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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결혼을 둘러싼 세 가지 역설
고전고대의 역설
주제의 역전
여성의 신체가 ‘요새’, 행동하는 주체로서 활용되면서 여성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철학 세계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크게 변동하는데, 이는 ‘결혼 제도’에서 드러난다. 『성의 역사 3: 자기 배려』에 따르면 고전고대 그리스부터 제정기를 거쳐 그리스고교 시대에 이르기까지 결혼 제도에는 세 가지 원칙, 곧 배타성, 쾌락의 부정, 생식의 목적화가 있었다. 그런데 이 원칙은 각 시대별로 다른 형태로 적용됐다.
고전고대 도시국가에서 여성은 존재론적으로 남성과 전혀 다르다고 여겨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은 형상이고 여성은 형상을 결여한 존재(질료)라고 주장했다. 남성만이 완전한 판단력을 가지며, 여성은 정동에 휘둘리기 쉽기 때문에 판단력이 없고 불완전해진다. 지배하는 것은 성인 남성의 특권이며, 여성은 ‘자연스럽게’ 남성에게 지배되는 존재였다. 이로써 가정에서의 의무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 상호성의 결여와 비대칭적 윤리 원칙 때문에 그리스 남녀 관계에서는 기묘한 불균형이 발생한다.
크세노폰에게서의 불균형
크세노폰의 『가정관리술(오이코노미아)』에서는 농부인 이스코마노스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자신의 아내를 파트너로 삼아 가정관리술을 완성시켰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보호하는 남성과 보호되는 여성이라는 관계는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성은 언제나 정실부인으로서의 지위를 남편에게서 보호받아야 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정실부인으로서 대하는 한, 무엇을 하든 상관없었다. 여자 노예에게 손을 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매춘은 공공연히 인정되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아내에게 손을 댔다가 현장에서 잡힌 경우에는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스코마코스는 아내를 향한 정절을 ‘자기 통제’의 한 행위로 수행한다고 선언한다. ‘자신이 올바로 처신하고 가정에 전념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자신과의 격투기’라는 것이다. 푸코는 여기서 ‘정절’의 근본적 불균형을 본다. 아내가 정절을 지키는 것은 정신부인의 지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법(노모스)에 의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에게 정절을 지키는 것은 법이 요구하기 때문도 아니고 습관 때문도 아니다. ‘타자를 지배하고 자기를 통치하는 기술, 가정을 관리하는 아내를 통치하는 기술’로서 정절을 지키는 것이다.
또 크세노폰은 여성의 화장을 비난하는데, 그것이 남편의 욕망을 끌어올리려 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화장을 하여 자신의 신체에 대해 남편을 속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의 사랑을 묶어 놓으려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여기서도 아내의 화장은 남편인 이스코마코스의 극기심과 관련해 부정된다.
플라톤에게서의 불균형
플라톤에게서는 간통의 문제가 ‘평판’의 문제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플라톤은 『법률』에서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아이를 낳고 난 후에 만약 남자가 아내 이외의 여성과, 여자가 남편 이외의 남성과 동일한 관계를 갖더라도, 그 상대방이 아직 아이를 낳을 연령인 경우에는 아이를 만드는 연령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지는 것과 동일한 벌을 줘야 합니다. 그러나 연령을 지나서도 이러한 사항에 관해서 자제심이 있는 남녀는 매우 좋은 평판을 받고 반대인 자는 반대의 평판을, 그러므로 나쁜 평판을 받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경우에 부부 관계의 기준이 되는 것은 국가에 아이를 제공하는 국가 배려와 자기 평판을 신경 쓰는 도덕적 자기 배려이지, 타자인 아내 혹은 남편에 대한 애착이나 강력한 개인적 유대가 아니다.
이소크라테스에게서의 불균형
부부 간 절제의 중요성은 정치적 문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이소크라테스의 “니코클레스에게”라는 글이다. 여기서 니코클레스는 “왕에게 가장 합당한 행동은 어떤 쾌락의 노예도 되지 않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보다 자신의 욕망을 더 잘 다스리는” 데 있다고 단언한다. 니코클레스는 이 원칙의 일환으로 아내 이외의 여성과 몸을 섞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이 독점의 원칙의 순주는, 아내에 대한 애착 때문에 아니라 도덕적 모범 때문이다. 즉 “나 자신의 자기 제어(소프로쉬네)를 타자에 대한 모범으로서 보인다. 국민의 풍기(에토스)는 통치자의 풍기와 닮게” 된다.
여기서도 부부 관계는 아내와 남편의 애정이나 평등한 자애로움이 아니다. 민중에게 보여 주는 모범이며 사람들을 통치하는 왕의 자격의 증거이고 중요한 정치적 도구다. 푸코가 지적하듯 “여자의 미덕은 순종적 행동 방식의 보증이나 그것의 상관물이었다. 반면 남자의 엄격함을 스스로를 제한하는 일종의 지배 윤리에 속하는 것이었다.”
제정기의 역설
스토아학파에서 결혼의 상호성
그런데 제정기가 되면 정절에서의 이러한 비대칭적 관계가 수정된다. 정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자기 배려와 국가 통치를 위한 모범이라는 역할에서 상대에의 ‘경애’라는 상호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중요한 계기가 스토아 학파의 윤리관이었다. 스토아 학파에게는 자연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선하다고 불릴 수 있는 것’을 선택하기 위한 기준이었다. 그리고 결혼하여 생식을 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특히 스토아 학파는 생식 그 자체보다 남녀가 가정을 형성하여 공동의 생활(코이노니아)을 일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토아 학파 철학자인 무소니우스 루푸스는 “결혼 속에는 완전한 삶의 공동성이 있으며 남편과 아내 간의 상호적인 마음 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근대적 의미에서의 서로 사랑하는 커플의 원형이 탄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사랑한다. 플루타르코스는 스토아 학파가 결혼의 의무라 여기는 생식 자체에 대해, “이런 것(생식을 목적으로 한 결혼)은 분명 함께 살고 있다고는 할 수 있을지라도,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생활 여부는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유기적 결합” 여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 이상적 결혼의 배후에 “여성-아내가 무엇보다도 타자로서 평가되지만, 남편은 그녀를 자기와 함께 단일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인정해야 한다”는 역설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상적 결혼을 겉보기에 불과하다고 폭로한다. 제정기에도 그리스 시대와 동일한 남편의 윤리적 우월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하녀의 문제
루푸스의 하녀 문제에 대한 논의는 남성의 ‘도덕적 자기 통제’를 축으로 전개된다. 하녀와의 행위는 자기 제어의 결여를 만인에게 폭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내와의 상호적 관계에 상처를 입히게 된다. 여기서 자기 배려는 남편이 행사하는 권위의 근거이자 남편의 의무로 여겨진다. 아내의 자기 배려가 남편의 자기 배려를 상회할 때, 남편은 아내를 지배할 권위를 상실한다. 남편이 하녀와 자는 집에서는, 남편이 아내보다 자기 제어가 열등하다는 의미에서 ‘여자’이며, 아내는 남편보다도 훌륭한 제어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남자’가 된다.
물론 루프스는 아내가 ‘남자’처럼 되는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내도 철학을 공부하여 자기 제어를 연마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가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는 것은, 남편의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다.
쾌락의 활용
이 시기부터 아내와 ‘쾌락의 관계’가 아니나 ‘다정한 애정 관계’를 쌓는 것이 중시되기는 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아내와의 관계가 다른 모든 관계들보다 더 훌륭하다고 찬양한다. “육체적 쾌락 자체는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거기서부터 상대에 대한 존경과 다정함, 애정과 성실함이 나날이 싹을 틔운다.” 그러나 플라타르코스의 대화편을 뜯어보면, 부부 사이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호성이 생겨나는 것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며느리에 대한 다음과 같은 훈계야 말로 플라타르코스의 ‘속내’일 것이다. “만약 남편의 바람이 그치지 않고 방종을 거듭하여 창녀 혹은 하녀에게 손을 대더라도, 아내는 그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남편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진상을 부리거나 방탕하게 굴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나 이외의 여성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생식이라는 목적
자손을 만든다는 목적에서 보면 남성과의 사랑은 불모의 사랑이다. 남성과 소년의 사랑은 “소위 ‘불모의 바위땅 위에 씨를 뿌리는’ 작업을 하여 얼마 되지 않는 쾌락 대신에 큰 불명예”(플루타르코스)를 얻게 되는 것이다. 대를 잇는 것만을 결혼의 목적으로 여기는 것은 이후 그리스도교 결혼론의 최대 논점이 된다. 그러나 제정기에는 아직 거기까지 논의가 구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소년애를 변호하는 자들은 이러한 ‘효용 없음’ 때문에 소년애가 훌륭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연에 예속’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어울린다는 주장이다.
제정기의 결혼의 역설
제정기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자기 제어를 축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죄다 남성의 관점으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간의 진정한 상호성은 생겨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고전고대 그리스 시대와 달리 여성은 자기 제어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서이거나 남성의 좋은 파트너이기 위해서일 뿐이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정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 자기를 배려하기 위해서,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의 성교를 피해야 하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상호적 관계상에서가 아니라, 남편이 아내 이외의 여성이나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배신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아내는 “자신의 보편적 형태, 그리고 타인들과 수립할 수 있고 또 수립해야 하는 관계”로서 자기를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구성 요소”로 이용해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푸코가 말하는 ‘아내의 역설’이다. 푸코는 이 시기 남성의 자기 배려가 그 수단으로 아내를 이용하는 무자각적인 냉랭함에서 나왔다는 데 주목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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