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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가족의 재산

§170

가족은 단지 재산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고 지속하는 인격으로서 영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규정된 소유물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는 그것이 욕망의 자기중심성과 함께 변형되어 공동의 목적을 위한 배려와 획득이 되며, 따라서 윤리적 성격을 띠게 된다.

§171

가족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하나의 법적[rechtliche] 인격으로서 존재해야 하며, 따라서 남편이 가족의 대표자이자 가장(head)으로서 가족을 대표해야 한다.

이러한 자원들은 공동 재산(common property)이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 누구도 자기만의 개별 재산을 갖지 않으며, 각자는 공동으로 보유된 것에 대한 권리만을 가진다.

§172

결혼이 이루어질 때 새로운 가족이 성립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가족은 자신이 유래한 친족 집단이나 가문에 대하여 스스로 자족적인 존재가 된다. 새로운 가족과 원래의 친족 집단 사이의 유대는 자연적 혈연관계에 기초한다. 반면 새로운 가족은 윤리적 사랑에 기초한다.

Addition (H)

새로운 가족은 더 넓은 혈연관계보다 더 본질적이다. 배우자와 자녀는 가족의 진정한 핵심을 형성하며, 넓은 의미의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따라서 개인의 재산적 상황[Vermögensverhältnis]은 넓은 혈연집단보다 자신의 결혼 관계와 훨씬 더 본질적인 연관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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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현대인이 읽으면 의외로 급진적인 대목이 있어.

우리는 흔히:

혈연 → 가족

이라고 생각하지만, 헤겔에게 진짜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윤리 공동체

그래서 §172에서 매우 중요한 문장이 나온다.

새로운 가족은 원래의 친족 집단이나 가문보다 본질적이다.

이 말은 사실 전통적 씨족사회나 종법제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거야.

왜 헤겔은 혈연보다 결혼을 더 중요하게 볼까?

그 이유는 헤겔이 가족을 자연적 공동체가 아니라

윤리적 공동체

로 보기 때문!

혈연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관계지만,

결혼은 자유로운 동의에 의해 성립된 관계야.

그래서

  • 혈연 = 자연
  • 결혼 = 자유

라는 구도가 형성된다.

따라서 가족의 핵심은 혈통이 아니라

부부 + 자녀

가 된다.

§171의 “남편이 가장이다”

여기는 현대 독자가 가장 불편하게 읽는 부분 중 하나야.

헤겔은 법적 대표권과 재산 관리권을 남편에게 부여하고 있어.

이건 §166의 성별 분업론과 연결돼.

그는

  • 남성 = 국가, 시민사회, 재산
  • 여성 = 가족, 내면성

이라는 구조를 전제하기 때문이야.

이 부분은 오늘날에는 거의 전적으로 비판 대상이 되는 대목이야.

그런데 왜 공동재산이라고 말할까?

흥미로운 건 헤겔이 동시에

가족 구성원 누구도 자기만의 재산을 갖지 않는다.

고 말한다는 점이야.

즉 법적 대표자는 남편이지만,

재산 자체는 가족의 것이지 남편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헤겔은 재산을

개인 재산

에서

가족이라는 인격의 재산

으로 이동시키고 있어.

이 점은 오히려 상당히 현대적인 측면도 있어.

사회학적으로 보면

이 장은 사실상

씨족 → 핵가족

으로의 이행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텍스트.

그래서 봉건 가문이나 종법제보다는,

부부 중심의 근대 가족을 옹호하는 논리!

특히

배우자와 자녀가 가족의 진정한 핵심이다.

라는 문장은 오늘날의 핵가족 개념과 거의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C. 자녀의 양육과 가족의 해체

§173

결혼의 통일은, 그 실체에 있어서는 단지 내면성과 태도(disposition)에 불과하지만, 현존[Existenz]에서는 두 주체 사이에 분할되어 있다. 그러나 이 통일은 자녀들 안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현존[Existenz]이 되며, 부모들에게는 하나의 대상[Gegenstand]이 된다. 부모들은 이 대상 안에서 자신의 사랑과 자신의 실체적 현존[Dasein]을 사랑한다.

Addition (H)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의 관계는 아직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오직 자녀들 안에서만 통일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자녀들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 앞에 자신들의 결합 전체를 보기 때문이다. 아이 안에서 어머니는 남편을 사랑하고, 아버지는 아내를 사랑한다. 아이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눈앞에 본다.

§174

부모가 자녀들의 자의적 의지(arbitrary will)에 대해 가지는 권리는, 자녀를 양육하고 훈육하는 목적에 의해 규정된다. 처벌의 목적은 정의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주관적이고 도덕적인 성격을 가진다. 즉 아직 자연 속에 얽매여 있는 자유에 대해 억제 효과를 미치고, 보편적인 것을 자녀의 의식과 의지 속으로 끌어올리려는 데 있다.

Addition (H)

인간은 본능에 의해 자신이 되어야 할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그것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 자녀가 양육을 받을 권리의 근거이다. 자녀 양육의 가장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는 훈육(discipline)이다. 그 목적은 자녀의 자기의지(self-will)를 꺾고, 순전히 감각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제거하는 데 있다. 만약 자녀들에게 단지 이유만을 제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그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모든 것이 결국 그들의 변덕(caprice)에 달려 있게 된다. 부모가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를 구성한다는 사실은 자녀들의 복종이 필요함을 함축한다. 만약 자녀들 안에 복종의 감정이 길러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성장하려는 열망을 낳지 않는다면, 자녀들은 건방지고 무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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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73에서 헤겔은 

부부의 사랑은 아직 객관적이지 않다.

이건 상당히 놀라운 주장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사랑을 가장 진정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

헤겔은 오히려:

사랑은 아직 감정이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랑은 아직 “내면성”에 머물러 있어.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부모의 통일은 더 이상 단순 감정이 아니라,

눈앞에 존재하는 하나의 객관적 존재

가 된다.

그래서 헤겔은 자녀를

부모 사랑의 객관화!

또 하나 중요한 점은 §174의 교육론.

헤겔은 루소처럼

아이의 자연성을 존중해야 한다

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

그는 인간을:

본능만으로는 인간이 되지 못하는 존재!

그래서 교육의 목적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자연적 의지 → 보편적 의지

로의 전환.

이 때문에 그는 “훈육(Disziplin)“을 매우 강조.

특히 이 문장은 헤겔 교육론의 핵심.

“만약 자녀들에게 단지 이유만 제시하고 스스로 선택하게 둔다면, 모든 것이 변덕에 달려 있게 된다.”

그에게 교육은

자유를 즉각적으로 인정하는 것

이 아니라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존재로 형성하는 것

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는 복종(Gehorsam)을 단순 권위주의로 이해하지 않고,

보편적인 것에 자신을 맞추는 최초의 훈련

으로 이해한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헤겔은 동시에

자녀는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도 말해.

그래서 부모 권위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고,

오직

자녀를 자유로운 존재로 성장시키는 목적

안에서만 정당화돼.

이게 헤겔 교육론의 특징이야.

권위는 필요하지만,

그 목적은 복종 자체가 아니라

자유의 형성!

§175

아이들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존재들이다(in themselves). 따라서 인격성과 관련해서 볼 때,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나 부모에게 속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충동이 존재한다. 그들은 이미 어른들의 세계에 속하고자 한다. 그들이 어른들을 우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교육은 바로 이 아동기의 특수성을 통해 작동한다. 아이들은 이미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어른들 안에서 본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현재의 미성숙한 상태를 그대로 가치 있는 것으로 제시하고, 그들이 실제로 그러하듯 자연적 존재임을 강조하며, 현재 상태에 만족하도록 만들려는 교육은 잘못된 것이다.

Addition (H,G)

아이의 양육에서는 어머니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감정(Empfindung)의 원리가 무엇보다 먼저 아이 안에 심어지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한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덜 사랑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점점 더 자립성을 획득하고 부모를 자신 뒤에 남겨두기 때문이다. 반면 부모는 아이들 안에서 자신들의 통일의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형식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176

결혼은 여전히 윤리적 이념의 직접적 형식일 뿐이다. 따라서 그것의 객관적 현실성은 주관적 태도와 감정의 내면성 안에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결혼의 기본적인 불안정성의 원인이다. 그럼에도 윤리적 권위는 결혼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즉 단순한 의견, 일시적인 정념, 기분의 우연성 등으로부터 비롯된 소외를 완전한 소외와 구별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이혼이 허용되기 전에 부부가 실제로 완전히 소원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

Addition (H)

결혼은 주관적이고 우연적인 감정에 기초하기 때문에 해체될 수 있다. 반면 국가는 특수한 감정에 기초하지 않는다. 국가는 이성에 기초한다. 결혼은 윤리적 제도이기 때문에, 자의적인 의지에 의해 해체될 수는 없으며, 오직 윤리적 권위에 의해서만 해체될 수 있다. 만약 간통과 같은 이유로 완전한 소외가 발생했다면, 윤리적 권위는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

§177

가족의 윤리적 해체는 다음 사실에 있다. 아이들이 자유로운 인격이 되도록 양육되고, 성년에 도달했을 때 법적 인격(rechtliche Personen)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재산을 소유하고 자신들의 가족을 설립할 수 있는 존재로 인정된다. 아들들은 가족의 가장이 되고, 딸들은 아내가 된다. 이  새로운 가족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실체적 규정을 획득한다. 반면 원래의 가족은 단지 출발점으로서만 의미를 가진다.

§178

가족의 자연적 해체는 부모, 특히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발생한다. 그 결과 가족 재산의 상속이 이루어진다. 상속(Erbfall)이라는 관념은 다음과 같은 생각에 기초한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의 재산은 주인 없는 재산(ownerless property)이 되며, 그것을 가장 먼저 점유한 사람이 그것을 취득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망자의 친족들이 대개 가장 먼저 점유하게 되므로, 관습적으로 그들이 재산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질서를 위해 이러한 관습이 실정법에 의해 규칙으로 정립되었을 때, 이러한 관념은 가족 관계의 본성을 오해하게 된다.

§179 

가족의 해체는 개별자의 자의적 의지(arbitrary will)를 자유롭게 만든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자신의 변덕, 의견, 그리고 개인적 목적들[Zwecke der Einzelheit]에 따라 소비할 수도 있고, 또는 친구나 지인들의 집단 등을 말하자면 가족을 대신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유언장(testament) 안에서 그러한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그들을 자신의 정당한 상속인으로 만들 수도 있다.

자의적 의지가 유증(bequest)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인정하는 것은 윤리적 관계들에 대한 침해를 낳고, 비열한 욕망과 비열한 애착을 조장하며, 또한 어리석은 자의성과 음흉한 행태를 위한 기회와 정당화를 제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러한 행태란 이른바 은혜(benefactions)와 증여(gifts)에 대해, 증여자의 사후에 효력을 발휘하는 공허하고 압제적이며 성가신 조건들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점에는 그 재산은 어쨌든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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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175의 첫 문장:

“아이들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는 사실 현대 아동권 개념과도 연결될 수 있는 굉장히 강한 주장.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교육론이야.

헤겔은 루소식 자연주의 교육을 상당히 비판.

그는

아이를 아이답게 놔두어야 한다

보다는

아이는 현재 상태를 넘어서는 존재로 길러져야 한다!!

그리고 §176에서 드디어 이혼 문제가 등장하는데,

헤겔은

결혼은 원칙적으로 불가해소적이다.

라고 하면서도,

실제로 완전한 소외가 발생했다면 이혼은 허용되어야 한다.

고 말해.

  • 가톨릭식 절대 불가해소성도 아니고
  • 현대 자유주의적 즉시 이혼도 아닌

중간 입장.

마지막으로 §177–178은 굉장히 헤겔적.

가족의 목적은

가족을 영원히 유지하는 것

이 아니라,

아이들이 독립된 인격이 되어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

그래서 가족은 자신의 성공 속에서 스스로를 해체한다.

이건 헤겔 특유의 변증법적 사고가 아주 잘 드러나는 부분.

§179에서 헤겔은 근대적 개인주의가 밀고 들어오는 지점을 공격.

예를 들면:

  • 자녀에게 한 푼도 안 주고
  • 친구들에게 전 재산을 남기거나
  • 특정 단체에 몰아주거나
  • 유언으로 후손들을 통제하려 하거나

하는 경우

그는

이미 가족이 해체된 뒤에도
죽은 자의 자의적 의지가 계속 살아남아
산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고 생각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중요.

“그 시점에는 그 재산은 어쨌든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다.”

이건 단순한 사실 진술이 아니라 철학적 주장.

헤겔에게 소유권은 살아 있는 인격(Person)의 자유 의지와 연결.

그런데 죽은 뒤에는 더 이상 그 의지가 존재하지 않아.

따라서:

“죽은 뒤에도 내 재산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겠다”

는 생각은 원칙적으로 정당성이 약하다.

이런 점 때문에 헤겔은 흔히 자유주의적 재산권 이론보다는 공동체주의적 재산관에 훨씬 더 가까운 철학자로 평가돼.

헤겔이 유언의 자유(Testierfreiheit)가족의 권리(Familienrecht) 를 정면으로 충돌시키는 대목이야.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상당히 강하게

“죽은 사람의 자의적 의지보다 가족이 우선한다”

고 주장!

§180 

사후에도 자신의 자의성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자의성은, 그 자체 안에 아무 내용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가족 자체의 권리보다 더 큰 존중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상속의 원리를 자의성으로 만드는 것은, 로마인들 사이에서 나타났던 비윤리성을 다시 도입하는 것이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로마에서는 아들이 노예로 팔릴 수도 있었다. 만약 그가 해방되었다가 다시 아버지의 권위 아래 들어갔다면, 세 번째로 팔렸을 때 비로소 완전히 자유로운 인격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딸은 결혼에 의해 남편의 권력 아래 들어갔을 때에도, 혹은 노예 상태에 들어갔을 때에도, 여전히 자신이 나온 가족에 속해 있었다. 그 결과 그녀가 새롭게 형성한 가족은 적절한 의미에서 하나의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이전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상속권을 가졌고, 남편 역시 그의 아내와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을 수 있었다.

키케로가 『의무론(De Officiis)』 등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혼은 자신의 아내의 지참금으로 빚을 갚기 위한 법적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윤리적 부패는 다른 부패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진행된다. 가족을 보존하기 위하여, 유언에 의해 가족 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하는 것을 제한하고, 예를 들어 아들들을 우선적으로 상속인으로 정하며 딸들을 상속에서 배제하거나, 또는 장자를 우대하는 식으로 나머지 자녀들을 배제하는 상속 제도는(혹은 다른 형태의 불평등을 허용하는 제도는), 한편으로는 재산을 처분할 자유를 침해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가족의 권리 자체에 근거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 권리는 개별 가족 구성원의 자의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념 자체에 있다. 이러한 종류의 제도는 그 반대 제도들보다 훨씬 더 가족의 실체성과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를 보존한다. 사랑은 결혼의 윤리적 계기인데, 로마에서는 그것이 개인들 사이의 감정으로만 간주되었다. 따라서 재산은 우선적으로 개별 인격의 자의적 의지에 따라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지속성이라는 윤리적 원리에 따라 보존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우연적 취향이나 개인적 변덕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윤리적 실체가 자기 자신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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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분은 헤겔이 상속권의 자유를 상당히 강하게 제한하려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

현대 자유주의 관점에서는 보통:

“내 재산인데 죽기 전에 누구에게 주든 내 자유 아닌가?”

그런데 헤겔은 이렇게 보지 않아.

그는 재산을 단순한 개인 재산으로 보지 않고,

가족이라는 윤리적 인격의 외적 현존

으로 보기 때문.

그래서 죽은 뒤에도

“나는 아들이 싫으니까 친구에게 다 준다.”

“딸에게는 한 푼도 안 준다.”

같은 유언을 절대적 권리로 인정하지 않아.

왜 로마를 그렇게 비판할까?

헤겔은 이미 여러 번 로마를 비판했지.

특히 로마는:

  • 추상적 인격(Person)
  • 추상적 재산권
  • 형식적 법

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사회라고 본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가족보다 법적 권리가 우선

했어.

헤겔은 이것을 윤리적 삶(Sittlichkeit)의 붕괴로 본다.

실제로 헤겔이 옹호하는 것은?

흥미롭게도 헤겔은

  • 완전한 유언 자유도 반대
  • 완전한 국가 몰수도 반대

그는 오히려

가족이라는 윤리적 공동체의 지속성

을 기준으로 삼아.

그래서 상속은

개인 재산의 이전

이라기보다

가족의 실체성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행위

가 된다.

현대적으로 보면

  • 배우자 상속분
  • 유류분 제도(Pflichtteil)
  • 자녀 최소 상속권

등은 전부

“재산 처분의 자유보다 가족의 권리가 우선한다”

즉 오늘날 독일이나 한국 민법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헤겔적 직관에 더 가까운 셈.

§181 

가족은 자연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인격성(personality)의 원리를 통해 해체된다. 그 결과 가족은 다수의 가족들로 분화되며, 이 가족들은 서로에 대해 일반적으로 자립적인 구체적 인격들로 관계 맺는다. 다시 말해, 윤리적 이념으로서 가족의 통일 안에서 결합되어 있던 계기들은, 개념으로부터 해방되어 자립적인 현실성을 획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차이(Differenz)의 단계이다.

이를 먼저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보편성과 관계하는 특수성(particularity)이 규정된다. 그러나 보편성은 특수성의 토대가 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단지 그 내적 토대일 뿐이다. 따라서 이 보편성은 특수한 것 안에서 오직 형식적 외양(formal appearance)으로만 현존한다. 이러한 관계는 우선적으로 윤리적 삶의 상실을 나타낸다. 혹은 윤리적 삶은 본질로서 필연적으로 현상해야 하므로(『철학적 학문의 백과전서』 §§64 이하, 81 이하 참조), 이 관계는 윤리적인 것의 현상 세계, 곧 시민사회(civil society) 를 구성한다.

가족이 다른 원리로 이행하면서 확장되는 방식은, 현존[Existenz]의 영역에서는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하나는 평화로운 확장이다. 가족은 민족(people) 또는 국민(nation)이 되며, 따라서 공통의 자연적 기원을 갖게 된다. 다른 하나는, 흩어져 있던 가족 공동체들이 지배적인 권력의 영향 아래 결합하거나, 또는 상호 의존적인 욕구들과 그 상호 만족에 의해 자발적으로 결합하는 경우이다.

Addition (H)

여기서 보편성의 출발점은 특수한 것의 자립성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윤리적 삶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윤리적 삶은 본래 가족의 동일성으로서 의식에 나타나며, 그 동일성은 신적인 것, 의무를 부과하는 것, 그리고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관계가 발생한다. 여기에서는 특수한 것이 나의 일차적인 규정 원리가 되며, 윤리적 규정은 이에 의해 지양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나는 착각 속에 있다. 왜냐하면 내가 특수한 것에만 충실하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보편적인 것과 더 넓은 맥락의 필연성은 여전히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의 특수성이 나의 규정 원리로 남아 있는 동안, 다시 말해 그것이 나인 동안, 나는 실제로는 보편적인 것을 섬기고 있으며, 보편적인 것은 궁극적으로 여전히 나를 지배하는 힘으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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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시민사회

로의 변증법적 전환을 설명하는 부분.

왜 가족은 해체되어야 하는가?

헤겔에게 가족은 매우 훌륭한 공동체.

하지만 문제가 있어.

가족 안에서는:

  • 사랑
  • 신뢰
  • 공동 재산
  • 공동 목적

이 존재.

그런데 인간은 단지 가족 구성원으로만 살 수는 없어.

아이들은 성장하고,

새 가족을 만들고,

각자 독립적인 인격(Person)이 돼.

그래서 가족은 성공할수록 해체돼.

이게 §177에서 이미 나왔지.

시민사회는 왜 “차이(Differenz)“인가?

가족에서는

우리는 하나다.

가 기본 원리.

반면 시민사회에서는

나는 나다.

가 기본 원리.

그래서 헤겔은

가족= 통일(Unity)

시민사회= 차이(Difference)

국가= 통일과 차이의 화해

라는 구조가 되는 거.

헤겔은 시민사회를

윤리적 삶의 상실

처럼 보인다고 말해.

왜?

가족에서는

  • 사랑
  • 공동체

가 직접 존재했는데,

시민사회에서는

  • 경쟁
  • 시장
  • 계약
  • 사적 이익

이 등장하거든.

그래서 시민사회 사람들은

나는 나를 위해 일한다.

고 생각해.

그런데 헤겔은 왜 “착각”이라고 말하나?

Addition의 핵심 문장이 바로 이거야.

헤겔은:

사람들은 자신이 사적 이익만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해.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야.

예를 들어:

빵집 주인은

돈 벌려고 빵 만든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한다.

즉 개인은

자기 이익

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보편적 체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어.

그래서 헤겔은

나는 특수한 것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보편적인 것을 섬기고 있다.

라고 말하는 거야.

왜 이게 중요할까?

이게 바로 나중에 시민사회 장에서 나오는 유명한 주제인

욕구의 체계(System der Bedürfnisse)

의 출발점.

그리고 이 부분은 나중에

  • 아담 스미스
  • 분업
  • 시장
  • 자본주의

논의와 직접 연결돼.

한 문장으로 정리

§181에서 헤겔은 가족의 직접적 윤리적 통일이 해체되면서 독립적 개인들의 세계인 시민사회가 등장한다고 설명하며, 개인들은 자신의 사적 이익만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보편적 사회 질서의 일부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시민사회를 윤리적인 것의 현상 세계(the world of appearance of the ethical) 라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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