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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3기 /

                                            [1890년 독일어판 서문]                             

 

p384.

공산주의당 선언의 과제는 불가피하게 닥쳐오고 있는, 오늘날의 부르주아적 소유의 몰락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긴다: 러시아 촌락 공동체는,

->오늘날 이 질문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p389.

선언의 역사는 일정 정도까지는 1849년 이후의 현대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반영한다. 가정 널리 보급된, 가장 국제적인 산물이며, 모든 나라들의 수백만 노동자들의 공동 강령이다.

선언이 나왔을 때, 그것을 사회주의 선언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들은 점점 사멸해 가는 종파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다른 한편은 자본과 이윤은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온갖 종류의 미봉책으로 사회적 폐해들을 제거하려 했다 : 어느 경우나 노동자 운동의 외부에 서 있으면서 오히려 교양있는계급들에게 후원을 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들 중에 단순한 정치적 변혁들의 불충분함을 확신하고 있었던, 사회의 근본적 개조를 요구한 이들은 자신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1847년에 사회주의는 부르주아 운동을, 공산주의는 노동자 운동을 의미했다.

*18482월 혁명(1848222~25일까지)-빠리의 노동자들, 수공업자들 및 대학생들은 루이-필립의 부르주아적 입헌 군주제를 타도하고 프랑스 공화정의 선포를 강제하였다.(주석 87)

*1848623일에서 26일에 걸친 빠리 프롤레타리아트의 봉기인 6월 폭동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간의 최초의 대() 대결이었다. 빠리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부르주아 및 농민 동맹자들로부터 고립되고 집결되지 못한 채 유혈적으로 진압당하였다. 이 폭동은 유럽 전체에서 혁명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폭동과 더불어 반혁명의 대오 정렬이 종결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반혁명은 반격에 착수하였다.(주석 88)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파리 혁명 전야에 세계에 대고 외쳤을 때, 극히 적은 목소리만이 응답하였다.

1864928일 대다수 서유럽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들이, 영광스럽게 회상되는 국제 노동자 협회로 단결하였다. 인터내셔널은 9년간 존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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