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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일

기레민

 

*신체를 통한 단련

-듣기: 기억을 위해 중요한 기술로 여겨진 것이 ‘듣기’ 이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청각은 후각과 함께 닫아버릴 수 없는 기관이다. 특히 인간은 들음으로써 정념이 격하게 동요당한다. 그런데 냄새와는 다르게 듣기에는 ‘로기코스적’의미, 즉 로고스를 습득한다는 의미가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인간은 모든 감각에서 악덕을 배우지만 듣기에서는 덕을 배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덕은 로고스와 뗼 수 없는 것이며 로고스는 이성이 합리적으로 분석한 언어이다. 로고스는 귀를 통해서만 들어오는 것이다. 또한 로고스를 들은 젊은이는 말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우선 듣는 기술을 익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플루타르코스) 에픽테토스도 제자의 듣는 자세에 대해 가르치며, 세네카도 역시 듣기에서의 수동성(파토스)과 능동성(로고스)의 양의적 의미를 고찰한다. 로고스는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영혼에 어떤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에 푸코는 듣기 속에 있는 의도하지 않은 파토스의 요소를 제거하면서 로기코스의 요소를 우지하고 듣는다는 행위를 순수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스토아 학파에서 주로 네 가지 방식을 채용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침묵하기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침묵을 신적인 것이라 보았다.

둘째, 듣기 위한 자세를 지키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경우도 듣기 위한 자세를 강조했다. (간섭이나 동요 없이 듣기에 집중하는 것, 신체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도록 신체를 평정 및 부동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

셋째, 말해지는 말이 진정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넷째, 진리를 들은 경우에는 곧바로 그것을 기억할 필요에 대한 강조이다.

 

-쓰기와 읽기: 스토아 학파의 시대에는 쓰기와 읽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리의 말을 듣고 그것을 기록하며 그것을 낭독하고 또 듣는다. 이 말의 회로 소에서 진리는 거의 육체적인 것이 된다. 스토아에서 쓰기는 단순히 잊지 않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의 단련으로서, 아스케시스로서 진리를 언제나 “손이 닿는 곳에” 준비해 두고 격투기의 자세처럼 신체적 장비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진리를 가상적인 의미에서 ‘신체화’하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쓰기 기법은 귀에서 손으로,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귀로 이르는 이러한 회로를 로고스가 순환하는 사이에 진리가 육화되는 것으로 진리를 기록했다.

-수첩: 수첩은 그것을 기록한 개인의 다양한 생각 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자서전에 상당하는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자전이라는 장르가 탄행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이러한 비망록과 같은 것이 그 인물에 대한 기록물로서 다루어졌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나타나는 것만이 수첩에 적혔던 것은 아니다. 타자의 로고스를 사용하여 자기를 배려한다는 행위는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에게서 나타났던 사실이기도 했다. 세네카는 자신의 행동 지침을 모두 자신에게서 퍼올릴 수 없다고 보았고 한편 타자의 로고스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너무 치우쳐서는 좋지 않다고도 보았다. 수첩에 글을 읽고 적어넣으면서 독서의 성과인 그것을 통해서 영혼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수첩에 과거의 현자가 말했던 것을 기록해서 자신의 현재 상황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수첩에는 자신의 주관이 반영된 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읽음으로써 본인의 자기가 다시금 확립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수첩을 작성하는 것은 하나의 “신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며, 써 넣고 읽은 것이 “힘이 되고 피로 변화하는” 것이다. 씀으로써 “생각하던 사항을 스스로에게 동화”시킬 수 있다.

 

-서신: 에피쿠로스의 교의는 대부분이 친구나 제자에게 보낸 편지로 남아 있다.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서신은 철학자가 자신의 사고를 전개시키고 타자의 비판에 답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스토아 학파나 에피쿠로스 학파에서는 오늘날의 이메일처럼 서신이 중요한 사고 도구였던 것이다. 스토아 학파 철학자에게 서신을 쓰는 행위는 한가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가한 때에 타자를 배려하면서 자신의 사고를 깊게 하고 자기를 배려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는 날래 달린 수첩의 기능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서신은 타자에게 자기의 진정한 얼굴을 내보이는 것이며 타자에 의한 점검이자 자기에 의한 점검이기도 하다. 이전에 쓴 서신을 다시 읽음으로써 과거의 자신이 사고했던 바가 폭로되고 그 사고로부터의 진전 혹은 퇴보를 측정하게 된다.

 

3. 자연 연구의 변증법

-헬레니즘의 자연 연구의 특징

: 헬레니즘 시대의 자연 연구에는 윤리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 하나는 천체나 우주에 대한 고찰이 있어 주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견했다. 자연 연구로서의 윤리학은 인간을 정치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동물과 같은 우주 속의 자연 존재로 여기면서 윤리와 정의의 모습을 고찰하려는 흔적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은 후에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에피쿠로스의 자연 연구

: 에피쿠로스에게 인간은 더 이상 도시국가 내에서 살아가는 특수한 동물이 아니었다. 존재론적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과 같은 지위에 있고 자연스러운 동물로서의 삶의 방식 속에서 인간의 윤리를 탐구해야 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삶의 목적이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현자란 이 신체의 건강과 영혼의 평정을 실현하는 삶의 방식에 다름 아니라 보았다. 따라서 이는 어린아이와 짐승조차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그러나 인간은 여러 욕망이나 망상 때문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에 눈을 뜬다면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도 ‘현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에피쿠로스의 윤리학은 동물이나 어린아이라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존재 방식에 대한 고찰, 그리고 자기를 지배하고 향유하는 자기에 대한 배려의 전략에 기초하고 있었는데, 천체나 기상에 대한 우주론으로서의 자연 연구에서는 자기 배려의 의미가 더욱더 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에피쿠로스가 자연을 연구하는 것은 ‘세계의 끝’을 여행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기 위한 것이며 영혼의 평정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에피쿠로스는 지각을 통해 자연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복수의 이론을 허용하기를 제시한다. 여러 방법을 채용할지는 각자 자신에게 맡기는 것이다. 다만 “미신만은 추방되어야 한다”는 전제는 마련되어 있다. 에피쿠로스는 영혼의 평정을 손상시키는 불사적인 천체와 지복 등의 관념과는 거리를 두었고 천체가 불멸이라고 생각하는 신화를 타파해야 한다고 보았다. 에피쿠로스는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사후 세계가 있다고 믿는 것은 영혼의 평정을 크게 방해하기 때문에 자연 연구로 천체의 운행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자연 연구로 자신이 믿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에피쿠로스의 ‘파레시아’였다.

-스토아 학파의 자연 연구

초기 스토아 학파는 “자연과 일치화합해서 사는 것”이 최고의 좋음이라 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바른 인식을 통해 진실을 파악하고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인간의 이성과 조화하여 사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우주의 사상과 인간의 사상은 모두 동일한 로고스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윤리학과 자연학은 기초를 이루는 윤리학적 이유를 갖고 있고, 윤리학 그 자체는 전체에 걸쳐서 자연학 및 윤리학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도 역시 어린 아이를 관찰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여기에서 어린 아이가 가진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는 충동을 포착했다. 즉 이들은 기초가 되는 원리를 “자기 사랑”이라고 보았다. 스토아 학파는 이러한 원리를 통해서 자기 보존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모든 선택이 이루어지게 되고 “영구적이고 끝까지 일관성을 지니며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추구하게 되면 인간은 자신에게 ‘친근한 것’을 지키려는 노력으로부터 ‘정의’개념이 생겨난다. 이 본성이 공통의 본성적인 보호로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본성에 의해서 회합, 민회, 국가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는 것으로 보았다. 한편 자연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법”에 따라야 할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현자는 그 어떤 정동에 의해서도 동요되지 않는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되기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자연과 하나가 되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스토아 학파는 생각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연이 준 이성으로서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후기 스토아 학자인 세네카는 여가 속에서 현자가 되는 방식을 제안했다. 세네카는 인간이 예소의 관계에서 벗어나길 권유하는 여가를 말했다. 특히 자기에 대한 예속으로 벗어나는 방식은 자기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자기로 ‘되돌아오는’ 행위가 된다. 정치적인 자리에 있는 자기로부터 떠나서 자연과 인간에 관한 학문으로 임하는 것이 예속을 벗어난 ‘되돌아오는’ 행위라고 한다. 세네카는 천체의 연구를 통해서 “신을 안다”는 자기 평가에 들어갈 수 있고 자신을 벗어나서 신의 관점과 일체가 되고 가장 높은 장소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는 자기를 초월한 진정한 실재를 찾는 플라톤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세네카의 스토아 학파적 행위는 자기를 벗어나지 않는 자기를 떠나는 행위이다.

세네카는 여가 중 자기 안에 은거함으로써 천사와 자연이라는 초월적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네카의 여가 중 자연 연구에서 에피쿠로스의 자연 연구에서의 내재와 키케로의 초월이 방법론적으로 통합된다. 인간 연구를 떠나서 자연 연구를 향하지 않고서는, 세네카는 인간을 우주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적 시선을 소유할 수 없었던 것이다.

 

-키케로의 우주론: 키케로에게서 로마라는 국가가 얼마나 ‘지구 위의 한 점’에 지나지 않으며, 지구가 로마 제국을 뛰어넘는다는 것, 우주가 지구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이야기된다. 키케로에게는 인간의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우주의 자연스러운 존재 방식과 공통성을 갖고 있었으며, 이 스토아 학파의 보편적 자연법의 관점이야말로 지구를 바깥에서부터 보는 시선을 가능하게 했다. 여기서 그리스 국가가 갖고 있었던 도시국가의 틀은 붕괴하고 만다.

-헬레니즘과 우주론: 그리스의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그 수가 한정되어 있었고, 그 한정된 수의 시민들이 공적 공간에서 각자의 힘과 지혜를 겨루었다. 그러나 공화제 로마에서 이제 이러한 닫힌 공간은 소멸한다. 그리고 제국의 성립과 더불어 우주적 시선이 생겨난다. 이제 아테네가 아니라 제우스가 통치하는 우주 전체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시선 아래에서 정치적 공간이 된 것이다.

이 공간은 실은 정치적인 것을 상실하고 사람들이 무정치적으로 살아가는 공간이다.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절대적 군주정이 정치 참여의 뿌리를 말려 버렸고 제국의 조직이 도시국가의 교육적 사명을 조소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 그레코-로만 사회에서의 정치활동은 사람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거기서 그리스적인 의미에서의 ‘정치’는 자취를 감춘다. 비정치적이고 무세계적인 그리스도교가 도래한다. 이제 그리스도교의 ‘빚’으로서의 은혜는 현대에까지 이어진다. 슈미트가 갈파하듯, “현대 국가론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인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우렐리우스의 시선은 세네카처럼 세계의 끝을 향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안의 사물의 심상을 향한다. 그것은 사물의 벌거벗은 모습을 끌어낸다. 이를 환원적 시선이라 할 수 있다. 환원과 분석의 행위는 마음의 도량을 키우는 행위라고 한다. 아우렐리우스에게 이성은 세네카처럼 자기로 귀환하는 이성이 아니다. 자기를 세계 이성 안에 용해시킴으로써 삶과 죽음을 그 벌거벗은 모습 속에서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이다. 환원하는 이성은 세계 이성과 통합되고 세계 이성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배운다. 그런데 세계 이성으로 가득 찬 이성의 시선은 ”가장 완전하고 다른 자연을 모두 포괄하는 그 자연은 어떤 기술자의 창작 재능에도 뒤지지 않음“을 발견하게 한다. 아우엘리우스는 날카로운 환원의 시선으로 생과 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즐거워했다.

 

-스토아의 아스케시스와 그리스도교의 금욕

:스토아 학파의 자기 기술은 모두 자기를 배려하고 그 주체가 세계 속에서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영우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아스케시스 기술은 자기를 향유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도 자기 기술은 이루어지지만 여기에서의 자기란 향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기 사념 속에서 악마적인 것과 싸우기 위해 자기 의지를 포기하고 욕망을 포기하도록 요구되는 것이다.

푸코는 두 세계의 차이를 바라보면서 그리스도교와 스토아 학파 간의 자기 기술의 차이가, 유럽 문명을 읽어내는 데 유효함을 밝혔다. 자기를 발명하고 자기와의 사이에서 바람직한 관계를 맺으며 자기를 향유할 것을 요구하는 그리스와 그레코-로만기의 자기와의 관계와는 대조적으로 자기를 감시하고 교정하고 포기함으로써 자기의 구원을 추구하는 그리스도교적인 유럽의 자기와의 관계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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