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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수단」 조르조 아감벤
7. 『스펙터클의 사회에 관한 논평』에 붙이는 난외주석 2020.7.5. 바다사자
전략가
드보르의 책들은 오히려 저항 혹은 엑소더스를 위한 매뉴얼이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어떤 독특한 전략가의 저작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가 행동하는 장은 현실태로서의 전장이 아니라 순수한 지성의 역량[잠재태]이다(83).
판타스마고리아
자본의 ”이미지 되기“ 는 상품이 행하는 최후의 변신일 뿐이다. 거기에서 교환가치는 이제 사용가치를 완전히 가려버리고, 사회적 생산 전체를 위조한 뒤에 삶 전체를 지배하는 절대적이고 무책임한 주권의 지위에 도달할 수 있다. (상품이 처음으로 베일을 벗고 자체의 신비를 전시했던) 하이드파크의 크리스털 궁전은 이런 뜻에서 스펙터클에 대한 예언, 혹은 오히려 19세기가 20세기에 대해 꾸었던 악몽이다. 이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이 상황주의자들이 스스로에게 부과했던 첫 번째 임무이다(85).
발푸르기스의 밤
드보르의 담론은 풍자가 입을 다무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 언어활동의 옛집(그리고 그곳과 더불어 풍자의 바탕이 되는 문학 전통)은 이제 처음부터 끝까지 위조되고 변조된다. 드보르는 최후의 심판이 이미 일어났고 그 심판에서 참이 거짓의 한 계기로밖에 인정받지 못한 뒤에야 말하기 시작한다. 언어에서의 최후의 심판과 스펙터클의 발푸르기스의 밤은 완벽히 일치한다. 이 역설적인 일치는 드보르의 목소리가 화면 바깥에서 영속적으로 메아리쳐오는 바로 그 장소이다(87).
상황
상황이란 ”집단적으로 통합된 환경을 조직하고 [주변의] 사건들로 자유롭게 유희함으로써 구체적이 (87)고 계획적으로 구축한 삶의 순간“이다.
상황의 실제 본성은 우리가 상황을 그 자체의 고유한 장소에 역사적으로 위치시키는 한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삶을 무능하게 만들기 위해 환경과 사건을 ”구체적이고 계획적으로“ 조직하는 자본주의에 맞서 상황주의자들도 매우 구체적인, 그러나 정반대의 기획을 제시했다. 상황주의자들의 유토피아는 완전히 장소/공간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토피아는 자신이 전복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일어나는 곳에 위치하기 때문이다(88).
구축된 상황에서 결정적인 것은 세계를 거의 손대지 않은 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메시아적 전위(전위/위치바꿈에서 ‘약간만 옮겨 놓아도’라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 어렵다. 그 정도를 알아내는 것이 곤란하며 이 세계에 대해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메시아의 도래가 필요하다/도래하는 공동체)이다(89).
무대 위에서나 구축된 상황에서나 일어나는 것은 어떤 잠재태의 현실화가 아니라 차후에 있을 역량의 해방이다. 몸짓은 삶과 예술, 현실태와 잠재태, 일반과 특수, 텍스트와 상연이 마주치는 그 교차점을 가리킨다. 개인의 전기에서 벗어난 삶의 조각, 미학적 중립상태에서 벗어난 예술의 조각, 그것은 순수한 실천이다. 사용가치도, 교환가치도, 전기적인 경험도, 비인칭적 사건도 아닌 몸짓은 상품의 이면이다. 몸짓 때문에 “공통된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는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90).
아우슈비츠/티미쇼아라
오늘날 세계 정치는 집중된 스펙터클(동구의 인민민주주의들)과 산재된 스펙터클(서구 민주주의들)이 통합된 스펙터클 속에서 하나의 실체로 통일된다. 두 세계를 나누며 꿈쩍도 않던 벽과 철의 장막이 며칠 만에 치워졌다. 동구 정부들은 통합된 스펙터클이 자국에서도 완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레닌주의 정당의 추락을 방치했다. 서구 정부들은 오래 전부터 다수결의 투표기계와 미디어의 언론통제(이 둘 모두 근대 전체주의 국가에서 발전됐다)라는 이름으로 권력의 평형, 사유와 소통의 실질적 자유를 포기했다(91).
때때로 위조라는 것이 뻔히 보였는데도 불구하(92)고 그 위조는 세계 미디어체계에 의해 진짜로 인정됐다. 분명히 이제 진짜는 가짜의 필연적 운동 속에서 하나의 계기에 불과했다. 이렇게 참과 거짓은 식별불가능하게 됐고 스펙터클은 스펙터클을 통해서만 정당화됐다(93).
셰키나
스펙터클이 언어활동, 소통가능성 자체 그리고 인간의 언어적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는 그저 생산적 활동을 수용하는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언어활동 자체의 소외, 로고스의 소외로 향한다. 공통적인 것(로고스)을 수용하는 극단적 형태가 스펙터클, 요컨데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다(93).
스펙터클에서는 우리의 고유한 언어적 본성이 뒤집혀진 채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스펙터클의 폭력은 파괴적이다. 또한 그래서 스펙터클은 긍정적 가능성 같은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이용해야 한다.
구체제에서는 인간이 지닌 소통적 본질의 외화가 공통의 토대로서 기능하는 전제조건으로 실체화했다. 그러나 스펙터클의 사회에서는 이 소통성 자체, 이 유적 본질이 자율적 영역으로 분리된다. 이제 소통가능성 자체가 소통을 가로막는다. 인간들은 자신을 이어주는 것에 의해 분리된다. 저널리스트들과 언론통치가들은 인간의 언어적 본성의 이런 소외를 설파하는 새로운 성직자가 된다(95).
스펙터클 사회에서 세키나의 고립은 극단적인 단계에 도달했다. 이 단계에서 언어활동은 하나의 자율적 영역으로 구성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어느 것도 계시할 수 없(95)고 기껏해야 모든 것의 무를 계시한다.
현대 정치는 지구 전체에 걸쳐 전통과 신앙,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와해시키고 비우는 파괴적인 언어경험이다(96).
이 경험을 끝까지 완수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들(언어활동을 언어활동 자체로 만드는 사람들)만이 전제조건도 국가도 없는 공동체의 첫 번째 시민이 될 것이다(97).
텐안먼
통합된 스펙터클-국가는 국가형태의 마지막 진화단계다. 그것은 사실상 일종의 초국가적 경찰국가를 구성하는 경향이 있다(97). 세계의 스펙터클-민주주의 조직은 사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참주정이 될 위험이 있다. 참주정이 맡을 임무는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세계에서 인류가 생존하도록 관리하는 것일테지만 성공여부는 확실치 않다. 국가는 그 어떤 정체성의 요구라도 인정할 수 있으나 독특성들이 정체성을 요구하지 않고 공동체를 이룬다는 사실, 사람들이 귀속(98)으로 재현할 수 있는 어떤 조건 없이 함께-귀속된다는 사실, 바로 이런 것들을 국가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스펙터클 사회는 모든 사회적 정체성이 와해된 사회이다. 수세기 동안 지상에서 이어진 세대들의 영고성쇠를 구성했던 모든 것이 이제 모든 의미를 상실해버린 사회이다. 도래하는 정치는 국가와 비-국가(인류) 사이의 투쟁이며 임의의 독특성들과 국가조직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탈구/분리이다(99).
귀속 자체, 즉 자신이 언어활동-안에-있음을 고유화하려는 임의의 독특성, 그 때문에 모든 정체성과 귀속조건을 굴절시키는 임의의 독특성이야말로 도래하는 정치의 주체적이지도 사회적으로 정합적이지도 않은 새로운 주인공이다(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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