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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배려의 인문학 강민혁 / 31-3/ 화니짱 / 21.11.05

자기배려의 인문학(21.11.05).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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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나는 왜 글을 쓰는가?

 

3-2. 글쓰기, 자유를 넘어선 자유

 

3-3. 글이 만든 삶, 삶을 불러온 운명

 

글쓰기 강좌와 모임이 넘쳐난다. 강민혁의 말대로 글을 통해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널리 이름을 알리기 원하는 욕망 때문일 듯하다. 그러나 유명저자가 돼서 인기를 누리고 싶다는 인정투쟁적 환상을 제하고 나면, 글을 써야 한다는 목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감동, 지식, 성찰, 기록의 효과모두 글쓰기를 통해서 도달하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기에 다른 매체와 다른 활동으로 대체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쉽게 생각하듯 보고 들은 느낌이나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행위가 글쓰기일 것이라는 통념도 맞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기성의 느낌과 생각을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서는 카메라나 음향장비를 이용하는 게 더 정확히 기록하고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문장을 추구하다 보면, 남들을 흉내내고 기껏해야 베끼는작업에 머물 뿐이다.

 

그렇다면 글쓰기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강민혁은 글쓰기는 기성의 생각과 느낌을 항상 적으로 삼아서 막장까지 몰아세우기 위해 쓴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관성적인 생각과 편견에 대한 혁명적인 저항행위가 된다. 의견은 이견이다. 모두가 동의하거나 알고 있는 상식적인 생각을 반복할 따름이라면, 아까운 나무를 사용하면 안 될 일이다.

 

저항으로서의 글쓰기,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나만을 위한 글이다. 언행일치, 저자의 행동과 삶이 우러나오는 글이 아니라 반대로 글이 저자에게 다른 삶을 살도록 촉구한다는 점에서 언행의 괴리가 존재하는 글이다. 물론 겉으로는 근사한 말을 하면서, 위선적인 행동을 용인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글이 현실을 정지시키고, 기존 삶을 무너뜨리는”(269)힘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글은 삶을 모방하여 서술하지 않는다. 거꾸로 글이 삶을 만든다.”(263) 도래할 혁명적 삶, 저항적 실천을 위해 글을 통해서 나의 현재 삶에 채찍질을 가하고 현실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삶, 명성을 얻는 삶, 빈부격차와 사회적 부조리에 눈을 감는 삶, 안락하고 좋은 칭찬만 들을 수 있는 무난한 삶 그런 삶에 일격을 가하는 글쓰기가 아니라면 좋은 글쓰기라 할 수 없다. 그런 글을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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