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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편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II 절망의 보편성
조금이라도 절망하지 않고 있는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 이런 고찰은 어둠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정신이어야 한다는 인간에 대한 최고 요구의 관점에서 모든 사람을 고찰한 것이다.
그에 반하여 절망에 관한 통상적인 고찰은 피상적인 고찰에 불과하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절망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전제한다. 그 결과 절망은 비교적 드문 현상이 된다. 그런데 절망은 사실 아주 일상적인 것이다. 진실로 절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드문 것이다.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 다시 말하면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도 진실로 절망의 한 형태라는 것을.
(의사가 환자의 말만 듣고 병을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심리학자의 절망에 대한 태도 역시 의사의 병에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이다. 그는 심리학자로서 절망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있기 때문에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든가 절망하고 있지 않다든가 하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절망은 정신의 한 규정이다. 따라서 그것은 영원자에 관계하고 있다. 그러므로 절망의 변증법 안에는 영원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 절망은 보통 병과는 전혀 다른 변증법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징후가 변증법적이다.
절망적일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절망 상태를 의미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사람이 절망으로부터 구제된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다. 또 태연하게 있는 것이 오히려 절망 상태일 수 있으나 그것은 또 절망을 극복하고 평안을 발견한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다. 절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앓고 있지 않다는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앓고 있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앓고 있음이 아니다. 그런데 절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절망하고 있다는 것일 수 있다.
(육체적 건강과 달리) 그런데 정신적으로, 다시 말해 인간이 정신으로서 고찰되는 경우에는 건강할 때나 병에 걸려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위기적이다. 정신의 직접적인 건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인간을 정신의 규정하에 고찰하지 않고 단순히 영과 육의 종합이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건강이 직접적인 규정성이고 영 내지 육의 병에 이르러 비로소 변증법적인 규정성이 된다. 그렇지만 인간이 자신이 정신으로 규정돼 있음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그것이 바로 절망이다.
인간적인 의미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인 여성의 청춘 – 이것은 순수한 조화이고 평화이며 환희이다- 조차도 실은 절망일 뿐이다. 청춘은 행복이다. 그러나 행복이 결코 정신의 규정은 아니다.
절망이 가장 즐겁게 둥지를 트는 장소는 바로 그런 곳, 행복의 한가운데다. 행복은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직접성(immediacy-즉물성-자아와 존재의 깊은 자각없이, 세속적이고 표면적인 경험에만 몰두하는 상태)이다. 그리고 모든 직접성은 그것이 아무리 평화스럽고 안전한 것으로 생각되더라도 실은 불안이다.
절망은 병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변증법적이기 때문에 그것에 걸린 일이 없다는 사실이 최대의 불행이고 그것에 걸리는 일이 진실로 신의 선물과 같은 종류의 병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신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의식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음이 실로 일반적인 상태이다. 인생의 기쁨이나 걱정에 마음을 빼앗겨 영원한 결단으로 자기 자신을 정신, 즉 자아로서 의식하지 못하고 나날을 지내고 있는 사람. 특히 대중이 다른 모든 일에 종사하며 인생의 연극을 위한 기계처럼 자신의 힘을 소모하면서도 이 축복만은 결코 상기하려 하지 않는 이 비참, 각각의 개체가 최고의 것, 유일한 것을 얻기 위하여 개체로서 독존하는 대신 반대로 군집이 퇴적으로 되어 버리는 이 비참, 이런 비참이 현존한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영원히 울어도 다 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아, 만약 언젠가 인생의 모래시계가 모래를 다 흘려버리는 때가 온다면, 그리고 요란스러운 세상이 침묵하고 노동의 분주한 활동에 따르는 소일이 끝나 당신 주위의 모든 것들이 마치 영원 안에 있는 것처럼 고요해지는 때가 온다면 그때는 당신이 남자였거나 여자였거나 부자였거나 가난뱅이였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며 살았거나 독립해 살았거나 행복했거나 불행했거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신이 절망한 채 살아왔다면 설령 다른 점에서 무언가를 얻었든 잃었든 모두 당신에게는 잃어버린 것이다. 영원은 당신의 자아를 통해 당신을 절망 안에 박아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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