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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삶--형태

목적 없는 수단 -아감벤 (20.05.10).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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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라는 용어를 통해서 우리는 그 형태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삶, 그것으로부터 발가벗은 생명 같은 것(14)을 결코 고립시킬 수 없는 삶을 가리킨다.

이 삶에서는 살아가는 모든 방식, 모든 행위, 모든 과정이 결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항상 무엇보다 삶의 가능성이며, 항상 무엇보다 역능(잠재태)이다

이와 반대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권력은 항상 최종심에서는 삶의 형태라는 맥락에서 벌거벗은 생명의 영역을 분리해내는 데 기초하고 있다. 토마스 홉스가 주권을 정립할 때 자연상태에서의 삶은 그 존재가 무조건적으로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만인에 대한 만인의 무제한적인 권리 p15)에 의해서만 정의된다. 정치적 삶, 즉 리바이어던의 보호 아래에서 전개되는 삶도 그와 똑같은 삶에 불과할 뿐이다.

정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예외상태에서 삶은 모든 영역에서 삶의 형태가 단일한 삶--형태로 응집되지 못하도록 그 형태를 분리해내는 벌거벗은 생명이다.

정치적 통제를 목적으로 과학을 빙자하는 사이비 개념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 벌거벗은 생명의 추출과 똑같은 추출이 오늘날에는 사이비-과학적 표상에 의해, 또한 삶과 개인의 상상력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을 의료화함으로써 대대적이고 일상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정치적인 삶, 즉 행복이라는 관념으로 정향되고 삶--형태 안에 응집되는 그런 삶은 이런 분열에서 해방됨으(19)로써만 일체의 주권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엑소더스를 감행함으로써만 사유될 수 있다.

우리는 삶의 형태를 삶을 그 형태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맥락으로, 즉 삶--형태로 구성하는 관계를 사유라고 부른다.

7. 모든 소통은 이미 현실태로 있는 공통된 것의 소통이 아니라 잠재적인 소통가능성의 소통이다.

8. 맑스가 말한 일반지성은 사유의 역량 그 자체에 내재하는 몰티투도를 명령한다. (23)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삶--형태로 구성해내는 통일의 역량. 모든 영역에서 벌거벗은 생명을 삶의 형태와 분리함으로써만 자신을 긍정할 뿐인 국가의 주권성에 맞서, 지적 능력과 사유는 삶과 그 형태를 끊임없이 다시 묶어주고 삶으로부터 형태가 분리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량이 된다. 이 사유, 이 삶--형태는 벌거벗은 생명일랑 인간과 시민에게 내버려두고, 도래하는 정치의 길잡이 개념이자 단일한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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