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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몸짓에 관한 노트
1. 19세기 말경 서구의 부르주아지는 이제 자신의 몸짓을 결정적으로 잃어버리게 됐다(p. 59).
라 투레트는 『에콜라리아와 코프롤라리아를 동반하는 공조운동 실조를 특징으로 하는 신경질환에 관한 연구』를 출판했다. 이 책은 나중에 투레트 증후군이라고 불리게 될 것에 대한 임상적 틀을 규정했다(p. 61).
가장 놀라운 것은 1985년 이래 이런 수천 가지 사례가 관찰된 뒤, 20세기 초반에는 그런 신체장애가 더 이상 실질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신체 장애에 대한]기록이 없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가설 중 하나는 운동실조, 경련, 근육긴장 이상 등이 그 사이에 규범[정상]이 됐고, 어느 순간부터 모든 사람이 자기 몸짓에 대한 통제를 상실한 채 격하게 걷고 몸짓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p. 62).
2. 자신의 몸짓을 잃어버린 사회는 잃어버린 것을 영화에서 되찾고자 하며, 동시에 영화에 그 상실을 기록하고자 한다(p. 63).
자신의 몸짓을 잃어버린 시대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몸짓에 집착하게 된다. 자연스러움을 모조리 잃어버린 인간들에게는 모든 몸짓이 운명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역량[잠재력]의 영향을 받아 몸짓이 그 편안함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릴수록, 삶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프레드리히 니체는 유럽 문화에서 몸짓의 말소와 상실로 향하는 한 극과 몸짓이 숙명으로 변형되어버리는 다른 극 사이의 긴장이 정점에 도달한 순간이다(p. 63).
같은 시대에 아비 바르부르크는 어떤 연구를 시작했다. 심리학에 경도된 예술사의 근시안만이 그 연구를 ‘이미지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었을 뿐이다. 사실 그 연구의 중심에는 역사적 기억의 결정체로서의 몸짓과 그 몸짓이 경직되어 운명으로 굳어지는 과정, 그리고 역동적인 양극화를 통해 그런 경직된 운명에서 몸짓을 해방시키려는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의 끈질긴 노력(바르부르크가 보기엔 광기의 극한에 이른 노력)이 있었다(p. 65).
3. 영화의 요소는 몸짓이지 이미지가 아니다(p. 65)
질 들뢰즈는 영화가 심적 실재로서의 이미지와 물리적 실재로서의 운동에 대한 거짓된 심리학적 구별을 지워버린다고 주장했다.
영화의 이미지는 그 자체가 운동하고 있는 이미지인 움직이는 단면으로, 들뢰즈는 이것을 운동-이미지라고 불렀다.
이미지는 몸짓의 사물화이자 말소이다.
모든 이미지에는 일종의 구속이, 다시 말해서 사물을 마비시키는 힘이 작동하고 있는데 이 힘의 마법을 풀어야 한다.
영화는 이미지를 몸짓의 나라로 데리고 간다(p. 66).
4. 영화의 중심은 이미지가 아니라 몸짓에 있기 때문에 영화는 본질적으로 윤리와 정치 분야에 속한다(따라서 단순히 미학 분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p. 67).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는 몸짓을 행동의 영역에 포함시켰지만 행위와도, 제작과도 구별한다.
몸짓의 특징은 그것이 생산되거나 행위 되는 것이 아니라, 맡고 짊어져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몸짓은 에토스의 영역을 인간의 가장 고유한 영역으로 열어젖힌다(p. 68).
제작: 목적을 위한 수단
행위: 수단 없는 목적
몸짓: 도덕을 마비시키는 목적과 수단 사이의 거짓된 양자택일을 깨뜨리는 것
몸짓은 매개성을 전시하며, 수단을 그 자체로 보이게 만든다(p. 69).
몸짓에 있어서 인간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곳은 그 자체가 목적인 목적의 영역이 아니라 목적 없는 순수한 매개성의 영역이다.
아감벤의 구분(p. 70 각주)
수단 없는 합목적성: 춤
목적에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 매개성: 포르노 영화의 몸짓
목적 없는 수단: 마임
몸짓은 소통가능성의 소통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몸짓은 말해야 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몸짓이 보여주는 것은 순수 매개성으로서의 인간의 언어활동-안에-있음이기 때문이다(p.71).
몸짓은 항상 그 단어의 가장 적합한 의미에서 개그이다. 개그란 무엇보다도 말을 막으려고 입을 틀어막는 것을 뜻하고, 이어서 기억에 구멍이 났거나 말이 안 나올 때 얼버무리려고 배우가 즉흥으로 하는 연기를 뜻한다.
모든 위대한 철학 텍스트는 언어활동 자체를, 언어활동-안에-있음 자체를 기억의 거대한 구멍으로서, 치유할 수 없는 ‘언어장애’로서 전시하는 개그이다.
5. 정치란 순수 수단의 영역이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인간의 절대적이고 전면적인 몸짓성의 영역이다(p.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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