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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제3장 서역(西域) 역사 공동체
‘서역’이란 말은 한대(漢代)에 중국에 처음으로 알려져 그 존재가 기록되었다. 서역인이 동아시아 세계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도 한대(漢代)부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이 사용한 서역이란 말에는 광의와 협의 두 가지로, 광의의 서역이란 중국의 서방에 있는 일체의 공간적 범주를 통칭하는 것이고, 협의의 서역은 지리적으로는 흉노와 오손의 남쪽에 있었고, 남북에는 큰 산(천산)이 있었으며 중앙에는 타림하가 있고, 동서는 6천여 리, 남북은 1천여 리에 이르렀다. 정치적으로는 서역 도호가 관리하던 범위를 말한다. 옥문관과 양관에서 서역으로 나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었다.
서역에 사는 사람들은 유목 수렵과 농경을 겸했고, 소규모의 오아시스 성곽 국가를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한무제시기에 처음 개통되어 평제까지 서역 도호에 소속한 국이 48개 국이었다. 48국 가운데, 수백 명에 불과한 나라가 8개 국, 천명 이상 만 명 이하가 29개 국, 만 명이상 8만 명 이하가 9개 국, 온손이 12만여 명, 대원이 30여만 이었다.
우전, 사차, 소륵, 구자, 대원, 언기 등 농업을 주로 하며 정착 생활하는 성방지국과 야강, 선선, 오손 등 가축과 물, 풀을 따라 다니는 행국, 목축을 주로 하되 경작도 할 줄 아는 국가 등이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눈이 깊고 수염이 많고, 코가 높았다. 선선, 우전, 언기, 구차, 소륵, 오손, 대원은 중국인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1. 한대(漢代)의 서역
서역과 중국의 관계가 한대에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역은 흉노에 신속해 있었으나 통솔하여 진퇴할 수는 없었다. 무제는 월지와 교류하여 호(胡)를 멸망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장건을 보냈는데 가는 길에 흉노에게 10년간 구류되었다가 간신히 탈출하여 대월지에 갔지만, 대월지는 비옥한 땅에 침략당하는 일도 없고, 호에 보복할 마음도 없었다. 장건은 동의를 얻지 못하고 1년 정도 머물다가 돌아오다 다시 흉노에 잡혀 1년간 구류되었다가 귀국했다. 이러한 장건의 서역 기행이 한인의 관심을 자극했다(588).
장건은 대하로 사신보낼 때, 흉노나 험한길을 피하기 위해 신독(인도)을 통하는 길을 보고 했다. 무제는 장건에게 나아가게 했으나 북방으로는 저와 작에 의해 막히고, 남방으로는 휴와 곤명에서 가로막혀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 뒤 무제 원수 2년(기원전 121)에 표기장군 곽거병의 공격을 받아 흉노가 막북으로 도주하자 그곳에 오손이 형제의 관계를 맺고 들어와 살게하여 흉노를 견제하려 했으나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손의 사신들이 한의 부유함과 인구를 보고 화친을 요청하고 흉노와 대항했다.
그 뒤, 장건은 부사를 나누어 대원과 강거, 대월지, 대하, 안식, 신독, 우전 등 이웃 나라에 파견, 그 곳의 사람들과 함께 돌아왔다. 이 때부터 빈번히 서역에 왕래했다.
『사기』 대원열전에 의하면, 장건이 외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존귀해진 뒤부터 관리와 사졸들부터 모두 다투어 상서하여 외국의 기괴한 사물과 이해에 대하여 말하면서 사신으로 나가려 애를 썼다. 천자는 그 말을 들어주어 출신 여하를 따지지 않고 관리와 백성을 모집하여 무리를 갖추어 떠나가게 함으로써, 그 길을 넒혔다. ....품행이 방정치 못한 무리가 다투어 본받았다. ...서역도 한이 멀어 군대가 오지 못할 것이라 하여 고통을 주자, 무제 원봉 3년 장군 조파노를 보내 격파했고, 이 때의 거병을 기화로 오손과 대원 등을 위협하여 핍박했다. 오손은 공주와의 결혼과 형제 관계를 청해 연합하여 흉노의 오른팔을 끊는 목적을 성취했고, 대원은 좋은 말을 얻기 위해 정벌하였는데, 이 때 주변의 소국까지도 인질이 되었다. 대원 정벌 이후, 돈황에서 염택까지 정(亭-역참)을 세웠으며, 사자교위를 설치하였다.
소제가 즉위하여 곽광이 집권한 뒤에는 서역을 적극적으로 경영하지 않고 정길을 위사마를 두어 보호하게 하였고, 선제 신작 2년에는 위사마 정길이 거사를 격파하고 흉노으 항복을 받아 위세를 떨쳐 도호를 설치했다. 막부를 세우고 주벌과 회집하는 한의 호령이 서역에 반포되었다. 서역 경영이 장건에서 시작되어 정길에서 완성되었다.
원제때는 무기교위를 설치하여 행국과 성곽 제국의 동정을 살피고 변화가 있으면 보고하고 공격할 만 하면 공격했다.
애제. 평제 시기에 가장 극성기였다. 서역도호는 50개 국을 통령하고, 한의 인수를 찬 사람이 376명이었다.
서역 도호의 설치는 책봉-조공 체제를 위한 간접적, 집단적 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의 외교. 군사적 이익을 도모하려 했다.
왕망때에 다시 흉노에 의해 장악되어 일시 단절되었다가 후한 광무제 건무 초에 회복되었다가 단절되기를 반복하였다.
2. 위진남북조 시기의 서역
이 시기 중국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위략(魏略)에 의하면 서역제국은 한초에 36국이었다가 무제때 50국으로 나뉘어졌다가 태연(太延)중에는 16국이 되었다. 주요 유목 국가로는 오손과 열반, 견곤, 정령, 호게, 흉노 등이 있었다.
오손은 여러차례 침략을 받아 서쪽 총령산중으로 옮겨갔는데, 가축을 몰아 물과 플을 따라 옮겨 다녔다. 437년 북위에 조공했으나 서돌궐이 강성하자 세력이 약화되었다. 그 후예는 하사크인(투르크계)의 원천이 되었다.
열반은 이 시기 처음 출현한 국가, 이리하(카자흐) 유역에 있었다. 북사 서역전에 의하면 그 선조는 북흉노 선우의 부락으로 한나라 거기장군 두현에 쫓겨 금미산(알타이산)넘어 도망할 때 남은 허약한 자들이 살았던 구자로 북위에 조헌했다.
천산 이남 타림 분지 주변의 수많은 오아시스 성곽 국가들은 삼국 시대부터 서로 겸병하여, 비단길 남도의 대국은 선선(크로라이나)와 우전(호탄)이고, 중도의 대국은 언기와 구자(쿠차)와 소륵 등이고, 북도의 대국은 거사와 후부가 있었다. 선선 사람에게는 부역을 부과하여 근현과 같이 대우했다.
이오는 지금의 신장 합밀로서, 흉노 호연왕정이었다. 한나라 유연의 지배를 받다가 488년 북위에 귀속, 수나라때 이오현을 설치했다.
고창은 한 원제 초원 원년에 둔전을 설치, 서역장사와 무기교위가 주재했는데, 남북조시기에 국씨왕조는 조공하고 고창왕으로 책봉 받았다. 당나라는 정관 14년에 고창왕을 멸망시키고 서주로 바꾸었다. 고창 왕국은 연호, 직관, 법령, 교육 등을 중국에서 모방했다.
언기(카라샤르,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에 위치)는 기후는 춥고 땅은 비옥해서 벼와 기장. 콩.보리 등이 있었고, 낙타와 말, 누에를 쳤다. 포도주와 음악을 좋아했다. 장부는 전발했고, 부녀자는 저고리를 입고 큰 바지를 작용, 혼인은 화하와 같았고, 천신을 섬겼으며, 불법을 숭신하기도 했다. 서역에서 칭패하여 복종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구자는 신강 고차, 천산 남쪽에 있었다. 농사와 목축을 생업으로 삼았고, 전발하였고, 혼인과 상장(喪葬)등 풍속과 물산은 언기와 대체로 같았다. 북위에 조공했다.
우전은 타림분지 남쪽 강대한 성곽나라다. 불법을 중시했고, 사탑과 승려가 매우 많았다. 생김새가 호와 같지 않고 화하와 많이 닮았는데, 왕실이 서부 선비였기에 일부분은 동방의 혈통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소륵은 우전의 서북에 있던 성곽 국가의 하나였다. 불교를 독신하였고, 벼와 기장, 삼마, 밀, 주석, 철, 비단, 목면 등이 많았다. 돌궐에 조공했다.
서역의 여러 나라들은 중국의 국가에 칭신공납했으며, 조위(曹魏)는 옛 제도를 따라 서역장사를 두어 서역을 관할하게 하고 무기교위를 두어 거사에 주둔하게 했다.
중국에서 서역으로 가는 주요한 길은 세 갈래가 있었다. 하나는 하남로로서, 농우, 하서를 경유하여 돈황에서 서역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둘은 초원로로서, 흉노, 선비, 유연 등 북방 유목민이 서역과 왕래하는 길이요, 셋은 청해길(토욕혼로)로서, 농우에서 청해를 거쳐 서역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서역 상인들의 활약은 뛰어나 양주와 중원에 이르러 무역했다. 진주와 마노, 수정, 유리, 호초, 향료, 금화 은전, 명마 등을 가져와 중국의 비단과 금백, 종이, 붓 등을 사가는 관방무역을 행했다. 또한 서역의 음악이 중국에 유입되어 큰 영향을 입혔다. 중국의 풍토를 좋아하여 중국에서 사는 자가 만여 가에 달했다. 이로 인해 천하에 얻기 어려운 재화가 모두 있다라고 했다.
3. 수(隋), 당(唐) 시대의 서역
수, 당시대에 이르러 서역은 돌궐과 돌기시, 회흘, 힐알사 등 철륵 제부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이때의 돌궐을 서돌궐이라 불렀는데, ‘십성돌궐’이라고도 했다. 10부로 구성되고 매 부에는 추장 1인이 있고, 각자에게 전 하나씩 주었기에 십전이라고도 했다. 또한 경내에 ‘서역제호국’이 귀부하고 있었다(606). 그 관할 지역은 동으로는 동돌궐, 서로는 뇌저해, 남으로는 소륵, 북으로는 한해에ㅔ 이르렀다. 당시 중앙아시아의 수많은 소국들도 모두 서돌궐에 속국이었다. 관에는 엽호와 특근이 있어 언제나 가한의 자제나 종족이 맡았고, 을근굴리철. 염홍달. 토둔. 사근 등은 모두 그 지위를 세습했다. 매년 5월 8일에 모여 신에게 제사드렸고, 매년 중신을 그 선조가 거주했던 굴로 보내어 제사를 드렸다.
달두가한은 600년에 중국까지 침공했지만, 그가 죽고, 잦은 반란이 일어 처라가한은 수나라에 입조하였다. 618년 수 양제가 암살되자, 당에 항복하고 귀의왕으로 책봉 받았으나 동돌궐의 청으로 암살되었다.
처라가한이 수에 입조하자, 서돌궐은 달두가한의 손자 야궤가한을 옹립하여 옥문관 이서의 서역을 귀속했다. 그가 죽은 뒤 아우인 통엽호가한이 죽위 마침내 서역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백부에 의해 찬탈당한뒤, 왕실이 분열되면서 급속히 쇠락, 당과 책봉-조공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 때에 돌기시가 일어났다.
돌궐과 돌기시를 이어 서역을 지배한 주인공은 회흘이었다. 회흘은 위그르로 읽히고, ‘연합’의 뜻을 갖고 있다. 당과 후돌궐을 협공하여 땅을 모두 차지한 회흘의 영토는 동으로는 실위와 접하고 서로는 금산, 남으로 대막에 이르렀다. 당문종 개성 5년(840년)에 힐알사에 의해 패망했다.
4. 요(遼), 금(金), 원(元) 시대의 서역
몽원시대에는 서역에 사는 사람들의 종류가 번다하고 명목이 다양하다고 해서 ‘색목인(色目人)’이라고 불렀다. 원대의 색목인은 20여 종이었으며, 회회. 외올아. 당올 등이 가장 유명했다.
몽원은 국인을 몽고, 색목, 한인, 남인 등 4등으로 나누어 정치, 법률상의 지위와 대우를 불평등하게 했는데, 색목인은 몽고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이처럼 색목인을 우대한 까닭은 색목인이 가장 먼저 정복되어 적극적으로 협조했기 때문이다.
색목인을 회회인이라 쓰기도 했는데, 이는 호회인의 수가 많고 세력이 컸기 때문이다. 회회란 이슬람교를 믿는 중앙아시아 돌궐인, 페르시아인, 아랍인을 의미했다. 원대는 회족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로, 서쪽을 정벌한 이후 포로가 된 회회인을 제왕과 백관에게 분급하여 목축노예나 공장에서 일하게 했고, 남송을 멸망시킨 이후 절강과 민지역에 회회인 집단거주지가 형성되었다.
회회인은 문명의 수준이 높고 교제(交際)와 이재(吏才)에 능했고, 아랍의 천문, 수학, 의학 등을 중국에 전래했고, 소주와 회회포, 회회음악, 회회화 등을 전래했다. 이들은 거란, 여진, 당올, 몽고인 등과 함께 새로운 민족공동체, 회족을 형성했다. 그러나 혼인과 장례는 중국과 달라 집단 취락지를 따로 갖고 있었다.
외올아는 유오이(위그르)인의 선민으로, 기원은 8세기에 막북 초원에 강대한 한국을 건립한 회흘이다. 백여년간의 자연 재앙과 내란, 힐알사의 외침으로 국가는 멸망하고 종족은 서쪽으로 이주, 이중 고창지역으로 이주한 고창회골이 원대 외올아의 직계조상이다. 토지가 비옥하여 농업이 발달했고, 포도에 적당했다. 목축도 성행 말을 많이 생산했다. 종교는 불교, 마니교와 요교, 경교 등이 신봉되었다. 외모가 특징적이었는데, 곱슬머리에 눈이 깊고 눈썹이 짙으며, 눈 아래에 교룡처럼 구불구불한 수염이 많았다. 역도호가 징기스칸에 입조하여 부마로서 고창왕 작을 받는 특수한 관계를 유지했다. 징기스칸은 외올아인 교수를 두어 외올아체 몽고 문자를 창제했다. 외올아 관제와 제도를 채용. 실행했다.
당올은 옛 서하국(황하의 서쪽이란 뜻)으로, 원태조가 평정하기전, 7세기 말부터 내사하였고, 당항 탁발부가 강성했으며, 황소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이씨 성을 하사 받아 당의 번진이 되었다. 원호 시기에 황제위에 오르고 국호를 대하라 정했다.
서하는 동으로 요. 송과 접하고, 남으로는 토번과 경계하고, 서로는 고창회골과 이웃했기에 다양한 연원의 다원적 문화를 형성했다. 번문을 창제, 사용했고, 자연을 숭배했으나. 귀신을 믿고 무술을 숭상했다. 티벳 불교가 전래, 번승을 국사로 섬겼다. 신체는 장대하고 피부는 검었으며, 피발(被髮) 혹은 체발(剃髮)했다. 문관은 당송의 복식을 모방했으나 무관은 특유한 복식을 했다. 서하가 몽고에 멸망, 속민이 되었고, 1286년에 감숙행성을 세웠다.
5. 명(明), 청(淸) 시대의 서역
명은 몽원을 중국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명의 실질적 지배력은 중국의 범주에 국한되었고, 서역의 합밀정도에 미쳤으며, 명의 서번으로 삼았다. 합밀의 북쪽은 강성한 몽고가 있었고, 서쪽은 토로번이 있어 때때로 침범을 받았다. 토로번은 1473년에 합밀을 병합하고 중국 세력을 서역에서 완전히 축출했다.
명, 청 시대 서역에는 몇몇 군소 역사 공동체가 형성,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의 기반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회회인, 유오이인, 합살극인 등이다.
회회인의 경우 중국 각지에 분포하여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작은 곳에 밀집하여 거주하는 독특한 상황을 형성했으며,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방면에서 이름을 드러낸 인물들이 많았다.
만청이 중국을 지배하던 시기에는 서역이 몽고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있었다. 천산이북은 오이라트 몽고가 장악하고 있었다. 오이라트 몽고는 명대에는 와랄이라 불렀는데, 명의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었다. 강희제 시기, 준가르 부의 갈단이 오이라트 4부의 땅을 모두 점거하고 막남까지 침범하려 만청은 경계를 확정지었고, 건륭 21년에 대군을 보내 이리장군이 통할케했다. 준가르 부가 내속하자 총령(파미르) 이서의 하사크, 포노트, 호한, 아프간 등 여러 국가들도 내부했다.
만청은 회화인에 대해 강업적인 통제정책을 실행했다. 보통 사람보다 일등 높은 죄를 가하자, 빈번한 무장 저항을 일으켰다. 순치 5년에는 감주, 양주, 난주를 점유하고 명조의 후예를 옹립, 반청복명의 기치를 내세웠다. 청군에 진압, 건륭연간에는 이슬람교의 신교와 구교의 갈등에 노교를 지지하고 신교를 탄압하자, 무장 저항이 일어났으나, 청군에 진압하는 등 회민을 대량학살하거나 회민학살을 조장하기도 했다.
6. 청말 민국(民國) 시대의 서역
한대에 협의의 ‘서역’지역인 옥문관에서 총령에 이르는 천산 남부의 오아시스 성곽 국가 군이 분포한 지역을 명. 청시기에는 회강이라 불렀는데, 건륭제 시기에는 이리장군이 편입한 뒤로 ‘신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강이 내속한 후 100여 년 뒤에 아혼타명이 회교도 반란에 편승하여 이곳에 독자정권을 수립하고 영국과 러시아와 조약을 맺어 배타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신강에서 회란이 일어나자 러시아가 군대를 보내 이리(伊利)점령. 직접통치하고, 청의 군대는 모두 철폐했다.
한대 이후 중국과 초원 유목 공동체가 힐항하는 서역이, 그 전략적 가치로 인해 이제 서역에 중국을 지배하는 국가의 군현이 설치됨으로써 서역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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