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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이 부분에서 형식주의(?)를 다루고자 한다. 헤겔은 앞 부분에서 주로 다루었던 경험주의와 이 형식주의를 비교하며 무한성에 대해 고찰한다.

 

혼합
동요
안정
경험적 억견
잡다한 것
단순한 것

절대적 개념
무한성

 

헤겔은 무한성의 본질은 자기 자신의 무매개적 반대, 부정적으로 절대적인 것, 형식의 추상이라고 한다.

 

무한성
순수한 동일성 순수 비동일성
순수한 이념성 순수한 실재성
무한한 것 절대적으로 유한한 것
무규정성 절대적 규정성

 



순수이성 잡다한 존재/유한성, 다수성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무한성
긍정적으로는 순수한 통일로서의 무한성(?)

 

이론이성 양자의 존립 긍정적 관련 대립 존속다수성 존속 이념적 이성
실천이성 양자의 파괴태(소멸) 부정적 관련 대립 부정통일 존속 실제적 이성

 

헤겔이 지적하는 선험적 형식주의의 한계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보인다. 실천이성은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일성에 머물고 마는데, 그렇다면 이는 비동일성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실천이성은 절대적 무차별점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만다.

 

이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의 절대적 동일성에 대해 언급하는 이러한 인륜에 관한 학문은 자신의 말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며, 그의 인륜적 이성이란 그 본질에서는 실은 이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의 비동일성이다(p. 89).

 

절대적인 것은 무차별과 관계(이중 관계)의 통일(p. 90).

 

 

절대적인 것의 현상이 나타내는 이중관계

물리적 자연 인륜적 자연
다수가 우선 단일성 우선
상대적 통일성 무차별의 통일
필연성 자유

 

실체는 절대적이고 무한하다(p. 90).

 

비록 실천이성은 자유롭고 필연성은 단지 부정적으로 정립되어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필연성이 정립되어 있어서 이를 통해 바로 자유가 차별을 벗어나지 못하고 관계 내지 상대적 동일성이 본질로 되며 절대적인 것은 단지 부정적으로 절대적인 것 내지 무한성으로 파악되는 바로 그 지점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p. 91).

 

이성은 감성을 제한한다. 그렇다면 이성은 감성과 성향, 욕구능력 등을 포함하는 실제적인 것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서 실천이성의 분열이 나타난다.

 

감성이나 성향 또는 욕구능력 등의 명칭 아래에서 실제적인 것(관계의 다수성의 계기)이 이성(관계의 순수한 단일성의 계기)과 일치하지 않고(단일성과 다수성의 대립의 계기), 이성이란 자신의 고유한 절대적 자기활동성과 자율성으로부터 의지하며 감성을 제한하고 지배하는 데(이 관계 속에서 단일성이 또는 다수성의 부정이 우선이라는 관계의 규정성의 계기) 있다는 것이다. 이런 표상의 실재성은 실천이성의 분열도 또 순수한 통일이나 자아의 추상도 모두 자신 속에서 발견된다는 각자의 경험적 의식과 일반적인 경험을 근거로 한다.

 

헤겔은 지속해서 인륜성이라는 개념과 절대적이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한다. 그리고 형식주의에서의 실천이성은 관계의 고립으로 인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관점은 상대적 동일성이라는 측면, 즉 유한 속에서의 무한의 존재라는 측면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 관점은 절대적 관점이 아니라는 점이 주장되어야겠다. 이미 제시된 것과 같이 절대적 관점에서는 관계가 단지 한쪽 측면으로, 따라서 관계를 고립시키는 것은 일면적인 것으로 증명된다(p. 92).
우리는 부정적으로 절대적인 것에서 참으로 절대적인 것을 제시하려는 이 그릇된 시도를 그 주요 계기들에 따라 추적해야겠다.

 

실천이성에서의 순수한 통일은 분석적인 통일일 뿐이며, 결국 동어 반복이 되고 만다. , 내용적으로 새로움을 생상해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순수한 실천이성의 입법의 자율성이 지닌 고귀한 능력이란 실은 동어반복의 생산에 있는 것이다.
순수의지와 순수 실천이성의 본질은 모든 내용을 사상(捨象: 어떤 사물이나 표상에서 비본질적인 개개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버리다)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내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도덕입법을 그 본질상 아무 내용도 갖고 있지 않은 이 절대적 실천이성에서 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p. 94).
소유[사유재산]라는 규정 정립  
소유는 소유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동어반복
소유가 소유일 경우에는 소유이어야만 한다. 실천이성의 입법
소유가 아닌 것은 소유가 아니다. 소유가 없다면 소유이고자 하는 것은 지양되어야만 한다. 동어반복
이 과정에서 소유가 존재해야한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는다.
실천이성의 분석적 통일과 동어반복은 단지 쓸모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취한 활용에서 그릇된 것이며 비인륜성의 원리라고 인식되어야 한다(p. 97).
규정성과 개별성이 즉자로 격상되는 곳에는 불합리성이 정립되고 인륜과 관련해서는 비인륜성이 정립된다.
제약 무제약
비실제적 절대적
  변환은 부당함  
절대적 형식이 제약된 질료와 혼합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내용의 비실제적이고 제약된 것에 형식의 절대성이 슬쩍 삽입되는데, 바로 이러한 전도와 눈속임에 순수이성의 실천적 입법의 핵심이 놓여 있다(P. 98).
'소유는 소유이다.'
질료 규정 / 형식 무한 질료와 형식이 서로 모순
내용 / 형식 동일하게 정립 실천적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음.
규정성의 파괴 발생
편성 속에서 사유되면 스스로를 파괴하는 그런 규정과 관련되어 있는 준칙은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비도덕적일 것이다(p. 99).

앞서, 형식주의의 쓸모없는 동어 반복을 비판했다면, 이제 비도덕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비도덕적이라는 말을 비인륜성과 같다고 봐두 무방할까? 준칙(Maxime)은 다음의 1)과 2)의 어느 경우에서건 자기모순적이다. 그래서 비도덕적이라고 한다. 맥락상 달리 해석하면 '무용'하다. 이다. 여기에서 헤겔은 지양하려는 행위를 수행할 때 도덕적이라고 본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 같다. 

1) '규정의 지양'을 규정 →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 고양 → 지양하는 행위 파괴

2) 규정의 유지 → 지양 x

예시) 빈곤한 자를 구제하라.

빈곤: 규정

'빈곤한 자를 구제하라' : 규정

'빈곤한 자를 구제하라' → '빈곤' 이라는 규정의 지양을 표현

조건? 사례 결과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고양시켜 검증 '빈곤자들' 보편적으로 구제 빈곤한 자란 전혀 없게 됨. 자기 자신(빈곤) 파괴

오직 '빈곤한자들'만 있음 구제할 수 있는 자가 남지 않음.
지양의 조건이 되는 규정 유지 '빈곤'을 존속 구제의 가능성이 남음.
현실성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가능성으로 존재
의무 충족 안됨

이제 통일관 관련하여, 실천이성의 통일과 직관의 통일을 대조하며 설명한다.

통일을 보편성을 본다면, 이러한 (실천이성의) 통일은 전적으로 경험적 잡다성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현재적인 것인 규정이 무수히 많은 양의 경험적으로 상이한 규정들과 대립된다. 반면에 직관의 통일은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규정들의 무차별이며, 규정들을 격리되고 대립된 것으로 고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총괄하고 객관화시키는 것이다(p. 101).

여기에서 두 가지 방식의 통일에서 '현재'라는 개념이 구분되어 사용된다. 헤겔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실천이성에서 말하는 통일은 현재(현재적인 것인 규정을 단순화해서 언급)가 또 다른 규정들과의 대립을 이룬다. 하지만 직관의 통일에서 등장하는 현재는 대립이 일어나지 않는 무차별의 상태이다. 헤겔은 후자의 현재에 '절대적 현재'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절대적 현재는 직관과 함께 인륜성의 기반이 된다. 실천이성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이 인륜성이었다. 헤겔은 다시 이 인륜성을 일륜성 일반과 특수 속에서의 인륜성으로 나눈다.

 

 

 

 

 

어려움: 1) 명확하지 않은 지칭 대명사들: '이 두 속성',  '이를 위한' , 2) 용어들에 대한 이해 부족, 3) 예시 대입

모르는 용어: p. 98 예수회원들의 도덕적 기술과 행복론의 원리. 기독교의 교리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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