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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 – 에이미 추아 / 2026.02.23. / 화니짱
프롤로그
p7[e북기준] : Occupy Wall Street 운동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운동이었지만 사실상 가난한 사람을 포함하지 않은 운동이었다. 주동자도 참여자도 상대적으로 특권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9) ‘점령하라’ 운동을 실제로 미국의 저속득층과 하층 계급에서 광범위하게 호응을 얻고 있는 운동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가령 ‘번영 복음’은 미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운동에 속한다. 번영 복음은 부자가 되는 것이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며 정확하고 올바르게 기도를 하면 (그리고 십일조를 잘 내면) 신이 당신을 부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가르친다.
->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가 다 이런 자본주의 친화성이 있지 않나?
p11 : 미국 엘리트 계층이 놓치고 있는 부족적 정체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는 강력한 ‘반기득권 정체성’이다. 트럼프 당선에 크게 일조한 것도 바로 이 반기득권 정체성이었다. (12) 부족 정치는 집단을 드러내는 표식을 한다. 그리고 엘리트 계층과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서 차이를 드러내 주는 표식은 늘 미학적인 요소와 관련이 있었다. (...) 그들은 자신이 보편 인류를 찬양하고 전 지구적, 코즈모폴리턴적 가치를 받아들인 ‘세계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로 그 코즈모폴리턴주의가 얼마나 부족적인 것인지를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고학력이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의 코즈모플리턴주의는 사실 매우 배타적인 부족적 표식이다. 이 표식은 부족의 외부인을 매우 분명하게 가려낼 수 있게 해 주는데, 여기에서 외부인은 성조기를 흔드는 촌뜨기들이다.
-> 한국의 태극기 부대와 유사한 풍경.
p15 : 위기감을 느끼는 집단은 부족주의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더 폐쇄적, 방어적, 징벌적이 되며, 더욱더 ‘우리 대 저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의 모든 집단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이런 느낌을 갖고 있다. (...) 이런 정치적 부족주의가 기록적인 수준의 불평등과 결합하면서, 오늘날 우리는 양 정치 진영 모두에서 맹렬한 정체성 정치를 목격하게 됐다.
p16 : 좌파의 많은 사람이 ‘보편주의적 화법’에 등을 돌리게 됐다. (...) ‘문화적 적절성(Cultural Appropriateness) 개념은 ‘이것들은 우리 집단의 상징, 전통, 유산이니 외집단 사람은 여기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백인이 기모노를 입는 것, 또는 흑인처럼 단단하게 땋은 머리나 레게 머리를 하는 것[오늘날 정체성운동과 정치적 올바름을 신봉하는 사람들로부터,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라고 비판받는 행동임.]은 자민족 중심주의를 배격하고 다문화적인 개방성과 좌파적 사고의 표명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행동은 지배적인 집단의 일원이 타집단의 경계를 침범하는 미세 공격(microaggression/ 먼지차별, 미묘한 공격 : 직장내 괴롭힘, 성차별)으로 여겨질 수 있다.
p18 : 통상적으로는 비서구 국가나 개발도상국에서 훨씬 더 전형적으로 드러났던 부족 정치의 파괴적인 동학이 미국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배타적인 인종국가주의 운동, 대중에 대한 엘리트 계층의 반발, ‘기득권’에 대한 대중의 반발, 과도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소수 집단에 대한 대중의 반발,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으로)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인 정치적 부족주의의 엔진 역할을 하는 상황.
1장. 미국이라는 ‘슈퍼 집단’의 기원
p23 : 대영제국 시절 영국인은 식민지 식민들 사이의 인종, 종교, 부족, 신분적 차이를 (때로는 집착적이다 싶을 만틈) 매우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식민지 시기에 인류학과 민속지학이 발전한 이유] 대영제국이 실시한 ‘Divide and Rule’ 전략은 식민지 지배를 위한 실질적인 필요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수의 식민지 인구를 상대적으로 소수인 점령군이 통치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영국을 밀어내고 세계 초강대국인 된 냉전 시기에는 제국주의적 게임의 규칙이 달라져 있었다. 식민주의 시기와 달리 해외의 영토를 정복해 식민지로 복속하는 것은 선호되는 정책이 아니었다. (25) 미국은 예외적으로 인종주의적이면서도 예외적으로 포용적이다. 현대 서구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미국은 유독 오랫동안 강도 높은 인종적 노예제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다. (27) 노예제의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체계적인 불의와 불평등의 형태로 미국에 계속 남아 있다.
p31 : 이민자 집단에 대해 말하자면, 영국은 이민자들을 그들의 방식대로 내버려 두는 혹은 ‘다문화주의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강한 국가 정체성이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한다는 점이 미국과 다르다. 이런 조치는 응집을 촉진하기는 커녕 전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이 ‘문화적 분리주의’라고 부른 현상을 초래했다. (33) 미국도 역사의 상당 기간 슈퍼 집단이 아니었고 많은 사람을 인종, 민족, 성별에 따라 시민권과 자유에서 배제했다. 미국은 백인 앵글로 색슨 개신교도가 주축이 되어 세운 나라다. 이들이 미국 역사 대부분의 시기 동안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미국을 지배했다. (34) 이민자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였던 기간에도 미국은 사회의 모든 면에서 백인이 아닌 사람을 명시적으로 차별했다. 이 전환의 기원은 남북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미국은 노예제만 철폐한 것이 아니라 수정헌법 14조를 통과시켰다. 이로써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라도 미국 시민이 될 수 있게 됐다. 속인주의를 따르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달리 시민권을 갖는 것,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 ‘혈통’에 의해 계승되는 것이 아님을 헌법적 권리로서 선포한 것이다.(속지주의)
2장. 베트남: ‘별 볼 일 없는 작은 나라’에 패배를 선언하다
p50 : “비엣족 사람들이 중국에 맞서 벌인 생존 투쟁은 비엣족의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들은 자신이 공통의 조상을 가진 형제자매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문화와 종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냉전 시기에 미국의 외교정책 결정자들은 베트남의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몰라서, 베트남을 중국의 졸개라고 생각했다. (57) 대체로 미국 사람들은 미국이 재앙적인 패배를 겪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 하나를 지금까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자본가’ 대부분은 베트남 사람이 아니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화교를 연상시켰다. 자본주의에서 주로 이득을 얻는 이들이 화교로 보였기 때문이다. (59) 그들이 보기에 모든 아시아인은 ‘딩크, 국, 슬랜트’ 였다. 당시에 베트남에 있었던 한 미국인은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들은 피도 안 흘리고 고통도 못 느끼고 충성심이나 사랑 같은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 유럽에서도, 한국인에게 국적을 물어보지도 않고, ‘니하오’나 ‘쎄쎄’로 인사하는 유럽인들이 많다. 이 당당함 내지 무례함(?)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3장 : 아프가니스탄: ‘부족 정치’를 간과한 대가를 치르다
p69 : 냉전 시기에 소련도 미국 못지않게 부족적인 요인을 간과하고 있었다. 소련도 세계 각지의 사건들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거대한 대결로만 여겼다. 쿠테타로 집권한 아프간의 새 정부는 명목상으로는 공산주의자였지 모르지만 파슈툰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경쟁 관계인 종교와 부족의 지도자를 샅샅이 찾아내 고문하고 처형했는데, 그 수가 5만 명이 넘었다. 모스크바 당국은 폭동이 이렇게 증가하다가는 친미 반공 세력이 권력을 잡게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1979년 12월에 소련은 아프간을 침공했다. (...) 전쟁은 9년이나 계속됐고 소련은 결국 미국이 지원하는 무자헤딘에 패해 아프간에서 꽁무니를 뺀다. (71) 미국은 아프간에서의 냉전 정책을 파키스탄에 아웃소싱했다. (...) 전 아프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는 “파키스탄은 파키스탄에 사는 파슈툰족을 이슬람화하고 아프간에 사는 파슈툰 민족주의자들을 살해해 파슈툰 민족주의를 파괴하는 일에 착수했다”며 “파기스탄의 목적은 아프간을 급진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 미국은 파키스탄이 지원하는 아프간 무자헤딘을 자유세계를 위해 싸우는 전사들로 낭만화했다. 냉전 프레임에 고착된 나머지 미국은 사실상 자신의 도움으로 생겨나는 괴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p73 : 1990년대 초에 아프간은 무법천지였다. 전쟁으로 고통받던 많은 아프간 사람이 처음에 탈레반을 지지했던 이유 중 하나는 무법천지였던 곳에 어쨌든 안전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74) 탈레반이 안전을 제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파슈툰족의 부족 정체성에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 년 동안 아프간을 통치한 사람은 늘 파슈툰족이었다. (77) 탈레반이 미국의 친구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을 때도, 미국은 냉전의 렌즈를 반이슬람 렌즈, 혹은 테러와의 전쟁 렌즈로 갈아 끼웠을 뿐이었다. 미국은 탈레반을 동굴에 사는 한 무리의 물라로 규정했고, 부족 정치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또 한 번 간과했다. 9.11테러가 일어나고 몇 주뒤인 2001년 10월, 미국 전체가 비통과 분노에 빠져 있었을 때 미국은 아프간으로 군대를 보냈다. 무척 인상적이게도 미국은 75일만에 탈레반을 무너뜨렸다. (79) 미국은 이라크에 집중하느라 아프간 사람들에게 안전이나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어떤 조치도 마련하지 않았다. 그렇게 미국이 탈레반을 축출하자 부패와 무법천지가 되돌아왔다. (80) 베트남에서도 그랬듯이, 미국이 아프간에서 취한 거의 모든 조치는 아프간 인구 대다수가 미국에 대해 적대적이 되게 만들었을 뿐이다.
4장. 이라크: 민주주의의 ‘부작용’과 ISIS의 탄생
p83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 두 나라 모두에서 미국은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뜨렸고 사람들을 해방시켰으며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인 헌법을 도입했다. (84) 부족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독일과 일본은 이라크와 너무 달랐다. 독일과 일본 모두 민족적으로 매우 동질적이다. 일본은 늘 그랬고 독일은 1945년이면 非(비)아리아인 대부분을 절멸시킨 뒤였기 때문에 그랬다. 즉 전후에 독일과 일본에서의 민주화는 민족적, 종교적 분열이 비교적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 민족적 동일성을 유지할 때만, 민주주의적 안정화 및 평화적 다문화주의가 가능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는 어떤 이민정책을 펼쳐야 할까?
p99 : 믿을 수 없게도 미국은 신실한 시아파인 알말리키가 수니파를 증오하고 수니파와 싸우는 데 한평생을 바쳤다는 것을 알지 못했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시아파 비밀 조직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사담 후세인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도망치기까지 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고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하자, (100) 시아파 무장 세력들은 수니파를 상대로 테러를 자행했다. 점차 모든 배경의 수니파 사람들이 알말리키가 수니파에 대해 인종 청소를 벌이려 하는 이란 정부(시아파)의 꼭두각시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ISIS가 탄생했다. ISIS를 세웠다고 알려져 있는 알자르카위는 미군의 공습으로 숨지기 전에 “모든 시아파는 처형당해야 한다”고 말해 오사마 빈 라덴으로부터 혐오를 샀다. 빈 라덴의 어머니는 시아파다.
5장. ‘테러 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116 : ISIS는 영국과 유럽의 꽤 많은 젊은 무슬림 여성 사이에서 테러가 ‘힙하게’ 보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근래의 역사에서 ISIS는 다른 어떤 테러 조직보다도 소외된 젊은 무슬림들에게 가슴 뛰는 흥분과 로맨스, 위대한 역사와의 연결, 이기는 팀에 속할 기회를 성공적으로 제공했다.
6장. 베네수엘라: 독재자와 인종 불평등 사이에 숨은 그림들
p132 : 몇 세기 동안 베네수엘라의 지배층은 모든 사회적 병폐에 대해 ‘백인, 인디언, 흑인이 계속해서 섞이는 것’을 꾀했고 인구를 더 ‘하얗게’ 만들기 위해 유럽인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또 반복해서 장려했다. (133)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임을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미인 대회였다. 백인이라는 것은 완벽하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유럽 중심적인 미의 기준은 흑인, 토착민, 그 밖의 상대적으로 짙은 피부색을 가진 많은 베네수엘라인에게도 내면화됐다.
p136 : 차베스의 국유화와 반기업 정책은 경제를 뒤집었다. 베네수엘라의 부유한 지배층은 징발을 우려해서 80억 달러 이상을 빼냈고 대부분을 해외은행으로 옮겼다. (140) 차베스는 틀림없이 가난한 유권자들을 위해 많은 것을 했다. 2012년에 차베스는 “빈곤을 절반으로 줄였고, 극빈곤은 70%나 줄였다.” 대학 등록률은 두 배가 됐고 수백만 명이 처음으로 의료 서비스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차베스가 여러 해 동안 이어진 고유가의 득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많은 면에서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시절이 그 전보다 더 민주적이었다. (142) 차베스는 2013년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그가 미국이 비밀리에 남미 좌파 지도자들을 암세포에 감염시켜서 죽이려 한다고 언급한 지 1년이 약간 넘은 시점이었다. 뒤를 이은 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는 차베스의 정책을 이어갔지만 차베스의 카리스마나 명민함은 갖고 있지 못했다. 2014년에 국제 유가가 폭락하자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완전한 붕괴로 이어졌다. (...) 나임에 따르면, 마두로는 더욱더 쿠바의 꼭두각시,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권력인 군부와 마약 거래 세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가고 있다.
민주주의가 실제로 시장 지배적 소수 집단에 맞서 전투를 벌일 때 종국적인 결과는 재앙일 수 있다. 가장 안 좋은 경우는, 경제와 민주주의 둘 다 망가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7장. 불평등이 만든 부족적 간극이 미국을 갈라놓다
p146 : 미국에서는 부족 정체성이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에 나타난다. 가난한 노동자 계급 미국인은 옛날식의 아메리칸 드림에 굶주려 있다. 아메리칸 드림이 허구에 불과하다며 비판하는 쪽은 진보적인 지배층이며, 이것이 그들의 부족주의이다. (163)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투인 사람들에게 번영 복음은 희망, 방향성, 그리고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공동체 의식을 제공한다. 번영 복음 신도들은 자신을 ‘사회의 억압받는 사람’, ‘99%’, ‘가진 것 없는 사람’이라고 묘사하지 않고, 축복받았고, 희망이 있고, 신이 더 사랑하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62)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 원했던 것 중 무엇을 잃었는지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돈아 내게로 오라, 당장!” 사람들은 다시 한번 외쳤다.
-> 진보 엘리트가 간과한 점은,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정책보다, 자기를 이건희처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정책, 부자되라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을 좋아한다. 가난한 자로 취급받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는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항상 감정정치의 맥락에서 실패해온 것 아닌가. '감정정치'의 맥락에서 어떻게 좌파운동을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하지 않고 있다.
p171 : 중서부의 백인이 보기에 ‘연안 엘리트’는 시장 지배적 소수 집단이다. 그리고 많은 개도국에서 보았듯이 시장 지배적 소수 집단은 반드시 민주주의에 반발을 불러온다.
-> 서부, 동부 연안의 캘리포니아, 뉴욕 : 지배적 엘리트 소수집단으로 생각하는 중서부의 서민들이 볼 때.
8장. 정치적 부족주의는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p188 : 소련이 붕괴하면서 반자본주의적 경제 논의 위주이던 구좌파의 담론은 억압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자리를 넘겨줬다. ‘분배의 정치’는 ‘인정의 정치’로 대체됐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의 정체성 정치가 탄생했다. (202) [이에 반해 우파는] 소수 집단에게 고마워하라고 요구한다. 그것은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시혜자가 준 것에 감사하라는 의미고 당신이 빚을 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역사에 대한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이고도 하다. 우리가 이 기회의 땅을 세웠고 너희를 초대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완벽하게 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제 너희가 우리를 악마라고 비난하는 것이냐?
-> 노동자운동, 프롤레타리아를 의식화한다는 맑스주의 운동 -> 정체성 정치 -> 백래쉬
에필로그.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향하여
p208 : 다른 부족 사람들을 단순히 서로 접촉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외집단 구성원에 피상적이거나 최소한으로 노출될 경우에는 집단 간 분열을 오히려 더 악화시킨다. 중요한 것은 개인과 개인이 대면해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상이한 부족의 사람들이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 결국에는 바라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보게 되면, 태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p213 : 진보주의자가 그들을[시골지역, 하층 노동자] 편견덩어리라고 부르면 그들은 부당하게 공격받았다고 느낀다. 바로 여기에서 분노의 간극이 생긴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하지 않다는 확신이 진보주의자의 분노와 충돌하면, 엘리트 진보주의자와 그들이 도우려 하는 대상인 노동자 계급 사이에 분열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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