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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_oWEqiIbss?si=aNIkecRYcJmcR-tS

p8(e북 기준) : 영화 <행복을 찾아서>에서 행복은 개념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인간 유형이다.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며, 회복 탄력성이 뛰어나고, 자기 주도성을 드러내며, 대단히 낙관적이고, 감성 지능이 높은 사람 말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는 두 가지 흐름으로 나아간다. 가드너를 행복한 사람의 완벽한 구현으로 소개하는 한편, 행복을 모범 사례 서사의 큰 줄기로 삼아 자아를 특정 인류학적 전제, 이데올로기적 가치, 정치적 미덕에 부합시키는 것이다. (...) 미국은 가난뱅이 팔자를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의 나라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개인의 노력과 끈기는 늘 보상받기 때문에 능력주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 행복주의와 개인주의, 능력주의는 아메리칸 드림에서는 하나로 합체된다.

 

p9 : [이 영화의 감독 가드너가 활약한 행복학 강의]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은 자아의 변모, 개인적 구원, 실존적 승리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느껴야 하는 방식을 빚어내고자 하는 일종의 감정 포르노라고 할까.

-> 행복주의의 신화는 나르시시즘과 연결되어 있고,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같은 책 제목이 유행하는 것이 떠오른다.

 

p11 : 긍정심리학의 사도들은 강력한 기관, 세계에서 손꼽히는 다국적 조직, 수십억이 오가는 세계적 산업에 과학적인 정당성을 부여했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순진하게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누구나 자기 삶을 새롭게 만들 수 있고 최선의 자기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 주류 심리학계의 행복전도사 산업에의 합류

 

p12 : 달리 말해보자면, 마거릿 대처가 프레데릭 하이예크를 본따서 말한 바대로, 사회는 없고 단지 개인이 있을 뿐이라고 할까. (...) 시카고학파가 구상하고 1950년대에 수많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계승한 이 혁명은 개인의 행복 추구가 공유재의 추구를 대체하는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고 사실상 온 세상을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 행복학의 사도들이 생각하는 행복 추구는 우리 모두 의심의 여지없이 추구해야 할 최고선이 아니라, 집단주의 사회에 대한 개인주의 사회의 승리(심리치료의 사회, 원자화된 사회)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 행복은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한 강박을 정상으로 여기게 하려는 시장에서 완벽한 상품이 된다. (...) 행복학은 우리에게 행복을 강요할 뿐 아니라 우리가 더 큰 성공과 성취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죄다 우리 탓이라고 말한다.

 

1. 전문가들이 여러분을 보살펴줍니다.

p29 : 긍정심리학의 사도들은 자기네 분야의 독립을 표방하고 나서면서도 정작 자기네들의 작업을 전통적인’, ‘판에 박힌’, 혹은 부정적인심리치료라는 것의 대체물처럼 제시했다. (31) [행복경제학의 대부] 레이어드는 전통적 경제학에 심각한 결함이 있으므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34) 사회경제적 진보처럼 객관적이고 딱딱한 지표가 아니라 훨씬 주관적이고 유연한 지표가 사회를 종합적이고 타당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36) 어쨌든, 중요한 것은 행복을 양으로 측정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35) UN320일을 세계 행복의 날로 정하고 행복과 웰빙전 세계의 보편적인 열망이자 목표라고 선언했다. 유엔은 모든 국가가 이를 공공 정책의 목표로 인정하고 표명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OECD더 나은 삶 지수더 나은 삶 주도같은 프로젝트들도 추진했다. (38) 행복은 기업과 정치인들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 되었다. 그들은 시민들의 감정, 시민들이 자신의 삶이나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방식을 알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그 감정, 반응, 평가 반(39)식에 영향력까지 미치고 싶어한다.

-> 감정화하는 국가, 감정정치는 감정자본주의와 같이 탄생했다.

 

p44 : 테크노크라시 입장에서는 행복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주 편해진다. 테크노크라시의 비인간적인 세계관에 일종의 인간다움을 덧칠할 수 있다고나 할까. (...) 행복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걸맞은 체제에서 설계한 모든 공공 정책의 좋고 나쁨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국민에게 특정 공공 정책에 대한 평가를 요청해봐야 의미없는 답변들밖에 나오지 않는다. 국민을 진정으로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에게 의존하는 이 방식은 민주적이라기보다는 전제적이고, 국민을 터무니없이 깔보는 것이다.

 

p45 : 그들은 특정한 정치 강령이나 문화적 편향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과학-가치 이분법을 앞세워 문화적, 역사적, 이데올로기적 문제 제기를 어떻게든 피하려고만 한다. 완벽히 가치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도덕적, 윤리적, 이데올로기적 함의가 없다는 식이다. 그렇지만, 명백한 사실은 그들이 제시하는 행복과, 개인주의의 주요 전제 및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주요한 윤리적 요구가 밀착되어 있다.

-> 오늘날, 행복주의, 개인주의, 능력주의는 어떻게 가치 중립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지 않다는 허울을 갖게 되었는가.

 

2. 개인주의를 더욱 선명하게

p49 :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류학적 전제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행위자들로서 시장에서 만나 우리의 운명을 만들어나가고 그로써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50) 그러한 생각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분리하고 자아를 모든 인간 행동의 기원으로 간주하는 개인주의적이고 비정치적인 담론을 통하여 정당한 것이 되었다. (52) 긍정심리학자들은 대부분 개인주의적인 국가일수록 국민이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57) 그러나 이사야 벌린은 자기 시대에 이미 개인주의 교의에 따른 내면의 성채로의 후퇴는 외부 세계가 유독 팍팍하고 잔인하거나 불공정하게 나타날 때 일어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58) 소위 마음챙김 수련은 진정한 내면의 풍경에 집중하는 법, 현재의 순간과 진정한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법, 비판적 시선을 포기하고 일종의 초탈을 배운다면, 인생이 결국은 다 잘 풀릴 거라는 믿음을 설파한다. (...) 자신을 위해 남겨둔 시간을 가족처럼 자신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보호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임하라.”고 권고한다. (60) 자기 탐색에 대한 이 강박을 행복 산업의 모든 상품이 하나같이 자극한다. 그러나 이 강박은 결국 내면의 성채로 도피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66) 에글스턴과 헤이스는 그러한 기법들이 외려 아이들을 자신의 감정생활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에 아이들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불안증과 치료 의존을 오가는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고 보았다.

-> 오늘날 청소년들 사이에서 정신심약과 불안증의 급격한 증대의 원인 중 하나가 이러한 에고이즘, 나르시시즘을 부추기는 개인주의에서 유래하지 않을까?

 

p68 : 긍정심리학의 힘은 바로 이러한 배경을, 이데올로기적 전제가 있음을 부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긍정심리학은 정치와 무관한 과학을 자처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서 강력한 효과를 드러낼 수 있다.

-> 능력주의, 개인주의로 바꿔도 작동할 수 있다. 집단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성에 대한 강한 경계심과 다르게 유럽 사회의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조차 개인주의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 다다익선의 긍정적 가치로만 인식된다.

 

3. 긍정의 작동

p75 : 오늘날 긍정심리학의 감정기법들은 노동자들에게 개인의 책임과 행복을 강조하면서 구조 조정 논리를 강화한다. (81) 점점 더 많은 경영인들이 직원을 뽑을 때 긍정적인 태도를 중요하게 본다고 말하게 되었다. (82) 기업의 가치관에 의혹을 품는 노동자는 그저 부정적인 사람, 훼방 놓기 좋아하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행복의 달인들은 노동조건이 노동자의 사기나 생산성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오직 행복만이 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노동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이바지한다고 주장한다. (85) 소명 개념은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질서가 낳은 불안한 불확실성의 해독제 노릇을 한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직접 유래한 이 개념은 자조론에 깊숙이 배어 있으며 이미 진정한 자아 찾기와 실현으로 세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행복한 자아를 팝니다

p98 : 시장이 행복을 감정이 아니라 일종의 규범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99) 행복이 불어넣는 것처럼 보이는 활력, 낙관주의, 긍정적 감정은 내면화된 신자유주의 담론의 표현일 뿐이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우리 안에 품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항한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에 적합해 보이는 개인의 기질은 경쟁의 규칙과 이익 여부에 걸맞은 생활 태도를 취하라는 신자유주의의 촉구에 부응한다. (110) 긍정심리학의 사도들은 진정성을 퍼스널 브랜딩의 효과적 형태로 만들었다. 이 업계엥서 진정성은 자기 홍보,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효과적 형태일 뿐이다.

 

5. 행복, 새로운 정상성

p139 : 회복 탄력성이 뛰어난 군인들이 자기가 저지른 가혹 행위를 더 빨리, 더 손쉽게 털고 일어난다고 해서 그러한 일을 괴로워하면서 아프게 대가를 치르는 군인들보다 높게 평가해야 할까? 회복 탄력성의 수사학이 실상은 순응주의를 장려하지 않는가? 부정적 감정의 정당성을 박탈하지는 않는가? 고통을 쓸모없는 것, 아니 멸시해도 좋은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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