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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홍신문화사 1993) 2021.4.21. 바다사자
제1장 자유 - 일종의 심리학적 문제인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수백만의 사람들은 자유를 포기해 버렸다.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길을 찾고 자유의 가치를 믿지 않았다는 사실은 단지 이탈리와 독일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근대국가가 한결같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12).
파시즘을 발생시킨 여러 조건 중 인간적인 문제, 근대인의 성격 구조의 동적인 여러 요소를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13).
인간의 사회과정은 심리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인 요소들의 교(14)호작용의 문제다. 수 세기에 걸쳐서 알려진 인간상은 이기심과 그에 따라서 행동하는 능력에 의해서 자기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이다.(홉스)
프로이트는 인간성의 비합리적 및 무의식적인 측면을 밝혀 놓았을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인 현장도 일정한 법칙을 따르는 것이며 이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는 어린 시절에 받는 영향의 반작용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17). 또한,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나누는 전통적인 이분법을 받아들였다.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인 존재라서 사회는 인간을 교화시켜야 하며 생물학적 충동에 대하여 어떤 만족을 주어야 할 것이다. 사회에 의해 여러 충동이 억압된 결과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노력으로 변하며, 문화의 인간적인 기반이 된다. 이를 승화라고 불렀다. 승화가 한계 이상에 달하며 신경질적이 되며, 억압을 감소시킬 필요가 생긴다. 억압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만큼 많은 문화가 생긴다(18).
프로이트의 대인관계는 자본주의 사회 속의 경제적인 관계와 유사하다. 각자 스스로 자신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일하는 것이며 협력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이러한 관계를 조절한다. 고독하고 자기 만족적인 존재인 개인은 사고 팔고 하는 목적의 수단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경제적 관계를 맺게 된다. 충동의 만족을 위해 개인은 타인과 <물건>과의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된다. 타인은 언제나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며(19)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하나의 목적에 대한 수단이며 결코 목적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는 정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는 억압적인 기능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창조적인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성질과 정열 및 불안 등은 모두 하나의(20) 문화적인 산물이다. 인간 그 자체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창조이며 그 완성체인데 그러한 노력의 기록을 역사라고 부른다.
프로이트는 역사를 사회적으로 제약되지 않은 심리적인 힘의 결과라고 하지만 사회과정에 있어서 동적 요소인 인간적인 요인의 역할을 무시하는 이론에 단연코 반대한다. 동적인 심리학만이 인간적인 요인에 봉사할 수 있다(22).
정적인 적응이란 전체의 성격 구조에는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고 오직 새로운 습관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행동 양식에의 적응을 말한다. 동적인 적응이란 외적인 환경에 스스로를 적응시켜 가기는 하지만 그 개인 속에 어떤 새로운 것, 새로운 충동과 새로운 불안이 일어난다. 모든 신경증이란 동적인 적응의 예다. 파괴적 또는 사디즘적인 충동도 유해한 사회적 여러 조건에 대한 동적인 적응의 예다.
인간을 적응시켜가는 힘과 한계선을 생각해볼 때, 인간성 속에는 융통성이 있고 적응해 가기 쉬운 측면이 있다. 탄력성과 순응성이 있음을 보여주는데 사랑, 파괴성, 사디즘, 복종하고자 하는 경향, 권력에의 갈망, 자기 확장의 욕구, 절약에의 열의, 관능적 쾌락의 향유나 그것에의 공포 등이다(24).
융통성을 발휘하는 욕구들과는 반대로 자기보존의 충동이 있다. 어떠한 상태 하에서도 만족을 얻으려는 인간성의 한 부분이며, 인간행동의 제1차적인 동기를 형성한다(25). 생리적으로 제약된 욕구만이 인간 본성의 절대적인 부분은 아니다. 불가피한 부분이 있는데 인간의 생활양식과 습관의 본질 그 자체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외계와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라든가 고독을 피하려는 욕구가 그것이다. 고독은 정신적인 파멸을 가져온다. 여러 가치, 상징, 행동 양식과의 관련성을 상실하고 있는 상태를 도덕적 고독이라고 한다. 육체적인 고독과 마찬가지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27).
그 무엇에 <귀속>을 원하는 욕구를 불가피하게 하(29)는 요소가 주관적인 자기 의식, 즉 자기 자신을 자연 및 다른 사람들과는 판이한 개체로서 인식하는 사고능력이다. 그 자각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바로 인간을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문제에 직면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자연과 타인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의식함으로써 우주와 비교해서 자기의 존재가 얼마나 무의미하며 왜소한가를 느끼게 된다. 인간은 어떠한 조직과도 아무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면 살아갈 힘마저 마비되고 말 것이다(31).
조직에 뿌리박고 있는 삶의 양식을 받아들여야 하고 문화에 활발하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개인의 모든 행동과 감정을 자극시키는 수많은 강력한 충동이 발달했다. 충동은 강력한 것이며 그것이 발현되면 만족을 요구하게 된다. 모든 충동은 사회과정을 형성해 가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힘이 된다.
인간이 자유롭게 되면 될수록, <개인적으로> 되면 될수록 외계와 결합하든가, 자유와 개인적 자아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인연으로 외계와 결합함으로써 일종의 안정감을 찾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는 외에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다(31).
제2장 개성의 발견과 자유의 다의성
자유는 인간 존재 그 자체를 특징지으며 자유의 의미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 의식하는 정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인간의 사회적 역사는 자연이나 타인과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개인이 그가 가진 최초의 결합으로부터 점차로 벗어나는 과정, 즉 <개성화>과정은 오늘 그 절정에 달한 것처럼 보인다(34).
개인의 근원적인 결연 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 새로운 과제, 자기 자신에게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고 외계에 발을 내디뎌 안정을 찾아내야 하며 자유의 의미도 이전과는 판이한 의미를 갖게 된다(35).
어린아이는 서서히 분리된 존재로 인식한다. 자신의 행동을 통해 외부의 세계를 경험한다. 개성화의 과정은 교육과정을 통해 더욱 촉진된다. 이것은 욕망의 금지를 초래하는데 상충되는 욕망에 대한 반항심은 나와 너와의 사이를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36).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는 개성화 진전 과정은 변증법적 성질을 지닌다. 이 과정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39).
첫째, 강렬성과 적극성이 증진된다. 동시에 육체적·정서적·정신적으로 점점 종합되어 의지와 이성에 의해 하나의 조직화한 구조가 발달한다. 이를 자아라 하며 <개성화가 진전되는 과정은 자아의 힘의 성장>이다. 성장의 정도는 사회적인 여러 조건에 의해 정해진다. |
둘째, 고독이 증대한다. 타인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하나의 실체라는 자각으로 무력감과 불안감을 갖는다. |
인간은 개인이 되면 외계의 모든 무시무시하고 저항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와 마주 서게 된다. 자기의 개성을 버리고 고독감과 무력감을 이겨내고자 하는 충동이 발생한다. 이 새로운 결연은 근원적인 결연 관계가 아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개성화의 과정을 역행할 수는 없다. 구태여 그렇게 하려면 복종의 성격을 띠게 되는데 그 대가로 자신의 힘과 통일성의 포기라는 것이 요구된다. 복종의 결과는 불안감을 증대시켜 주는 동시에 적개심과 반항심을 조성한다. 이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과 자연의 자발적인 관계>인데 개성을 배제하지 않고 개인을 외계와 결합시키는 관계다. 애정과(40) 생산적인 이런 관계는 전인격의 통일성과 강력성에 뿌리가 있다.
개성화의 진전은 복종과 자발적 행동이 생기는데 제한적인 여러 결연 관계에는 방해되지 않고 개인적 자아를 더욱 자유롭게 표현하게 된다. 개성화 과정은 개인의 퍼스낼리티가 힘을 얻어가는 과정인데 타인들로부터 점점 독립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분리가 더욱 진전되면 황량한 고독에 떨어지게 되어 심한 불안과 동요를 가져온다. 그러나 내면적인 힘과 생산성을 갖고 있다면 새로운 친밀감과 연대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내면적인 힘과 생산성이 외계와의 새로운 관계가 성립되기 위한 전제가 된다. 개성화 과정은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반면에 자아의 성장은 개인적, 사회적으로부터 방해를 받는다. 이 두 경향의 지체가 참을 수 없는 고독감과 무력감을 자아내며 <도피의 메커니즘>(41), 즉 <심리적 메커니즘>을 자아낸다.
인간적인 존재란, 본능이 어느 정도 없어질 때 즉 적응의 강제성을 상실하게 될 때 행동 양식이 유전적인 메커니즘을 탈피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인간 존재와 자유는 그 발단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에서 자유란(42) <…에 대한 자유 freedom to>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라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이다.
인간과 자유의 근본적 관계는 인간의 낙원추방이라는 성서의 신화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신화도 인간 역사의 시초는 선택이라는 행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적으로 시초의 자유로운 행위는 본질적으로 죄악이다. 신의 명령에 반항하는 일은 강제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무의미한 존재로부터 인간의 수준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최초의 자유 행위는 최초의 <인간적> 행위이다(44).
자유로운 행위로서의 거역은 이성의 시작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근원적인 조화는 파괴되었다. 낙원의 달콤한 속박으로<부터>는 자유롭다. 그러나 자신을 지배하며 그 개성을 실현하는 일<에는> 자유롭지 않다.
<…으로부터의 자유>는 적극적인 자유인 <…에 대한 자유>와 같지 않다. 인간의 자연으로부터의 탈출은 대단히 오랜 기간에 걸친 과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의 일부다. 이러한 근원적 결연관계는 인간의 충분한 인간적인 발달을 방해하며 이성과 비판력의 발달을 저해한다. 자신과 타인을 오직 사회적, 종(45)교적 협동체의 일원이라는 것만 인식시킬 뿐이며 인간적인 존재로서 인식시키지 못한다.
인간의 자유가 성장하는 과정은 힘과 완성의 성장 과정이며 자연의 정복과 이성의 발달 및 다른 인간들과의 연대성이 증가되어 가는 과정이다. 한편 개성화의 증가는 고독과 불안의 증진이며 무력감과 허무감의 증진이다.
개성화가 증대될 때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근원적인 결연은 일단 단절되면 다시는 결부시킬 수 없다. 개별화된 인간을 외계와 결합시키는 오직 하나의 해결방법은 모든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연대감과 애정과 작(46)업이라는 자발적인 행위뿐이다.
안정감을 부여해 주던 결연 관계와 단절되고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방해로 개성화의 실현이 지연되면 자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부담이 된다. 자유는 의혹 그 자체가 되며, 의미와 방향을 상실한 생활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자유를 뺏기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자유로부터 벗어나 불안을 없애줄 인간과 외계에 복종하여 이들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강력한 경향이 생겨난다(47)
어떤 결연관계로부터도 자유롭다는 것과 자유와 개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가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과의 이러한 불균형은 마침내 유럽에서는 자유를 내버리고 새로운 결연관계, 또는 적어도 완전한 무관심으로의 도피행위를 초래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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