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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진한대로 즐겁게 /낭만쌤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에서 애니미즘을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차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애니미즘은 모든 대상에 대하여, 동시에 그것을 아니마(정령)로 보는 태도이다. 이것은 특별히 이해하기 힘든 것이 아니다. 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의 열쇠가 되는 것이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이다. 그는 인간이 세계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관계이고, 둘째는 -그것의 관계이다. 후자의 경우, 그것은 물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대신에 그녀로 바꿔 불러도 상관없다. 즉 인간이든 물건이든 마찬가지로 그것으로서 대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 는 사라진다. 역으로 말하면, ’-라는 태도를 취하면, 물건도 가 될 수 있다. (98)

-의 관계에서는 가 대상이 아닌 것처럼, ‘도 주관이 아니다. ‘-라는 태도로 대한다면, 인간도 자연도 이다. 그때 아니마(정령)가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애니미즘이라고 불린다. 말하자면 애니미즘이란 세계에 대해 -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개인만의 특징이 아니다. 부버는 고양이와 서로 응시한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한순간 서로가 로 만났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부버는 말한다. “대지가 움직이고, 관계가 생겨나고, 다음 순간 거의 사이를 두지 않는 다른 관계가 생긴다. <그것>의 세계가 나와 고양이를 에워싸고 한순간 의 세계가 심연에서 반짝이지만, 이내 다시 <>의 세계로 사라져갔다. 즉 부버는 근대의 인간은 이미 나와 그것이라는 관계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괄호에 넣고 로서의 세계나 타자를 만나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99)

한편 수렵채집민에게는 그와 반대되는 곤란이 존재한다고 해도 좋다. 프로이트는 애니미즘과 주술을 아이의 만능감정에서 설명하려고 했는데, ‘어른인 미개인은 -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을 수는 없다. 그들은 아이가 아니다. 즉 울면 어머니가 바로 돌봐주는 환경에서 생기는 만능감정 따위는 가질 수 없다. 현실적으로 -그것의 세계에서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의 관계를 괄호에 넣고 자연물이나 인간을 단지 그것으로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수렵자이기 때문에 동물을 죽여야 하는데, 동물에게는 각각의 아니마가 존재한다. 수렵을 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태도를 -에서 -그것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전환이 말하자면 공희(供犧)로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좋다.

공희란 증여를 통해 자연 측에 부채를 부여하고 그것에 의해 자연의 아니마를 봉하여 그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주술에 대해서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주술은 증여에 의한 탈영화(脫靈化)를 통해 자연을 그것으로 대상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술사는 최초의 과학자이다. (99-100)

공희란 공양으로 바치는 희생을 뜻한다. 혹시 고시레와 연관이 있나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다. 빙고!! 

 고시레(고수레)는 신에게 바치는 공희(供犧) 의식인데, 잡신에게 제물을 떼어주고 달래어 쫓는 한편, 먼저 제물을 바쳐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수레는 주언(呪言)과 공희 행위가 함께 이루어지는 주술이다. 마치 주문(呪文)처럼 "고수레!" 하고 외치는 소리가 곧 고수레다. '고수레하는 행위'에서 보듯, 음식을 떼어 던지는 행위를 일컫기도 한다. 이렇듯 고수레는 언어와 행위를 일치시켜 액을 막고 복을 맞으려는 주술적 관습이다. 고수레의 어원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해동가요 海東歌謠의 시조에 "고스레 고스레 사망(事望) 일게 오쇼셔"하는 구절로 보아, 예로부터 귀신을 쫓을 때나 축원할 때 썼던 관용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고수레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 2가지가 있다.

첫째, 고수레는 곡식의 신인 고씨(高氏)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다. 음식을 먹기 전에 곡식을 담당하는 고씨에 대해 먼저 예()를 차린다는 데서 '고씨례'(高氏禮)라 했고, 이것이 곧 고수레라는 설명이다. 둘째, '고씨네' 이야기다. 고씨네라는 여인이 죽어 들판에 묻혔는데, 새참을 먹던 사람이 "고씨네도 먹으라."고 하면서 음식을 떼어주었더니 풍년이 들게 되었다. 이후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고씨네"라고 하면서 음식을 떼어주었고, 이 고씨네가 고수레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들 유래담은 고씨례나 고씨네를 억지로 끌어와 '고수레' 민속에 붙인 민간어원설에 불과하다.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에서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으로 세계구조를 파악하고 있다. 그 중 첫 번째 단계가 호수원리가 작동하는 교환양식A. 여기서 호수원리란 원시 씨족사회처럼 공동체 안에서 일종의 상호부조가 이루어지는 원리다. 증여와 선물이 대표적인 예다. 등가교환에 따르지 않고 공동의 감정에 기대 서로를 돕는다는 교환 원리이다. 고진이 애니미즘과 관련하여 언급한 공희도 일종의 증여라고 볼 수 있다. 교환양식B는 국가의 원형으로 일종의 폭력적인 지배공동체다.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지배자가 복종을 통해 안정과 안녕을 부여받는 일종의 교환을 의미할 때이다. 이것이 교환양식B이다.

이에 비해 교환양식C가 지배적이 되는 것은 자본제 사회다. 말하자면 상품교환이 상호합의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환양식 AB, 즉 증여를 통해 구속하거나 폭력을 통해 강탈하거나 하는 일이 없을 때 성립한다. 그런데 상품교환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화폐다. 화폐를 가진 자는 폭력적 강제에 호소하는 것 없이 타인의 생산물을 취득하고 타인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므로 화폐를 가진 자는 상품교환을 통해 화폐를 축적하려고 한다. 그것은 화폐의 자기증식 운동으로서의 자본의 활동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필연적으로 빈부의 차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환양식D가 대두될 필요가 생긴다. 고진에 의하면, 이 교환양식D는 증여와 선물과 같은 상호부조의 호수원리가 작동할 수 있었던 교환양식A의 고차원적인 회귀이다.

고진은 이런 관점에서 칸트의 영원평화를 다시 읽었다고 말한다. 칸트가 말하는 영원평화란 그저 전쟁이 없는 정도의 평화가 아니라 국가 간의 적대 그 자체가 없는 상태, 즉 국가가 지양된 상태를 의미한다. 칸트가 생각한 것은 국가연합이다. 이것이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과 유엔이라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지만 또 그곳에서도 실력을 가진 강대국이 지배하게 된다. 즉 강한 상대에 복종함으로써 안전을 획득하는 교환양식B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방향에서는 영원평화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진이 상정한 교환양식D의 세계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세계이고, 이념이나 이상의 세계로만 머물 수도 있다. 각국이 군사적 주권을 증여하는 것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교환양식D인간의 희망이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을 넘어선 지상명령으로서 나타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환양식D를 사유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지금 내가 책을 열심히 읽고 <전사연> 벗들과 열띤 토론을 한다고 나의 인격이나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될 가능성까지 배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 과정이 즐겁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교환양식D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제는 그런 세계를 꿈꿀 수 있다. 어떤 세계? ‘-그것이 아닌 -의 세계다. , 타자를 대상화하지 않는 서로 주체가 되는 삶이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이유나 존재적 한계로 로서 세계나 타자를 만나는 것이 곤란한 일이 생기면 고수레를 외치며 상대에 대한 정중한 예의를 갖추면 되지 않을까 싶다말하자면 교환양식C에 살면서 교환양식D를 실천하는 것이다. 미진한대로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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