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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수단조르조 아감벤

 

8. 얼굴 2020.7.11. 바다사자

 

 

언어활동은 자연을 얼굴로 변형하는 전유이다.

얼굴은 인간의 돌이킬 수 없는 노출됨이자 이 열림 속에 스스로 은폐된 채로 머묾이기도 하다. 얼굴은 공동체의 유일한 장소, 유일하게 가능한 도시이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있어서 정치적인 것을 향해 여는 것은 각자가 항상 이미 빠져 있는 진리의 희비극이며 각자는 그것의 해결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102).

얼굴의 드러냄/계시는 언어활동 자체의 드러냄이다(102).

드러냄은 그저 열림이며, 그저 소통가능성이다. 얼굴빛 속에서 거닌다는 것은 이 열림이라는 것, 이 열림을 겪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얼굴은 무엇보다도 드러냄을 겪음이자 언어활동을 겪음이다(103).

노출은 정치의 장소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재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즉 자신의 겉모습 자체를 전유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미지를 사물과 분리해 이름을 붙인다. 인간은 열림을 하나의 세계로, 그러니까 어떤 병영도 없는 정치투쟁의 장으로 변형시킨다. 진리를 대상으로 삼는 이 투쟁은 역사라고 불린다(104).

이미지는 그 허구성을 공개적으로 보여줄 때 더 설득력 있게 보인다는 것이다(105).

얼굴은 은폐되는 한에서만 드러내며, 드러내는 한에서만 은폐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겉모습의 희비극이라고 부른다(105). 얼굴은 진리의 장소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직접적으로 가장의 장소이자 환원불가능한 비고유성의 장소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은 가장 공허하고도 비실체적인 것, 즉 진리이기 때문이다(105).

진리, 얼굴, 노출은 오늘날 지구적 내전의 대상이다. 정치인들·미디어 통치가들·광고업자들은 얼굴, 그리고 이 얼굴이 여는 공동체의 비실체적 성격을 이해했다. 인간들은 무엇보다 순수한 소통 가능성(, 언어활동)을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는 인간의(106) 얼굴이 그 자체로 출현하는 소통적 공허로서 떠오른다. 정치가들과 미디어 통치가들은 이 텅 빈 공간을 확실하게 통제하려고 애쓴다(107).

순수한 소통가능성일 뿐인 한, 인간의 얼굴은 모두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울지라도 항상 심연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자신의 소통가능성의 심연을 감수하고 두려움이나 자기만족 없이 그 심연을 노출하는 데 성공하는 얼굴만이 무사할 수 있다(107).

캐릭터란 인간이 말 속에서 구축하는 과묵함이다. 얼굴은 자신의 벌거벗음 속에서 안면을 노출하는 것이며, 캐릭터에 대해 거두는 승리, 말이다(108).

인간을 현시하는 모든 겉모습은 인간에게 비고유하고 작위적인 것이 된다. 진리는 그 자체로 우리가 고유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겉모습과 비고유한 것의 포착이자, 그것들의 노출과 다르지 않다(108).

인간의 얼굴은 자신의 구조 자체에서 자신을 구성하는 이중성을, 고유한 것과 비고유한 것, 소통과 소통가능성, 역량[잠재태]과 행위[현실태]의 이중성을 재생산한다(109).

얼굴의 진리를 파악한다는 것은 유사성이 아니라 안면들의 동시성을 포착한다는 것, 즉 안면들을 한데 묶고 결합하는 염려스런 역량을 포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 얼굴은 인간 얼굴들의 시뮬타스이다(110).

내 얼굴은 나의 바깥이다(110). 얼굴에서 나는 내 모든 고유성과 더불어 존재한다. 얼굴은 모든 양태와 성질을 탈-고유화하고 탈-정체화하는 문턱이다. 그 문턱에서만 모든 양태와 성질은 순전히 소통가능해진다. 그리고 내가 얼굴을 찾는 곳에서만 바깥이 나에게 도래하며 나는 외부성과 마주치게 된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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