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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허물기 9장 성차의 끝 170115 아루미 발제
그보다 페미니즘은 자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더 분명하게 만들고 갈등을 일으키는 해석들과 타협하기 시작하려고 노력하면서 비평적 관심을 바로 자신의 전제와 관련되도록 함으로써 전진해나가는 운동이다. 민주적 기획으로서의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무언가에 모두 다 동의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박탈당하거나, 아니면 그와 똑같이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논쟁 중에 있으며 그런 가치는 정치적 경합을 벌이는 영역에 남게 되리라는 생각을 수용해야 한다. 이는 마치 내가 페미니즘은 그 무엇으로도 확립될 수 없고 스스로에 대한 반성으로 가는 길에 방향을 잃을 것이며, 이런 자기반성의 순간을 넘어 세계에 대한 적극적 참여의 길로 나갈 수 없으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페미니즘은 이런 형태의 내부적 불화가 나타나는, 관련된 정치적 실천을 하는 과정에 있다.(278)
여성성 개념에 도전하는 것은 최고로 여성적인 행위이자, 여성성이 저항하고자 하는 대상이 있다는 증거로 읽히는 저항 행위다. 성차, 그것은 이미 패배한 틀로 생각되어야 할까? 성차에 맞선다고 말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이, 성차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것의 구조가 된다는 간접적인 증거다.(280)
이리가레는 성차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차가 제기하는 문제에 관해 생각할 방법을 제시한다. 어쩌면 성차가 있다는 문제, 그 해결 불가능성이 우리에게 특정한 역사적 궤적을 형성하는 문제에 관해 생각할 방법을 제시한다. 여기서 우리란 이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고, 이 질문을 앞에 놓고 있는 사람들이다. 찬반 논쟁들 자체가 이런 문제가 지속된다는 것을 알리는 여러 지표가 될 것이고, 이리가레의 주장에 따르면 그런 지속성의 위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속한 것이다. 이는 이리가레가 근대성에 대해 제기한 문제이고, 그녀한테는 근대성의 특징이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것은 시대와 관련된 특정한 문제의 시작을 선언하는 질문이고, 그 해답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질문이며, 해결 불가능의 시대를 열어 그런 해결 불가능성을 우리 시대의 특징으로 삼는 질문이기도 하다.(282)
성차는 주어진 것도, 전제된 것도, 페미니즘이 세워진 기반도 아니다. 성차는 우리가 이미 접하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성차는 페미니즘 연구에 즉각 등장하는 어떤 질문으로서 딱히 말해질 수 없는 어떤 것이고, 서술문의 문법에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이며, 거의 영원히 의문문으로 남는 것이다.(282)
나는 젠더보다 성차에, 섹슈얼리티보다 젠더에, 또한 젠더보다 섹슈얼리티에 이론적 우선성을 두는 것과 관련된 논쟁이 실은 다른 종류의 문제와 교차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성차가 제기하는 문제, 말하자면 생물학적인 것 심리적인 것, 담론적인 것, 사회적인 것이 어디서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결정하는 것의 영원한 어려움과 교차된다는 말이다. 만일 교황청이 젠더의 언어를 섹스의 언어로 대체하려 한다면, 그것은 교황청이 성차를 다시 생물학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고, 다시 말해 재생산에 관한 협의의 생물학적 개념을 여성의 사회적 운명으로 재확립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컨대 로지 브라이도티가 우리는 성차로 되돌아간다고 주장할 때는 교황청이 같은 용어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했던 것과는 좀 다르다. 브라이도티의 성차에 생물학으로 환원될 수 없고 문화나 사회적 구성물로 환원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면, 그 성차의 존재론적 기록부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마 그것은 바로 성차란 영원히 결정하기 힘든 방식으로 존재론적으로 기록된다는 뜻일 것이다. 성차는 완전히 타고난 것도 완전히 구성된 것도 아니지만 부분적으로는 둘 다이기도 하다. 이 ‘부분적으로’라는 의미는 ‘구분’의 분명한 의미에 저항한다. 성차는 교차점으로 작용하지만, 겹쳐지고 모호해진 용어들을 어쩌면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기보다는 구성 자체의 문제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구성된 것은 반드시 구성에 앞서 일어난다. 구성을 통하지 않고는 그런 앞선 순간에 접근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다.(295)
‘보편성’의 의미는 문화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었고, ‘보편성’을 특정한 문화에서 표명한 결과물은 보편성의 초문화적 위상에 대한 주장에 대항한다. 보편성을 언급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우리에게 보편성은 불가능성이 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편성에 괄호를 치는 것은, 늘 똑같지는 않은 보편성의 표명에 대한 여러 문화적 상황이 있으며, 이 용어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을 표명하는 보편적 문화 상황이 아닌 것을 통해서라는 뜻일 뿐이다. 이것은 보편적 태도를 취할 것을 명하는 모든 명령이 마주하게 될 역설이다. 어떤 문화에서는 일단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부여되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이런 권리 자체가 보편성의 경계를 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이런 권리를 부여하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성의 토대를 훼손하게 될 것이다.” 이는 특히 레즈비언과 게이 인권의 분야에서 특히 분명해졌는데, 이 분야에서 ‘보편성’은 이견이 많은 용어이고, 여러 정부와 여러 주류 인권단체들은 레즈비언과 게이가 ‘인간’에 제대로 포함되어야 할지, 또 그들의 잠정적 권리가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권리의 범위를 지배하는 기존의 관습이 들어맞는지에 대해 의혹의 목소리를 낸다.(302)
여기서 보편성 개념은 구축해야 할 토대도 아니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전제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타자’를 포함시키라고, 즉 인간은 타자에 반대되는 것으로 정의되는데도 바로 그런 ‘타자’를 인간에 포함시키라고 위협해서 언어도단이 된 용어다. 그런 의미에서 이처럼 더 급진적인 의미를 사용해보면 ‘보편성’은 전통적으로 토대로 받아들여왔던 토대에 대항하고 그것을 파괴한다. ‘보편성’이 반토대주의가 된 것이다. 보편성의 범위를 지배하는 기존의 관습이 바로 이런 주장을 차단하고 있는데도 일단의 권리를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보편성 개념을 파괴하는 것이면서, 보편성의 ‘구성적 외부’였던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렇게 하면서 기존의 규범에 동화하는 모든 행위를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보편성을 괄호 안에 들어가게 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무엇이고 아직 완전히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는 무엇을 포함할 것인지와 관련된 중요한 미지의 의미로 들어가게 해서 보편성 자체의 근본적 재표명을 촉발하고 요구하는 생산적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303)
인간은 다른 국면에서 인간을 새롭게 획득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낯설어져야 하며 스스로에게 괴물마저 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간은 ‘어떤 사람’이 아닐 것이고 사실 어떤 궁극적 형상도 없을 테지만, 그 사람은 섹슈얼리티의 사회적 구성에 자연스럽거나 필연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으로 성차와 끊임없이 협상하는 자일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영속적이고도 미해결의 문제라고 주장함으로써 성차가 무엇인지에 대한 어떤 결정도 내리지 말고 이 문제를 미해결로 남겨두어 트러블을 일으키고, 대답되지 않은 채 행운을 가져오도록 내버려두자고 주장하려 한다.(304)
성차
왜 성차의 틀 자체는 이분법에서 다원성으로 이동할 수 없는 것인가?
이성애
“나는 남자이다”에서 “이다”는 “나는 남자를 사랑해선 안 된다”라는 금기를 기호화하기 때문에, 이런 존재론에 관한 주장이 금기의 힘 자체를 전달한다.
영국과 유럽의 분리
우리가 그은 선은 서로의 경계를 넘어오라는 초청장이 되고, 모든 유목적 주체가 알고 있듯 그렇게 경계를 넘어가는 일이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한다.(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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