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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3장 pp119~148 알튀세르
2022.9.16. 바다사자
3장 그람시인가 마키아벨리인가?
마키아벨리는 가장 처음으로 유한 귀족과 고리대 귀족에 대한 능동적 부르주아지의 계급투쟁과 계급지배에 관해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생산적 부르주아지의 계급지배는 ‘단 한 명’에 의하 절대군주제라는 규정된 정치적 형태에 의해서만 보증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마키아벨리 안에는 이미 국가 이론과 국가의 ‘짐승(힘)’과 인간(동의)라는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다(120). 마키아벨리에게 짐승(난폭한 힘)은 사자와 여우(간지와 가장)로 동시에 양분되며 여우는 비르투, 혹은 정세의 요구에 따라 힘과 동의(헤게모니)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이데올로기가 최고의 동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수적인 종교이든 (121) 군대 안의 전체 남자 인민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군대 덩어리 형태이든 국가권력에서 이데올로기가 구성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점에서 그람시보다 더 나아간다. 그람시는 스승보다 사상적으로 빈약하다. 국가 안의 ‘헤게모니’에 대해 힘(군대)의 ‘계기’가 취하는 우위를 주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람시에게 힘은 국가 개념 속에서 자신의 소멸을 준비하기 위해서만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122) 난폭하고 벌거벗은 힘으로서의 힘만을 의미했다. 간지, 즉 이성 전체가 가장할 수 있는 힘에 달렸다는 점에서 ‘인간’보다 더욱 지적으로 무한한 짐승으로서의 여우를 생각하지 못했다. 더욱 가장이 국가, 군주의 정치 전략과 공실체적/동질적이라는 점을, 군주의 ‘이미지(이미지 자체에 의해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된 국가의 장으로서 군주라는 이데올로기적 ’이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123).
마키아벨리는 국가가 자신의 헤게모니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국가 이데올로기가 유기적 필연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 국가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데올로기로 헤게모니를 정의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를 통해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물리적 지위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 개념으로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개척했다. 단지 묘사에 그치지 않고(124) 구체적 탐구를 했다.
힘이 이데올로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론 전체의 핵심이다. 푸코는 매우 정교하게 이데올로기가 ‘관념들’이 아니라 특정한 물질성, 실현하는 ‘장치들’의 물질성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물질성과 장치는 마키아벨리의 ‘힘’과 같다(125).
힘은 여우의 힘이며 그 핵심은 물리적 폭력의 효과이든 가장의 효과이든 이를 생산해내기 위해 사자의 힘을 분별력 있게 활용할 줄 아는 것이다.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는 ‘짐승’으로서의 국가권력과 여우의 형상을 하고 있는 ‘짐승’으로서의 국가권력이라는 이중의 능력을 사고한다는 점이 매우 심원한 중요성을 지닌다. 군주-개인을 완전히 추상화하고 그 추상이 군주-개인의 도래를 위한 정치적 조건들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126), 정치는 개인과 관련된 것이 아니며 전략, 노선,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고유한 수단들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127).
군주는 본성[자연]에 의해 혹은 이성에 의해 덕과 악덕을 행할 수 있는 한 명의 개인이 아니다. 군주에게 객관적 기능들의 종합을 부여해 줄 주관적 통일체로서 중심적 주체가 없는 그러한 심급들의 하나의 체계이다. 군주는 이 심급들의 전략적 실행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군주는 하나의 정치적 전략이고 ‘주체 없는 과정’인데, 군주 그 자체이기도 한 이 전략 속(128)에서 군주는 생산적 부르주아지의 투쟁 전략을 표현할 뿐이다. 이를 말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생산적 인민이 전략 속에서 스스로를 인지하고 자신의 것으로 인지하는 조건 하에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유토피아주의자가 전혀 아니다. 방안에서 독백하면서 인민을 위한 하나의 전략을 사고하지 않는다. 프랑스, 스페인(129), 이탈리아의 역사와 인민이 사고하는 것으로 본다. 이에 더해 제시된 전략이 인민대중에게 받아들여져야 하며 이 전략 속에서 자신을 인지해야만 한다. 전략 자체가 대중을 군주 주위로 집결시켜야만 하는 관념을 받아들이게끔 하는 동의와 확신을 효과적으로 생산해내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제시되어야만 한다.
이데올로기는 국가, 국가의 기능 작용, 인민에게 전략을 제시할 때, 인민적 표상에도 필수 불가결하다. 새로운 국가 구성 이전에 전략의 관념에 대한 헤게모니가 필요하다. 국가 도래 이전에 대중을 사로잡아야 한다(130).
그람시는 새로운 국가의 구성에 선행하는 헤게모니를 구성할 수 있는 수단, 즉 공산당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공산당이 ‘현대의 군주’라고 했지만 그는 틀렸다. 우선 당은 한 명의 군주가 아니다(131). 그 군주는 하나의 완전히 다른 전략이다. 봉건제 국가의 파괴와 착취적 국민국가의 정초 전략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와 그 착취와 억압을 제거하는 과업을 부여받은 혁명적 국가를 정초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람시는 군주의 돌발이 이데올로기를 생산할 것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즉 군주가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헤게모니가 선행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질문을 제거했다.
마키아벨리의 해결책은 군주의 전략이라는 것을 취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여우-사자-인간으로 변형하는/행동하는 것이다(132).
인간-사자-군주(133~135).
인간 | -군주는 자신의 지적 정직함으로 인간이 된다. -군주는 공공의 선과 이탈리아의 안녕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인간이 된다. -군주는 인민이 겪는 모든 불행들에 대한 비장한 동감으로 인간이 된다. -군주는 국가의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로 연합하도록 외치는 집결의 호소 속에 존재하는 해방된 정념으로 인해, 《군주론》의 결론에 영감을 불어넣는 정념으로 인해 인간이 된다. |
사자 | -군주는 힘을 전투에 활용함으로써 사자가 된다. -이 힘은 허약하다(133). 위대했으나 과업에 실패한 체자레 보르자와 재능있는 청년들을 지원해주었던 실험을 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
여우 | -‘인간’과 함께 여우는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힘이다. -가장이 자신의 본질인 여우는 가장하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여기에 만능열쇠가 존재한다. 가장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점, 가장이 인간들의 통치와 억압의 방법으로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마(134)키아벨리의 가장의 핵심은 조금도 가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전제정’에 대해 말하기 위해 ‘가장’했지만, 실제로는 인간들에게 그들의 ‘자유’에 대해 말해주었다. 즉 군주들에게 통치의 원리들을 제공하는 것처럼 ‘가장’했지만 실제로는 인민에게 군주들의 통치 방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깨우쳐주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정주의자인 것처럼 ‘가장’했지만, 이는 공화국을 향한 변론이었다. |
마키아벨리에게는 어떠한 가장도 존재하지 않으며 바로 이것이 그의 가장이다. 그에게는 가장이 정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례를 전부 검토했다(135). 가능한 한계-사례들을 검토함으로써, 이 가능한 한계-사례들을 실제적인 것으로 전제함으로써 추론해나간다. 한계-가설 안에서 사고함으로써 최악의 사례를 사고할 수 있으며, 이 한계-문제를 해결한다면, 그 하위문제들의 해결책도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136).
마키아벨리는 이데올로기적 물질성 안에서 절대적으로 새로운 하나의 가장을, 어떠한 가장도 하지 않는 것을 핵심으로 취하는 담론의 한 형태를 발견해냈다. 마키아벨리는 절대로 가장하지 않는다. 알려진 현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제시(137)는 마키아벨리에게서 알려진 현실에 대한 단순한 제시라는 역설적 형태 하에서 제시된다. 즉 법률적 사실을 정의하는 법적 의미에서의 사실이 아니라, 국가 이데올로기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계급투쟁이라는 정치적 의미에서의 ‘사실을 말하’는 것에 만족한다.
군주의 ‘이미지’가 국가의 권력과 국가 이데올로기의 권력이 강제하는 법칙이기 때문에 ‘가장’을 하는 이 세계에서 마키아벨리는 가장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는 법칙을 거부하는 길을 선택한다. 적수의 지형 위에서뿐만 아니라 현 사회의 지형 위에서도 스스로를 위치시키기 거부한다. ‘지형(138)을 변경’하며, 의도적으로 다른 지형 위해 스스로를 위치시킨다.
군주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인민이 되어야 한다. 인민-되기를 수행하면서. ‘또 다른 지형’은 우리가 ‘군주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지형이다. 인민의 지형은 또한 인식의 지평이기도 하다. 이 진정한 인식에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예상하며,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인민대중이 그 자신의 권력에서 새로운 군주의 전략을 예비하는 데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유일한 것이다. 말해진 진실은 당황스러움과 모순 속에서 정신을 동요시킨다. 그러나 모순은 이미 계급투쟁 한에 존재하고 있다. 이 모순은 마키아벨리가 발명한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 계급투쟁에 유리하도록 모순의 방향을 변경함으로써 이 모순에 의지한다(139).
진정한 정치가로서 마키아벨리는 대중에게 유토피아에 대해 설교하기를 거부한다. 가장하기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할 줄 알고 참을 말하는 유일한 무기만 남겨놓았다. 마키아벨리는 참이 말해지고 나면 참 홀로 세계를 장악, 진실의 빛 앞에서 오(140)류를 물리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는 유물론자이다. 절대로 가장하지 않으면서 참을 말하는 길을 선택하면서도 관념의 전능함이라는 망상에 전혀 빠지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 대해서만 말한다(141). 그에게서 착취라는 관념은 배제된다. 계급투쟁을 착취가 아닌 소유,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통해서 설명한다. 소유의 법률적 통념에 만족하기 때문에 소유 혹은 비-소유를 설명하는 것은 바로 소유에 대한 관계, 혹은 비-소유에 대한 관계이다. 이 관계는 ‘욕망’의 관계이다. 그의 계급투쟁의 근원은(142) 욕망이다. 소유자들과 권력자들의 욕망의 분할, 즉 계급투쟁의 ‘원인’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더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욕망 한편에 무언가 소유하려는 욕망과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욕망’ 아래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경험주의적 방식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며 모든 것이 정치로 환원된다. 그람시가 마키아벨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인지한 것은(143) 이 점 때문이다. 실천적인 방식으로 제시된 이 테제로 인해 그람시는 시대착오적으로 마르크스를 ‘위험을 무릅’쓰고 ‘무시해’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작업 전체에 남긴 무지의 백색지대(하부구조, 생산관계)를 동일한 기반으로 지니고 있다(144). 그러나 둘의 백색지대는 동일한 의미를 지닐 수 없다. 마키아벨리가 보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바를 그람시는 사실 매우 단순하게 지워버리고 삭제해버렸다. 그람시가 그의 모든 것, 전략 전체의 최종심급에서 백색지대가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말소해버리면 그는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공백 속의 수많은 결합들과 사변들이다(145). 기초를 지배하지 않는다면 증명은 공백 속에 있게 된다. 그람시가 비록 비범한 지성을 지녔다 하더라도 ‘최종심급에서 결정적’인 것을 그토록 쾌활하게 추상해버리는 전략을 노동자 운동을 위해 진지하게 취급할 수 있나?(146).
그람시는 사태를 직접적으로 ‘보는’ [경험주의의] 쾌락을, 정치적인 것을 하나의 고급 디저트와 같이 소비하는 쾌락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147). 대중은 그에게서 모든 이론들 중에서 더 나은 하나를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실천이라는 기준’만 얻어낼 수 있다. ‘실천이라는 기준’에 대한 질문은 ‘유로공산주의’ 정당들에게서 이제 막 제기되기 시작했을 뿐이다(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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