하다’더라고요. 저자가 스승이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이유는?

요즘 학생(직업이 학생인 사람뿐만 아니라 배우는 사람을 다 포함해서)들이 ‘선생님은 훌륭하다’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자나요. 우치다 타츠루는 스승을 인정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는 그 태도로 인해 배움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배움이 가능하려면 ‘스승은 훌륭하다’라는 믿음을, 배우는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스승은 기성품이 아니라고 강조하던데. 스승을 기성품으로 여기는 세태란?

아시다시피, 자본주의는 소비자가 왕으로 대접받는 사회입니다. 소비자라면 서비스나 물품을 제공하는 생산자에게 갑질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소비자 위치를 선점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김영삼 정권 이후에 교육계에 수요자 개념이 들어오면서 학교는 시장이 되어버렸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소비자, 교사는 생산자가 되어 교원평가와 민원 등으로 서비스의 질을 평가받는 것이지요. 우츠다 타츠루의 말마따나(이건 ‘하류지향’이라는 다른 책에 나오는 대목인데요) 아이들은 마치 경매에 참가한 부호들처럼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는 교단의 교사를 거만하게 바라보며 속으로 외치는 거죠. “자, 당신은 뭘 팔건대? 마음에 들면 사주지.” (이걸 교실용어로 바꾸면 “이거 배우는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가 되는 거죠.) 교사와 교육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태도, 사실 우리는 공교육 시스템이기에, 돈보다 관심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겠습니다. 우리가 SNS에서 경험하다시피 관심경제의 자장 안에서는 관심이 곧 돈이기도 하고요. 학생의 돈인 관심을, 교사에게 최대한 주지 않겠다는 갑의 태도, 소비자의 태도가 바로 스승을 기성품처럼 사려는 태도인 것입니다.

사실 요즘은 스승보다 멘토가 대세인 시대잖아요. 이른바 성공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이 나와서 저마다 살아온 이야기로 청춘을 위로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젊은이들도 이들에게 기대고 열광하고 있는데. 우치다는 멘토는 스승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죠.

네 저도 한국 사회의 멘토열풍이 끔찍했고, 특히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책을 쓰며 멘토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끔찍했는데요. 멘토의 어원은 <오디세이아>에서 주인공인 오디세우스가 부재한 동안 그의 아들을 돌봐주며 아버지 역할을 대신해주었던 ‘멘토르’라는 인물에서 나오는데요. 사실 ‘멘토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테네여신이 인간으로 변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멘티인 ‘텔레마코스’를 완벽하게 보호하고 돌볼 수 있었습니다. 멘토는 나를 위해 마치 신처럼 완벽히 지혜로운 조언과, 신처럼 전능한 도움을 제공하는 맞춤형 고급상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치다가 정의내리는 스승과는 다른 존재죠.

/ 학원강사는 스승으로 볼 수 있을까요? 

누구든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승의 자격은 직업의 종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직업이 교사인 사람만이 스승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입시성적만을 위해 가르치는 학원강사와 학교교사들은 우치다가 말하는 스승이 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시험에는 정답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명확한 학습분량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답을 맞추기 위해서, ‘이것으로 끝’이라는 학습의 한계를 그어주는 사람은 스승이 아닙니다. 배운다는 것은 단지 유용한 기술과 지식을 전수받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 책에서 운전학원 강사와 레이스 드라이버의 비유를 드는데요. 운전강사는 ‘이걸 할 수 있으면 된 거야’라고 가르친다면, 레이서는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깨달음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청소년과 청년에게 멘토가 아닌 스승이 필요한 이유는?

성공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라’는 멘토의 가르침보다, 각자가 독창적으로 실패하게 만드는 스승이야말로 제자들에게, 배움의 주체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멘토는 디카페인 커피같은 존재입니다. 배우는 자가 스스로 겪어야 할 수수께끼의 시간, 창의성이 창발할 시간, 모름에 대한 고통에 직면할 시간을 지워버리고 바로 완성된 정답을 제시하는 자인거죠. 그럼으로써 학생의 배우는 기회를 뺏는 자가 멘토인 것입니다.  

배움과 교육에 관해 좀 더 설명해준다면?

배움은 뛰어난 테크닉과 엄청난 지혜를 갖춘 스승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배움은 배우는 자의 배워야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호기심으로부터 옵니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 책에서 ‘수수께끼의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나의 앎이 미치지 못하는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는 선생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엄청난 내공,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배움의 자세로 돌입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학교 현장에서 겪은 예를 들어보자면 이렇습니다. 몇 년전에 아이들과 함께 한해동안 텃밭농사를 하면서 교육활동(교육농)을 했었습니다. 제가 맡은 모든 학생들에게 텃밭을 배정해줬는데요. 유독 한 모둠의 텃밭의 작물들만 잘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지혜를 모아 방법을 함께 연구해보았습니다. 토질의 문제인지, 물을 자주 주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인지, 햇빛이 충분치 않아서인지 계속 연구하고 방법을 바꾸어보았지만 여전히 작물은 시들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 비밀을 풀기 위해서 텃밭을 수시로 관찰했는데, 놀랍게도 범인은 까마귀였습니다. 검은 까마귀는 넓은 텃밭 중 항상 그 텃밭에 자라는 작물들만 쪼아대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까마귀의 방문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까마귀가 왜 하필 그 텃밭에 집착하는지 그 수수께끼는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까마귀의 전생의 원한이 그 작물에 있는건지, 그 비밀은 저도 여전히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식물의 생태와 좋고 나쁨에 대한 인간주의의 기준은 맞는가에 대한 고민까지 엄청난 배움이 있었습니다. 계속 시드는 작물 – 그 풀리지 않는 비밀이 ‘수수께끼 선생님’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숱한 사회갈등의 해결책도 스승을 만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네. 이와 같은 태도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수수께끼 선생님’으로 모시고, 다각도로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여러 가지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음모론단순화가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복잡하게 생각하기입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설명해드리겠습니다저도 청취자들에게 수수께끼를 갖는 선생님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게 만드는 ‘반면교사’ 역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건 연애와 비슷하다?

네.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끝이 없다’ 그리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독창성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김환희 선생님은 그런 스승을 실제로 만나본 적 있는지?

네. 제가 깊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제 스승이었고, 지금은 제 반려동물이 저의 수수께끼 선생님입니다. 강아지의 행동언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3년 넘게 반려하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부분 투성입니다. 왜 낑낑대는 거지, 왜 기운이 없어보이는지, 그저 겸허한 마음으로 이 다른 우주적 존재의 본심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무지한 스승>을 다룰 때도 말씀 드린 것인데, ‘모른다라는 앎'이야말로 배움의 시작인 것이죠.

사제지간에는 제자에게 주체성에 있다는 저자의 말. 지금의 사제 관계는 전후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곱씹어볼 대목인데요. 한편으로 우치다가 말하는 사제관계를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이유 중 말씀하셨다시피, 입시와 경쟁에 매몰된 교육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교육과 사회는 나란히 걸어가는 사이인 듯합니다?

네. 배움에 대한 태도가 바뀌면 학교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유사배움이면서 배움이 아닌, 오히려 배움을 방해하는 입시와 경쟁시스템을 끝내고, 모두가 ‘수수께끼 스승’을 찾아 헤메는 진정한 배움을 만끽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한 문장

“배우는 자는 제자 자신이지 가르치는 자가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자가 여기에 있다’고 오해함으로써 배움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스승을 기꺼이 존경하시기를. 겸허한 마음으로, 들을 귀를 가진 자로서 준비되어 계시기를 주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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