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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리스도교에서의 결혼의 역설(그리스 교부의 전통) 170402 아루미 발제

 

1. 유대 랍비 전통의 결혼관

유대교의 새로운 전개

육은 영의 감옥이라는 플라톤적 전통은 그리스도교 이론 안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 유대교의 랍비들이 제시한 것은, 신체를 신으로부터의 선물로서 감사히 받는 자세였다.

후기 유대교에서 성관계와 결혼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육 이론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여겨지고 있다.

2. 침대라는 격투장 : 클레멘스

교회법에서는 결혼을 이렇게 정의한다. “남성과 여성 간의 영속적이고 배타적인 결합이며, 첫째, 생식과 종의 적절한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둘째, 가정생활에서의 필요성을 서로 채워주며, 육욕에 대한 합법적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만 이러한 성사로서의 결혼은 그리스도교 사회에서도 하루아침에 확립된 것이 아니며, 그때까지 결혼의 위치를 둘러싸고 오랜 논쟁이 전개된다.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생활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클레멘스는 책을 통해 이 시기 신자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고 올바른 신도로서 지내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혼의 위상

클레멘스는 결혼에 관한 제1원칙인 단독 원칙을 명확히 보여 준다. “우리는 일부일처제를 칭찬해야 하며, 단 한 번 결혼하는 것의 훌륭함을 찬양해야 한다. 서로 반려의 고뇌를 나누며 무거운 짐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클레멘스에게는 가정을 유지하고 자손을 얻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자의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에, 성교 자체는 인간을 야수로 만들지 않는다고 반론한다. 인간의 신체는 더럽혀진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는 우리가 그 목적을 실현하는 성스러운 계획의 도구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었던 것이라고 클레멘스는 강조한다.

클레멘스는 진정한 인간성은 독신 생활을 선택하는 것으로는 밝혀지지 않는다. 반대로 사람으로서의 진가가 시험되는 것은 남편과 아버지의 의무를 다하고, 고통스러운지 즐거운지를 묻지 않고 가족을 얻는 것을 통해서이다. 가족을 위한 배려 한복판에서 신을 향한 사랑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아이와 아내와 하인과 자산을 통해 엄습해 오는 모든 유혹에 굴하지 않는 인물이야말로 사람으로서의 진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클레멘스는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유혹에 아직 시험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결혼은 생식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는 세번째 원칙이 그리스도교 초기 시대에 더 명확히 제시된다. 쾌락의 부정이라는 두번째 원칙 또한 명확한 것이다.

침대 위에서

클레멘스는 창녀와 하듯 아내와 몸을 섞는 것은 자신의 결혼에서 간음하는 것이라 지적하면서,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성관계의 억제를 요구한다. 그리스도교도 부부는 타자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이 암흑 속, 게다가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의 영혼의 행위로서 성관계에서 어떻게 욕망을 억누를 것이냐는 억제의 덕을 묻게 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나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윤리적 존재 방식을 모색하고 자기를 단련하는 것은 주로 남성의 과제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사회에서는 타자를 통치하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스스로의 정신과 신체로 윤리적 행위를 하게 되었다. 푸코의 지적처럼 그리스도교가 야기하게 되는 거대한 변혁 중 하나는, 육체의 윤리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동일한 양식으로 가치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3. 격투기로서의 절제 : 오리게네스

신체라는 격투장

오리게네스의 단계론에서 제일 아래인 제4단계에는 완전히 타락하여 불경한 가르침의 언어를 믿고신의 섭리를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3단계에는 신의 로고스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예수의 로고스를 믿지 않는 사람들, 이를테면 그리스 철학자들이 있다. 2단계에는 그리스도교를 믿는 소박한 신자들이 있다. 최고의 단계에 있는 자들은 모든 것의 신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고있는 사람들이다. 어느 단계에 속하는가는 각각의 자유 의지에 따른 움직임과 노력을 통해, 각자가 이루는 진보와 퇴보에 의한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인간이 신체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생리적 충동 및 성적 충동을 느낀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려 한다.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 자연인 것처럼, 성욕을 느끼는 것도 자연인 것이다.

성욕을 느끼는 것은 자연의 사실이며 육체에는 그것을 통해 자손을 남기기 위해 여성과 관계하려는 자연적 충동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대로 긍정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연의 작용임과 동시에 죄의 씨앗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자연의 작용으로부터 우리 죄의 출발점이 되는 것, 소위 죄의 씨앗과 같은 것으로서 신체와 성욕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자연의 사실을 계기로 인간은 진보의 길을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 자연의 사실을 역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절제의 의지를 단련할 수 있다. 인간의 인생은 하나의 경기인 것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경기자로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격투에 참가하여 절제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여러 소질을 부여받은 인간들이 여러 입장에서 이 싸움에 참가한다. 인생은 절제의 싸움이다. 이리하여 우리의 오체는 신을 위한 의로움의 무구가 된다는 것이다.

영혼의 불멸과 선악

오리게네스는 클레멘스와 마찬가지로 절제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 격투에서 패하지 않고 의지를 강고히 함으로써 영광의 신체로 다시 태어나기 위함이지, 그리스도교 사회를 유지하려는 클레멘스의 생물,사회학적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죄의 씨앗인 신체는 격투 속에서 정련되어 이윽고 부활의 때를 맞이할 때까지 끝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장소인 것이다.

인간에게 선의 나무악의 나무가 있고 인간의 본성으로 선악이 결정된다는 숙명론에 대해서도, 오리게네스는 인간의 자유 의지 이론과 신의 섭리 이론으로 대항한다. 인간이 신과 합일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영적인 존재자에 의한 파이데이아가 필요했다. 인간이 진보하거나 퇴보하기 위한 존재론적 조건을 정하는 것은 신의 프로노이아와 스스로 선악을 선택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이다.

오리게네스의 결혼관

오리게네스는 그리스 철학의 전통에 대항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을 이 처녀 수태에서 끌어낸다.

오리게네스는 예수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데서 큰 가치를 끌어낸다. 유스티누스는 유대교 이론에 대항하기 위해 마리아의 처녀성을 강조했는데, 오리게네스는 그리스 철학의 이성적 이론에 대항하기 위해 마리아의 처녀성을 강조한다.

그는 신은 우리와 함께 있다(임마누엘)’고 불리는 예수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야 한다고 단언한다. 예수에게는 정욕의 충동에 의해 수태된 자들에게 전해지는 죄의 더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4. 결혼의 불안 :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결혼은 분명 아이를 낳고 사회 존속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신체적으로 사회에 가져다주는 것은, 삶의 시작임과 동시에 죽음의 시작이기도 하다.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의 절차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몸으로 태어난 자는 몸으로 망한다. 삶은 죽음의 시작이다. 타오르는 불 속으로 나뭇가지를 계속해서 집어넣지 않으면 불은 꺼지고 말 것이다. 불은 그 자체만으로 계속해서 타오를 힘이 없다.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결혼이 죽음에 계속해서 재료를 제공하며, 사형 집행자에게 계속해서 희생자를 제공하는 것을 그만둔다면 죽음의 힘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결혼하기를 그만둔다면 죽음은 힘을 잃는다. 처녀들(동정인 남성 포함)은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선이 되는 것이다. 처녀를 유지하는 것은 죽음의 숙명의 장벽이 되어 결혼 생활 속에서 죽음을 향해 재깍재깍 움직이는 시계의 진행을 멈춘다. 처녀는 원죄 이전의 아담과 동일한 지위로까지 상승하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처녀의 신체에 매우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결혼하는 삶은 정념과 질투의 위협에 시달리는 위험한 삶이었던 것이다.

5. 결혼의 신학자 : 크뤼소스토무스

고대의 향락 도시에서

결혼이라는 요새

이렇게 향락의 도시 안티오케이아에서 주교가 된 크뤼소스토무스에게 향락으로부터 신도들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가 되는 것이 가정이었다.

결혼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다.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것과 우리를 부모로 만드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정결의 목적이 ㅇ선시된다. 게다가 결혼해서도 아이가 없는 부부도 많다. 그러므로 세계 전체가 우리의 아이들로 가득 차 있는 이런 시대에는 특히 정결의 목적이 우선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은 다른 여자의 유혹을 받더라도 이 신체는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 아내의 것이다. 나는 자신의 신체를 남용하고 싶지 않고 다른 여성에게 빌려주고 싶지도 않다고 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내도 동일하게 답해야 한다. 여기에는 완전한 대등성이 존재한다.”

이 정욕을 억제할 수 있는 결혼은 신의 선물이며 신은 결혼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에서도 크뤼소스토무스는 결혼식을 성스럽게 하자고 호소한다. 이 향락 도시의 관행을 중단시키는 것이 그리스도교 주교인 크뤼소스토무스에게는 중요한 임무였던 것이다.

그리스도교 결혼관의 역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하지만 그것은 아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사랑하라는 것에 불과하다. 아내는 그 개인으로서의 전체적 인격 때문에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남편의 반신이며 신체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아내를 노예처럼 다룬다면 당신은 자기 신체의 명예를 더럽힘으로써 자신을 더럽히게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신의 규칙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의무를 지는 것이다. 크뤼소스토무스에게 남편의 애정은 의무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된다.

외적 아름다움은 기만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음란한 것이다. 다른 남자들의 질투를 부르고 남자들을 정욕으로 가득 차게 한다.” 아내의 아름다움 따위는 어차피 1년 정도 지나면 질리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크뤼소스토무스는 논한다. (영혼의 덕과 성격의 고귀함)

6. 처녀의 향연 : 메토디우스

플라톤의 [향연]이 쇼년애 찬양이었던 데 비해 플라톤을 흉내낸 메토디우스의 [향연] 10명의 여성들이 처녀성을 찬양하는 모임을 묘사한다.

처녀인 것, 그것은 오리게네스가 금욕의 신체를 중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선택과 의지를 통해 금욕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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