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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_근대인의_관정에서_본_자유의_두_측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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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의 관점에서 본 자유의 두 측면

 

중세 사회의 전통적 유대 로부터해방된 것은 독립이라는 새로운 느낌을 개인에게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고독과 고립을 느끼게 했고, 회의의 불안으로 가득 채웠으며, 결국 새로운 복종과 강박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117)

근대사회구조는 인간은 더 독립적, 자립적, 비판적이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더 고립되고 고독해지고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118)

 

인간이 자유의 낡은 적으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성질이 다른 새로운 적 즉 개인의 자유가 완전히 실현되는 것을 방해하는 내적요인이 등장했다(119)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자본주의가 인간의 인격발달에 엄청난 진보를 주었다. 이제 개인은 자신의 근면과 지성과 용기와 절약과 행운이 이끌어주는 한 개인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이 허용 되었고, 성공할 기회도 그의 몫이었고, 실패할 위험도 그의 몫이었다. 각자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 맞서 싸우는 치열한 경제적 전투에서 죽거나 다칠 위험도 그 자신의 몫이었다.

인간은 평등해졌다. 한 때는 인류의 통합을 방해하는 자연적 경계였던 계급과 종교의 차이가 사라졌으며, 서로 상대를 인간으로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121)

자본주의는 인간을 전통적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자유를 늘리고 능동적이고 비판적이며 책임있는 자아를 성장시키는데도 이바지 하였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자유의 성장과정에 끼친 하나의 영향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는 개인을 더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로 만들었으며, 자신은 보잘것없고 소용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개인에게 심어 주었다. ‘으로부터의 자유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개인간의 모든 유대를 끊어버렸고 그럼으로써 개인을 동료로부터 고립시키고 분리했다. (122)

 

자본주의에서 경제 활동과 성공과 물질적 획득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자신의 행복이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 체제의 발전에 기여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된다. 인간을 초월한 목적에 자신을 기꺼이 바치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킨 것은 프로테스탄티즘이었다. 루터와 칼뱅은 심리적으로 인간이 근대사회에서 맡아야할 역할 자신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목적이 아닌 목적을 위해서만 자신의 삶을 종속시킬 각오를 하는 것 을 준비시켰다.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개인을 경시하는 것은 자본축적을 경제 활동의 목적으로 삼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특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125)

 

자본축적 자체를 위해 일한다는 원칙이 객관적으로는 인간으로 하여금 초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일하게 만들었고, 인간을 자기가 만든 기계의 하인으로 전략 시켰으며, 그리하여 자기가 보잘 것 없고 무력하다는 느낌을 인간에게 안겨 주었다.

자본이 없고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경제적 지위가 미치는 심리적영향은 자본가의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다.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직접적이고 개인적으로 의존할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본가의 특징으로 묘사한 금욕주의 정신과 초개인적인 목적에 복종하는 정신으로 가득차 있다.(126-127)

어떤 사회에서나 문화전반의 정신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의 정신이다. 강력한 집단은 신망이 높기 때문에 하층계급은 그들의 가치관을 받아 들이고 모방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려고 한다.(127)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인간을 초개인적인 경제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 만들었고, 프로테스탄티즘을 통해 심리적으로 금욕주의정신과 개인의 무의미함을 더욱 증대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근대인이 어떤 행동에 나서는 이유는 희생정신이나 금욕주의 때문이 아니라 극도의 이기주의와 사리사욕의 추구 때문인 것 같다는 사실과 모순된다. 이타심을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티즘정신과 근대적 이기주의의 신조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마키아벨리의 말을 빌리자면, 이기주의는 일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고 개인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어떤 도덕적 고려보다 강력하다고 주장한다. 이타심을 강조하는 것은 근본적인 이기주의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일뿐이라는 가정으로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을까?(128)

 

루터, 칼뱅, 칸트, 프로이트의 사상저변에 깔려 있는 가정은 이기심은 자기애와 동일하다는 생각이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미덕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죄악이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사랑은 서로 배타적이다. 사랑은 어떤 대상을 긍정하려는 열망이다 사랑은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도 얼마든지 돌려질 수 있다. 배타적인 사랑이란 그 자체가 모순이다. 나 자신의 자아는 타인과 마찬가지로 내사랑의 대상이다. 내 삶과 행복, 성장과 자유에 대한 긍정은 기본적으로 그런 긍정을 할 준 비가 되어 있고, 긍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이기심은 자기애와 동일하지 않다. 이기심은 일종의 탐욕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항상 불안하게 자신을 걱정하지만 절대 만족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며, 사실은 자신을 몹시 혐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도취적인 사람도 마찬가지이다.(130)

 

근대인은 자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것이 아닌 목적을 위해 자신의 생활을 바친다는 모순에 우리는 직면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든 잠재력을 가진 구체적인 인간전체에 대한 긍정과 애정의 결핍이 이기심의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애썼다. 근대인의 행동동기인 자아는 사회적 자아이다. 근대적 이기심은 진정한 자아의 좌절에 근원을 두는 탐욕이고, 그 대상은 사회적 자아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은 강해졌지만, 사회는 자기가 창조한 그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 실업, 전쟁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 인간은 더 이상 자기가 만든 세계의 주인이 아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 인간의 신이 되었다. 인간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환상을 품지만 선조들이 신에 대해 의식적으로 느꼈던 무력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131-132)

 

모든 사회적관계와 개인적 관계를 지배하는 규칙은 시장의 법칙이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에도 역시 무관심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 서로에게 이용당하는 대상일뿐 구체적인 인간이 아니다. 경제적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적 관계도 소외의 성격을 뛴다. 서로 상대를 수단으로 이용하고 소외시키는 것 중 가장 파괴적인 것은 개인과 그 자신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상품과 마찬가지로 인간적 자질들의 가치, 존재 자체까지 결정하는 것은 시장이다. 남들이 그를 원하면 그는 쓸모 있는 인간이고, 인기가 없으면 쓸모없는 인간이다. (133-134)

 

자본주의가 개인에게 가져다준 새로운 자유는 더 외로워졌고, 고립되고, 강력한 힘에 조종되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그는 개인이 되었지만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개인이었다. 불안을도와주는 요소들은, 재산, 명성, 권력이 그의 자아를 받쳐 주었다. 이런것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개인적 신망의 원천이었다. 가정에서 개인은 대단한 인물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135)

 

개인이 자신의 성장이나 행복 이외의 다른 목적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137) ?

 

지난 수십년동안 차츰 발달한 자본주의의 독점적단계에서 개인이 경제적 성과를 이룰 가능성은 줄어 들었다. 개인은 거대한 힘에 위협을 느끼고, 독점 자본은 많은 사람의 경제적 독립이 무너졌다. 대기업의 확대와 더불어 늘어난 새로운 중산층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거대한 경제 기계의 일부이고 고도로 전문화된 일을 갖고 있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수백명과 경쟁관계에 있고, 뒤처지면 가차없이 해고 당한다. 즉 그가 통제할수 없는 기계의 톱니로 변했고, 전적으로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었다.(140)

 

우리시대에 개인의 무의미함은 경영자나 고용인이나 육체노동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고객으로서의 역할과도 관련되어 있다. 손님의 개인적 구매는 추상적인 고객으로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고객으로서는 중요하지 않다. 옛날의 상인은 물건을 팔 때 최선을 다해 고객을 설득했다. 근대적 광고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한다. 상품의 품질과 관계없는 비합리적이며 아편이나 최면술처럼 고객의 비판능력을 억누르고 마비시킨다. 이러한 광고는 고객에서 만족감을 주지만 동시에 고객에게 하찮고 무력하다는 느낌을 높인다. (143)

 

정치적 분야의 선전에서도 소비자에 대한 광고의 효과와 마찬가지로 자신은 무의미한 존재라는 유권자의 느낌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구호를 되풀이 하고 쟁점과는 관계없는 요인들을 강조하는 일은 유권자의 비판능력을 마비시킨다. 정당의 위력과 규모에 직면하면, 유권자는 자신이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144)

 

전쟁의 위협도 개인의 무력감을 증대시켰다. 전쟁의 악몽은 많은 사람의 삶의 그늘을 드리우고 두려움과 무력감을 증대시켜왔다.

 

우리시대에 놓은 개인의 입장의 예측

-키르케고르 : 회의로 고통받고 외로움과 보잘것없다는 느낌에 압도된 무력한 개인을 그림.

-니체 : 훗날 나치즘에서 나타나게 될 니힐리즘의 도래를 상상하고 그가 현실에서 본 무의미하고 방향도 없는 개인과는 정반대되는 존재로서의 초인을 그리고 있다.

-프란츠카프카 : 개인의 무력함의 주제로 자신의 작품에 표현되었다.(147)

 

소극적 자유에서 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지 못하면, 아예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 우리시대에 사회적도피는 지도자에게 굴복하는것과 민주주의 사회에 강박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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