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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그램명 : 전북CBS 라디오 <생방송 사람과 사람> (FM 103.7Mhz)
2. 방송 일시 : 2020년 9월 3일 목요일 오후 5시 28분-50분
3. 담당 : 전북CBS 소민정 PD, 송규호 PD
진행 : 박민 소장 (MC, 참여미디어연구소)
출연 : 김환희 (인간무늬연마소)
용정동책방 코너 속 코너랄까요.
용정동책방에서 철학책 읽기.
지난번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이어서 두 번째 시간인데.
오늘 소개할 철학자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굉장히 유명한 분인데.
국내에 출간된 프로이트 책들을 보면
도대체 뭔 말인지 어려워서 한 페이지 넘기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와요.
네. 3가지 정도 이유가 있을 텐데요.
첫째,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정신이라는 누구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미로를 탐사하고, 처음으로 지도를 그려야 했기 때문에 다소 난해하고 번잡한 문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의 수제자인 칼 융인 다른 제자에게 쓴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었어요. “곧 세 번째로 읽게 될 겁니다. 내가 특별히 멍청한 건가요? 아니면 문체 때문인가요? 조심스럽지만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이트도 “나에게는 아주 힘든 일이네. 우리한테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 빼면 아마 아무도 읽지 못할거야. 우리의 재현 작업은 얼마나 서툰지, 우리가 정신이라는 위대한 예술 작품을 얼마나 엉망으로 찢어놓는지.”라고 고백하기도 하죠.
둘째, 번역문제가 심각합니다. 한국에 나온 프로이트 전집은 미국판 전집에 비해서 분량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고, 같은 논문이 실렸어도 문장이 누락되거나 문단이 통째로 빠진 경우가 빈번합니다. 더군다나 충동, 본능 등 중요한 개념어 자체가 아예 반대로 번역되어 있거나, 본능-충동이라는 말도 안되는 조합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실 프로이트는 농담이나 여러 가지 말실수 등에 주목한 사람이라 독일어를 알지 못하면, 그 묘미를 제대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국제적인 학문의 언어가 독일어와 프랑스어였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오늘날도 유럽의 지식인들은 모두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셋째, 프로이트가 스스로 자신의 이론을 끊임없이 변형해나갔는데요, 후기에 이르러서는 초기의 가설을 부정하고, 전혀 반대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곤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전집에서는 시대순으로 논문들을 엮어서 책을 편찬한 게 아니어서, 초기, 중기, 후기의 이론이 한권에 책에 번잡하게 섞여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앞부분에서 본내용과 뒷부분에서 보는 내용이 미묘하게 다르니 헷갈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원래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두뇌 탓을 하지 마시기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저희 인간무늬연마소에서도 매주 <수요 세미나>를 통해 프로이트를 읽고 있답니다.
지금이야 정신분석학의 대가로 남아 있으나
출발은 생리학자였다고?
네, 정확하게는 신경학자였습니다. 대학 시절 생리학 연구소에서 일하며 <칠성장어>를 통해 척수신경에 대한 걸출한 논문을 써서 높이 인정받았습니다. 빠르게 새로운 이론으로 갈아치워지는 과학계에서 40년 동안 인용되었으니 놀라운 성취였습니다.
마약류로 분류되는 코카인 연구로도 유명하죠?
코카인의 마취 속성을 깨닫고 의료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연구한 최초의 연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과는 프로이트가 아닌 동료가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가 약혼녀와 연애를 하느라 논문 작성이 늦어진 틈에 동료인 콜러가 먼저 학회에 발표한 것이지요. 콜러는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는데, 동료의 성공을 인정하면서도, 프로이트는 자신이 아슬아슬하게 놓친 명성을 아쉬워했습니다. 그 후 프로이트는 우울한 기분을 통제하기 위해 스스로 코카인을 복용하기도 하고 주변에 무모하게 권하기도 했습니다. 동료인 플라이슐-마르호프가 치료제로 남용하다 코카인 중독으로 사망하기도 했고, 이 불운한 사건은 프로이트 인생의 가장 괴로운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프로이트가 살던 때는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이 개념이 생소했을 거 아니에요.
이쪽에 어떤 계기로 발을 들여놓게 된 건지?
프로이트는 대학 졸업 후에 생리학자나 신경학자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의사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우선은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일자리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근무하며 임상신경학자이자 의사로서 신경증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신체마비 증상의 환자를 자신의 스승이나 병원 동료와는 다르게 신경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인성 질환, 즉 내면의 문제라고 진단하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과학자이기 이전에,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에 대한 두터운 교양을 쌓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프로이트하면 성 담론이 유명하죠.
대표적인 개념을 꼽는다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 정신의 발달단계를 구강기-항문기-남근기-성기기 등으로 분류하기도 하죠.
남근이니 모성애니 하면서 인간의 무의식을 설명한다
당시만 해도 대단히 파격적이다 못해 외설적이다, 뭐 이런 반응까지 나왔을 듯해요.
네, 점성술과 동류인 사이비 과학 취급을 받았습니다. 의학계에서 철저히 파문당하고 조롱당했습니다. 특히, 유아성욕설, 즉 걷지도,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성욕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거의 변태취급을 받았습니다. 당시 어린이는 천사를 닮은 무욕의 존재로 여겨졌으니까요. 오늘날에도 프로이트라고 하면 “어쩐지 수상하다”라는 편견적 이미지가 엉겨붙어 있는 것이 사실이고요.
페미니스트들로부터도 비판을 받고 있고요.
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포함해 남성 중심의 이론을 펼쳤으니까요. 정상적인 성 발달의 과정에서, 여성은 남근을 갖고 싶어서, 혹은 이미 거세가 되었기 때문에,
대체물로 아이를 갖고 싶어한다고 정의내립니다. 사실 프로이트는 여성을 잘 몰랐어요. 저서에도 여러차례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고, 말년에 덴마크의 공주 마리 보나파르트를 만났을때도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답이 없었던 중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30년에 걸쳐 여성의 심리 내면을 탐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물음에는 아직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당시의 성차별 내지 성별 역할주의라는 시대적 한계에서 프로이트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프로이트 이론에서 그런 지점들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튼 사이비 소리까지 듣던 프로이트가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는 계기는?
프로이트가 학계에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포기하지 않고, 동료들과 꾸준히 공부합니다. 바로 수요심리학회인데요. 아들러 등 다른 의사들과 소규모로 시작했지만, 활기차게 이어갔습니다. 외부에 대한 인정투쟁에 에너지를 쏟기보다, 동료들과 자신을 연마하는 시간을 택한 것이었습니다. 유럽 각국에 소규모의 지지자들을 얻게 되지만, 학계에서는 거의 파문당한 처지가 바뀐 것은 프로이트가 1909년 미국에 초청강연을 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미국의 진취적인 심리학자이자 실력자였던 스탠리 홀(클라크대학 총장)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프로이트는 심리학의 거장으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때 클라크 대학 강연을 들어가기 직전, 프로이트의 도착에 열광하던 청중들 앞에서 프로이트가 칼 융에게 귓속말로 속샀였던 이야기가 유명하죠. “저들은 우리가 페스트를 퍼뜨리기 위해서 온 것을 모르고 있다.” 오늘날로 표현하면 “저들은 우리카 코로나를 퍼뜨리기 위해 온 것을 모르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 미움받을 용기로 인기가 많은 아들러와는
학회를 통해 교분을 나눴다고?
아들러는 빈의 수요심리학회에서 가장 유명하고 프로이트 다음으로 영향력이 컸던 인물입니다. 프로이트를 대신해 빈 정신분석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나중에 심하게 싸웠던데
서로 왜 다투게 된 건가요?
프로이트와 아들러는 온 입는 습관, 개인적 스타일, 치료 방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정반대의 성향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불화의 원인은 역시 신념의 충돌 때문입니다. 아들러는 병의 원인으로서, 기관열등성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콤플렉스 개념으로 알고 있는) 유전적인 원인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가 ‘유아기의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심리적 원인설과 대치되는 주장이었기 때문에 공존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그 지지자들에 의해 정신분석학회에서 쫓겨나고, ‘개인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파를 형성하게 됩니다.
칼 융과도 처음에는 아들처럼 여겼다가
결말은 좋지 않았다고?
네. 아들러를 빈 정신분석학회에서 쫓아낸 후 프로이트가 다음 회장직으로 추천했던 것이 칼 융입니다. 칼 융은 프로이트의 수제자 대접을 받는데요. 학회 회원들이 모두 유대인이어서 그 한계를 돌파하고자, 비유대인이자 스위스 취리히에서 정신분석의 열열한 지지자였던 칼 융은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학의 민족성을 돌파할 영웅(헤라클레스라는 반신반인 영웅으로 묘사)처럼 여겨졌습니다. 프로이트와 융은 서로를 아버지와 아들로 지칭하곤 했는데, 융의 편지를 살펴보면 아버지로서의 프로이트에 대한 경외심, 그 카리스마에 압도됨과 동시에 반발심이 느꼈음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를 보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아버지와 경쟁하고 아버지를 죽이고자 하는 살부충동의 역사가 그대로 인간관계로 재현됨을 알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융과의 학회 토론을 하다 2번이나 졸도하는데요, 융이 아버지인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강력한 정서 때문에 기절했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학계의 3대 거장들이나
한동안 프로이트의 이론은 융이나 아들러에 비해서 한물갔다고 치부돼 왔잖아요.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주목받은 이유는 뭔가요?
1980-90년대 영화비평 등 문화분석에서 인기를 끌었던 라캉이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다시 프로이트가 주목받는 것은, 인문학계의 슈퍼스타 지젝이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자신의 주요한 도구로 사용하면서부터입니다.
프로이트가 저작권을 가진 불안이나 우울, 욕망 같은 개념들.
사실 현대에 와서 더욱 중요해진 개념들이 아닐까 싶네요.
프로이트는 생전에 모든 인간은 신경증자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었죠. 불안이나 억압은 인간이 동물과 같이 본능에 따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문명이라는 초자아가 인간에게 불안이나 억압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생활과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적절히 억압을 유지하면서도, 우리의 쾌락을 새롭게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까
백년전 프로이트는 21세기 현대인들의 고민을 어찌 훤히 꿰뚫어 봤나 싶기도 한데.
프로이트에 대해 더 깊이 있으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 소개해준다면?
프로이트 전집 중에는 <새로운 정신분석 강의>, 개론서로는 <불안은 우리를 삶으로 이끈다>입니다. 마침 이 책의 저자인 강우성 교수님은 저희 인무연에서 다음주 수요일 저녁 세미나에 초청하기로 했습니다.
어느덧 책방 문을 닫을 시간인데 오늘의 한 문장으로 마무리
“프로이트는 규범적 성애와 성차의 관념을 정상성의 범주로 정립하여 인간의 사회화 과정을 옹호한 인물이 아닙니다. 규범적 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의 현실이나 마땅히 따라야 할 기준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현실이 만들어낸 환상을 뜻합니다. 신경증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좌이고 그런 한에서 치료가 필요한 병리적 현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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