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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8일 전주 ’인간무늬연마소‘ 정신분석학 연구모임 – 주제: 에리히 프롬, 종교개혁시대의 자유
[에리히 프롬 논문 요약 및 발표: 콩빠]
[들어가며]
에리히 프롬의 “종교개혁시대의 자유”에 대한 논문은 그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 제 3장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장은 두 부분으로 나눈다. 첫 번째 부분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두 번째 부분은 개신교 개혁을 다루고 있다.
중세를 살펴 보면 이시기는 개인의 자유가 없는 시기로 특징 짓는다. 중세인은 사회 질서에서 자신의 역할에 묶여 있었고, 지역사회 내에서 이동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때, 개인의 정체성은 그의 직업과 동일하다고 프롬은 주장하는데, 이를 당대의 경제 구조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자유로운 상황은 아니지만, 프롬은 중세인들이 그들의 사회 내에서 실제로 많은 것을 즐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https://link.springer.com/chapter/10.1007/978-3-658-13213-2_33
Erich Fromm: Escape from Freedom, Holt, Rinehart and Winston: New York 1941, 305 S. - 출판사 영문 해설 인용)
II 에리히 프롬, 종교개혁시대의 자유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지경자 옮김, 흥신문화사 1995, 51쪽 - 113쪽
중세의 인간은 근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자유는 없었지만 “고독하거나 고립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었다.”(프롬 53쪽)
“사회질서는 곧 자연적인 질서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사회질서 속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안정감과 소속감이 주어졌다”(프롬 54쪽)
“그 당시에도 근심과 번민은 있었지만, 한편으로 교회라는 것이 있어, 그러한 고뇌는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이며 각자가 저지른 죄의 결과라고 가르침으로써 그 고뇌의 도를 완화시켜 주었다. 교회는 죄의식을 조장하는 한편, 신의 절대적인 평등애를 보장하고, 신에게 용서를 받고 총애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까지 가르쳐 주었다.”(프롬 54쪽)
“지구와 인간이 곧 이 우주의 중심이며, 천국과 지옥은 미래의 장소이며, 한 평생의 모든 행위는 분명한 인간관계에 묻혀 있었다.고 말한다.(프롬 54-55쪽)
“루터의 말은 오늘의 현실에도 들어맞는 것이다. 중산계급이 15, 16세기에 부유한 독점자들에 대하여 품고 있던 공포와 분노는 바로 오늘날의 중산계급이 독점과 강력한 자본가들에 대하여 품고 있는 감정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프롬 67쪽)
“중세사회에 경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봉건적인 경제조직은 협동의 원리에 바탕을 두어 경쟁을 억제하는 모든 규칙에 의해서 통제되었으며, 조직화 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발생과 더불어 이러한 중세적 원리는 개인적 기업의 원리로 변해갔다. 각자는 자기 스스로 전진하여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결정해야 했다. 그는 용기를 내어 헤엄치지 않으면 빠져 죽는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상대가 되고 말았다.”(71쪽)
종교개혁의 시대의 “새로운 종교는 상층계급의 종교가 아니라 도시의 중산계급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농민들의 종교였다”(프롬 74쪽)
“루터의 신에 대한 관계는 인간의 무력성에 기인된 복종의 관계라고 그는 말한다. 루터 자신은 그러한 복종은 공포심이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생기는 자발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프롬 78쪽-79쪽)
“루터가 말하는 사랑과 신앙은 실제로는 복종이라는 것이 그의 전 사상적 구조를 살펴볼 때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의식적으로는 신에의 복종을 자발적이며 애정이 충만한 관계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신에 대한 관계를 복종 관계로 만드는 무력감과 죄악감이 가득 차 있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마조히즘적인 의존이 흔히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같다).(프롬 79쪽)
”종교개혁 이전에는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원리가 가톨릭 신앙의 특징이 되어있었다. 즉,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타락되기는 했지만 인간의 본성은 천부적으로 선을 추구한다. 또한 인간의 의지는 선을 추구하는 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 노력을 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에 기인된 교회의 비적(祕蹟)에 의해서 죄인은 구원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프롬 80쪽)
”중세의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의지, 그리고 인간의 노력이 효용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동시에, 또한 신과 인간과의 유사성과 신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를 강조했다. 인간은 모두가 신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평등하여 형제와 같다고 생각되었다. 중세 말기에 이르러 자본주의의 발생에 따라서 당혹감과 불안감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의지와 인간의 노력이라는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도 더욱 커져 갔다.“(프롬 84쪽)
”르네상스의 철학과 중세말기의 가톨릭 교의는 바로 자기의 경제적 지위로써 권력과 독립의 감정을 가지게 된 사회집단에서 유포되고 있는 정신을 반영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반해서 루터의 신학은 중산계급의 감정을 표현했는데, 그 중산계급은 교회의 권위에 대해 투쟁하며 새로운 유산자 계급에 대해서는 분노를, 신흥자본주의에는 위협을 느끼고, 또한 무력감과 개인적인 허무감에 압도되고 있었다.“(프롬 84쪽)
”루터는 인간의 본성에는 선천적인 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는 악을 지향하게 되어 어떠한 인간이라도 그 본성을 그대로 지니고는 도저히 선한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사악하며 비도덕적인 것이다. 인간 본성의 타락과 선을 선택할 자유의 결여는 루터의 전 사상체계의 근본적 개념 중의 하나이다.“(프롬 85쪽)
“자기 노력으로는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는 인간의 부패성과 무력함을 확신하는 일이야 말로 신의 은총이 내리게 되는 본질적인 조건이다. 자기 자신을 비하하여 개인적인 의지와 자부심을 타파힐 때 비로소 신의 은총이 내리게 된다.”(프롬 86쪽)
“자본주의 대두는 물론 독립과 창의를 증대시켰지만, 이는 중산계급에게는 일대 위협이 되었다. 16세기 초 만하더라도 중산계급에 속하는 개인은 아직도 새로운 자유로부터 많은 권력과 안정을 얻을 수는 없었다. 자유는 힘과 자신보다는 오히려 고독과 개인의 무의미성을 초래하였다. 그밖에 그는 로마교회의 성직자를 포함한 유산계급이 누리고 있는 사치와 권력에 대하여 더욱 맹렬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바로 이러한 무의미성과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프롬 111쪽)
새로운 종교는 “즉 개인에게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 자신의 무력함과 인간 본성의 사악성을 철저하게 시인함과 더불어 그의 전 생애를 지은 죄를 속죄하는 과정으로 보고 극도의 자기비하와 끊임없는 노력을 함으로써 비로소 그 회의와 불안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또한 완전한 복종을 통해서 비로소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신이 구원하려고 작정한 사람들 중에 속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위협당하고 추방되어 고립된 인간이 새로운 세계에 대하여 스스로의 방향을 정함으로써 그것과 관계를 맺으려던 인간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경제적 및 사회적 변화로부터 유래하여 종교적 원리에 의해서 강화된 성격구조가 이번에는 도리어 사회적 및 경제적인 발전을 추진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프롬 112쪽)
[나가며]
중세시대에는 ”개인“ 이라는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계몽주의가 추구했던 합리성으로 인해 ”1. 불안과 무력감“
그리고 상류계층에 대한 ”2. 적개심과 원한“이 표출되었던 것이다.(프롬 105쪽)
홍순원에 의하면 프롬의 윤리의 목표는 계몽주의가 추구했던 합리성의 이상화 내지는 절대화를 폐지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그것은 자유를 추구하려고 하다가 소외되고 고립된 인간의 윤리적 실존을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프롬은 인간의 윤리적 문제의 근원이 자기 자신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자기애의 결핍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자신과 분리되어 외부적 목적들에 의해서 도구화되어버렸고 자본과 시장의 권력에 의하여 객체화되고 상품화되어버렸다. 자기로부터 소외된 인간은 대상적 인간에 대한 신뢰도 상실해버렸다. 프롬은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자기애의 결핍에서 발견하고 사회심리학적 차원에서 해결을 시도하였다“라고 말한다(홍순원 (2011). 에리히 프롬의 정신분석학적 윤리. 한국기독교신학논총 , 74(1), 229-246, 243쪽 인용)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말하고 있다. ”근대인은 개인에게 안정감을 부여해주는 동시에 또한 그를 제약하고 있던 전개인적인 사회의 여러 가지 구속으로 부터는 해방되었지만 그의 개인적 자아 실현, 즉 개인의 지적/정서적 및 감각적인 여러 능력의 표현이라는 적극적인 의에서의 자유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프롬 6쪽)
학우들과 논의 제안 사항:
1 프롬과 프로이트에서의 ”자아 개념“
참고:
Isaiah Berlin: Positive liberty
Negative liberty (화니짱 2021.4.21)
Alexander Mitscherlich:
권위적인 자아 (Autoritaeres Ich)
인본주의 적인 자아 (Humanistisches Ich)
Erich Fromm:
Aktive Ich-Orientierung
Passive Ich-Orientierung
2. 프롬은 인간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사랑“과 ”생산적인 일“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 하지만 프롬의 제안은 ”이상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누구나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1iO53L2gtE 방출티비 -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 ”15분만에 읽는 명저 한 권!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 부터의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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