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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진리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1277년의 단죄 이후 14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다.

철학의 결론이 신학적인 결론으로 귀결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담론과 신학적 담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개별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모든 형태의 진실이 반드시 신학적 진실과 일치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개적인 의혹이 제기되었다. 뿐만 아니라 앎의 통일성은 우연적인 세계, 다시 말해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전지전능한 신이 무수히 많은 가능성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해서 질서를 부여한 세계의 풍요로움에 종속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4세기의 문화는 진실의 복수적인 성격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였다.(p. 803)

 

신의 전지전능함과 세계의 가능성

1.1 신의 형상

신의 절대적 능력정제된 능력의 구분은 완벽한 존재로서의 신이 가지는 전지전능함과 신이 세상의 질서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도구로 사용하는 계율 사이의 변증적 대조를 토대로 이루어진다.(p. 806)

 

모든 것이 가능하기(마태복음1926) 때문에 신은 무한히 가능한 세계들 가운데 어떤 세게를 창조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으며, 만족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원한다면 일말의 후회 없이 창조한 세상의 질서를 뒤엎을 수 있다.

 

세상의 질서는 결정적으로 필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과 신의 약속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한계 안에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주권자 신은 자신의 고전적인 이미지, 즉 고대 말기에 세상사의 질서를 보장하던 전지전능한 존재의 이미지와 화해를 도모해야 했다.

 

그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비롯된 일련의 조건들이 주어진 만큼 신은,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더 이상 주사위 놀이를 할 수 없고현실세계를 뒷받침하는 법칙들의 영역 안에서 스스로의 힘을 사용해야 했다.

 

중세 사상은 신의 이미지가 이런 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거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신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신의 절대적 능력이라는 주제, 즉 애초에 신이 가지고 있던 무수히 많은 창조 가능성들의 총체라는 주제를 정제된 능력과의 관계 속에서, 즉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전시켰다.(p. 807)

 

1.2 신의 전지전능함

신의 의지와 능력 혹은 무능력 간의 관계 문제

 

데지데리오: “신의 전지전능함이란 바로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 무능력이 곧 의지의 부재와 일치한다는 견해 동반

피에르 다미아니: 신의 절대적인 능력은 오히려 인간의 한시적인 인식능력을 초월하는 신의 자유, 즉 어떤 세계의 질서를 선택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총체적인 자유로 이해해야 함.

아오스타의 안셀무스: 신이 자신의 절대적은 능력을 어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의적으로 제한한 뒤에 이어서 모종의 행동을 선택한다고 보았음.(p. 808) 신의 무능력의지의 부재와 불일치.

피에르 아벨라르: 선택의 우연성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의지의 주체인 신에게 있으며 신의 전지전능함은 그의 본성에 준하는 한도 내에서 발휘됨.

 

이후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 ‘신은 할 수 있었지만 원하지 않았다’(p. 809)

 

1.3 신의 절대적인 능력과 정제된 능력의 구분

절대적 능력: 신이 가지는(혹은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

정제된 능력: 신이 기원이 되는 체제와 그가 부여하는 가능성 속에서 인식될 수 있는 능력

 

신의 능력에 대한 두 가지 논의 방식

신의 뜻이나 현실을 통한 신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신의 능력에 대해 순수하게 논리적으로만 토론

신이 실제적으로 선택했고 선택하는 행동의 차원과 관점에서 토론(p. 810)

 

1.4 절대적 능력과 완전한 권력: 두 종류의 방식에서 두 종류의 권력으로

13세기에 이루어졌던 수많은 해석의 방식들을 크게 두 범주로 분리시켜 신적권능의 구분법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해석은 신의 절대적인 능력이 수많은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총체적인 능력과 일치한다고 보고, 정제된 능력은 자유의지에 의한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신의 선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두 번째는, 정돈된 체제가 일상의 질서를 선택한 신의 결정을 반영한다면, 그의 절대적인 능력은 그가 선택한 질서에서 벗어날 때 그 질서를 유보시킬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고 보는 해석이다.(p. 811)

 

둔스 스코투스가 부분적으로나마 다시 연구한 이 두 번째 해석은 법학과 특히 교회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13세기 후반부터 이 신적 권능의 구분법은 교황권의 역할을 정의하는 데 활용되기 시작했다.(p. 811-812)

 

두 종류의 신적은 더 이상 신의 동일한 권능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이 아니라 두 가지 상이한 행동 방식을 의미했다. 이러한 문제와 이 문제가 동반하는 위험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던 인물은 윌리엄 오컴이다.

 

1.5 둔스 스코투스와 세계의 질서

둔스 스코투스는 신의 절대적이 능력이 현실세계의 질서와 일치하며 신은 그가 선택한 특별한 질서와의 관계 속에서만 현실세계에 관여한다고 보았다.

 

스코투스에게 신이 정제된 능력에 따라 역사한다는 것은 어쨌든 법에 따라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절대적인 능력에 따른다는 것은 반대로 법과는 무관하게(따라서 때로는 법을 거스르며), ‘사실에 근거해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했다.(p. 813)

 

1.6 윌리엄 오컴: 절대적인 능력과 시간과 반사실적 가정

오컴의 입장은 신이 행동을 취하기로 결정한다면 정제된 능력에 따라 행동해야만 하며 신의 절대적인 권능이란 이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할 뿐 기존의 질서를 또 다른 질서로 대체하면서 갑작스럽고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의 절대적 권능은 신이 무언가를 다른 방식으로 실현할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과 상응할 뿐 현실 속에 실재하는 것을 그것과 다른 무엇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p. 814)

 

1.7 가능한 세계들, 자유, 우연성

14세기에 이러한 구분 자체는 점점 더 빈번하게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들의 분석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이에 따라 절대적 능력정제된 능력의 관계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신의 권능을 구분하는 방식은 점차적으로 권능의 주체()와 그의 선택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벗어나, 그레고리오 다 리미니의 경우에서처럼, 권능의 실현 대상, 즉 자연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능력정제된 능력의 구분은 점점 더 본격적인 사고 훈련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학자들은 이러한 도구를 바탕으로 일련의 행위와 행위의 동기를 연결하는 필연성의 유형, 이미 실현된 가능성의 영역과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의 차이, 반사실적 가정들, 자연적인 사건들의 지속적인 발생에 대한 확신과 진실의 가치를 전복시킬 수 있는 시간적 단절 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p. 816)

 

14세기 중반에 이르면, 이제는 가능한 것과 사실적인 것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전적으로 논리적이며 인식론적인 도구로 변해 버린 신적 권능의 구분법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들이 등장한다.(p. 817)

 

신적 권능의 구분법에 대한 중세 논쟁의 풍부함은 한편으로 이러한 해석들이 결코 보편화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절대적인 능력과 정제된 능력의 역사는, 중세의 신학과 철학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어떤 식으로 원래는 순수하게 도구적인 차원에서 발전했던 권능의 구분법이 현실세게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해석을 탄생시켰고, 심지어는 다양한 세계의 존재 가능성과 이들의 존재 규칙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적 가설들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p. 818)

 

2. 둔스 스코투스

2.2 인간의 영혼과 지식

대부분의 중세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둔스 스코투스 역시 인간의 존재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적 능력과 의지를 지닌 이성적인 영혼이 바로 인간이라는 특별한 존재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징이라고 가르쳤다.

 

둔스 스코투스에 따르면 영혼은 의지나 지성과 일치하지 않고 의지가 지성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성과 의지는 영혼의 잠재력으로서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고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 역시 지성과 의지 없이는 존재한다고 볼 수 없었다.

 

둔스 스코투스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직관이며 다른 하나는 추상이다.(p. 821)

 

둔스 스코투스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나그네인 인간의 지성은 알고자 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상에 직접적으로 다다르지 못하고 직관을 통해 마땅히 드러나야 할 대상의 모든 특징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인간은 항상 추상에 의존한다.

 

따라서 지성의 행위는 언제나 추상 행위라고 볼 수 있다.(p. 822)

 

2.3 신학: 하나의 실용 학문

이전 시대의 수많은 신학자들과는 달리 둔스 스코투스는 신앙과 이성이 결코 중첩될 수 없는 상이한 차원에 머문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둔스 스코투스는 신학이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신학은 행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계율의 적용을 전제로 하는 학문이었다. 신학은 진실을 가르치지만 그것을 관조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대신 삶에 적용하라고 가르치는 학문이었다.(p. 823)

 

2.4 형이상학

둔스 스코투스는 신학이 최고의 실용적 학문이라면 최고의 이론적 학문은 형이상학 이라고 보았다.

둔스 스코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증명 방식이 신학 분야에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 했다.

 

실재의 단일성 이론

그는 실재가 신과 피조물에 대해 동일한 의미의 수식어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재의 이러한 정의는 여기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성이 항상 감각적인 경험을 토대로 구축되는 개념들의 점차적인 초월을 통해 보다 보편적인 정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스코투스 형이상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

(1) 유한한 존재에 존재본질을 모두 포함하는 유일한 구도가 내재한다는 생각의 거부

(2) 개별성의 원리가 개별적인 차이와 일치한다는 원리

(3) 장르와 특별한 차이점의 관계, 공통점과 차이점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구분법, 즉 형식적인 구분법의 도입이다.(p. 824)

 

2.5 우연과 자유

둔스 스코투스는 신의 잠재력만 무한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의지 역시 절대적으로 불확정적이며 모든 종류의 외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보았다.

 

이 세상을 원해서 창조하기로 한 순간에도 신은 얼마든지 또 다른 세상을 기대하거나 고안할 수 있었다. 이는 곧 이 세상이 우발적인 세계라는 것을 의미한다.(p. 827)

 

둔스 스코투스는 아울러 최초의 원인에 내재하는 우발적인 성격으로부터 온 우주의 우발적인 요소들이 유래한다고 보았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입장과는 달리, 즉 모든 사물이 그 자체로 필연적이며 완벽한 지고의 원리를 향해 움직인다는 견해와는 달리 우연성이, 특히 이 세상의 우발적인 성격이 결함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둔스 스코투스는 인간의 자유가 피조물이 지니는 우연성의 가장 고귀한 표현이라고 보앗다. 인간의 자유 역시 신의 자유로운 창조 의지와 행위로부터 유래하며 인간의 의지가 지니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 자유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p. 827)

 

의지가 지성에 비해 우월하다는 점

1) 지성이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의지이지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2) 의지가 지성의 판단에 반대하거나 그것을 부시할 수 도 있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위는 책임감을 가지고 선을 추구하기로 선택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다.(p. 828)

 

2.6 정치적 권력과 국가

둔스 스코투스는 정치적 권력이 원죄에서 유래한다고 보았다. 즉 인간이 낙원에 머물며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고 욕망을 절제할 줄 알았던 시기에는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었지만 죄를 짓고 부패한 뒤로는 사유재산의 제도화가 요구되었다고 본 것이다.

 

사유재산의 제도화는 사유재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실정법의 탄생과 함께 법 준수를 책임져야 하는 정치권력의 탄생을 가져왔다.

 

둔스 스코투스는 국가의 권력이 기본적으로 가부의 권력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정치와 관련하여 둔스스코투스가 무엇보다 강조했던 것은 정부의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의 정당성은 동의를 기반으로 하며, 지도자에게 정치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공동체라는 점이다.(p. 829)

 

2.7 개인의 윤리와 철학

둔스 스코투스가 의지의 절대적인 불확정성을 부각시키면서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은 한 인간의 자유와 그것의 선택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이다.

 

도덕적인 차원에서 행위의 좋고 나쁨은 행위의 목표와 목적을 기준으로 판단된다.

 

행동의 도덕성은 행동이 자유로운 이성적 판단과 자유의지에 기초하는 책임감 있는 선택에서 비롯된 결과일 때 정체를 드러낸다.

 

어떤 도덕적 행위가 훌륭하기 위해서는 행위의 결과가 선하거나 가치 있는 일이어야 하고 행위 주체가 이를 분명히 의식하고 선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차원에서 그것을 원해야 한다. 이상의 조건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인간의 행위는 도덕적 선의 바깥으로 추락한다.(p. 830)

 

한 인간이 선을 행한다는 확신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악을 행할 때 그의 행동은 결코 무고하다고 볼 수 없으며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직하게 행동하지만 신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때에도 이를 훌륭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p. 831)

 

3. 윌리엄 오컴

3.1 한 자유로운 신학자의 인생

오컴에게 세계는 독특한 실체와 개별적인 존재들로 구축되는 우발적인 세계였다.

 

가장 우선적으로 인식되는 대상은 다름 아닌 개별적인 사물들이다. 정신은 이들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다시 말해 사실상 증명할 수 없고 어떤 사전 지식에서 비롯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형태의 앎을 통해 인식한다. 이러한 앎의 형태를 직관이라고 불렀다.

 

윌리엄 오커은 둔스 스코투스의 견해를 받아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투스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는 공통적인 본질’, 즉 두 가지 이상의 개별적인 사물들 사이에 유사성을 구축하거나 정당화하는 독특하지 않은 현실 내지 공통점이라는 개념을 전적으로 거부했다. 윌리엄 오컴에게 개별적인 사물들을 인식하는 가장 우선적인 기준은 다름 아닌 이들의 독특함이었다.(p. 833)

 

윌리엄 오컴은 보편적인 개념들이 그것을 표현하는 용어의 영역을 뛰어넘어 또 다른 현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오류는 흔히 사상적 언어에 독립적인 현실을 부여하려는 억측에서 비롯되며 이 사상적 언어는 오히려 인간이 인식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구축하는 담론 방식에 가까웠다.(p. 834)

 

3.2 논리학과 신학, 그리고 우연성

윌리엄 오컴에 따르면 엄격하게 논리적이고 언어학적인 분석철학의 과제는 무의미하게 확산되는 철학적, 신학적, 정치적인 문제들을 존재론적이고 인식로적인 절제의 원리로 축소시키는 것이다.이것이 이른바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불리는 규칙이다.(p. 834)

 

오컴은 인간이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세상은 사건들의 우발적인 성격으로 인해 피조물들이 모든 것을 전지전능한 신에게 맡겨야 할 정도로 부족한 세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선택을 주도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윌리엄 오컴의 언어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호의 개념을 파악해야 한다. ‘기호는 무언가를 알리는 동시에 동일한 것을 의미하거나 어떤 문장 안에서 동일한 기호를 부연할 운명에 놓인 모든 것을 가리킨다.

 

용어의 대체이론이란 한 문장 안에서 무언가를 가리키며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용어의 활용에 관한 이론이다. )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기호가 수행하는 기본적인 인지 기능의 특징은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스스로의 의미를 가리키며 있을뿐이기 때문에 새로운 앎을 생산해 내고 기존의 어떤 내용에도 좌우되지 않으면서 앎의 영역을 확장시킨다는 데 있다.(p. 836)

 

3.3 존재론과 언어

윌리엄 오컴은 음성 언어와 개념이 서로 분명히 구별되면서도 하나의 위계적인 질서 속에서 연결되어 있는 두 종류의 의미작용 체제라고 보았다.(p. 837)

 

무언가를 직접 가리키면서 동시에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 이른바 절대적인 용어들이 존재하는 반면, 절대적인 용어에서 유래하는 이른바 함의적인 용어들이 존재한다.

 

용어의 유형을 구분하는 작업은 철학과 언어학 및 존재론 분야에서 이루어진 오컴의 정확한 선택과 연관된다.(p. 838)

 

개별적인 현실을 인식하는 사고 활동의 정체와 개념의 정체가 일치한다는 생각은 인식론적 차원에서 인간과 현실 사이에 어떤 종류의 중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직접적인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p. 834)

 

3.4 직관과 추상: 개별적인 것에 대한 앎

윌리엄 오컴은 지성과 현실세계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모든 실체를 배제했다.

 

윌리엄 오컴은 사실상 직관을 통한 앎과 추상을 통한 앎을 모두 단순한 앎으로 간주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신의 절대적인 권능이라는 개념, 즉 모순을 동반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신의 능력이다. 윌리엄 오컴은 만에 하나 신이 스스로가 창조한 자연적 질서와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잠재력을 발휘해 일상세계에 개입하기로 결심한 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앎의 대상을 파괴한다고 해도, 그 대상에 대한, 즉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직관적인 앎도 마찬가지로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p. 839)

 

정신 혹은 이성적 영혼 속에 존재하는 기량으로서의 인식 활동은 앞서 가정한 신의 특별한 개입이 현실화되는 경우에도 대상의 조재와는 무관하게 전개될 수 있다.

 

윌리엄 오컴이 가정하는 신의 특별한 개입은 무엇보다도 인식 과정의 본질적인 요소를 탐구하기 위해 인식 대상의 존재와 앎 사이의 결속력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윌리엄 오컴에게 직관적인 앎이란 하나의 사물은 존재할 때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앎을 의미했다.

 

3.5 학문과 학문의 대상들

윌리엄 오컴은 학문이라는 말의 의미를 네 가지로 구분했다.

1) 참인 명제에 대한 일련의 확실한 지식들(p. 840)

2) 직접적인 앎 혹은 언어에 의해 중재된 앎을 토대로 하는 하나의 옳은 명제에 대한 명확한 지식

3) 필연적인 명제, 즉 언제나 참인 명제에 대한 명확한 지식

4) 필연적 전제로부터 정확한 삼단논법을 통해 얻어 낸 필연적 진실에 대한 명확한 지식

 

윌리엄 오컴에게 학문의 주제는 익히 알려진 명제 속의 주제였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인식 성향들의 총체로 간주되는 학문의 유일한 주제는 존재 할 수 없었다.(p. 841)

 

3.6 오컴주의와 유명론: 언어학 혁명

윌리엄 오컴의 저서들이 파리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오컴주의의 과도한 열기는 그의 사상에 대한 금지령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제재조치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오컴의 사상은 상당히 넓은 독자층의 지지를 얻었다.

 

앎의 대상을 구축하는 명제와 용어들에 대한 논리적 분석의 치밀함 때문에 이른바 유명론으로 불리는 윌리엄 오컴의 사상은 단순히 보편성의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 그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개별적인 현실이라면, 유명론자들이 보편적인 것을 개념으로 축소시킨다고 해서 이러한 현실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p. 84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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