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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시민사회 (Civil Society)
§182
시민사회는 특수한 개인(person)의 세계이다. 그것은 욕구들의 전체성(totality of needs), 자연적 필연성과 자의성의 혼합, 그리고 이러한 두 요소를 매개하는 체계이다. 시민사회는 윤리적 이념이 가족 이후에 나타나는 단계이며, 이념이 개별적 인격 안으로 분열되어 각각이 자기 자신의 특수한 목적을 가지게 된 상태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하나의 관계이다. 이 관계 속에서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며 자신의 특수한 만족을 추구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따라서 각 개인은 보편성이라는 형식을 통한 매개를 거쳐야만 자기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Addition (H,G)
국가는 차이(Differenz)의 통일이고, 시민사회는 차이 그 자체이다. 차이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국가보다 나중에 발생한다. 왜냐하면 차이라는 것은 이미 자립적인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183
이기적 목적은 보편성에 의해 조건 지어지면서 하나의 전면적인 상호의존 체계를 형성한다. 그 결과 각자의 생계(Subsistenz)와 복지(welfare), 그리고 법적 현존[rechtliche Existenz]은 모든 사람의 생계와 복지, 권리와 얽혀 있으며, 그것들에 근거를 두고 그것들을 통해서만 현실성과 안전성을 획득한다. 이 체계는 처음에는 외적인 국가, 곧 필요의 국가(state of necessity) 또는 오성(Verstand)의 국가라고도 부를 수 있다.
> 여기서 헤겔은 가족과 시민사회를 아주 선명하게 구분한다. 가족에서는 원리가 통일(Unity) 였다.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서로를 위해 행동한다. 반면 시민사회에서는 원리가 차이(Differenz) 다.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를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목적을 추구한다. 그래서 헤겔은 시민사회를 “특수한 개인의 세계”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사회가 단순한 이기주의의 세계는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헤겔은 놀라운 통찰을 제시한다. 개인은 자기 이익만 추구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제빵사는 빵을 굽는 이유가 이웃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러나 돈을 벌려면 다른 사람에게 빵을 팔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그는 다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소비자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빵을 사지만, 동시에 제빵사의 생계를 유지시켜 준다. 따라서 시민사회에서는 사적 이익이 보편적 상호의존을 낳는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욕구의 체계(System der Bedürfnisse) 의 핵심이다. 이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헤겔을 아담 스미스와 비교한다. 둘 다 개인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 전체의 질서가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도 있다. 스미스에게 이러한 질서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해 설명되는 반면, 헤겔은 그것을 단순한 시장 메커니즘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시민사회를 “필요의 국가(state of necessity)” 라고 부르면서, 여기서는 아직 사람들이 욕구와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단계일 뿐이라고 본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자유의 완성형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 단계인 국가(Staat) 가 등장해야 비로소 이러한 특수성과 보편성이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시민사회는 헤겔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드러내는, 자유의 중간 단계인 셈이다.
§184
시민사회는 윤리적 삶의 체계가 그 객관적 현실성을 상실한 채 외적 현상으로만 남아 있는 체계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는 윤리적 삶이 본질로서 현존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추상적 전체성이며 내적 필연성으로서만 존재한다.
Addition (H)
여기에서 개인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그는 자기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다른 모든 사람을 자신의 특수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금 납부와 같은 것을 자기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수한 목적은 보편적인 것 없이는 충족될 수 없으며, 국가 역시 개인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는 만큼 개인들을 위해 존재한다. 보편적인 것은 특수한 것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수한 것은 오직 보편적인 것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실현한다. 나는 타인을 위해 생산하고, 타인을 통해 소비한다.

§185
욕구들의 체계(System der Bedürfnisse)는 바로 이러한 상호의존성과 복잡성을 통해 발전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러한 원리를 배제하고, 윤리적 삶을 가장 아름답고 참된 형태로 제시하려 하였다. 그는 사유재산과 가족을 제거함으로써 이를 실현하려 했다. 그러나 개인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 직업을 선택하는 것 등은 단순한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자유의 원리이다. 이것은 개인의 무한한 자기반성, 즉 개별적 내면성(Einzelheit)의 원리이며, 기독교와 더불어 세계사 속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Addition (H)
인간의 욕망은 동물의 욕구처럼 닫힌 체계를 이루지 않는다. 따라서 욕구의 발전은 문명(Bildung)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진다. 플라톤은 이러한 특수성을 배제하려고 했지만, 그는 윤리적 삶이 오직 자연적 직관에만 기초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와 함께 자유로운 주관성의 원리가 등장하였으며, 이제는 특수성을 보편성과 화해시키는 것이 과제가 된다.

> 여기서 헤겔은 시민사회의 양면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앞에서는 시민사회를 “욕구의 체계”라고 정의했지만, 이제는 그 체계가 낳는 모순을 드러낸다. 개인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지만, 그 욕구는 끝없이 증식한다. 인간의 욕망은 동물의 본능처럼 자연적 한계 안에 머물지 않는다. 교육(Bildung), 분업, 시장의 발달은 새로운 욕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풍요를 창출하는 동시에 사치와 빈곤, 발전과 부패를 함께 낳는다. 특히 중요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타인을 위해 생산하고, 타인을 통해 소비한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상호의존성(Interdependenz) 의 핵심이다. 누구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고, 자신의 사적 목적은 오직 타인의 노동과 교환을 통해서만 달성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플라톤과의 비교다. 헤겔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사유재산과 가족을 제거하려 했던 이유를 이해하지만, 그것이 자유로운 주관성의 원리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반대로 근대 세계는 개인의 직업 선택, 재산 소유, 사회적 이동을 자유의 본질적 계기로 인정한다. 문제는 이러한 특수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과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이다. 이것이 바로 다음 절들에서 다루어질 경찰(Polizei), 조합(Korporation), 그리고 궁극적으로 국가(Staat)의 역할로 이어진다. 시민사회는 자유를 해방시키지만, 그 자유만으로는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높은 보편적 질서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186
그러나 특수성의 원리는 바로 자기 자신을 독자적인 전체성으로 발전시키는 과정 속에서 보편성으로 넘어간다. 오직 보편성 안에서만 특수성은 자신의 진리와 긍정적 현실성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통일은 윤리적 동일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분열의 단계에서는(§184 참조) 두 원리가 각각 자립적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은 자유가 아니라 필연성으로 나타난다. 즉 특수한 것은 보편성의 형식으로 올라가야 하며, 오직 그 형식 안에서 자신의 존립을 추구하고 발견해야 한다.
> “특수성은 자기 자신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보편성으로 넘어간다.” 이게 헤겔이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방식이야. 예를 들어 어떤 상인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해 보자. 겉으로 보면 그는 철저히 특수한 목적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상품을 생산하고 교환하고 고용을 창출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보편적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헤겔은 시민사회는 자유의 세계가 아니라 필연성의 세계이다. 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플라톤과의 비교야. 헤겔은 플라톤이 사유재산과 가족을 제거하여 공동체의 통일을 지키려 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근대적 자유의 원리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플라톤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높이 평가한다. 플라톤은 공동체의 진리를 보았지만, 근대적 주관성의 등장을 아직 역사적으로 경험할 수 없었다. 반면 기독교 이후의 세계는 개인의 자유를 더 이상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근대 국가는 플라톤처럼 특수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보편성과 화해시키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이후 헤겔이 국가(State)를 통해 해결하려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
§187
자연 상태의 무죄성(innocence of the state of nature)이나 미개한(ungebildet) 민족들의 윤리적 소박함에 관한 표상들은, 교양(Bildung)을 외적인 것, 그리고 타락(corruption)과 결부된 것으로 간주한다. 반대로, 개인적 삶(partikuläres Leben)의 향락과 안락 등이 절대적인 목적이라고 믿는다면, 교양은 그러한 목적들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만 여겨질 것이다. 교양의 목적은 앞서 말한 자연적 윤리적 소박함도 아니고, 특수성이 발전하면서 획득하게 되는 향락 자체도 아니다. 오히려 교양은 수동적인 자기 몰입으로서의 자연적 소박함이든, 미개 상태(barbarism)의 야만성이든, 그러한 자연적 직접성을 제거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다. 다시 말해, 정신이 직접성과 개별성(Einzelheit) 안에서 지니고 있는 자연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외면성은 정신에 상응하는 형식을 획득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보편성의 형식(form of universality) 이다. 보편성의 형식을 획득하기 위해 위로 고양되고 교양을 받은[heraufgebildet] 특수성은, 동시에 개별성이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참된 존재가 되도록 보장한다.
Addition (H)
교양을 받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로 이해하며, 자신의 특수성을 과시하지 않는 사람이다. 반면 교양없는 사람은 자신의 특수성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은 대상의 보편적 측면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교양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Empfindung)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목적만을 쉽게 추구한다. 그는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는 없을지라도, 그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의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교양은 우리의 특수성을 다듬어 그것이 사물(Sache)의 본성에 합치하도록 만든다. 보편적인 것은 참된 본성으로부터 산출되므로 교양을 필요로 하지만, 거짓되고 독창적인 것처럼 보이는 무미건조한 형식들은 오직 교양없는 사람에게만 나타난다.

> 이 페이지는 헤겔 철학 전체에서 Bildung(교양·도야) 의 정의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야. 오늘날 우리는 ‘교양’을 흔히 지식이나 독서량으로 이해하지만, 헤겔은 전혀 다르게 본다. 그에게 교양은 자신의 특수성을 보편성의 형식으로 변형하는 과정이야. 가장 유명한 문장은 이것이다. “교양은 해방(liberation)이며, 더 높은 해방을 향한 노동이다.” 왜 노동(work)일까? 왜냐하면 인간은 처음에는 자기 욕망과 감정만 따라가는 자연적 존재이기 때문이야. 교양은 그 자연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편적으로 소통 가능한 형식으로 변형하는 긴 훈련이다. 그래서 헤겔은 교양 있는 사람을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특수성을 드러내기보다,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보편적 형식을 체득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 부분은 독일의 Bildung 전통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텍스트이기도 해. 괴테와 훔볼트, 그리고 현대 독일 대학의 ‘교양(Bildung)’ 개념도 바로 이 헤겔적 이해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188
시민사회는 다음의 세 계기를 포함한다.
A. 노동(work)과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통한 욕구의 매개, 그리고 개인[des Einzelnen]의 욕구 충족. 곧 욕구의 체계(System of Needs).
B.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자유의 보편적인 것을 현실화하는 것. 곧 사법 행정(administration of justice) 을 통한 재산의 보호.
C. 위의 체계들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우연성에 대한 대비와, 개별적 이해관계를 공동의 이해관계로 돌보는 것. 곧 경찰(police) 과 동업조합(corporation) 을 통한 보호.

A. 욕구의 체계
§189
특수성은, 의지 일반의 보편성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최초의 규정(§60 참조)에 있어서는 주관적 욕구(subjective need) 이다. 이 욕구는, (α) 사물[Dinge]을 통해 자신의 만족을 획득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물은 또한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의지의 산물이자 소유물이기도 하다. 또한 (β) 활동과 노동은 이 두 측면 사이를 매개한다. 주관적 욕구의 목적은 주관적 특수성의 만족이다. 그러나 이 만족은 자유로운 자의성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욕구를 매개로 해서만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보편성은 스스로를 주장한다. 이러한 욕구의 영역은 오성(Verstand)의 영역이다. 이것이 이 영역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측면이며, 동시에 이 영역 안의 화해적 계기(conciliatory element)를 구성한다. 정치경제학은 근대에 비로소 등장한 학문 가운데 하나이다. (세이(Say), 리카도(Ricardo)를 참조.) 욕구의 영역에서, 사물(Sache) 안에 존재하며 사물과 함께 활동하는 이러한 합리성(rationality)의 현상(Schein)을 인식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화해적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오성(Verstand)이 자기의 주관적 목적들과 도덕적 의견들에 따라 불만과 도덕적 분노를 표출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Addition (H,G)
음식, 음료, 의복 등과 같은 보편적인 욕구들이 있다. 이러한 욕구들은 전적으로 우연적인 상황들 속에서 충족된다. 토양은 지역에 따라 비옥하기도 하고 척박하기도 하며, 어떤 해는 풍년이고 어떤 해는 흉년이다. 어떤 사람은 근면하고 다른 사람은 게으르다. 그러나 이러한 증식과 자의성은 그 자체 안에서 보편적인 규정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겉으로는 흩어져 있고 아무 질서도 없는 활동은, 사물(Gegenstand)과 정치경제학이 발견하는 법칙에 종속된다. 바로 이 점에서 정치경제학은, 수많은 우연적 현상들 밑에 놓여 있는 법칙들을 발견하는 학문으로서 큰 공로를 가진다.
이러한 법칙들은 처음에는 놀랍게 보인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개별자[Einzelnen]의 자의성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행성계처럼 보인다.

> 여기서 그는 처음으로 시장경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헤겔에게 시민사회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해서 연결된 공동체가 아니고, 오히려 욕구 때문에 서로 연결된 공동체 예를 들어 나는: 빵을 먹고 싶고. 옷을 사고 싶고, 집을 짓고 싶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의 노동 없이는 불가능. 그래서 욕구 → 노동 → 교환 → 시장 이라는 하나의 체계(system)가 생긴다.
그는 정치경제학의 가장 큰 업적을 이렇게 본다. 겉으로는 우연처럼 보이는 시장에도 합리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 즉 시장은 혼란이 아니라 질서를 가진 체계, 우연 속에서 합리성이 작동한다. 이것이 정치경제학이 발견한 진리라는 거야. 그런데 왜 “오성(Verstand)의 세계”일까? 헤겔은 시민사회를 오성(Verstand)의 영역 이라고 부른다. 이유는 여기서 사람들은 전체를 보지 않고, 자기 이익을 계산하며, 목적과 수단을 따지기 때문이야. 즉 시민사회는 아직 이성(Vernunft) 의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오성의 계산과 교환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보편적 질서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헤겔은 시민사회를 합리성의 현상(Schein der Rationalität) 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 “현상(Schein)“이라는 표현도 중요해. 여기서의 합리성은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완전히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단계는 아니며, 그 완성은 국가(Staat)에서 이루어진다고 헤겔은 본다.
* 칸트 : 감각-> 오성 (category, 범주 구분) ->이성 (the unconditioned, 예 categorical imperative <-> hypothetical imperative)
헤겔 : 오성(구분, 특수성) -> 이성(변증법적 종합, 특수성의 Aufhebung(지양)을 통한 보편성으로의 전환.)
a. 욕구의 본성과 그 충족
§190
동물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과 수단은 그 범위가 제한되어 있으며, 그 욕구들 또한 마찬가지로 제한되어 있다. 인간 역시 이러한 의존성을 동물과 공유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 자신의 보편성을 드러낸다. 그는 첫째, 자신의 욕구와 그것을 충족시키는 수단을 증식시킴으로써 그렇게 하고, 둘째, 하나의 구체적인 욕구를 여러 부분과 측면으로 분할하고 구별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 결과 그것들은 서로 다른 욕구들이 되며, 점점 더 특수화되고, 따라서 더욱 추상적인 것이 된다. 권리의 영역에서는 대상[Gegenstand]이 인격(person)이었고, 도덕의 단계에서는 그것이 주체(subject)였으며, 가족에서는 가족 구성원(family-member)이었고, 시민사회 일반에서는 시민(여기서는 부르주아의 의미에서의 시민)이다. 여기 욕구의 단계에서는(§123 주석 참조) 우리가 인간(human being) 이라고 부르는 표상의 구체적 총체가 비로소 등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이야말로 이 책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우리가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Addition (H) 음식과 의복에 대한 욕구, 날것의 음식을 포기하고 그것을 먹기 적합하게 가공하는 필요, 그리고 자연적 직접성을 파괴하는 행위는 인간의 삶이 동물의 삶보다 더 안락한 것이 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성(Verstand)은 이러한 구별들을 파악하고, 욕구들을 계속해서 증식시킨다. 그리고 취향과 유용성이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욕구들 자체도 그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욕구는 더 이상 단순한 욕구가 아니라 충족되어야 할 의견(opinion)이 된다. 이러한 점은 교양(Bildung)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교양은 구체적인 것을 점점 더 특수한 것으로 분해한다. 욕구가 증식하면 욕망은 오히려 제약을 받는다. 왜냐하면 사람이 많은 것을 욕망할수록, 어느 하나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압박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필연성의 힘이 약해진다는 징표이다.
[->선택장애, 취향의 공동체. 취향과 유용성의 전제추의적 분위기에 알딱깔센 눈치있게 잘 따라가는 것이 도태되지 않는 교양!]
§191
이러한 증식은 끝없는 과정이며, 동시에 이러한 규정들의 분화이기도 하고, 목적에 비추어 수단이 적합한가를 끊임없이 판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것은 세련화(refinement) 의 과정이다.
Addition (H)
영국인들이 “comfortable”라고 부르는 것은 끝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편안함은 곧 그것의 덜 편안한 측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발명은 끝없이 계속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욕구는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사람들보다, 그러한 욕구의 출현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이 만들어진다.
[-> 가성비, 가심비의 끝없는 추구]
§192
욕구와 수단은 현실적 현존(real Dasein) 속에서, 그것들의 충족을 위한 노동을 통해 타인을 위한 존재(Sein für andere) 가 된다. 이러한 추상성은 욕구와 수단 모두의 하나의 성질이 되며(§191 참조), 동시에 개인들 사이의 상호 관계(Beziehung)를 규정하는 원리가 된다. 이러한 보편성, 곧 타인에게 인정받는다는 성질은, 고립되고 추상적인 욕구와 수단과 충족 방식을 구체적인 것, 다시 말해 사회적인 것으로 만든다.
Addition (H)
이 지점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보편성의 형식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을 얻으며, 따라서 그들의 의견도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단을 생산해야 한다. 이처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손 안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특수한 것은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된다. 옷차림의 방식이나 식사 시간과 같은 것에도 일정한 관습이 생겨나며, 이러한 문제들에서는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는 편이 낫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 플렛폼 주체의 탄생으로 인해 이런 경향성의 가속화, 과거 규범의 폐기와 새로운 규범의 탄생과 적용 및 처벌이 훨씬 빠르고 온오프 네트워크의 거대한 연결 속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진다.]

> 이 부분은 헤겔은 인간의 욕망을 단순히 동물적 본능이 확대된 것으로 보지 않아. 오히려 욕망이 분화되고 추상화되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동물은 “배가 고프다”는 하나의 욕구만 갖지만, 인간에게는 그것이
-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
- 어떻게 조리할 것인가,
- 어디에서 먹을 것인가,
- 누구와 먹을 것인가,
- 어떤 분위기에서 먹을 것인가,
와 같이 끝없이 세분화된다. 그래서 헤겔은 욕구의 증식이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정신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본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192의 “타인을 위한 존재(Sein für andere)“라는 표현이야. 욕구는 더 이상 개인 안에 머물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타인이 필요하고, 타인이 원하는 것을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시장은 단순한 교환의 장소가 아니라, 개인의 욕구가 사회적 관계로 전환되는 공간 이 된다.마지막 Addition은 일상적인 사례를 통해 이 점을 보여 준다. 우리가 식사 시간이나 옷차림을 일정한 사회적 관습에 맞추는 것은 단순한 획일화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특수성을 보편적 형식으로 조정하는 과정이다. 이 점에서 헤겔의 Bildung(교양) 개념과 지금의 욕구의 체계는 긴밀하게 연결된다. 교양이란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특수한 욕구와 행동을 타인과 공유 가능한 보편적 형식 속으로 길들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193
이러한 계기는 이제 수단 그 자체와 그것의 소유, 그리고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에 대해서도 하나의 특수한 목적 규정(end-determination)이 된다. 또한 그것은 이와 관련하여 타인과의 평등(equality) 을 요구하는 계기를 즉각 포함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평등에 대한 요구와, 사람들이 서로를 닮아 가는 과정인 모방(imitation) 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수성(particularity)이 어떤 구별되는 성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존재한다. 이 두 계기는 그 자체가 욕구의 증식과 확대의 현실적인 원천이 된다.
§194
인간은 욕구와 관련해서 이른바 자연 상태(state of nature) 속에서 자유롭게 살았으며, 거기에서는 단순한 자연적 욕구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이 우연히 제공하는 수단만을 사용했다는 통념(Vorstellung)은, 비록 노동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해방의 계기를 당장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적 욕구가 있는 그대로 즉각 충족되는 상태란, 단지 정신이 자연 속에 매몰된 상태일 뿐이며, 따라서 야만(savagery)과 비자유(unfreedom)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오직 정신이 자기 자신 안으로 반성하고,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며, 자연을 다시 반성의 대상으로 삼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195
이러한 해방은 형식적(formal) 이다. 왜냐하면 목적의 특수성이 여전히 기본 내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상태는 욕구와 수단, 그리고 향락의 무한한 증식과 세분화를 향해 나아간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치(luxury) 를 향한 경향이다. 이러한 경향은 자연적 욕구와 교양된 욕구 사이의 구별처럼 한계를 갖지 않는다. 동시에 그것은 의존성과 결핍(want)의 무한한 증가도 가져온다. 이러한 욕구는 무한한 저항을 제공하는 물질과 마주한다. 즉 외적 수단들은 다른 사람들의 자유 의지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완강하게 저항한다.
Addition (H)
디오게네스(Diogenes)는, 그의 냉소주의(Cynicism)의 전 인격적 모습에 있어서 사실 아테네 사회생활의 산물이었다. 그를 규정한 것은 그의 전 생애가 반응했던 바로 그 사회적 의견이었다. 따라서 그의 삶의 방식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회적 조건들의 결과였으며, 그 자체도 사치(luxury)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에서 사치가 극에 달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결핍과 빈곤도 똑같이 극에 달한다. 그리고 냉소주의는 이러한 세련됨(refinement)의 정반대 극단으로부터 생겨난다.
> 헤겔은 소비가 증가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모방(imitation) 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갖고 싶어 한다.
둘째는 차별화(distinction) 이다.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과 달라지고 싶어 한다. 즉, 남들과 같아지고 싶은 욕구와, 남들과 달라지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소비를 증가시킨다. (부르디외의 『차별짓기(Distinction)』) §194에서는 루소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루소는 대체로 자연 상태 = 자유 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헤겔은 정반대로 말한다. 자연 상태는 자유가 아니라 야만(savagery) 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적 욕구를 그대로 따를 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변형하고, 노동하고, 욕구를 반성하는 존재일 때 비로소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겔에게 노동 자체가 해방(liberation)이야. 이 점은 뒤의 마르크스에게도 아주 큰 영향을 준다. 헤겔은 문명이 발전하면
- 욕구도 증가하고,
- 사치도 증가하고,
- 동시에 빈곤도 증가한다고 말한다.
즉 문명은 풍요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핍도 함께 만든다. 이건 거의 현대 자본주의 비판처럼 읽혀. 그래서 헤겔은 시민사회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가진다고 보기 시작하는 거야. 이 모순이 바로 뒤에서 나오는
- 빈곤(Poverty)
- 우민(Pöbel)
- 경찰(Polizei)
- 조합(Korporation)
논의로 이어진다. 마지막의 디오게네스 이야기도 재미있어. 보통 우리는 디오게네스를 문명과 무관한 자연인처럼 생각하지만, 헤겔은 정반대로 말한다. 디오게네스는 사치 사회가 만들어 낸 반작용이다. 즉 극단적인 소비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 반대편에서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는 냉소주의도 등장했다는 거야. 그래서 헤겔에게 냉소주의는 자연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문명 그 자체의 산물이다.
b. 노동의 본성 (The Nature of Work)
§196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하고 특수화된 수단을 획득하고 준비하는 매개 과정이 바로 노동(work) 이다. 노동은 매우 다양한 과정을 통해 자연이 직접 제공하는 재료에 특수한 여러 목적들을 부여한다. 이러한 형성의 과정은 수단들에 그 가치와 적합성을 부여한다. 그 결과 인간은 소비자로서 무엇보다 자연의 산물보다 인간의 생산물(human products)에 관심을 갖게 되며, 실제로는 인간의 노력(human effort) 자체를 소비한다.
Addition (H)
가공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직접적인 재료들도 있다. 예를 들어 공기는 단지 들이마시면 되고, 물도 있는 그대로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을 얻는 것은 자기 자신의 땀과 노동을 통해서이다.
§197
욕구를 통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규정들과 대상들[Gegenstände]의 다양성은 표상(Vorstellung)의 증식을 통해 더욱 발전한다.
이것은 지식(Kenntnis)의 형식뿐 아니라, 표상들의 형식도 포함한다. 그 결과 사람은 복잡하고 일반적인 관계(Beziehungen)를 빠르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곧 오성(Verstand)의 교육(Bildung)이며, 따라서 언어도 여기에 포함된다. 실천적 교육(practical education)은 자기 반복을 통해 습관을 획득하는 데 있으며, 또한 점점 더 많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데 능숙해지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이 다루는 재료의 본성과 특히 타인의 자의성을 배우게 되며, 객관적 활동과 보편적으로 유효한 기술들의 훈련을 통해 습관을 획득한다.
Addition (H)
야만인은 교양받은 사람과 다르다. 그는 지루하고 고독한 공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실천적 교육은 실제 행동 속에서 이루어진다. 무숙련 노동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통제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노동자는 자신이 만들어야 할 것을 실제로 만들어 낸다면 숙련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주관적 행위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 어떠한 저항도 경험하지 않는다.
§198
그러나 노동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측면은 다음과 같은 데 있다. 곧 욕구와 생산 수단에 특정한 성격을 부여하는 추상(abstraction) 의 과정이며, 이것이 분업(divison of labour) 을 낳는다. 이러한 분업을 통해 개별자[des Einzelnen]의 노동은 더욱 단순해진다. 따라서 그의 숙련은 더욱 커지며, 동시에 그의 생산량도 증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숙련의 추상화는 노동을 점점 더 기계적인 것으로 만들며, 결국 인간은 물러서고 기계가 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게 된다.

>우선 §196에서 그는 노동을 단순히 돈을 버는 활동으로 보지 않는다.
노동은 자연을 인간 목적에 맞게 변형하는 매개 과정이다. 즉 노동은 자연을 그대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인간의 목적을 새겨 넣는 활동이다. 이 점은 나중에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인간은 인간의 노동을 소비한다" 가장 유명한 문장은 이것이다. 인간은 자연보다 인간의 생산물을 소비한다. 빵을 먹는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먹는 것은 밀 자체가 아니라
- 농부의 노동,
- 제분사의 노동,
- 제빵사의 노동,
이 응축된 결과다. 즉 우리는 사실상 타인의 노동을 소비하고 있다. 이 통찰은 이후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성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197의 여기서 Bildung은 학교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헤겔은 노동 자체가 인간을 교육한다 고 말한다. 왜냐하면 노동은
- 습관을 만들고,
- 반복을 만들고,
- 기술을 만들고,
- 타인과 협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Bildung은 노동을 통한 자기 형성이다. §198의 분업 이 부분은 사실상 아담 스미스를 철학적으로 다시 설명하는 대목이다. 분업은
- 숙련 증가
- 생산성 증가
를 가져온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을 추상화한다. 즉 노동자는 전체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아주 작은 기능만 수행하는 사람이 된다. 헤겔은 이것을 이미 문제로 보고 있어.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 가장 놀라운 문장은 마지막이다. "결국 인간은 물러나고 기계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이 문장은 1821년에 쓰인 거야.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시점인데, 헤겔은 이미
- 자동화
- 기계화
- 노동의 단순화
를 철학적으로 예견하고 있어. 후대에 마르크스가 기계와 노동소외를 분석할 때 바로 이 부분을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삼게 된다.
c. 자원(Resources)과 신분(Estates)
§199
노동과 욕구 충족의 이러한 상호의존성과 상호성 속에서, 주관적 이기심(selfishness)은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기여하도록 전환된다. 다시 말해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특수한 것은 보편적인 것에 의해 매개된다. 그 결과 개인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생산하고, 획득하며, 향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생산하고 획득하며 향유한다. 그는 보편적 상호의존성 속에 내재하는 필연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이러한 방식으로 각 개인은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자원(universal and permanent resources)에 참여하는 형식 속에서 자기 자신의 생계를 확보한다(§170 참조). 또한 그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보편적 자원이 유지되고 증대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의 생계 역시 보장받는다.
§200
보편적 자원에 참여할 가능성, 다시 말해 특수한 자원(particular resources)을 소유할 가능성은,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토대 자산(예컨대 자본)에 달려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숙련(skill)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숙련은 다시 자연적 소질, 교육, 우연한 환경 등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 이러한 우연성은 개인들 사이에 자원과 기술의 차이를 낳는다. 따라서 특수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차이를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의 우연성과 자의성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우연성과도 결합하여, 필연적으로 개인들의 자원과 숙련의 불평등을 만들어 낸다. 이념 안에 포함되어 있는 정신의 객관적 권리, 곧 특수성의 권리는 시민사회 안에 존재하는 인간들 사이의 불평등을 폐지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평등은 자연으로부터 정립된 것이며, 자연은 이 불평등을 통해 정신의 특수성을 사실로서 드러낸다. 숙련의 불평등, 자원의 불평등, 더 나아가 지적·도덕적 교육의 불평등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에 반해 오성이 주장하는 평등에 대한 요구는 추상적 오성의 특징이다. 이 오성은 특수성을 보편성으로부터 추상하여, 그 추상된 특수성을 참된 보편성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특수성은 보편성과의 동일성 속에서만 자신의 권리를 가진다. 그럼에도 그것은 자연적 특수성과 자의적 특수성을 여전히 포함하며, 따라서 자연 상태의 잔재를 남겨 둔다. 그러나 이 체계 안에 내재한 이성이, 그리고 그 운동이 이 체계를 서로 다른 요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유기적 전체(organic whole)로 조직한다(§201 참조).

> §199는 흔히"사적 이익의 변증법" 이라고 불리는 부분이다. 헤겔은 아주 분명하게 말해.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의사는 돈을 벌기 위해 진료하지만 동시에 환자를 치료한다. 농부는 자기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에 식량을 공급한다. 교수는 월급을 받기 위해 강의하지만 학생을 교육한다. 따라서 자기 이익의 추구가 사회적 기여로 전환된다. 이게 바로 §199의 핵심 논리야. 여기서 헤겔은 분명히 아담 스미스와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스미스는 이것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설명했다. 반면 헤겔은 이것을 변증법(dialectical movement)으로 설명한다. 즉 특수성 → 보편성으로의 운동이라는 거지. §200은 현대적으로 보면 더 흥미롭다. 헤겔은 여기서 불평등은 필연적이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는 자원이 달라지는 이유를 여러 층위에서 설명한다.
- 자본의 차이
- 숙련의 차이
- 교육의 차이
- 자연적 재능의 차이
- 우연한 환경
이 모든 것이 겹쳐지면서 불평등이 생긴다는 거야. 즉 헤겔은 불평등을 단순히 게으름 때문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연성과 사회적 조건이 함께 작용한다고 본다. 그런데 왜 평등을 비판할까? 헤겔은 "평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비판하는 것은 추상적 평등이다. 즉 모든 사람이 동일해야 한다는 요구는 현실을 추상화한 결과라고 보는 거야. 왜냐하면 시민사회는 원래
- 다른 재능,
- 다른 직업,
- 다른 교육,
- 다른 자원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불평등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불평등을 하나의 유기적 질서 안에 통합하는 것이 국가의 과제라고 본다. 마르크스와 비교하면 여기가 마르크스가 헤겔과 갈라지는 첫 번째 지점이야. 헤겔은 불평등은 시민사회의 필연적 결과이며 국가는 그것을 조정하면 된다고 본다. 반면 마르크스는 바로 이 구조 자체가 계급을 낳고, 결국 시민사회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생산한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자본론』을 읽어 보면, 바로 이 욕구–노동–분업–자본–불평등의 연결은 헤겔의 문제 설정을 이어받으면서도 결론은 완전히 뒤집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걸 볼 수 있어.
§201
상호 생산과 교환의 무한히 다양한 욕구들과, 그것들의 무한히 얽혀 있는 운동은 보편적 내용 속으로 결집되며,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이 전체는 특수한 욕구들과 그것에 상응하는 수단들, 노동의 다양한 방식과 욕구 충족 방식들, 그리고 이론적·실천적 교육(Bildung)의 여러 체계들로 발전한다. 이 체계들 안에서 개인들은 각각 따로 교육된다.
Addition (H)
보편적 자원(universal resources)이 공유되는 방식은 각 개인의 특수한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시민사회 안에서는 보편성보다 특수성이 우선하는 원리이다. 가족이 일차적 기초라면, 신분(estate, Stand) 은 두 번째 기초이다. 신분은 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사적인 인간은 자기중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보편적인 것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중심성이 보편성과 연결되는 뿌리는 바로 신분이며, 국가는 이 연결이 견고하고 확실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202
신분은 개념에 따라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첫째, 실체적 또는 직접적 신분(the substantial or immediate estate).
둘째, 반성적 또는 형식적 신분(the reflecting or formal estate).
셋째, 보편적 신분(the universal estate).
> 1. 왜 갑자기 "신분(Stand)"이 등장하는가?
- 귀족
- 평민
을 떠올리기 때문이야. 하지만 헤겔의 Stand 는 그런 뜻이 아니야. 여기서 Stand는 사회 안에서 수행하는 객관적 삶의 방식 혹은 직업적·경제적 생활양식에 가까운 개념이야. 그래서 뒤에서
- 농업 계층
- 상공업 계층
- 공무원 계층 이 세 가지가 등장한다.
2. 왜 신분이 중요한가? 헤겔은 시민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개인은 모두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는 데서 찾았어. 그러면 질문이 생긴다. 어떻게 개인을 보편성과 연결할 것인가? 그 답이 바로 Stand(신분)이야.
즉 사람은
- 농부로 살고,
- 상인으로 살고,
- 공무원으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보편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거야.
3. 왜 "가족 → 신분"인가?
가족이 첫 번째 토대이고, 신분은 두 번째 토대이다. 가족은 사람을 사랑으로 묶는다. 반면 신분은 사람을 노동과 사회적 역할로 묶는다. 그래서 시민사회 안에서는 가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는 거야.
4. 현대 사회학과 연결
이 Stand 개념은 사실
- 베버의 Beruf(직업)
- 뒤르켐의 분업
- 파슨스의 역할(role)
과 매우 가까워. 즉 사람은 "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통해 사회와 연결된다는 생각이야.
5. 다음 절의 구조 바로 다음 §203부터 헤겔은 세 가지 신분을 하나씩 설명한다.
- 실체적 신분
→ 농업 - 반성적 신분
→ 산업·상업·수공업 - 보편적 신분
→ 공무원
이 세 신분은 단순한 직업 분류가 아니라, 자유가 사회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형태를 취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해해야 해.
§203
(a) 실체적 신분 (The Substantial Estate)
실체적 신분은 토지의 자연적 생산물 속에서 자신의 자원을 가진다. 이 토지는 경작하는 사람에게만 배타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그 점에서 단순한 이용만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영속적인 재산을 형성한다. 이 신분은 자연의 리듬과 고정된 계절에 따라 살아가며, 미래의 자연적 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신뢰와 의존을 특징으로 한다. 그 목적은 직접적인 욕구의 충족을 위해 자연이 제공하는 것을 획득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의존하는 조건들의 성격 때문에, 이 신분은 실체(Substanz) 의 성격을 유지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반성과 개인의 의지가 상대적으로 작은 역할만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신분의 일반적인 성향은 가족관계와 신뢰 위에 기초한 직접적인 윤리적 삶이다. 농업의 도입은 오래전부터 국가의 기원과 올바르게 결부되어 이해되어 왔다. 농업의 원리는, 단순한 자연적 생계에 머물던 인간을 토지에 정착시키고(§170 주석 참조), 유목 생활을 끝내며,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법적 질서와 안정된 욕구 충족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성적 사랑도 제한되며, 결혼 관계는 본래적으로 지속적인 통일을 향하게 된다. 그 결과 욕구들은 하나의 가족으로 통합되고, 재산은 가족 재산이 되며, 지속적이고 안정된 욕구 충족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규정들은 본래 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편성에 의해 매개된다. 그리하여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은 이러한 대상들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고대인들이 농업과 그것에 수반되는 제도들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보여 준 통찰과 학식이다. (특히 크로이처(Creuzer)의 『신화와 상징(Mythologie und Symbolik)』 제4권을 참조.) 고대인들의 의식 속에서는 농업과 그것에 관련된 제도들이 신적인 행위로 간주되었으며,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다.
Addition (H)
이 신분에서는 자연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며 인간의 노동은 그 자연에 종속된다. 그러나 두 번째 신분에서는 오히려 오성이 본질적인 것이 되며, 자연의 산물은 단지 원재료(raw materials)로 간주된다.
§204
(b) 산업과 상업의 신분 (The Estate of Trade and Industry)
이 신분은 자연적 생산물을 가공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임무를 가진다. 그 토대는 노동이며, 반성(reflection)과 오성(understanding)에 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노동에 대한 매개에 있다. 이 신분이 생산하는 것은 자신의 활동 덕분이며, 따라서 그것은 자연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 많이 의존한다. 이 신분은 다시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개별자의 개별적 욕구에 직접 대응하는 수공업의 신분(the estate of craftsmanship) 이다. 둘째는 보다 추상적이며 대량생산을 담당하는 제조업의 신분(the estate of manufacturing) 이다. 셋째는 상품들을 서로 교환하는 사업이며, 무엇보다도 화폐를 보편적 교환수단으로 사용하는 상업의 신분(the estate of commerce) 이다. 여기에서 모든 상품의 추상적 가치가 현실화된다.
Addition (H)
산업과 상업의 신분에서는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의존하며, 자기 의존의 감정은 권리의 유지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자유와 질서에 대한 감각도 무엇보다 자기 자신 안에서 생겨난다. 반면 첫 번째 신분인 농업 신분은 자연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유에 대한 감각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 신분은 타인의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생각과 쉽게 결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신분은 복종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두 번째 신분은 독립성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 오늘날은 누구나 자기계발, 경영자 주체로서의 엔터프리너쉽을 받아들이면서, 개인주의, 자유주의적 성향을 띠게 됐다.]
§205
(c) 보편적 신분 (The Universal Estate)
보편적 신분은 사회 전체의 보편적 이해관계를 자신의 과제로 삼는다. 따라서 그 구성원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계를 얻지 않아도 된다. 그의 생계는 국가가 보수(remuneration)를 지급함으로써 보장한다. 그 결과 그의 사적 이해관계는 보편적인 것을 위해 일하는 가운데 충족된다.
> 여기서 헤겔은 시민사회를 세 개의 Stand(신분) 로 나누는데, 이것은 단순한 직업 분류가 아니야. 그는 세 신분이 자연–시장–국가라는 서로 다른 사회 원리를 대표한다고 본다. 첫 번째 실체적 신분은 농업이다. 농부는 자연과 계절의 리듬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반성이나 계산보다는 신뢰와 가족 중심의 윤리적 삶에 가까운 존재다. 그래서 헤겔은 이 신분을 "실체적"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산업과 상업의 신분은 근대 시민사회의 핵심이다. 여기서는 자연이 아니라 노동과 기술, 분업과 시장이 중심이 된다. 특히 상품의 추상적 가치가 화폐를 통해 실현된다는 설명은 『자본론』에서 전개될 가치형태론을 떠올리게 한다. 세 번째 보편적 신분은 공무원이다. 헤겔은 공무원을 단순한 행정 직원이 아니라 보편적 이해관계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이들이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는 이유는 시장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헤겔은 이 세 신분을 위계적으로 배열하지 않는다. 각각은 자유가 현실화되는 서로 다른 방식이며, 세 신분이 함께 있어야 시민사회가 하나의 유기적 전체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는 산업과 상업의 신분이 근대 세계를 대표한다고 보면서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빈곤과 계급 분열을 곧이어 중요한 문제로 다루기 시작한다.

§206
한편으로 개인이 어느 특정한 신분에 속하게 되는가는 그의 자연적 성향, 출생, 그리고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지만 궁극적이며 본질적인 규정은 주관적 의견(subjective opinion) 과 특수한 자의적 의지(particular arbitrary will) 이다. 왜냐하면 시민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가 그들의 권리, 공로, 명예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 내적 필연성(inner necessity)을 통해 일어나는 일은 동시에 자의적 의지(arbitrary will)에 의해 매개되며, 주관적 의식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의지의 산물인 것처럼 나타난다. 이 점에서, 다시 말해 특수성과 주관적 자의성의 원리와 관련하여, 동양과 서양의 정치생활, 그리고 고대 세계와 근대 세계 사이에는 차이가 나타난다. 전자의 경우에는 사회 전체의 신분 구분이 객관적으로, 그리고 스스로의 힘에 의해 형성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즉자적으로 합리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주관적 특수성의 원리는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국가』에서는(제3권, 츠바이브뤼켄 판 제2권 141쪽 이하) 개인을 특정 신분에 배치하는 일은 통치자들에게 맡겨져 있었고,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는 출생만으로 결정되었다. 이처럼 주관적 특수성은 전체의 조직으로부터 배제되고 그 안에서 화해되지 못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적대적 요소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질서를 부패시키는 힘이 된다(§185 주석 참조). 그 결과 특수성은 그리스 국가들과 로마 공화국처럼 사회질서를 전복시키거나, 또는 사회질서가 지배적인 권력으로 존속하는 경우에는 — 종교적 권위 아래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 내적인 부패와 완전한 퇴폐를 낳는다. 이것은 어느 정도 스파르타에서 나타났고, 인도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특수성이 객관적 질서에 의해 지지되고, 그 질서와 일치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권리를 획득하게 되면, 주관적 특수성은 시민사회와 정신적 활동, 공로와 명예의 발전을 이끄는 유일한 원리가 된다. 시민사회와 국가에서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받는 것은 동시에 '자의적 의지'의 매개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이야말로, 일반적으로 자유의 이념(universal idea of freedom) 이 의미하는 바를 보다 정확하게 규정한 것이다(§121 참조).

§207
개인은 오직 일반적인 현존[Dasein], 다시 말해 규정된 특수성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현실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을 욕구의 특수한 영역들 가운데 하나에만 전적으로 귀속시켜야 한다. 이 체계 안에서 윤리적 태도는 올바름(rectitude) 과 자신의 신분에 대한 명예(the honour of one's estate) 이다. 즉 개인은 자기 규정을 통해 시민사회의 한 계기의 구성원이 되고, 자신의 활동과 근면함과 숙련을 통해 그러한 자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유지한다. 그리고 오직 이러한 보편성과의 매개를 통해서만 그는 자기 자신을 부양하며, 자기 자신의 눈과 타인의 눈에서 인정(recognition)을 획득한다. 도덕(Morality)은 이 영역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가진다. 왜냐하면 이 영역에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과, 복지 및 특수한 욕구의 목적에 대한 반성이 지배적이며, 또한 이러한 목적들의 충족이 우연성과 개인의 도움이 개입하는 경우에도 그것을 하나의 의무로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특히 젊은 시절에는, 개인은 자신을 하나의 특정한 신분에 귀속시키는 것을 꺼린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보편적 규정에 가해지는 하나의 제한으로, 그리고 단순히 외적인 필연성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추상적 사고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추상적 사고는 보편성에서 멈추며 현실성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념과 현실의 구별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따라서 규정성과 특수성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7 참조). 오직 이러한 방식으로만 추상적 사유는 현실성과 윤리적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다.
Addition (H)
우리가 "사람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Somebody)"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가 어떤 특정한 신분에 속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다. 왜냐하면 "무엇인가가 된다"는 것은 실체적 존재를 갖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떤 신분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은 단지 사인(私人)에 불과하며, 실제적인 보편성을 소유하지 못한다. 반면 개인은 자신의 특수성 속에서 스스로를 보편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며, 어떤 신분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자신을 낮추는 일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어떤 것이 존재[Dasein]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반드시 스스로를 제한하고 자기 자신을 내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208
욕구의 체계의 원리는, 개인의 고유한[eigene] 지식과 의욕의 특수성의 원리로서, 그 자체 안에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성, 곧 자유의 보편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며, 권리(property)로서만 존재한다. 여기에서는 이 권리가 더 이상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법 행정(administration of justice) 을 통한 재산의 보호라는 형태로 현실적인 타당성을 획득한다.

>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헤겔의 자유 개념이야. 우리는 보통 자유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헤겔은 정반대로 말한다. 그는 자의성(arbitrary will)과 자유(freedom) 를 철저히 구별한다. 그래서 §206에서 아주 중요한 문장이 나온다. "합리적인 것은 자의적 의지의 매개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즉 자유란 자의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의성이 보편적 질서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신분(Stand) 이야. 헤겔은 "사람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Somebody)"라는 말을 철학적으로 해석한다. 그에게 "무엇인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직업을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하나의 객관적 역할을 획득하는 것 을 뜻한다. 그래서 그는 신분 없는 사람은 단지 사인(private person)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 이건 현대 사회학의 사회적 역할(role) 개념과 매우 가까운 생각이야. 마지막 §208은 다음 장인 사법 행정(Administration of Justice) 으로 넘어가는 연결고리다. 지금까지는
- 노동
- 욕구
- 시장
- 신분
을 설명했지만, 이제 헤겔은 질문을 던진다. "사유재산과 계약이 이렇게 복잡해졌는데, 누가 그것을 보호할 것인가?" 그 대답이 바로 다음 장의 법원과 사법 제도다. 즉 시민사회는 시장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권리를 객관적으로 보장하는 법 질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헤겔의 다음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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