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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역사2 / 4장 연애술 / 푸코 / 2016.08.07.() /닥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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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관계

 

그리스인들은 동성에 대한 사랑과 이성에 대한 사랑을 배타적인 두 개의 선택이나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개의 행동유형으로서 대립시키지 않았다. 도덕적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지배하고 절제하는 남성과 쾌락에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남성을 대립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대체로 청년기의 동성애적 취향이후에는 오히려 여자에게 끌리는 양성적인 것이 통상적이었다. 서로 다른 두 충동을 식별하지 못했음을 주의해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해 느끼도록 심어놓은 있는 그대로의 욕구였다.

확실히 소년과 소녀에 대한 선호는 쉽게 성격적인 특징으로 인정되었다. 남자들은 그들이 어떤 쾌락에 더 집착하는가에 따라 구분될 수 있었다. 이는 기호의 문제였지 개인의 성격 자체나 욕망의 진실함, 기질의 합법성의 문제는 아니었다. 쾌락을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 중 어느 하나가 어떤 개인에게, 또는 삶의 어떤 시기에 가장 잘 맞아 떨어진 것 뿐 이었다. 파이디카(소년)를 선호하는 남자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느끼지 않았다.

관용 또는 불관용도 적합하지 않다. 소년을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단지 법적으로 허용된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여론에서도 수용되는 자유로운 교제였다. 종교적으로도 보장되었다. 문학작품에 의해서도 문화적 가치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른 태도가 섞여있었다. 너무 쉽게 굴복하거나 이기적인 젊은이에 대한 경멸, 나약한 남성에 대한 자격박탈, 부끄러운 어떤 행동들에 대한 거부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교제는 다양한 평가를 받았고 그것을 지배하는 도덕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다는 매우 복잡한 가치 부여와 평가과정을 거쳤다.

동성애에 대해 관용 말고 다른 용어로 문제를 다시 다루어 보아야 할 것이다. 남성간의 쾌락이 어떻게 어떤 형식으로 문제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 사람들이 어떻게 동성애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그것은 어떤 특별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으며, 그리고 어떤 논쟁에 휘말렸는지, 요컨대 이미 널리 퍼져있는 관습으로서 동성애가 법에 의해 조금도 비난받지 않았고 그 즐거움이 일반적으로 인정되었던 당시에 왜 그것이 특별한 그리고 특히 강한 도덕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결과로 절실하면서도 특이한 많은 가치들과 명령, 요구, 규율, 조언, 권고 등에 둘러싸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쾌락행위가 동성인 두 파트너 사이에서 이루어질 경우 그것이 특별한 구조의 욕망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 다른 성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대체로 그런 관계에서 느끼는 쾌락에는 여성을 사랑할 때 요구되는 것과 다른 도덕적 형식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스 문화에서 남성 간의 사랑은 그것이 취해야 할 형식 또는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온갖 열띤 논쟁과 성찰, 사고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플라톤이 다소 빈정대며 옮겨놓은 담론들은 사랑에 대한 성찰과 논쟁에서 문제시되었던 것을 상당히 잘 개관한다.

 

우선 남성 간의 사랑에 대한 도덕적 철학적 성찰이 전 영역을 포괄하지 않는다. 관심의 핵심은 특권적 관계이다. 그것은 파트너 사이의 연령차와 이와 관련된 상당한 정도의 신분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 관계이다. 철학자와 모랄리스트들이 의문을 가졌던 이 관계를 특징짓는 것은 이러한 차이의 존재이다. 성장을 마친 연장자와 아직 확고한 지위를 갖지 못한 젋은이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이다.

 

우리는 그리스인의 소년애를 교육의 실천, 철학적 가르침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데 익숙해 있다. 이 관계를 둘러싸고 궁정적 관습이 형성되었다. 이 관습이 두 파트너가 자기네 관계에 미적으로 아름답고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형식을 부여하기 위해 준수해야 할 서로의 행동방식과 각각의 전략을 규정해 준다. 에라스테와 에로메네의 역할을 결정한다. 전자는 주도하는 위치에서 쫓아다니면서 구애를 하고 후자는 사랑을 받고 찬사를 받는 자로서 너무 쉽게 굴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이 부부생활이 구성하는 또 다른 관심과 의문의 핵심과는 상당히 다른 차이가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그것은 성인 남자와 소년 사이에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개방적인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부부의 공간이 아닌 집회장이나 공동공간같은 곳에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걸로 보아 공간적으로 개방되어 있다. 소년에게 그가 법률에 따른 어떤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특히 개방되어 있다. 사랑의 결정권은 소년에게 있다. 소년의 특별한 호의 중에서도 가장 달콤한 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베풀어주는 것이다. 결혼의 경우, 성적 쾌락과 그 활용의 문제는 남자에게 아내와 재산 그리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법적 관계로부터 출발한다. 본질적 문제는 이 권력의 절제에 있다. 소년과의 관계에서 쾌락의 윤리는 연령의 차이를 매개로 상대방의 자유와 그의 거부능력, 또한 그에게 필요한 만족을 고려한 섬세한 전략을 작동시켜야 할 것이다.

 

청년과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에서는 시기의 문제가 중요하다. 한계의 문제로 드러난다. 한 소년이 연애 관계에서 명예로운 파트너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고 여겨질 시기는 언제인가? 첫 수염은 숙명적 징후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너무 나이가 든 소년과 교제하는 성인 남자를 비난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청년기와 그것의 한계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청년의 육체와 그것의 특별한 아름다움, 성장의 여러 징후들에 대한 감수성을 강화시키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청년의 육체는 매우 끈질기게 문화적 가치 부여의 대상이 되었다. 성도덕에서 한결같이 쾌락의 좋은 대상으로 제안된 것은 그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가진 청년의 육체이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소년의 육체에 대한 도덕적 미학이 있다. 불안과 변화의 끝이 임박하였을 때의 문제는 사랑의 관계를 우애, 즉 필리아의 관계로 전환시킴으로 해결하려 한다. 필리아는 삶의 형석과 성격의 유사함 사고와 삶의 공유 상호적 호의를 말한다. 크세노폰이 묘사한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서로를 지켜봐 주는 두 친구의 초상은 사랑 속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우애의 탄생과 작용이다.

 

소년과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의문은 일반적으로 사랑에 대한 성찰의 형식을 취한다. 에로스는 그들의 성이 무엇이든 인간 존재들을 결합시킬 수 있다. 기혼 남성의 성 윤리는 규율을 만들고 정하기 위해 에로스형의 관계의 존재를 요구하지 않는다. 반면 성인 남자와 소년의 관계에서 쾌락을 추구할 때 연애술 영역에서의 에로스를 참조한다. 상호 독립적이고 제도적 구속이 없이 개방적인 성인 남자와 소년 사이에서는 행동을 조정하는 원칙을 관계 그 자치에서 애정의 본성에서 구한다. 문제는 관계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의 형식으로 구성될 것이다.

 

2. 소년의 명예

데모스테네서의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파이드로스, 연애술)에서 일종의 퇴색한 플라톤주의의 사랑에 대한 성찰과 쾌락의 문제가 제기되었던 방식에 공통된 몇 가지 특징을 이끌어 낼 수가 있다.

 

하나의 주된 관심이 문헌 전체에 활기를 주고 있다. 아이스퀴네, 수치심이다. 그것은 불명예를 피하려는 감정이면서 사람들에게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 불명예이다. 청년은 자신의 타고난 자질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그리고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도록 늘 신경을 써야 한다. 청년의 행동은 치욕스러운 것과 합당한 것, 그리고 명예롭게 하는 것과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을 나누는 데에서 특히 민감한 영역으로 보여진다. 젊은이의 행위, 그리고 그의 명예와 불명예는 마찬가지로 모든 사회적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리스의 소년에게서 그의 명예의 중요성은 미래의 결혼과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그 도시에서 앞으로 그가 차지할 위치, 그의 지위와 관련된다. 좋은 충고를 무시하는 자는 전 생애에 걸쳐, 자신의 무분별함이 초래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젊을 때 그 자신이 행위에 신경을 쓰는 것과, 더 나이가 들었을 때에 마찬가지로 젊은이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은 필수적인 두 가지 사항이다. 따라서 젊은이 자신은 아주 매력적이지만 그의 명예는 매우 불안정한 시기인 이 전환기가 시련의 기간이 된다.

 

에피크라테스는 어떤 유형의 행동에 대해 명예로운 것과 수치스러운 것을 구분하도록 주의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리스 교육의 잘 알려진 요점들, 즉 신체의 자세(유약함), 시선(수치심),말하는 방식,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자질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도덕적 성찰은 준수해야 할 규율과 허용되거나 금지되는 행위의 도표를 정확하게 그리기보다는 그에게 요청되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태도의 유형을 특징짓는 데에 전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문헌은 존중해야 할 행동방식과 넘어서는 안 될 육체적 한계를 제외하고, 어쨌든 이러한 상황에서 존재방식과 행동방식을 결정하는 일반적 원칙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에피크라테스에 대한 찬사 전체는 젊은이의 재능과 눈부신 아름다움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의 우월성의 의해 확인되는 경쟁적인 상황을 나타낸다. 그리고 양도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으면서 가장 강한 자로 남아 있는 것, 그의 저항력, 단호함, 절제에 의해 추종자들과 애인들을 능가하는 것 이것이 청년이 사랑의 영역에서 가치를 입증하는 방법이다.

 

연애술 전체는 소년의 젊음과 아름다움이 그를 정복하려는 많은 사람들을 유인하는 이 힘든 단계에서 소년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갖는 이중의 우월성이란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있다. 양생술에서는 특히 자기 절제와 위험한 행위의 폭력성에 대한 통제가 문제였다. 그리고 가정관리술에서는 아내에 대한 권력의 행사에서 자기 자신에게 행사해야 할 권력이 문제시 되었다. 여기서는 연애술이 소년의 관점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지배력을 입증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자신의 권력에 주어야 할 절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력을 입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권력과 겨루는 최상의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에피크라테스에 관한 글에서 소년들에 대한 그리스적 문제를 구성하는 몇 가지 중요한 측면을 드러내 준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의 젊음과 앞으로 그가 갖게 될 지위는 하나의 전략적 거점을 형성하며, 이를 둘러싸고 복잡한 게임이 요구된다. 육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 좌우되는 소년의 명예는 또한 어느 정도 미래의 그의 역할과 평판을 결정지을 터인데, 바로 이 소년의 명예가 중요한 관건이다. 이것은 그에게는 적응과 훈련을 요구하는 일종의 시험이다. 반면, 다른 사람에게는 염려와 배려의 계기가 된다.

 

3. 쾌락의 대상

 

아프로디지아의 활용이 소년애에 대한 성찰에서 어떤 식으로 문제시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성 관계와 사회적 관계의 동형성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통해 성적 관계가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복종시키는 자와 복종하는 자, 승리하는 자와 패배하는 자 사이의 관계와 동일한 유형으로 파악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쾌락의 실천 행위들은 경쟁적이고 위계화된 사회 계층들의 영역과 동일한 범주를 통해 성찰된다.

소년의 지위는 난해하다. 소년은 미래에 도시의 통치에 참여할 미래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년의 위치에 고유한 성격과 그의 특별한 종속형태 그리고 그를 다루는 방식에서 가장의 상당한 권한이 행사되고 있는 공간에서 조차 미래에 그가 가지게 될 지위의 표식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관계에서 소년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금지된 대상은 아니다. 물로 내재적 어려움은 있다.

타마르쿠스에 대한 반론에서 에즈키네스가 불러일으키려는 감정은 이전에 다른 사람을 위한 쾌락의 대상이란 역할과 일체가 되었던 지도자의 권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성적 쾌락의 관계에서 지배 받는 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시민의 정치적 활동에서 지배자의 위치를 합당하게 차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회에서 남성 상위 도식에 따라 모든 성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과 남성적 우월함의 윤리가 병존함으로써 야기된 어려움이다. 그 결과는 한편으로 능동적 지배의 역할이 지속적으로 긍정적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행위에서 둘 중 한 사람은 수동적이고 지배를 받는 열등한 위치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정도까지 쾌락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로부터 아프로디지아를 다룬 그리스 도덕에서 소년의 모순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이 비롯되었다. 소년의 쾌락의 주체가 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훗날 자신을 지배하고 다른 사람을 능가하는 자유로운 남성이 되는 과정에서 역할의 불일치를 겪는다.

어떻게 이 관계를 더 넓은 전체 속에 통합시키고 그것을 다른 유형의 관계로 다시 말해 육체적 관계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두 파트너가 동일한 감정과 이득을 나눌 수 있는 안정된 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겠는가? 소년애는 이 사랑을 결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소중한 관계, 즉 필리아의 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을 때에만 도덕적으로 명예로울 수 있다. 같은 성을 가진 두 개인 간의 관계는 무엇보다 욕망의 주체의 관점에서 질문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적 연애술이 출발점에서 삼게 되는 것은 어떻게 쾌락의 두상을 훌륭한 자기 쾌락의 주체로 만들 것인가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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