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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0장
발제자 연
n 대혁명 당시 민족 개념의 정치적 재가공: 시예스
n 역사적 담론에 대한 효과와 이론적 결과들
n 새 역사의 두 판독장치: 지배와 총체화
n 몽로지에와 오귀스탱 티에리
n 변증법의 탄생
18세기 전쟁을 정치관계의 주요하면서도 거의 독점적인 분석 수단으로 삼았던 것은 역사담론이었는데, 대혁명 때로부터 ‘전쟁’은 역사 담론으로부터 축소되고 제한되며 완화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역사담론에서 전쟁은 위기와 폭력으로 재 기입되었고, ‘진압’되었다.
부르주아지가 역사담론을 정치투쟁의 무기로 사용하는 데 가장 소극적이었는데, 그 소극성을 탈피하여 어떻게 역사 담론을 정치투쟁의 무기로 사용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본다. 이는 ‘민족’의 개념을 부활시키고, 정치적으로 새롭게 가공하면서부터 역사담론이 변화하였다.
시예스의 질문: 제3신분
1) 제 3 신분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
2) 정치적 질서 안에서 이때까지 무엇이었던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3) 그들은 무엇이 되려고 하는가? 무언가가 되려고 하고 있다.
민족
- 절대왕정 옹호자들: 왕의 인격 안에 그 가능성의 조건과 실체적 단위를 가질 때만 민족이 존재한다. 왕과 법률적이며 동시에 물리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 때만 민족이다.
- 반동적 귀족들: 민족을 구성하는 것은 왕이 아니다. 민족들이 다른 민족들과 싸우기 위해서 왕을 세우는 것이다.
- 시예스: 하나의 민족이 있기 위해서는 공통의 법과 하나의 입법기관이 필요하다. 이는 민족이 존재하기 위한 형식적인 조건이고, 역사적 조건으로서는 직업과 직책(직책과 기관)이 필요하다.
- 기구나 직책 같은 것들은 역사적으로는 민족이 먼저 있고 나서 생긴 결과물들에 가깝지만 시예스는 이 분석을 뒤집었다. 이는 즉, 법률과 입법기관을 만들 수 있고, 직책과 기관을 만들 능력이 있는 집단이라야 민족을 구성할 수 있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현상에 대한 시예스의 분석
- 프랑스에는 공동의 법과 입법기관이 없지만 프랑스에는 민족이 존재하기 위한 역사적 조건을 가진 개인들의 집단이 있고 ‘하나의 민족’이 있다.
- “제 3신분은 완벽한 민족이다”
이 정치적 담론의 성격
1) 특수자와 보편자 사이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
- 반동적 귀족들: 왕정의 단일체로부터 끌어낸 개체적 권리를 귀족들에게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제3신분: “우리는 다른 개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민족이다. 그러나 우리가 형성하는 이 민족이야말로 현실적으로 민족을 구성할 수 있는 유일의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사회체의 전체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의 전체적 기능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 우리는 국가적 보편성이다”
2) 요구의 시간적 축이 역전됨
- ‘요구’는 사회체 안에서 ‘한 민족에 의해 이미 수행되는 보편적인 기능이므로, 과거로부터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현재에 요구하는 것이다
정치적 결과
1) 이론적 결과: 민족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은 국가를 구성할 능력이 있는 개인들로부터 국가 그 자체의 실질적인 존재에 이르는 수직적인 관계이다. 민족의 역사적 기능과 역할은 스스로 다스리고 관리하고 통치하며 국가권력을 구성하여 그 기능을 원활히 하는 것이다. 즉 ‘국가화’이다.
2) 역사적 담론의 결과: 새로운 역사적 담론은 민족과 국가 간의, 또는 민족의 국가적 잠재성과 현실 속에 이루어진 국가의 총체성 사이에 끊임없이 직조되고 있는 관계들의 역사만을 연구할 것이다.
새 역사의 형태: 두 판독장치의 작용 또는 조정
1) 투쟁: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정복계층과 피정복계층. 18세기에 형성되어 사용되어 왔다.
2) 현재: 민족 개념을 재가공해 만든 암호판. 새로운 역사 이해의 방법론 안에서 현재는 가장 충만한 시간, 가장 밀도 높은 시간, 보편이 현실화하는 가장 장엄한 시간. 현재는 과거를 드러내 주며, 동시에 분석해주는 도구가 되었다.
3) 19세기 역사의 방법론: 지배와 총체
- ‘지배’의 방법론을 선호하면 반동적/귀족적/우익적 역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총체’의 방법론을 선호하면 자유주의적/부르주아적 역사가 생겨날 것이다.
몽로지에의 역사
- 지배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그리고 이원적 민족의 관계 및 그 이원적 민족이 반드시 가질 수밖에 없는 지배관계가 들어있다. 그리고 지배관계는 전쟁들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 왕권의 역할은 민족 외부의 집단에서부터 출발하여 하나의 민족, 하나의 다른 인민을 만들어내는 것. 거대한 계급을 새로이 형성했다. 왕은 새로운 계급의 저항을 지원함으로써 귀족의 힘을 약화시켰고 그 힘은 왕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사법부와 행정부를 이 새로운 계급에게 맡겼고, 그 과정의 최종단계는 왕과 민중계급이 대면하는 것이었다. 몽로지에는 프랑스 대혁명을 이 과정으로 보았다. 왕정이 없어지고 왕이 가지고 있던 권한은 인민에게로 이전되었는데, 몽로지에는 인민이 왕의 합법적 후손이라고 보았다.
오귀스탱 티에리의 역사
- 현재를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했다. ‘총체화’의 방법론을 써서 현재로부터 출발해서 과거를 밝히고자 하였다. ‘현재’는 민족이 국가의 형태로 총체화하는 순간이다.
- 오귀스탱 티에리는 프랑스 대혁명이 13세기 동안 지속된 정복자와 피정복자 사이의 투쟁의 마지막 에피소드라고 말한다. 즉, 오귀스탱 티에리에게 역사분석은 ‘투쟁’이나 ‘전쟁’, ‘지배’가 어떻게 없어졌는지 밝히고, 그리고 이런 싸움이 없어질 수밖에 없는 보편성의 기원으로 거슬러올라가는 것이다.
- 농촌사회와 도시사회. ‘대결’은 침입과 정복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두 사회 사이의 투쟁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도시사회가 승리했고, 이는 도시가 가진 부, 행정능력, 도덕성, 삶의 방식, 존재양식, 의지, 혁신적 사고, 행동 때문이었다. ‘보편화’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기능들이 도시의 손에서 생겨나고 도시의 손을 거쳐 간다는 사실에서 가능했다.
- 부르주아지와 제3신분의 역사 안에서 일어난 두 개의 커다란 에피소드와 두 개의 커다란 국면: 그 첫번째가 제3신분이 국가의 모든 힘이 자기 손아귀에 있다고 느낀 순간이다. 그럼에도 귀족들은 이들에게 사소한 권리도 인정하려 하지 않아, 갈등이 시작되었으며 대혁명은 이 갈등의 마지막이었다. 그 지향점은 제3신분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국가를 떠맡는 것, 그리고 이는 모든 지배관계를 사라지게 하는 보편성의 기능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 두 번째로 한 민족과 다른 민족, 한 집단과 다른 집단 상호간에 작용하는 지배관계는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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