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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됨과 정치 – 웬디 브라운
한국어판 서문(2021)
p12(e북) : 나는 정치 이론의 정전들에 맞서는 방식을 상정하고, 그 정전들이 남성성을 정식화하는 방식을 읽어 내고, 그 남성성이 어떻게 정치의 정식화로 나타나는지 발견하면서 내가 감지한 것을 추적해 갔다.
즉 공적 영역에 해당하는 폴리스가 존재론적으로 사적 영역에 해당하는 오이코스(집)에 선행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 약삭빠르고 야수 같은 비르투의 힘으로 포르투나를 들어 메치려 한 마키아벨리의 시도. 남성적인 면을 더욱 강화해 남성주의적 합리성으로 지어진 강철 우리를 벗어나려고 한 베버의 시도 등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해제 (정희진)
p15 : 이 책을 읽기 위한 전제가 있다. 일상적 통념인 “남성성과 여성성은 대립한다”라는 자유주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곤란하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반대 개념이 아니다. 생물학적 남성과 사회적 남성성 사이에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는 건 더욱 아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특정 사회의 규범으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변주된다. 어떤 사회에서 남성성으로 간주되는 특성이 다른 사회에서는 여성성이 될 수 있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식민지배를 받는 국가의 하층계급 여성은 대부분 생계 부양자다. 남성이 ‘보호자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물론 원래 보호자 담론은 신화다). 국제정치처럼 성별 은유가 난무하는 분과 학문도 드물 것이다. 국가가 주권(영혼)을 의미할 때는 ‘남성’으로 재현되지만, 영토(육체)를 의미할 때는 ‘여성’에 비유된다.
p16 : 일반적으로 서양사에서는 시대마다 지배적 남성 모델을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그리스 시민/전사, 가부장적 유대 기독교인, 영주/후원자, 프로테스탄트 부르주아 이성주의자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유형의 이상적 남성성은 각기 다른 시대의 유산이며 서양 문명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러나 이 유형들은 패권적 남성성을 분석한 것으로, 그에 따른 주변적 혹은 종속적 남성성과의 대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 그럼 현재의 테크노 퓨달리즘의 전망은 ‘이성주의자’ 모델에서 다시 ‘영주/후원자’ 모델로 돌아가고 있는 야만적 후퇴라고 볼 수 있는거 아닐까?
웬디 브라운의 접근 방식은 이와 구분된다. 그는 남성성의 의미를 정의하기보다는, 이 책에 등장하는 남성들 자신이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었는지를 중심으로 접근한다. 브라운이 선택한 사상가들은 스스로 남성성의 규범을 만들고, 그럼으로써 초월적 자아로 자신을 구성해 낸다. 즉 이 책은 남성 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사상가들이 세계를 만들어 가려는 의지와 그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남성됨이란 이런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p17 :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남성됨의 핵심은 삶(일상, 노동, 육체 등)과의 대립을 통해 형성되어 온 정치의 초월성, 정신의 우월성이다. 초월성을 추구하는 남성됨은 인류사의 근본적인 문제다. 특히 근대 이전의 서구 사상에서 초월성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었다. 초월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젠더는 물론 공간, 자연, 생명 등 수많은 개념들을 식민화해야 했다.
현대에도 초월성과 비슷한 개념들이 있다. 베버의 ‘영웅적 정치가’, 아렌트의 ‘용감한 정치 행위자’, 대중 문화에서 넘쳐 나는 ‘진짜 사나이’, 한국 사회운동의 수많은 ‘민족의 지도자’와 ‘민중의 아들’등이 그것이다.
p19 : 국가는 남성됨의 본격적인 꿈이다. 마키아벨리의 작업이 남성 우월주의 정치 이론이 보여주는 자기 전복의 극단적 형태라면, 막스 베버는 확실히 가장 위대한 파토스(열정)를 보여 준다. 마키아벨리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넘어섰듯이 베버는 마키아벨리의 ‘일상의 거친 투쟁’에서 생겨난 주정주의를 경멸했다. 이러한 베버의 두려움에는 인간의 욕구와 감정을 자유, 합리성과 대립관계로 보는 남성됨의 특성, 분업적 사고가 반복된다. 정치가 적절하게 운용되려면 자신을 오염시키는 생존 행위와 충분히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 감정정치에서, 국가와 젠더의 연관성을 추적해보자. 특히 ‘감정’을 제거한 ‘이성’이 바람직한 정치적 가치였다는 남성적 주장에서, 오늘날의 감정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감정의 귀환, 여성화라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변환은 어떤 점에서 진보적이고, 어떤 점에서 더욱 보수적인가?
p21 : 초월성, 목적의식, 자유의지는 공명한다. 자신의 의지를 타인, 사회, 자연에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 거대한 저거넌트에의 추구는, 오늘날 남성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시몬 드 보루아르의 업적은 초월성과 내재성이 성별화된 가치라는 사실을 증명한 데 있다. 그는 초월성이 대상화와 타자화를 동반할 수 없으며, 백인 남성이 자연, 여성, 유색인종을 타자로, 즉 인간이 아니라고 본 점을 규명했다. 그의 실존주의는 이후 수많은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타자성과 차이에 대한 사유에 영향을 주었는데, 한마디로 주체는 타자의 인질이라는 사실이다. 타자(일상, 여성, 노동 등) 없이 초월성은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이 역시 근대성의 쓴맛을 본 서구와 일본의 이야기이고, 한국 사회 같은 후기 식민지는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자율성, 자주를 주장한다. 서구가 실현한 것을 “우리도 한번 해봐야”하기 때문이다. 탈식민이 필요한 이유다.
-> 막스 베버와 헤겔의 공통점이 바로, 이 자유의지와 목적의식에 대한 집착일 것이다.
1부. 고대 그리스 : 아렌트와 아리스토텔레스
1장. 서론 : 정치, 남성됨, 그리고 정치 이론
p27 :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는 인간의 그 어떤 활동보다 특히 남성적 정체성에 기반해 있다. 인간의 노력이 미치는 그 어떤 곳보다 배타적인 남성만의 영역이었고, 다른 사회적 관행보다 훨씬 강렬하게 남성적 자의식을 품고 있었다. 양상은 다양하지만, 정치의 이론과 실천은 모두 끊임없이 이어지는 남성됨이라는 관념 및 그 실천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 정치의 남성의 영역, 이성의 영역이었는데, 이 영역이 감정화된다는 감정 정치의 맥락은 어떤 변화를 품고 있는 것인가?
3장.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을 위한 지고의 선
p54 : “이제 우리는 폴리스가 자연의 질서에서 가족과 개인보다 앞서다고 덧붙여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전체가 필연적으로 부분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 모든 개별 존재는 자족성 있는 전체에 동등하게 의존하는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다.”(정치학-아리스토텔레스) -> 웬디 브라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과 노예를 소유물로서 격하시키는 것을 용인하기 위해 폴리스가 가족과 개인보다 앞서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p60 : “다른 자연의 유기체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전체 체계에 유기적으로 복무하는 부분들은 전체를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다. 명백한 결론은, 국가의 부분들을 (...) 국가의 존재를 위해 필요한 요소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진실은 국가 존재의 ‘필요조건’인 모든 이들을 시민으로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학-아리스토텔레스)
-> 여성과 노예는 유기체의 머리(정치역할을 담당하는 남성 시민)와 달리, 도구적인 부분적 존재일 뿐이다.
p61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존재론을 주장하며 정신의 우월성에 따른 적법한 통제 또는 지배의 이론을 끌어낸다. 정신의 우월성은 세속적인 모든 사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만큼 광범위하고, 폴리스의 오이코스 지배 및 남성의 여성 지배만큼 일반적이며, 주인이 자기 노예에게 내리는 명령과도 같은 구체적인 현상의 기반이다.
“자신의 지적 능력으로 예상할 수 있는 요소는 자연적으로 통치하는 주인의 요소이다. 반면 다른 요소의 계획에 따라 자신의 육체적 능력을 실행하는 요소는 통치되는 요소이며, 자연적으로 예속 상태에 놓인다.” (정치학-아리스토텔레스)
-> 남성의 위치를 정신에 놓고, 노예와 여성은 육체적인 존재로 놓는다. 여기서 이성에 의한 감정의 위계적 지배 구도가 탄생한다.
p62 :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해 보면, 노예의 본성과 능력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정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이기는 하지만 그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속하는 인간은 자연으로 노예다.’ 둘째, ‘인간임에도 자산의 한 품목이라면 타인의 자산이다.’ 셋째, ‘자산의 품목은 활동을 위한 도구이며, 그 소유자와 분리할 수 있다.’ ”(정치학-아리스토텔레스)
p65 : “형상이 질료보다 그 본성상 더 낫고 더 신성하기 때문에, 우월한 이가 열등한 이로부터 분리되는 것도 더 좋은 것이다. 여성은 자신의 질료로서 봉사하지만, 남성은 생성된 사물의 움직임이라는 원칙에서 더 낫고 더 신성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여성에게서 떨어진다.”(정치학-아리스토텔레스)
p68 :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노동에 잠재할 뿐인 소외를 자연적이고 필요하며 실제적인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육체, 물질적 삶, 자연적 세계에 ‘감금’되는 것에 대한 그리스의 공포 기반을 암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좋은 삶’은 생명의 출산과 지속에 대한 모든 활동의 정반대 자리에 있게 된다.
-> 남성이 자기돌봄과 타자돌봄이라는 재생산 노동에서 완벽하게 면제되면서 의식주 생명 돌봄에서 멀어진 것은 이렇게 그리스 민주주의의 시작과 함께 한다.
4장. 그리스의 육체: 너무나도 인간적인 그리고 초인적인
p74 : 고대 아테네인에게 여성은 본질적으로 육체와 그 육체 내부에 갇힌 생물체였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무절제하다. 절제라는 미덕을 후천적으로 획득할 순 있지만, 여성은 임신 가능성 때문에 육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도덕적, 생리적 차원에서 여성은 자연적이며 영속적인 덫에 걸린 듯 보였다.
p77 : 폴리스의 육체(오이코스)와 인간의 육체는 인간 존재에 필수적이나 열등하고 모멸적인 측면으로 여겨지고 다루어졌다. 양쪽 육체는 모두 다른 동물과 인간의 유사성을 확고히 하면서 개인이나 집단을 노예화할 잠재성 있는 삶의 특성을 표상한다. 이러한 육체관은 모두 인간의 자유에 대한 욕망에 집요하게 위협을 드리우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리스 남성의 육체에 대한 이상적 접근이란 영원한 경계 자세를 취하는 것과 초월에 관심을 두는 것, 즉 자신을 지배하거나 자기 육체라는 ‘질료’에 자기 영혼의 가장 이상적인 ‘형상’을 덧입히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자유, 도덕적 선, 행동의 훌륭함은 바로 이런 소외 작업과 육체를 정신의 도구로 회두르는 작업에 달려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와 영혼의 적절한 관계에 대해 논하면서 이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오이코스의 거주민, 특히 노예를 ‘형상이 필요한 질료’로, 외부의 안내 수칙이나 주인이 필요한 육체로 이해하려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력이 불러온 왜곡을 보았다. 형상-질료 패러다임은 주인의 노예 지배, 남성의 여성 지배, 무엇보다 (마치 주인이 노예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듯 폴리스가 그 모든 ‘부분’과 ‘조건’에 의미와 방향을 부여하는) 폴리스의 오이코스 지배를 위한 합리화였다.
->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은 모두 오이코스, 즉 ‘경제’의 영역을 동물적 욕망과 연관된 것으로 생각하며, 초월적 자유와 멀어지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날 ‘감정 자본주의’가 완성된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와 여성에 대한 차별의 요소를 제거했지만 여전히 이성의 위를 주장하는 헤겔의 관점은 어떤 시사점을 가지고 있을까? ‘감정 자본주의’ 시대에 헤겔의 시각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p79 : 그리스인은 남성의 아름다움, 노래, 수수께끼, 음주, 잠 안 자기 등 겨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떤 것으로든 시합을 벌였다. 그리스인에게는 무엇이든 다른 이의 패배가 따라야만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치열하고 만연한 경쟁에 철학적 기반을 부여한 이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남편이 아내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주인이 노예에게 그러듯 행위자가 다른 이보다 어느 정도 우위에 있지 않으면 그의 행위도 좋거나 뛰어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아레테는 단순히 뛰어남을 드러낸다거나 어떤 행위를 할 때보다 경쟁자의 주장을 명명백백하게 꺾고 특정한 영광의 무대에 오를 때 드러난다.
-> 그리스가 자랑하는 ‘아레테’라는 덕목이 사실은, 능력주의와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타인을 패배 시킴으로서 자신의 탁월성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아레테’.
p85 : 서구 남성에게 육체와 분리된 정신은 자연, 자연적인 것에 묶인 이, 그 자신의 희망과 욕망을 부추기는 외적 요소 뿐만 아니라 선택된 적 등 그 모든 것에 맞서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고안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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