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제1장. 가정
§ 158.
가정은 정신의 직접적인 실체성이며, 스스로를 감각하는 정신의 통일성인 사랑을 자신의 규정으로 삼는다. 따라서 [가정의] 심정(Gesinnung)은 ‘정신의 개체성이 지니는 자기의식’을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본질성’인 [사랑이라는] 이 통일성 속에 지니며, 이로 인해 통일성 속에서 [가정에 속하는 개인들은] 대자적인 인격(Person)으로서가 아니라 [가정의] 구성원(Mitglied)으로 존재한다.
{§ 158.}
가정(정신의 직접적인 실체성)은 사랑(스스로를 감각하는 정신의 통일성)을 규정 삼아, 가정에 속한 개인을 대자적인 인격이 아닌, 가정의 구성원으로 둔다.
혼인과 가족 관계의 성립과 유지의 근간은 ‘사랑’?
사랑하는 이들은 각자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종속적인가?
§ 159.
가정이 해체의 상태로 이행하면서 [가정의] 구성원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심정과 현실 면에서 자립적인 인격들로 존재하게 되고, ‘이들[구성원들]이 가정 내의 특정한 계기를 위해 이루었던 바’를 외적인 측면들(재산, 부양비, 양육비[교육비] 등등)에 따라서만 분화의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한에서, 바로 이러한 조건에서만 ‘가정의 통일성을 토대로 개별자에게 귀속되는 권리’와 ‘애초에 이 통일성 자체에서 개별자의 삶인 바’는 특정한 개별성의 추상적 계기인 권리요구라는 형식으로 출현한다.
{§ 159.}
혼인> 가정의 해체> 자립적 인격들 > 가계(재산, 부양비, 양육비 등등)분화 > 가정의 통일성을 토대로 개별자에게 귀속되는 권리 > 특정한 개별성의 추상적인 권리 요구
§ 160.
가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으로 완성된다.
a) 혼인(Ehe)이라는 직접적인 개념의 형태에 의해,
b) 가정의 소유와 재산 및 이것들에 대한 염려(Sorge)라는 외적 현존 속에서,
c) 자녀의 양육[교육](Erziehung)과 가정의 해체 속에서 [가정은 완성된다].
A. 혼인
§ 161.
혼인은 직접적인 인륜적 관계로서, 첫째로 자연적 생명성(Lebendigkeit)의 계기를 포함한다. 더구나 [혼인은] 실체적 관계로서 총체적인 의미에서, 다시 말해 유(類, Gattung)의 현실과 그[유의] 과정인 생명성을 포함한다(≪철학백과≫, 167절 이하와 288쪽 이하 참조). 그러나 둘째로 단지 내적이며 즉자적일 뿐이고 그래서 그 실존 상태에서 자연적 성별의 단순한 외적 통일일 뿐인 것이 자기의식에서는 정신다운 것[통일]으로, 자기의식적 사랑으로 전환된다.
§ 162.
혼인의 주관적 출발점으로는 무엇보다도 [혼인이라는] 이 관계를 맺는 두 인격의 특정한 경향이나, 부모의 사전 준비(Vorsorge), 혼사 거행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혼인의] 객관적 출발점은 [혼인하는 두] 인격들의 자유로운 동의(Einwilligung)다. 이에 더해 [객관적 출발점은] 자연적이며 개별적인 인격성은 [혼인이라는] 두 인격의 통일 속에서 포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격을 구성하는 일이다. [혼인이라는] 통일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기제한이지만, 그들[두 인격들]은 이 통일 속에서 자신들의 실체적 자기의식을 획득하므로, 이 통일은 통일되는 양자의 해방이기도 하다.
[주석] 혼인 상태로 들어가는 일은 객관적 사명[규정]이자 인류적 의미이다. [혼인의] 외적 출발점이 어떤 성질을 띠는가 하는 점은 그[출발점]의 본성상 우연적이며, 특히 반성의 도야[교양]에 의존한다. 거기[혼인의 외적 출발점]에는 양극단이 있다. 한쪽의 호의적인 부모의 혼사 거행[준비]이 출발을 이루고, 그 다음에 서로 사랑의 합일을 이루도록 그렇게 규정된 상태로 이미 알려진 [두] 인격들로 넘어가서 그들에게 [혼인에 대한] 경향이 발생하는 경우다. 다른 쪽은 무한히 분화된[파편화된] 이 인격들 속에서 [혼인에 대한] 나타나는 경우다. 전자의 극단, 즉 혼인시키려는 결정이 시작을 이루고 경향을 결과로 지녀서, 현실적인 혼인이 발생할 때 양자[혼인의 결정과 혼인의 경향]가 합일되는 방식이 좀 더 인륜적인 방식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와 다른 극단에는 무한히 특수한 고유성이 있는데, 이 고유성은 각자의 오만불손을 타당하게 만들면서 근대 세계의 주관적 원리(124절 주석 참조)와 관계한다. 그러나 성적 사랑이 기본 관심을 이루는 근대 드라마와 다른 예술 표현들에는, 표현된 열정의 열기 속에서도 이 열기와 결부된 완전한 우연성으로 인해 그[열기]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살을 에는 듯한 냉랭함의 요소가 초래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전체 관심이 단지 바로 이[무한히 분화된] 인격들만 의거하는 것으로 표상되기 때문인데, 그러나 이처럼 이[분화된] 인격들에게 무한히 중요할 수 있는 것도 그 자체로는[즉자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 163.
혼인의 인륜다움(das Sittliche)은 [혼인이라는] 이 통일을 실체적 목적으로 의식하는 데서, 다시 말해 전체적인 개별(개인의) 실존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공유한다는 데서 존립한다. 그런데 개별 실존의 심정과 현실에서, 자연적 충동은 충족되며 곧바로 사라지고 마는 자연 계기의 양상으로 격하된다. [이에 비해] 법[권리] 상태에 있는 정신적 유대[연대](Band)는 실체다운 것으로서, 격정과 시간적인 특정한 자의의 유연성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서[즉자적으로] 소멸되지 않는 것으로 부각된다.
[주석] 혼인이 그[혼인]의 본질적 기초에 관한 계약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은 위에서 언급한 바 있다(75절). 왜냐하면 개별성의 상태로 존재하는 자립적인 인격성들의 계약의 입장으로터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이 계약의 입장을 지양하는 것이 혼인이기 때문이다. 인격성들의 동일시를 통해 가정은 단 하나의 인격이 되고 가정의 구성원은 부수적인 것들[우유적인 것들](Akzidenzen)이 되는데(그러나 실체는 본질적으로 실체 자신과 우유성들의 관계다. ≪철학백과≫, 98절 참조). 이러한 인격성들의 동일시가 인륜적 정신이기도 하다. 이 인륜적 정신은 바로 이 개인들이라는 그의 현존에서, 그리고 시간 속에서 수많은 방식으로 규정된 현상의 이해관계들에서 그가 지니는 다양한 외면성으로부터 벗어나서, 대자적으로 표상에 대해 하나의 형태로 부각된다. 예를 들어, [이 정신은] 가신 등으로 숭상되어 왔으며, 혼인과 가정의 종교적 특징인 공경이 귀속되는 것을 구성하기도 한다. ‘신다우며 실체다운 것’이 그의 현존으로부터 분리되고, ‘정신다운 통일에 대한 감각과 의식’도 거짓으로 소위 플라톤적 사랑으로 고정되어 버렸을 때, 더 폭넓은 추상이 생긴다. 이 분리는 수도승의 견해와 연관되는데, 이 견해에 따르면 자연적인 생명성의 계기는 단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되면서도, 동시에 그것[자연적인 생명성의 계기]에 이 분리를 통해 무한한 중요성이 대자적으로 부여된다.
§ 164.
계약의 약정(Stipulation)이 이미 대자적으로[그 자체로] 소유의 참된 이행을 포함하듯이(79절), 혼인의 인륜적 연대에 대한 동의를 [격식을 갖춰] 엄숙하게 선언하고, 가족과 공동체에 의해 상응하는 인정을 받고 확증을 받으면(이 점을 고려하여 교회가 개입하는 일은 여기서 더 자세하게 상술할 수 없는 규정이다) 혼인은 정식으로 체결되고 현실성을 띤다. 그래서 이 결합은 표식(das Ziechen)을 통해, ‘정신다운 것의 가장 정신다운 현존’인 언어를 통해(78절) 실체다운 것을 완수하는 일인 이 예식(Zeremonie)이 선행해야만 인륜다운 것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적 생명성에 속하는 감성적 계기는 자신[감성적 계기]의 관계 속에 ‘인륜적 결합의 외적 현존에 속하는 결과와 우유성’으로 정립되며, 이때 인류적 결합도 상호적(gengenseitig) 사랑과 도움(Beihife) 속에서만 남김없이 드러날 수 있다.
[주석] 그[혼인]로부터 법칙적 규정들을 드러내거나 판정할 수 있기 위해, 혼인의 주요 목적(Hauptzweck)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면, 혼인의 현실성을 이루는 개별 측면들 중에 어떤 것이 다른 측면들보다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이 주요 목적 속에서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측면도 대자적으로[그 자체만으로] 인륜으로서의 혼인의 즉자대자적인 내용의 전 범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혼인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혼인의 실존의 이런저런 측면이 누락될 수도 있다. 혼인의 체결 그 자체, [공식적인] 잔치(Feierlichkeit)를 통해, 이 결합의 본질이 ‘감각과 특수한 경향의 우연’을 뛰어넘는 인륜으로서 표명되고 확인되는데, 만일 이 혼인의 체결[공식적인 잔치]이 외적인 격식 차리기나 소위 시민의 계율(Gebot)로만 취해진다면, 시민적 관계의 교화와 인증이라는 목적을 가질 뿐이라는 점, 또는 시민의 계율이나 교회의 계율의 단순히 실정적인 자의일 뿐이라는 점만이 이 [혼인의 체결] 행위에 남는다. 그런데 이 계율은 혼인의 본성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또한 심정적으로 바로 이 계율 때문에 이 격식차리는 체결에 가치가 두어지고, 계율이 상호적인 완전한 헌신(Hingebung)의 선행 조건으로 간주된다면, 계율은 사랑의 심정을 이간(離間)하며, 낯선 것(ein Fremdes)으로서 이 합일의 내밀성(Innigkeit)에 역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사념이 사랑의 자유와 내밀성 그리고 완성이라는 최고 개념을 제공하는 듯이 우쭐대면서, 이 사념은 오히려 사랑의 인륜다움을 부인하며, 단순한 자연충동의 좀 더 고귀한 저지와 억제를 부인한다. 그런데, 이러한 저지와 억제는 이미 자연적인 방식으로 부끄러움[수치심](Scham) 속에 포함되어 있고 좀 더 명확한 정신다운 의식을 통해 정절(Keuschheit)과 훈육(Zucht)으로 고양된다. 좀 더 상세히 보자면 앞서 언급한 견해를 통해 [혼인의] 인륜적 규정은 배척된다. 의식이 자신의 자연성과 주관성으로부터 실체다운 것의 사상으로 결집되고, 감성적 경향의 우연과 자의에 여전히 자신을 맡기는 대신 결합을 이 자의로부터 빼내고 실체다운 것인 가신에게 확약하면서 자신을 의탁하고, 그리고 의식이 ‘[혼인] 관계의 진실하고 인륜적인 면과 인륜적인 결합의 인정’에 의해 제한된 것으로만 감성적 요소를 끌어내린다는 점에 [혼인의] 인륜적 규정은 존립한다. 실채적 관계의 사변다운 본성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파렴치(Frechheit)와 파렴치를 지지하는 오성이다. 그러나 기독교 만족들의 입법들처럼 부패하지 않은 인륜적 심정은 이 사변다운 본성에 상응한다.
{§ 164.}
혼인은 인륜적 결합으로, ‘정신다운 것이 정신다운 현존인 언어라는 표식’을 통해 완수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적 표식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예식’ 즉 혼인의 인류적 연대의 동의를 엄숙하게 선언하고 가족과 공동체 등의 인정과 확증을 받아 정식으로 혼인이 체결되면 혼인은 실체성을 띤다. 이러한 인륜적 결합도 상호적 사랑과 도움 속에서만 제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 동의, 확증, 인정에 대한 ‘선언’ 즉 이러한 ‘예식 선행’으로 혼인은 인륜적 결합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신적인 것(자연적 생명성에 속하는 감성적 계기)이 정신적인 현존인 언어(선언)을 통해 실체다운 것이 되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이 이데아(Idea)를 ‘책상 위의 사과’에 비유한 것을 연상케 한다. 현상계의 사과는 제각각이고 시시각각 변화는 진리가 아닌 그림자/모방이며, 오히려 이데아의 사과가 변하지 않은 흠잡을 떼 없이 완벽한 원형으로 감각이 아닌 이성을 통해 사과의 본질/참된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과 명명으로 ‘사과’라는 언어는 실체성을 가지며 사물인 사과는 ‘언어인 사과에 가까운 물질성(그림자/모방)을 가진 것으로 사과로 범주화’되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미셀 푸코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동명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이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마그리트의 그림에 파이프가 그려져 있지만, 그림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프랑스어 문장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재현은 이미지일 뿐이며, 말과 사물은 즉 언어와 대상은 절대적이지 않음을, 이미지가 곧 실재(사물) 그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언어는 사물을 제대도 담아 내지 못한다. 말과 글은 현상/실체를 다 담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튀세르의 ‘호명 테제’와도 관련지어 보면, ‘이봐 거기’와 같은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호명하면, 그 개인이 그 부름에 돌아보며 ‘나를 부르는 구나’라고 인식하는 순간 개인은 특정한 사회적 역할을 가진 주체로 거듭난다고 한다. 한 예로 경찰이 “거기 서”라고 했을 때 경찰의 부름을 듣고 돌아보는 순간, 나는 스스로 법과 공권력의 지배를 받는 ‘시민/법’을 지켜야 하는 주체로 호명되고, 나는 이 부름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정체성과 규칙(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시민/법’을 지켜야 하는 주체는 정체성과 규칙에 예속되어 추구한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앞서 헤겔의 인륜적 결합인 혼인이 ‘인정에 대한 선언’, ‘정신적인 것(자연적 생명성에 속하는 감성적 계기)이 정신적인 현존인 언어(선언)을 통해 실체다운 것’이 되는 것이라면, 혼인이라는 인륜적 결합 역시, ‘혼인’이라는 이데아, 이러한 이데아적 혼인을 재현한 이미지로서의 현상계 ‘혼인’, ‘인륜적 결합으로 언어적 표식을 획득한 혼인’에 따라 구성원의 정체성과 규칙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게 된다는 것을 연결지어 보게 된다.
그리고 헤겔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인정을 통해 추구되는 것일 텐데, 혼인 역시도 ‘인륜적 연대로서의 혼인에 대한 동의, 선언, 인정, 확증’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이제껏 어떤 양식의 ‘인륜적 결합으로서의 혼인의 진정한 자유를 추구’해 오고 있는지도 생각해 봄직하다.
§ 165.
양성(兩性)의 자연적 규정성은 그들[양성]의 이성다움을 통해 지적이며 인륜적인 의미를 보유한다. 개념으로서의 인류적 실체성이 즉자적으로 스스로를 분리하는 구분을 통해 이 의미는 규정되고, 이 구분으로부터 구체적인 통일인 그[의미]의 생명성을 획득한다.
{§ 165.}
양성(兩性)은 ‘개념으로서의 인류적 실체성’이 즉자적으로 스스로를 분리하는 ‘구분으로 규정되고, 의미의 생명력을 획득한다’는 것에서 ‘담론적 구성물, 범주화, 원본과 모방, 젠더 패러디’가 연상되는데, 대표적으로 버틀러의 ‘(규범이 반복된 행위로 세포에 기입된) 섹스 역시 알고 보면 젠더’*, 그리고 보부아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를 예로 들 수 있다.
* 이헌재의 <페미니즘 사용설명서, 섹스와 젠더: “섹스”도 알고 보면, “젠더”!>라는 글의 제목과 내용을 일부 ‘따라한 것’이다.(「어떤 몸·인·가-규범적·인·몸에 대해-」, 2015, 각주1)
* 버틀러에게 있어, 섹스로서의 여성 역시 젠더로서의 여성과 같이 담론적 구성물인 것이다. 애당초 단단하고 결정적인 토대를 갖는 것으로 보이는 ‘성차’나 ‘여성’이라는 범주는 사실 지배 이데올로기의 규제적 이상에 대한 반복된 각인 행위를 통해 자연스러운 것으로 조작된 것이다.(Butler, Gender Troble: Fd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1999) 한마디로, 자연적이고 본질적이라고 여겨온 몸(body)에 대한 ‘섹스 역시 알고 보면 젠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금 몸에 대해 넌지시 물어본다. 과연 이 몸은 ‘어떤 몸인가’. (「어떤 몸·인·가-규범적·인·몸에 대해-」, 2015, 본문)
§ 166.
따라서 [혼인하는 당사자들 중] 한쪽은 ‘대자적인 인격적 자립성’과 ‘자유로운 보편성의 앎과 의욕’, ‘개념파악하는 사상의 자기의식’과 ‘객관적 궁극 목적의 의욕’으로 자기 분열하는 정신다운 것이다. [이에 비해] 또 다른 쪽은 구체적인 개별성과 감각의 형식으로 실체다운 것을 알고 의욕하는 것으로 ‘합일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하는 정신다운 것’이다. 전자는 외부와의 관계에서 강력하고 활동적인 자이며, 후자는 수동적이며 주관적인 자다. 따라서 남성은 자신의 현실적인 실체적 삶을 국가와 학문 등에서나, 외부 세계나 자기 자신과의 투쟁 및 노동에서 지니며, 오직 자신의 분열 상태로부터 자신과의 자립적인 합일 상태를 쟁취한다. 그리고 남성은 합일의 고요한 직관과 감각적이며 주관적인 인륜성을 가정 내에서 지니는데, [남성과 반대로] 여성[부인]은 이 가정에서 자신의 실체적 규정을 지니며 이 공경(Piet) 속에서 자신[여성]의 인류적 심정을 지닌다.
[주석] 따라서 공경에 대한 가장 숭고한 표현[연출] 중 하나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도 공경은 특히 여성의 법칙으로서 표명되며, 감각하는 주관적 실체성의 법칙이자, 아직 자신의 완전한 실현에 도달하지 못하는 내면성의 법칙으로서, 그리고 명부(冥府)의, 오래된 신들의 법칙이자 어디로부터 그것[법칙]이 나타났는지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영원한 법칙으로서, 공적인 국가의 법칙에 대립하여 서술된다. 여기서 대립은 최고로 인류적인 대립이며 그렇기 때문에 최고로 비극적인 대립이기도 하며, 거기[≪안티고네≫]에서는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개체화되어 있다(≪정신현상학≫, 387쪽 이하, 417쪽 이하 참조).
§ 167.
혼인은 본질적으로 일부일처제(Monogamie)다. 왜냐하면 [혼인이라는] 이 관계를 맺고 자신을 헌신하는 자는 바로 직접적이며 배타적인 개별성인 인격성이기 떄문이다. 그리고 [혼인이라는] 이 관계가 지니는 진실성과 내밀성(Innigkeit)(실체성의 주관적 형식)은 오직 이 인격의 분리되지 않는 상호적인 헌신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혼인이라는 이 관계의] 동일성에서 인격으로서, 다시 말해 원자적 개별성으로서 존재하는 한에서만 타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의식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주석] 혼인, 즉 본질적으로 일부일처제는, 공동체의 인륜이 의거하는 절대적 원리들 중 하나다. 따라서 혼인의 성립은 신적이거나 영웅적인 국가 건설의 계기들 중 하나로 제시된다.
§ 168.
더구나 그들[양성]의 자유로운 희생으로부터 혼인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 양성(兩性)이 지니고 있는 ‘그 자체로 무한히 고유한 이 인격성’이므로, [혼인 당사자인] 그들[양성]은 이미 자연적으로 동일하며 서로 친숙하고 모든 개별적 측면에서 친밀한 범위 내에서 [폐쇄적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친밀한 범위 안에서는 개인들이 자기 스스로 고유한[특유한] 인격성을 서로 지니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양성]은 분리된 가정과 원천적으로 상이한 인격성으로부터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따라서 ‘자유의 인륜적 행위‘인 혼인이 직접적인 자연성과 그것[자연성]의 충돌의 결합이 아니라고 보는 개념에 혈족[근친](Blutsverwandten) 사이의 혼인은 위배되며, 따라서 진실한 자연적 감각에도 위배된다.
[주석] 사람들이 혼인 자체를 자연법이 아니라 단지 자연적 성 충동에 기초하고 있는 상태로 간주하고 자의적인 계약으로 간주하며, 또한 사람들이 일부일처제에 대해 남녀 수의 물리적인 관계에 기인하는 외적 근거로 제시하고, 혈족[근친] 사이의 혼인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단지 불분명한 감정들만을 제시한다면, 이 경우에는 자연 상태와 법[권리]의 자연성에 대한 보통의[통속적인] 표상이 근거로 작용하며, 이성다움과 자유개념의 결핍이 근거로 작용한다.
§ 169.
인격으로서 가정은 어떤 소유(Eigentum)에서 자신의 외적 실재성을 지닌다. 가정은 재산(Vermögen)이기도 한 소유에서만 자신의 실체다운 인격성의 현존을 지닌다.
B. 가정의 재산
§ 170.
가정은 소유만을 지니지 않으며, 보편적이며 지속적인 인격으로서 가정에는 영속적이며 안정적인 점유, 즉 일정한 재산이 필요하며 [그래서] 그에 대한 규정이 등장한다. 단순한 개별자의 특정한 욕구라는 추상적인 소유에서 등장하는 자의적인 계기와 욕망의 이기심이, 여기[가정]서는 하나의 공통체(ein Gemeinsames)를 위한 염려와 생업(Erwerb)으로, 하나의 인륜체(ein Sittliches)로 바뀐다.
[주석] 국가나 아니면 적어도 사교적이며 인륜화된 삶의 건설에 관한 설화들(Sagen)속에서 확고한 소유권의 도입은 도입과 함께 나타난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재산이 무엇이며 재산 확립의 참된 방식이 어떤 것인가는 시민 사회의 영역에서 밝혀질 것이다.
§ 171.
가정의 가장(Haupt)인 남성이 ‘타자에 대한 법적 인격’인 가정을 대표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가장인] 남성에게는 특히 밖으로 나가 생계를 벌고, 생필품을 염려하고, 가산(家産, Familienvermögen)을 처분하고 관리하는 일이 맡겨진다. 이 가산은 공동의 소유이므로, 가정의 어떤 구성원도 어떤 특수한 소유권을 지니지 않지만 [구성원] 각자는 모두 공동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지닌다. 그러나 가정 내에 여전히 존재하는 인류적 심정의(158절) 직접적인 면은 특수하고 우연적인 상황에 열려 있기 때문에, 이 [공동의]의 권리와 가정의 가장에게 속하는 앞서 말한 처분은 충돌할 수도 있다
§ 172.
혼인을 통해 새 가정이 구성되고, 이 새 가정은 그것[새로운 가정]이 유래한 가계나 집안에 대해 대자적으로 자립적인 것이다. 그러한 것[가계나 집안]과의 결합은 자연적 혈족을 기초로 하지만, 새 가정은 인류적 사랑을 기초로 한다. 따라서 한 개인의 소유는 그 혼인 관계와 본질적인 연관을 맺지만, 그의 가계나 집안과는 좀 더 소원한 연관만을 맺는다.
[주석] 아내와 같은 그런 이의 지속적인 법률 고문(Rechtbeistand)을 지정하는 일처럼, 부부의 재산 공유에 대한 일종의 제한이 부부재산계약들(Ehepakten) 속에 들어 있을 때, 부부재산계약들은 자연사, 이혼 등을 통해 혼인이 해체되는 경우에 대비하면서, 구분되는 구성원들에게 공동의 재산에서 그들이 몫이 유지되도록 하는 보증시도가 되는 의미를 띤다.
C. 자녀 교육과 가정의 해체
§ 173.
실체적으로는 단지 내밀성과 심정일 뿐이지만 실존적으로는 두 주체로 분리되어 있는 혼인의 통일성은 자녀들 속에서 통일성 자체로서 대자적인 실존이자 대상이 된다. [부모인] 두 주체는 [자녀라는] 이 대상을 그들의 사랑이자 실체적 현존으로서 사랑한다. 자연적인 측면에 따르면, 부모로서 직접적으로 현전하는 인격들의 전제[자녀]가 여기서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진행은 자신을 산출면서 전제하는 종의 무한한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진행은] 유한한 자연성 속에서 가신(家神)이라는 단일한 정신이 그의 실존을 유(類)로서 서술하는 방식이다.
§ 174.
자녀들은 공동의 가족 재산에 의해 양육되고 교육받을 권리를 지닌다. 자녀의 예속(Dienste)을 예속으로 요구할 수 있는 부모의 권리는, 가정 돌보기(Familiensorge) 일반의 공동의 측면에서 기초하며 이[측면]에 제한된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자의를 통제할 수 있는 부모의 권리는 자녀를 훈육하고 교육하려는 목적에 의해 규정된다. [자녀를] 처벌하는 목적은 정의[올바름] 그 자체가 아니고, 오히려 주관적이며 도덕적인 본성을 띠며, 여전히 자연 속에 매여 있는 자유에 경종을 울리고 자녀의 의식과 의지 속에 보편자를 부각하는 일이다.
{§ 174.}
이때 보편자는 ‘아버지’, ‘법’을 연상시킨다.
'세미나 발제문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법철학- 헤겔 / 3부 인륜 1장 가정 중 B,C (§170-181) / 화니짱 / 26.06.24 (1) | 2026.06.23 |
|---|---|
| 법철학 - 헤겔 / § 173 – 181 / 26.06.24 / 콩빠 (0) | 2026.06.20 |
| 법철학 - 헤겔 / §158 ~ 172 / 화니짱 / 26.06.16 (0) | 2026.06.16 |
| 법철학 / 헤겔 / 제3부. 인륜 §142 ~ §151 / 발제자 죠스 (0) | 2026.06.10 |
| 법철학 -헤겔 / §142-157 / 26.06.10/ 화니짱 (0) | 2026.06.09 |
- Total
- Today
- Yesterday
- 루이 알튀세르
- 무엇을할것인가
- 생산양식
- 프롤레타리아 독재
- 치유할 수 없는 질병
- 프란츠파농
- 의식과사회
- 브루스커밍스
- 스피노자
- 한국전쟁의기원
- 루이알튀세르
- 딘애치슨
- 집단심리
- 개인심리
- 알튀세르
- 공화국
- 법철학
- 레비스트로스
- 마키아벨리
- 로마사논고
- 헤겔
- virtù
- 검은 소
- 야생의사고
- 생산관계
- 옥중수고이전
- 안토니오그람시
- 이데올로기
- 옥중수고
- 이탈리아공산당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
| 5 | 6 | 7 | 8 | 9 | 10 | 11 |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