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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 야나부 아키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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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연 번역어가 낳은 오해

 

혼재하는 두 가지 뜻

(156)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 자연이라는 단어에는 새로 탄생한 nature에 대한 번역어로서의 뜻과 오랜 전통을 가진 뜻(고유어)이 공존해왔다. (157) 그 결과로서 단순히 두 뜻이 공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 3의 의미라고 할 만한 번역어 특유의 효과까지 포함되어 있다.

 

2. 엇갈린 논쟁

에 대해 언급하면서 소개한 바 있는 이와모토 요시하루와 모리 오가이가 주고받은 문학과 자연논쟁을 자연을 중심으로 해서 검토해보기로 하자. (158) 모리 오가이가 말하는 자연이란 오늘날 자연과학이라고 할 때의 자연이다. 요컨대 nature의 번역어로서의 자연인 것이다. natrue는 당연히 객관적 존재로 인간의 정신과는 대립한다.

한편 이와모토 요시하루의 자연은 무엇인가? 이것은 일본에서 예로부터 쓰여온 의미를 지닌 자연이다. 간단히 말하면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의 경지에는 외부의 객관세계와 내면의 정신 사이에 구분이 없다.

모리 오가이는 (161) 이와모토 요시하루가 말하는 자연미라는 것에 대해 자연의 미는 먼지를 포함하고 있다. 먼지를 포함한 자연 그대의 자연은 절대로 미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자연은 정신과 대립하듯이 Kunst(인위)와도 대립하는 것이며, 문학은 이 인위적인 미, 모리 오가이가 사용한 번역어로 바꾸면 술미를 지향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논쟁에서 이와모토 요시하루는 자연을 기본적으로 일본에서 예로부터 쓰이던 뜻으로 사용하고, 모리 오가이는 자연nature와 같은 뜻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사실을 두 사람 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논쟁에서 승자는 없었다.

 

3. nature자연의 의미 비교
(163) 예로부터 쓰인 단어 자연은 인위와 대립하는 것으로 결코 양립하지 않는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곧 인위적이 아님을 뜻한다. 한편 nature는 인위, artKunst와 대립하면서도 양립한다. 양립한다기보다 상호보완적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nature의 세계는 art의 세계와 대립하면서 상호보완하는 관계에 있다. 모리 아가이가 말하는 문학은 이 인위art의 세계에 속한다. 하지만 또한 이와모토 요시하루가 말하듯이 문학은 인위를 탈피한 자연의 경지를 이상으로 삼는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nature는 객체에 속하면서 인위와 같은 주체와 대립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자연은 주체와 객체의 대립을 제거한 듯한, 이른바 주객미분, 주객합일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4. 자연은 명사가 아니었다.

(164) 일본어에서는 본래 자연자연히와 같은 부사로 사용되거나 자연스런과 같은 형용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nature는 명사라는 차이가 있다. (168) 1894년에 나온 <일본대사림>을 보면 자연이 명사로 규정되어 있으면서도 그 뜻은 저절로와 같이 부사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 무렵에 자연nature의 번역어가 됨으로써 명사로 쓰이는 변화가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가 있다.

 

5. ‘자연이 활발히 쓰인 세 분야

(168) 번역어 자연의 용법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다음의 세 분야에서의 용법이었다. 자연법이라는 법률상의 용법, ‘자연과학과 같은 과학분야에서의 용법, 그리고 자연주의와 같은 문학 분야에서의 용법이다.

 

6. ‘자연도태저절로 이루어지는 도태를 의미했다.

(170) ‘자연도태nature selection의 번역어로, 다윈진화론의 키워드이다. 자연에는 nature란 뜻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일본어 고유의 자연의 의미, 저절로 이루어지는 도태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앞에서 서술한 제3의 의미를 갖는 단어로서의 번역어 자연이었다. 즉 그 뜻은 명확하지 않아도 번역어 특유의 효과에 의해 어떤 중요한 뜻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단어로 쓰인 것이다. (172) 이 무렵 일본어 자연nature science의 대상인 nature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자연도태자연에 의한 도태가 아니라, 자연스런 도태를 의미했다. (174) 여기서 이 자연이라는 말에 이른바 카세트 효과가 작용하고 있다. 분명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뭔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그런 단어로부터 심오한 의미가 연역적으로 도출되어 논리를 이끌어가는 식이다.

 

7. 의미의 혼재를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175) nuaturealism은 자연주의로서 일본 문학을 주도하는 사상이 되어 수많은 소설을 탄생시켰으며, 이윽고 일본 문단의 주류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원래 naturalism이 그 대표자 격인 졸라가 자연과학의 방법을 모방해 소설을 묘사하고자 한 방법을(176)의미했으나, 일본의 자연주의는 졸라의 그런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오해했다는 것이다. (177) 다야마 가타이 역시 에밀 졸라 등의 naturalism의 영향을 받았음을 자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일본적인 자연주의로 굴절시켜 받아들인 것이다. (178) 그 정도로 전통적인 모국어의 뜻과 번역어에 대한 원어의 뜻이 혼재하는 현상을 사람들이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한 단어에 대해 단 하나의 뜻이 처음에 있어, 그것을 서구에서는 nature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단순명쾌한 사실을 이해하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

 

8. 일본어 자연의 의미 변화

(179) 생각해보면 자연주의는 모순된 용어이다. ‘주의란 애써 주장하고 행하는 것으로 자연과는 정반대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모순을 통해 전통적인 자연의 의미도 변화했다는 점이다. (181) ‘자연nature의 번역어가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nature의 의미를 그대로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은 번역어가 됨으로써 우선 nature와 비슷한 어법으로 쓰이게 되었다.

논리학 용어로 말하면 내포적인 의미는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외연적으로는 마치 nature인 것처럼 취급되었다. 즉 대상 세계를 표현하는 말처럼 취급된 것이다. 이것은 의미상으로는 모순이다. 이런 모순으로 인해 자연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모순을 덮어버릴 만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된다. 이렇게 해서 애써 의식적으로 자연(182)려고 하여 자타융합한다. 그럼으로써 자연의 의미가 회복되고, 동시에 새로운 의미를 낳게 된다.

8장 권리 권리의 ’, 권력의

1. right는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184) ‘화란자휘는 아마도 이 단어의 의미를 어쨌든 제대로 된 일본어로 표현한 최초의 사전일 것이다. 이중에는 오늘날 쓰이는 권리의 의미는 없다. (186) 자연권에 이어 volkenregt는 오늘날의 국제법에 해당하는 단어인데, volken을 백성으로 오해하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regt를 오늘날의 권리의 뜻으로 받아들여 백성의 본분으로 번역한 듯하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regt가 얼마나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2. 후쿠자와 유키치의 통의라는 번역어

(188) 후쿠자와 유키치는 통의라는 말로 원어(right)의 뜻을 완벽하게 표현하기란 어렵다고 설명한다. 머지않아 번역어가 원어의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시대가 왔다. right권리로 번역했을 때, 권리right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물론 정색을 하고 번역어가 원어의 뜻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부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 현실에서 쓰이는 과정은 사용자의 의식을 넘어서서 이루어진다. 즉 번역어를 포함한 단어의 구조가 우리에게 자극을 주고 우리의 의식을 조종하여, 번역어가 원어의 뜻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이다.

 

3. 헵번의 번역어

(190) 후쿠자와 유키치는 통의라는 단어를 통해, 오늘날의 권리와 같은 개념으로 를 사용했다. ‘‘(당연히 ~), 그리고 ‘~해야 하는도 도덕적인 의미가 매우 강한 말들이다. 한편 에도 전자의 뜻만이 아니라 후자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란 주자학 용어로는 사리와 통하는 말로, 우주의 근본적인 모습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192) 햅번은 도덕상의 올바름과 법률상의 올바름을 뜻하는 right의 두 가지 뜻, 즉 오늘날 통용되는 권리가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두 가지는 본래 자연법 이래의 서구 사상사에서 하나의 뿌리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둘을 확실하게 서로 다른 뜻으로도 파악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에 비해서 당시 일본의 전통 사상에서는 도덕상의 올바름과 법률상의 올바름을 근본적으로는 구별하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이런 현상을 접하고 아마도 헵번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193) 결국 헵번의 번역어는 앞서 언급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right의 번역어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후쿠자와 유치키가 번역어가 원어의 뜻을 완벽하게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4. ‘right의 의미의 어긋남

(194) ‘권리는 도덕상의 올바름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므로, 그런 점에서 적어도 올바름이라는 뜻만은 계승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올바름은 곧 정당성 또는 합법성 등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거기에 비해 은 올바름과 대립하는 의미, 즉 힘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의미의 어긋남 때문에 마침내 이 번역어로 정착한 것이 아닐까 한다. 즉 종래의 도덕 우위의 전통적 가치 체계에 대한 이질성, 더불어서 한편으로는 원어 right하고도 완전히 대립하는 이질성이 오히려 을 번역어로 정착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5. ‘은 힘이었다.

(195) 1891년에 나온 오쓰키 후미히코의 <언해>에는 권리의 뜻이 다음(196)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개개인이 보유하고 있으면서 일이 닥쳤을 때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권력(의무와 대립됨)”

 

이 무렵이 되면 권리에 대해 법률 용어다운 설명이 더해진다. 하지만 결국은 권력의 의미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6. right는 힘이 아니다.

그러나 right는 서구 사상사에서 오히려 힘과 대립하는 뜻을 가진 말이었다.

서구에서 right의 근대적 의미를 분명하게 자각하고 지적한 이는 17세기 중반의 홉스이다. rightlaw를 비교하며, right는 어떤 일을 할지 말지를 정하는 자유인데 반해, law는 어느 한쪽으로 결정해 속박하는 거라고 <리바이어던>에서 말하고 있다.

이 유명한 정의 이후로, right는 고대 이래의 자연법을 대신하게 되었다. 자연법은 앞 장에서도 언급했듯이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법과는 전혀 다른 질서에 속하는 법이다. 이 자연법이 홉스나 로크나 루소에 의해 right, 즉 오늘날 사용되는 권리라는 관념으로 계승된 것이다.

 

7. regt으로 번역하게 된 유래

(198) 나시 아메네의 <만국공법>은 피세링 교수의 강의를 기록해두었다가 귀국 후 번역한 것이다. (199) 여기서 은 권력이나 권한에 해당하며 힘에 가까운 뜻이다.

나시 아메네는 왜 regt를 의미도 일치하지 않고 오해하기 쉬운 이라는 단어로 번역한 것일까?

그는 당시에 이미 간행되어 읽히던 윌리엄 마틴의 한역본 <만국공법>을 참고했고 거기에 이미 이라는 번역어가 나온다. (201) “만국의 regt”만국의 권에 기초해 성립한다. 의 뜻은 본래 힘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만국상대해 장악할 수 있는 regt” 역시 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게 적합하다고 니시 아마네는 생각했던 것 같다.

 

8. 니시 아마네의 용례에 나타나는 의 모순

인민 각자가 소유한 권의 일부분을 나누어 군주에게 맡기, 군주는 인민 각자의 일부분의 권을 맡고 있다고 하는 생각은 언뜻 보기에는 홉스나 루소 등의 사회계약론과 유사해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인민 각자가 소유하는 이란 right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의 권과 같은 right의 경우 그 일부분을 군주에게 맡기고 그와 동등한 일부분의 권을 군주가 맡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에는 본래 갖고 있던 힘이라는 뜻과 right의 번역어로서의 의미가 혼재하고 있다. ‘인민 각자은 후자이며, ‘군주가 맡는 은 주로 전자의 뜻이다. 번역어 에는 이 두 뜻이 혼재하면서 모순을 감추고 있는데, 니시아마네 자신도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9. ‘민권운동에서의

(209) 에도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초기에 니시 아마네 등이 right를 우선 공법상의 의미로 소개하고 그 후에 번역어로 정착한 이라는 말은 이후의 민운동에도 의외로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민권운동가들은 정부의 에 대해 자신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그와 동등한 을 요구했다. 예를 들어 민권운동가들이 요구한 것은 우선 참정권 등과 같이 정치에 참여할 이었다. 기본적인 인과 같은 은 거의 문제 삼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한 것이 right가 아니라 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그것은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지고 지지도 받았다. 특히 에도시대 무사 계급의 지지를 얻었을 것이다.

또한 참정권이 불완전하나마 메이지헌법에 의해 주어졌을 때, 아직 갖(210)지도 않은 을 잃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right란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관념으로, 비록 구체적인 운동이 힘을 잃어도 그와는 별도로 사람들의 정신 속에 남아 있게 마련이다. 서구에서의 자연법이나 자연권의 역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이해했던, 혹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던 right가 아니라 오히려 힘을 의미했다. 하지만 반면에 사람들은 이를 통해 right의 의미도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사람들은 새롭게 출현한 을 우선 받아들였으나, 동시에 거기에는 미지의 right와 유사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차츰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일본인들이 외래문화를 수용할 때는 항상 이런 과정을 거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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