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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 / 미셸푸코 / III.사드에 대한 강의 첫 번째 강연 / 2017.4.23.(일) / 닥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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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의 말년의 텍스트인 ‘쥐스틴 이야기’와 ‘쥘리에트 이야기’는 1797년에 출간 되었고, 내게는 사드의 사유와 상상력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가장 극단적이고 가장 완정한 형식 아래 드러내주는 일종의 보고서와도 같은 텍스트로 생각됩니다. 이 책들은 진실의 기호아래 놓여 있습니다. 사드는 맨 첫줄부터, 자신이 이야기하려는 바와 관련하여 그가 겪은 역겨움과 공포에 대해, 문인이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범죄를 있는 그대로, 범죄를 실제 있는 그대로 즉 다시 말해 의기양양하고도 숭고한 것으로서 보여주겠노라고 말합니다. 

  18세기의 작가들은 있음직한-진실을 확보하기 위한 특정 절차들을 기꺼이 사용했습니다. 사드는 이미 관용적인 특정 수수학적 절차들을 다시 취합니다. 작가 자신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여러분 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중이기 때문에...”

  사드는 자신의 소설들 내내 자신이 이야기하려는 것은 진실이라고 끊임없이 말합니다. 그러나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만약 우리가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 본다면, 사드의 텍스트가 단 한 순간도 있음직함을 떠올리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드가 말하고 있는 진실이란 실상 자신이 말하는 것의 진실이 아니라, 추론의 진실입니다. 18세기 소설가의 문제는 감동을 줄 수 있는 하나의 허구를 있음직함이라는 형식 아래 확립하는 것이었지만, 사드의 문제는 하나의 진실을 분해하는 것, 한 명의 철학자로서 하나의 진실을 분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결코 욕망의 실현에 절대적으로 관련되는 어떤 진실을 분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쥐스틴이라는 소설의 관건은 살인, 야만성, 지배의 수행 및 욕망의 수행을 통해, 하나의 진실일 무엇인가가 드러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실어아야 하는 것은 추론이자, 욕망의 수행을 지탱해주는 혹은 욕망의 수행에 의해 촉진되는 합리성의 이런 형식입니다. 이것이 사드가 자신의 텍스트 내내 우리에게 문제는 진실 자체라고 끊임없이 말했던 바의 의미입니다. 욕망과 진리의 관계라는 문제를 올바로 다루기 위해 물어야 했던 출발점이 됩니다. 

  욕망-진실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책이라는 수준, 등장인물들의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 책의 존재라는 문제를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글쓰기라는 말은 단순히 쓴다는 사실 이상, 곧 출판한다를 포함합니다. 

  사드에 있어서의 글쓰기는 진지합니다. 미덕이 언제나 벌을 받고, 악덕은 늘 보상을 받으며, 아이들은 살해당하고, 젊은 남녀가 조각으로 잘려나가고, 임신한 여인이 목을 매달리고, 병원 전체가 불에 타는 이야기들은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미덕을 지닌 쥐스틴이 불행을 겪게 되는 것은 그녀가 추론상의 오류를 저질렀거나, 그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러한 현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쥐스틴은 완벽하게 계산을 했지만, 늘 자의성과 우연의 질서에 의해 어떤 끔찍한 불행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쥐스틴은 불행을 겪게 됩니다. 이것은 우연의 결과입니다. 역시 악덕의 번영은 쥘리에트의 행동에 다르는 논리적인 결과가 전혀 아니며, 우연에 이해서입니다. 자의적인 사건들의 조우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를 조종하는 것은 사드 자신입니다. 


  사드가 자신은 우리의 이성에 말을 건네는 것이라고 말 할 때, 자신은 이러한 증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때, 사드는 무엇을 하고자 했던 걸까요? 

  사드의 텍스트는 자위를 하는 하나의 전형적인 절차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상상력에 완전한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시작하여, 첫 번째 향락을 느끼고, 글을 쓰고, 잠이 들고, 읽고 또 상상력을 발동시킵니다. 글쓰기는 보편적 합리성의 도구가 전혀 아니며, 개인적 몽상의 도구, 보조물, 순순하고도 단순한 수단으로 드러납니다. 글쓰기는 보편적 합리성의 도구가 전혀 아니며, 개인적 몽상의 도구, 보조물, 순수하고도 단순한 수단으로 드러납니다. 글쓰기는 에로틱한 꿈을 성적 실천과 이어주는 하나의 특정한 방식입니다. 이 텍스트는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말로서 이것이 순수하게 개인적인 방식의 문제라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따라서 몽환의 구축, 성적 실천의 구축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단계, 몽상으로부터 실행으로 나아가는 순수하고도 단순한 하나의 단계입니다. 

  사드는 소설가가 마치 자기 어머니의 연인인 양 어머니의 품속으로 뛰어들 듯, 자연속으로 스스로 던져야 한다고 말 합니다. 소설가는 어머니 자연과 근친상간을 행하는 아들입니다. 소설가는 마치 한 인물이 자신의 상상력에 몸을 맡기듯이, 자신의 자연0어머니에 몸을 맡겨야 합니다. 일단 자연의 품속에 담겨 버린 소설가는 글을 쓰게 될 것인데, 사드의 말에 따르면, 소설가는 이때 자신에게 주어진 가슴을 열어젖히며 글을 쓰게 되리라고 합니다.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너의 관심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밀고 나가라는 것이다.”


  사드의 글쓰기가 이성으로부터 출발하여 듣는 자의 이성에 호소하는 합리적인 무엇인가가 전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사드의 글쓰기가 성적 몽환인 한 우리는 사드의 글쓰기는 진실과 어떤 관련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사드의 텍스트에서 글쓰기는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첫 번째로, 사드의 텍스트에서 글쓰기는 상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이어주는 매개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글쓰기는 현실과 상상력의 경계를 철폐하고 현실을 제거하는 것, 그리하여 상상적인 것 자체의 모든 한계를 무화시키고 소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글쓰기의 덕분으로 우리는 쾌락원칙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되면서 결코 현실원칙과 만나지 않는 하나의 세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글쓰기가 매우 정확히 성적 향락의 두 순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글쓰기는 되풀이된 향락의 원리입니다. 글쓰기는 다시 즐기는 것, 또는 다시 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글쓰기의 쾌락주의, 다시-향락하기로서의 글쓰기는 이렇게 자신의 특성을 부여 받게 됩니다. 글쓰기의 두 번째 기능은 시간적 한계를 소거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되풀이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글쓰기의 세 번째 기능은, 단순히 향락의 무한정한 되풀이를 도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상상력으로 하여금 자신의 고유한 한계들을 넘어서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현실과 관련하여서는 쾌락의 탈한계화 작업이면서, 시간과 관련하여서는 되풀이의 탈한계화 작업이라 할 글쓰기는 동시에 이미지 자체의 탈한계화 작업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미 상당한 한계들을 소거시켜 버렸던 글쓰기는 이제 범죄와 범죄 아닌 것, 허용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이 마지막 경계마저도 소거해 버립니다. 진실을 말하기란, 사드에게 있어, 욕망, 환상, 상상력을 진실과의 어떤 관계 안에 확립하는 것입니다. 이 진실과의 관계란 더 이상 욕망에 반대되거나, 욕망에 대해 안 된다고 말하거나, 욕망에게 네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어라고 말하거나, 혹은 욕망에게 넌 착각하고 있는 거야, 넌 그저 환상이고 상상일 뿐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현실원리가 존재하지 않게 될 그러한 관계입니다.

  두 번째로, 글쓰기는 욕망을 진실의 질서 안으로 진입시키는데, 이는 글쓰기가 시간의 모든 한계를 소거하고, 따라서 욕망을 되풀이의 영원한 세계 안에 도입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글쓰기는 욕망을 진실의 세계 안으로 도입하는데, 이는 글쓰기가 욕망을 위해 합법적인 것과 비합법적인 것, 허용된 것과 허용되지 않은 것,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의 모든 경계와 한계를 소거하기 때문입니다.  

  사드의 글쓰기는 외적인 진실을 통한 타인의 설득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사드의 글쓰기가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 글쓰기인 까닭은 그것이 사드가 자신의 머릿속에 품고 있을 수도 있는 진실, 혹은 사드가 인정하는 진실, 독자와 마찬가지로 저자 자신도 설득되고 마는 진실을 통하여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의도를 조금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에게 글쓰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사드에게는 이 모든 환상이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가 물질성을 부여받고, 글쓰기가 견고함을 부여받는 글쓰기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말하면 글쓰기는 어떤 한계도 없는 지점에 결국 도달하고야 만 욕망입니다. 글쓰기는 진실이 되어버린 욕망, 욕망의 형식을 지닌 진실입니다. 글쓰기는 되풀이되는 욕망, 한정이 없는 욕망, 어떤 금지의 법도 갖지 않은 욕망, 어떤 억제도 모르는 욕망, 외부가 없는 욕망이라는 형식을 갖는 진실입니다. 글쓰기는 욕망과 관련된 외부성의 철폐입니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이 사드의 작품에서 보이는 글쓰기가 실제로 성취한 바이자, 사드가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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