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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이전 / 개벽크 / 21. 10. 22.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이전 개벽크 21. 10. 2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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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우리의 맑스

 

코카인

 

토리노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마와 볼로냐에서도 마약 상습자들이 발견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똑같은 격식 차린 문구들이 나타났다. 쯧쯧. 당신은 악덕에 대항하는 법을 만들어 이를 제거할 수는 없다. 분명히, 악덕은 현대 문명의 필수적인 부산물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명을 자신의 토대로 삼고 있다면 사실 이는 다른 종류의 문명은 제외한 순전히 피상적인 문명의 경우에만 그러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썩은 쓰레기, 즉 아무런 목적도, 도덕도, 역사도 없는 민중이 생산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130) 대다수 민중에게 삶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순전한 동물성, 감각적 즐거움, 신경과 근육의 기계적 움직임. 왜 코카인에 취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필자는 파괴적 즐거움의 비탈길에서 실족하는 사람들이 겨우 그만큼밖에 안 된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악덕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은 이유는 도덕적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무관심, 전적으로 동물적인 무관심 때문이다. 심층의 이유는 도덕적 목적의 결여임이 분명하다. (131)

 

도덕성은 단지 가장 사소한 행동을 가장 위대한 목적에 연결 짓는데 있다. 자유주의적인 양식의 결사체는 댄스 클럽과 만돌린 동호회 이상의 것을 낳지 못했고, 이제 우리는 마약중독 친우들의 작은 모임들을 개시하고 있는 것이다. 코카인 복용은 부르주아적 진보, 즉 자본주의가 진보하고 있가는 것의 한 지표이다. (132)

 

 

축구와 스코포네

 

스포츠는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개인주의가 생활양식 전반을 변형시킨 그런 사회에서의 대중 활동이며, 따라서 경제적, 정치적 자유가 정신의 자유 및 반대자에 대한 관용을 동반한다. 스포츠를 즐기는 나라들에서는 페어플레이의 개념이 정치에도 이어진다. 스코포네는 자유 토론 석상에서 감히 자신에게 반박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는 그런 종류의 신가들을 만들어 낸다. (134)

 

 

문화적 시적 신비

 

자연은 편견과 민중대학과 값싼 대중과학을 통해 반계몽주의로부터 벗어나 있다. 가톨릭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쉽듯이 동시에 실증주의 역시 그러하다, 전통적 교의에 대한 의사 과학을 일소하는 빛을 가지고 매우 의미심장한 방법으로 근원적이고 이상적인 개념을 방해하지 않은 채 신은 자연과 동일시된다. (136)

 

혁명은 그 기원을 진정 프랑스적인 것에 두고 있지 않다; 혁명은 종교개혁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그 정치 이데올로기는 모든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기원이자 사회주의의 직접적인 원천인 자유주의다. 프랑스의 근원적 구상은 질서이다; 하나의 최고 권위인 군주에게 궁극적으로 의존하는 질서이며 전 자본주의적 사회구조의 형태 속에서의 질서이다. 길드, 소지주, 성직자, 귀족 전통적으로 세습되는 왕조로 구성되어 있다. (137)

 

공산주의의 비판적 교의는 철학적 실증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화와 자연이라는 형이상학, 그리고 신학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맑시즘은 철학적 관념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관념론이라고 이해되는 것-실제적인 삶의 필요와 욕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구름 속에 붕 떠 있는 꿈과 비축된 감정의 허상에 몰두하는 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철학적 관념론은 존재와 지식에 관한 교의이다. (137)

 

맑스는 직업적 철학자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아마추어 철학자도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본질상 그의 교의가 철학적 관념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흐르는 이상의 조류를 구성하는 철학적 전통 내에서 최근 더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138)

 

국제적인 조화의 개념은 자크 봉비에의 개념이다; 종교적이고 예술적인 교의는 루미 다미에에 의해 다루어진다; 그리고 미시적 수준에서 일상적인 정치적 논쟁은 로베르 아바르의 몫이다. 신문은 정치적 행동주의를 위해 매우 기술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대변하는 프랑스 사회의 유일한 구성요소는 전자본주의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잔당들과 개인들이다. 대토지귀족, 고위 성직자, 군대의 장성들이다. 경제적으로 이들은 쁘띠부르주아지와 거대 공장이 덜 발달하고 소규모의 생산이 지배적인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조합주의적 사상가를 대변하려고 노력한다. (139)

 

 

인간들, 사상들, 신문들 그리고 화폐

 

우리 나라의 산업, 토지소유 부르주아지는 혼란의 상태에 있다. 전후 시기를 위한 관세 정책을 계획하는 문제로 인해 부르주아지는 사분오열되었다. 이는 이들의 가슴에 치유될 수 없는 갈등을 낳았다. 관세 정책에 관한 한, 우리의 지배계급은 세 분파로 분열되었다.

 

*지배 계급의 세 분파

1.자신들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극히 높은 보호 관세를 필요로 하는 철강 거물들.

2.반대로 무역의 자유가 생존에 필수적인 중부, 남부, 그리고 도서 지역의 농장주들.

3.어느 편에 붙을까 혼란에 빠져 있는 토리노의 기계산업 지도자들. (140)

 

남부 농장주들에게는 어떤 자본주의 체제에서든 숙명적인 한 약점이 존재했다.

1.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별로 지니지 못했다.

2.조직화되어 있지 못했다.

3.이들의 행동은 구닥다리였고 별로 수익성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은 이러한 조건들을 일정하게 변화시켰다. 전쟁은 많은 주머니에 돈을 쏟아 부었고, 더 나아가, 이니셔티브의 정신과 부유해지려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자극했다. (141)

 

농장주들이 금속 거물들에 대항하려 싸워 지키고 있는 것은 이들의 삶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즉 이는 보다 많은 이윤을 위한 경쟁과 같은 것은 아니다. 철강계는 자신들이 농장주들의 머리 위에 서길 원한다는 사실에 꽤 노골적이었다. 이들이 나라의 산업을 위태롭게 하기 전에 이들 촌뜨기들, 각자의 굶주리는 농민들을 억제하는 것은 지방 주지사들과 경찰들의 몫이었다. (142)

 

이탈리아에서는 농장주들이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데 반해, 산업가들이 보호주의적인 것이다. (143)

 

더 이상의 근본적 전진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의 정치 생활이 가부장주의적이고 쁘띠부르주아적인, 과장되고 수사적이며 허풍스러운 것과 꼭 마찬가지로 농업에 관한 한 여전히 본질적으로 가부장주의적이고 제조업과 공업기술에 관한 한 쁘띠부르주아적인 경제 구조 전반에, 어ᄄᅠᆫ 혁명을 맞게 될 것이다. (144)

 

 

2부 신질서

 

법의지배

 

국가는 우리의 운명, 기본적인 의, , 주 생황 그리고 우수한 영혼의 삶에 대한 최후의 심판자가 되었다. ‘국가는 지금 이 순간 행정부 인사들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각료회의의 의장이며, 그에 딸린 행정 체계다. 그것은 장관, 차관, 재판관, 부재판관, 의원, 경찰들로 이루어진 위계제다. 우리 사회는 무책임에 의해 지배받고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몸부림치는 하나의 거대 한 병영이다. (147)

 

사회는 어떤한 종류의 집합적 결속으로부터 벗어나 시민-개인이라는 근본 요소로 축소된다. 이것은 시민을 국가와 영원한 전쟁에 처해 있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반사회적인 개념이다. 이것은 인간을 살아 있는 생물체이며 사회의 탄력적 형태인 국가와 영원히 화해불가능한 적으로 간주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을 그들 자신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헌법은 반인간적 혼란과 무질서의 성문화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의 원칙이 법적으로 영원한 것으로 추앙받는다 할지라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는 사회발전의 역동성을 묶어 두거나 수령에 빠뜨리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역사과정의 항변 속에서 태어난다. (148)

 

노동운동은 자본주의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새로운 봉건영주에 대항하는 인간성의 숭고한 반란이다. 세상에 대항해 홀로 서 있는 한 개인이 아니며, 서로를 함께 엮어 주는, 전 세계에 촘촘한 망을 치고 있는 보다 위대하고 더욱 강력한 집합체의 성원이다. 개인과 계급들간의 경쟁 대신에 전 세계로 확장된 전체 계급이, 각국의 모든 부르주아 계급들이 자행하는 착취에 대항하여, 그들로부터 생산수단과 무역수간을, 그리고 사유화 혹은 국유화된 토지와 그 밖의 것들 항구, , 바다 등등 을 몰수하기 위해 대항하고 있다. 이 무시무시한 공격이 자본주의의 법적 상부구조 전체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으며, 무질서와 소멸의 과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149)

 

 

역사의 대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극복해야만 했던 어려움과 저항은 그들 스스로가 과거의 여타 다른 혁명의 수행자보다 훨씬 우위에 있음을 드러냈다. 과거의 혁명은 단순히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의 사적 소유와 국가적 소유의 형태를 수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사적 소유와 국가적 소유를 폐지하고 계급을 폐지하는 것을 혁명의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 혁명은 단지 소수자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대변하는 혁명이다. (150)

 

하나의 혁명이 단지 공허하고 과장된수사적 선동이 아니라 진정한 혁명이 되는 것은, 오직 그것이 어떤 유형의 국가에 체현되었을 때, 그것이 조직화된 권력체계가 되었을 때뿐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전형적으로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지닌 국가 형태를 낳고 그 안에서 체현될 때에만, 그 이름을 부여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권리의 보증인으로 행동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과 삶의 표현으로서 근본적 기능을 수행한다. (151)

 

역사가 존재하는 곳, 삶이 존재하는 곳은 러시아이다. 오직 평의회 체제에서만 전 세계에 걸친 삶과 죽음의 문제가 적당한 해결책을 구할 수 있다. 러시아혁명은 역사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였다. 죽음과 빈곤과 굶주림, 희생 그리고 꺾이지 않는 의지를. 오늘, 그 싸움은 절정에 치달았다. 러시아 민중은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드디어 일어섰다. 맹렬히 공격하는 난쟁이떼 위로 우뚝 솟은, 고행의 수척함이 뚜렷한 거인으로서. (154)

 

 

노동자 민주주의

 

어떻게 하면 전쟁이 풀어놓은 거대한 사회적 힘에 다시 고삐를 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힘에 규율을 부여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체현될 사회주의 국가의 골격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해 갈 잠재력을 가진 그런 정치적 형태를 부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현재의 긴급한 필요들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미래를 창조하고 예기하도록 유용하게 작동하는 그런 방식으로, 현재와 미래가 서로 융합될 수 있을까? (155)

 

오늘날 노동자운동은 사회당과 노동총동맹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대다수 노동 대중에 관한 한 이 두기구의 사회적 권력은 간접적인 수단에 의해, 위신과 열광에 의해, 권위적 압력에 의해, 심지어는 관성에 의해 집행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반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질서 있는 사회로 변용되어, 스스로를 교육하며, 경험을 습득하고, 국가 권력을 획득하려는 모든 계급이 짊어져야 하는 의무에 대한 책임 있는 자각을 발전시켜야 한다. (156)

 

러시아 볼셰비키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자신들의 구호를 퍼뜨리는데 8개월이나 분투했으며 결국 실현시켰다. 그리고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소비에트는 1905년부터 낯익은 것이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은 시간과 노고를 절약하기 위해 러시아의 경험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재건의 과제는 그 자체 상당한 시간과 노고를 요구하므로 매일매일의 가능한 모든 행동은 그 목적을 향해 맞춰져야한다. (158)

 

 

국가와 사회주의

 

비록 영원의 글이 터무니없는 헛소리와 무의미한 횡설수설의 뒤범벅뿐이긴 하지만, 우리가 이 글을 출간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바이마르 국가는 맑스주의국가이며, 우리 <오르디네 누오보>는 국가가 영원히 존재하길 바라는 국가숭배자들이다. ‘영원은 단순한 일 개인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사회적 유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규명, 연구, 토론되고, 그런 연후에 거부되어야 한다. (159)

 

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에 구현되어 있다. 공산주의는 오직 국제적일 때만, 오직 국제적인 한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국가에 반대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주의 국민국가에 반대하고, 국민국가로부터 파생되고 그에 의해 조건지어진 국민경제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160)

 

공산주의는 국가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국가의 반대자들-무정부주의자들 및 노동조합 무정부주의자들-과 화해할 수 없는 적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그들의 선전이 공상적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해악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161)

 

완전한 자유주의 전통은 반국가적이다. 자유주의 전통은 국가에 반대하는 오래된 논객이다. 자본주의의 정치적 역사는 시민과 국가 간의 격렬하고 끝없는 투쟁으로 특징지어진다.자유주의적 활동은 가능한 한 확실하고 믿을 만한 경쟁의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인 자본주의의 일반적 운동의 한 부분이다. 경쟁은 국가의 가장 맹렬한 적이다. 인터네셔널이라는 이념 그 자체는 원래 자유주의 사상이었다. 맑스는, 비판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콥든 학파와 자유무역의 선전단체로부터 이 이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는 평화와 인터내셔널을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사적 소유와 국가적 소유는 분열과 국경, 전쟁을, 그리고 다른 국가와 끊임없는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국민국가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163)

 

계급투쟁에서 패배했을 때, 자본주의는 반국가주의 효소라는 유해한 잔해를 남길 것이다. 혹은 몇몇의 개인들과 집단들이 혁명의 성공에 필수적인 원칙과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반국가주의]의 감정이 진행될 것이다.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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