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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G. 융 <인간과 상징> 1부. 무의식에 대한 접근
초코
“우리는 일상의 경험에서 어떤 사실을 되도록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언어에서든 사고에서든 공상적인 요소는 버려야 한다고 배운다.”(58) “우리는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세계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60)
카를 융이 처음에 독자를 설득하려 한 것은 ‘이 세상에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서는 것들이 무수히 존재한다.’(22)는 명제였다. 인간의 지각과 감각으론 닿지 않은 영역이 있다는 사실 자체 말이다. 어떤 기구를 사용하더라도 인간은 어느 시점에서인가 더 이상 느끼고 이해할 수 없는 범위가 오고, 이 범위를 넘어서면 더 이상 인간의 의식과 지식이 통과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호소했다. 심지어 현실을 지각할 때조차 우리는 현실의 풍경이나 소리를 각자 마음의 영역으로 옮겨오는데, 마음의 영역에서는 현실의 일은 마음의 일들이 된다. 융은 이를 ‘심적 사상’(24)이라 했다. 중요한 것은 이 심적 사상의 궁극적인 정체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초기 많은 과학자나 철학자들은 무의식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들은 심적 상태를 추정하고 연구한 심리학자들에 대해 한 개인 안에 두 개의 주체(인격)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융의 생각에, 인격의 분리 현상은 병적인 징후가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었다. 의학적인 연구를 통해 축적된 증거가 없더라도 <무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논거를 논파할 ‘논리적인 근거’(<생각나지 않는 상태>(41), <히스테리>(42), <망각>(45), <방아쇠 효과>(46))는 얼마든지 있으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새것,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낡은 <쇄신 공포증>에서 비롯된 것(27)일 뿐이라고 융은 말했다.
융은 이 마음속에 자리한 미지의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 미개인의 원시적 심성을 예로 들었다. 미개인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으며 간혹 자신을 코뿔새나 사자라고 믿는 등 혼이 깃든 사물이나 동물에게 심리적 동일성을 느꼈다. 다른 존재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프랑스 민속학자는 이를 <신비적인 관여>(27)라 했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는 여러 개의 혼이 있다고 믿기도 했는데 이는 개인의 마음이라는 것이 안전하게 결합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을 시사한다. 이런 관점은 현대에서도 유효하다. 고도 문명에서도 자기 통제는 여전히 어려우며, 단일한 의식이라는 개념은 공고하지 못하다.
꿈이 의식적인 생각이나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가정 아래, 프로이트 요제프 브로이어 등 몇몇 선구자들이 연구를 진행했고, 분열의 결과인 신경증(히스테리)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의견을 모았다. 다시 말해 신경증은 “무의식이 꿈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듯이 스스로를 표명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29)였다. 나아가 꿈의 상징은 신경증의 증상보다 훨씬 풍부하고 변화무쌍했다. 프로이트는 <자유연상법>(30)을 고안했다. 환자에게 꿈의 이미지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했고, 환자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통해 그 병의 무의식적 배경을 읽어내려 했다. “환자가 숨기고 감추려 할수록, 도리어 그가 하는 모든 말이 그 자신이 처한 곤경의 핵심을 가리키기 마련이다.”(31) 그 결과로, “억압과 욕구 충족이 꿈 상징의 원인”이라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탄생했다.
그러나 카를 융의 목적은 신경증적 장해를 일으키는 콤플렉스의 발견보다 더 원대한 데 있었다.(34) 프로이트의 <자유연상법>은 “꿈을 꾼 사람을 꿈의 내용물로부터 갈지자로 유리시켜 버리”지만 융은 꿈에 드러나는 환상적 소재 그 자체에 주목했다. 환자의 서술을 통해 꿈의 이미지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환자가 꿈에서 자꾸 벗어나려 하면 무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프로이트는 꿈을 통해 (성적) 억압을 드러내려고 하는 반면, 융은 꿈 자체가 개인에게 지니는 특별한 의미와 그 기능을 주목했다.
융은 무의식은 우선 꿈 소재를 산출함으로써 심적 평형을 회복시킨다(66)고 했다. 융은 이것을 “우리 심리 구조에서의 꿈의 보완적/보상적 역할”이라고 불렀다. 가령 너무 고독해진 나머지 정신적 혼란에 빠진 등대지기의 무의식은, 환각적인 말동무를 만들어 혼란을 ‘보상’한다. 다른 한 편 융은 무의식이 위험에 대해 경고를 주기도 한다고 했다. “우리 삶에서 위기라고 하는 결과는 기나긴 무의식적 역사를 지”(69)니고, 위험이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이 미처 깨닫지 못했을 때 무의식이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으로 볼 때, 정신적 안정과 생리적 건강을 위해서는 의식과 무의식이 총체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하고 서로 평행을 이루며 작용해야 한다고 융은 말했다. “꿈 상징은 인간 마음의 본능적인 부분이 합리적인 부분에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 전달 부호”(70)인 셈이다.
융은 실제로 환자들의 꿈을 해석할 때마다 한 가지 원칙을 세워 지켰다. “꿈의 상징은 그 꿈을 꾼 사람과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어떤 꿈에 대해서도 단정적이고 직접적인 해석은 있을 수 없”(72)었다. 융은 꿈의 분석이 기계적인 기술로 취급되는 것을 우려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꿈을 꾼 개인의 독특한 심리적 인격은 사라지고 치료의 문제는 단순한 질문의 차원으로 환원되어 버리고”(80)말 것이었다. 융은 프로이트의 해석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면서 다음과 같은 통찰도 얻었다. “나의 꿈은 <나 자신>이고, <나의> 삶, <나의> 세계, 타인이 나름의 이유나 목적에서 만들어 낸 이론적인 구조와는 전혀 다른 전적인 나의 현실이다.”
융의 심리분석의 목적은 “환자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고 보존하여, 그가 자신의 뜻에 따라 삶의 길을 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데”(80)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야말로 유일한 현실”(81)이란 사실을 깨닫고 “개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공부해야 했다. “한 인간의 현재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며, 그래서 “신화와 상징의 이해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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