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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영어 같은 일본어
p255 : 이 장에서는 오카쿠라 요시사부로라는 사회적 사건을 매개로 하여 영어와 일본어와 방송이 입체적으로 결합하는 과정 속에서 영어회화라는 사고양식과 친화적인 공통어가 출현하는 문맥을 고찰하고자 한다.
1. 제2언어로서의 공통어
(256) 1930년에는 ‘말의 강좌’라는 하기 특별 교양프로그램을 신설하고, 박사 6명이 출강해 일본어의 바른 발음과 해석에 대해 상술했다. (258) 여기서 표준어로 일본어의 통일을 지향하고 방언을 해충과 같이 섬멸하자고 주장한 예전의 표준어 일원화=방언 폐멸이라는 언어관은(257)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지방적 색채를 지닌 말’로서 방언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수용하고, 공통어는 지방어와 더불어 존재해야만 한다는 다중언어관이 드러난다. 마치 국제공통어로서 영어회화를 일본어와 병행하여 지나듯이 (국내)공통어인 일본어가 각자의 지방어와 아울러 몸에 익힐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260) 마치 외국어로서 영어회화의 학습이 일본어 의식의 향상에 도움이 될지언정 결코 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공통어와 방언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용어 조사에 관한 일반방침>
제3조 공통용어는 현대 국어의 대세에 순응하여 대체로 제도의 교양있는 사회층이 보통 사용하는 어휘, 어법, 발음 억양을 기본으로 한다.
제4조 공통용어와 방언의 조화를 도모한다. (강조는 역자)
p262 : 공통어가 지향하는 언어지평은 표준어가 전제하는 언어지평과는 당연히 다르다. 사회적 통합과 관리를 위한 새롭고 강력한 형식인 방송이 공통어의 다중언어관과 높은 친화성을 보이는 상황을 다음 절에서 살펴보자.
2. 두 개의 공통어라는 사고
초기방송에 출현한 두 개의 공통어는 동(263)일한 언어 관념의 국제판과 국내판이라는 서로 닮은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리지널과 축소 복사본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꼬리를 물면서 하나의 도형을 그리는 두 마리 뱀과 흡사하다. 방송해야 할 영어와 일본어는 국제공통어와 국내공통어로서 서로 부단하게 참조하고 교섭해야 비로소 공통어로서 유효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265) 공통어는 냉정한 얼굴로 사람들을 다중언어 상황에 가두어놓고, 언어지리의 좌표축 위에서 개개의 위치 값을 짊어지게 한다. 이러한 위치 값의 출발점(출신 언어)은 각인되어 있지만, 현재의 위치는 항상 이동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 값을 강하게 인식하면 할수록 자기 노력에 의해 위치 값의 이동을 지향하거나 그 외부를 지향할 것이다. 예를 들어 더욱 영어다운 억양과 몸짓으로, 더욱 공통어다운 발음과 어휘로, 또는 도쿄 사투리에 대항한 (순수한?) 교토 사투리로 옮겨가기도 하고, 또는 영어로 말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우기도 할 것이다.
(266) 공통어로 상징되는 끝나지 않는 계단의 주체적인 상승과 하강, 다시 말해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규범화된 이상적인 주체로 자신을 훈육시키는 (또는 ‘저항’할 수 있게 하는) 차이화의 단계야말로 교양과 결합한 방송이 새롭고 강력한 사회적 통합과 관리의 형식으로 작동하는 원리다.
(267) “일본어를 이해할 수 없어서 조선어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문화적 자극도 주지 않고 사회교육도 시키지 않은 채 오로지 국어인 일본어와 친숙해지자고 말하는 것은 도저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2방송(조선어방송)은 제1방송(일본어방송)의 보조적 수단 또는 앞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적 자극을 준다면, 일본어를 이해하지 못해 조선어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국어’를 조선어로 배우게 되어 머잖아 제1방송의 청취자가 될 것이다. 제 1방송으로는 ‘말의 시간’이나 영어강좌 시리즈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끝나지 않는 계단을 오를 것인가, 말 것인가, 이는 개개인의 자주성과 주체성에 맡겨져 있다. 이것이 교양과 결합한 방송이 지향하고 실천한 사회통합의 방법이다.
방송의 청취공간은 청취자 개개의 주체적인 청취와 시작도 끝도 없는 교양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근대일본의 권력공간이다. 방송해야 할 교양은 시류에 따라 ‘영문학’이기도 하고 영어회화이기도 했으며, 또 공통어라는 ‘국어’이기도 했다. 결국 교양의 내용을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방송해야 할 교양은 내용이 아닌 규범화양식에 의해 문맥적으로 결정되어 효력을 발휘했다.
맺음말_영어회화의 권력
(278) 전전과 전후에 방송한 영어회화를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앎이라고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체적으로는 1)두 사람의 프로그램 강사가 진행하는 회화를 청취하는 스타일, 2)미국식 억양의 발신, 3)‘읽는 영어’에서 ‘말하는 영어’로, 4)‘일본을 말한다’는 전전 영어회화에 나타났던 네 가지 특징 중 4를 제외한 3개가 히라카와 다다이치의 ‘컴컴 영어’와 그 후 영어강좌 시리즈에도 계승되어 갔다. (280) 이를테면 1977년 4월부터 1년간 방송한 ‘라디오 영회하’에서는 Nippon을 말하기는커녕 일본인과 미국인의 대화라는 이항대립의 도식도 가뿐히 초월하여 국민국가 시스템에 스스로를 속박하지 않는 이민가족들이 등장해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서로 나누거나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는 연속 드라마를 방송했다. (281) 국민국가 시스템에 무조건 의존하는 영어의 어조가 아니라, 이른바 복수의 화자들이 복수의 속성을 지닌채 복수의 타자들과 대화하는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지평이었다.
역자 후기
p284 : 비판받아 마땅한 타국의 침략과 정복 행위에 대하여 일본은 도리어 비판하는 측인 세계열강의 시선을 교정하고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이런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은 영어라는 언어적 도구를 동원했다. 일본은 자신의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고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영어를 선택했다. 한마디로 영어는 국제사회를 향해 일본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보급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 책은 바로 일본에서 실천해온 ‘영어강좌’를 둘러싸고 영어의 발화가 지닌 사회적 의미를 분석한다. 그것은 영어라는 앎의 체계가 후진국(285)의 입장에서 서구 열강을 모방하고자 하는 욕망을 전제로 삼는다는 것을 뚜렷이 밝혀주는 한편, 국민국가 형성에 따른 치열한 언어 권력을 드러내준다.
옮긴이들은 일본의 상황이 한국의 상황과 무척 병행적이라는 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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