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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Nov 2021 Zwi 에리히 프롬환상의 사슬을 넘어서

2021 11 3 전주인간무늬연마소정신분석학 사회심리학 연구모임

주제: 에리히 프롬환상의 사슬을 넘어서 9/10/11   요약 발표 콩빠

3 Nov 2021 pm 인무연 Erich Fromm Behinds Chains 9장에서 11장 - 콩빠.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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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문헌은 다음과 같다.

-  Fromm/R. 오스본 지음, 김기태 옮김 정신분석과 유물론, 선영사 1989, 293 – 353

영문 원문: Erich Fromm

BEYOND THE CHAINS OF ILLUSION My Encounter with Marx and Freud, Continuum New York 2009

(9장에서 11장까지 104 - 140 ) 9 The Fate of Both Theories 10 Some related Ideas, 11 Credo

 

 

[Erich Fromm 요약]

 

I. 에리히 프롬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비판적 사고였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의식을 정신의학의 기초로 삼았던 기존의 정신의학 사상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생각은 훨씬 넓은 의미에서 비판적인 이론이었다. (293)

프로이트의 시스템은 기존 아이디어와 편견에 대한 도전이다. 그것은 자연 과학과 예술의 새로운 발전에 상응하는 새로운 사상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사회의 일부 측면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존 사회 질서를 초월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혁명적 운동이라고 부를 있다. 처음 30년이 지난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운동은 어떻게 되었는가? 우선 정신분석은 특히 유럽과 미국의 개신교 국가에서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1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의 "진지한" 정신과 의사와 대중에게 조롱을 받았다. (294)

사실 운동은 처음 20 동안 조소를 받았지만 정신의학에서 존경받을 만한 것으로 여겨졌고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받아들였으며 많은 문학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훌륭해. 그러나 이러한 학문적, 지적 인정이 전부는 아니었다. 정신분석은 대중에게서 인기를 얻었다. 정신분석가들은 도움을 요청한 모든 환자를 받아 주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사실, 정신분석학이라는 직업은 경제적인 면과 명성의 면에서 가장 보람 있는 직업 하나가 되었다(295).

세기 초에 프로이트의 이론은 모두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관습과 생각에 도전했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비판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였으며 서구 사회의 지적, 정치적, 예술적 삶의 다른 영역에 존재했던 비판적 운동의 일부였다. 섹스는 이상 금기가 아니었다. 근친상간 소원, 성적 변태 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은 도시 중산층에게 이상 충격을 주지 않았다. 여러 면에서 정신분석은 사회에 도전하는 대신 사회에 순응했다.(295)

많은 정신분석가들은 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개념, 거세에 대한 두려움 등을 통해 삶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믿었다. 세계 또는 적어도 모든 지도자를 정신분석할 있다면 해결해야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남지 않을 것이다.(297)

정신분석가의 중요성은 분석 대상("전이") 의해 부풀려졌다. 정신분석은 유아기의 경험을 후기 발달의 원인으로 강조하여 많은 사람들의 책임감을 덜어주는 경향이 있다. 분석가에게 돈을 지불하고, 일주일에 5시간 동안 소파에서 이야기하고, 저항이 커질 생기는 불안은 종종 노력과 용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돈도 시간도 심각한 희생을 의미하지 않는 중산층에게 특히 해당된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심인성 두통이나 손을 자주 씻는 세수 강박증 등의 심각한 증상이 있거나 성기능 장애를 겪고 있다면 증상을 치료하고 싶어한다. (298)

그들은 일반적인 불행, 일에 대한 만족의 부족, 결혼 생활의 행복 부족, 성경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풍족한 가운데서도 기쁨이 없다" 사실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치료의 목적은 종종 환자가 기존 상황, 흔히 말하는 "현실"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다. 인간의 고독과 소외, 삶에 대한 생산적인 관심의 결여라는 진정한 문제는 이러한 유형의 정신분석에서 건드릴 필요조차 없다. 최소한의 마찰로 복잡하고 위계적으로 조직된 생산 시스템에서 신년이라는 것은 필요하지 않고 개의 작은 톱니바퀴와 같은 존재가 되어있다는 만으로도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299/300)

 

II 에리히 프롬의 개념인 "생각" "관심" 고찰

핵심적인 것은 "생각" "관심" 사이의 관계이다. 심리학과 사회학은 모두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프롬은 말한다: 나는 사람을 다른 사물처럼 관찰함으로써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있다. - 관찰자 - 나의 "대상"("대상" "반대" 같은 어근을 가짐, 독일어로 Gegenstand = "counterstand") 맞서서 관찰하고, 설명하고, 측정하고, 무게를 잰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이 "대상"으로 남아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인간이 분리된 대상을 그만두고 나의 일부가 되거나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 되면서도 ' 아닌-' 남을 그와 관계되는 상황에서만 인간을 이해한다. (313) 나는 다른 사람을 보기 위해 자신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두려움, 슬픔, 외로움, 희망 또는 사랑을 느끼지 않는 그의 두려움, 그의 슬픔, 그의 외로움, 그의 희망, 그의 사랑을 어떻게 이해할 있을까? (314)

독특한 자아의 현실에 대한 환상을 초월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기 위해서는 자신, 자신의 참되고 독특한 자아가 되어야 한다. 내가 멀리 있는 관찰자가 아니라 참가자일때 관심을 갖게 된다 (inter-esse "to-be-in" 의미합니다). "to-be-in" 외부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I-am-in"이면 세상이 나의 관심사가 된다. (315)

붓다가 노인, 병자, 죽은 사람을 보았을 그는 멀리 있는 관찰자로 머물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사람이 고통에서 구원받을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탐욕과 무지로부터 자신을 해방할 있다면 고통에서 해방될 있다는 것을 부처가 발견하게 것은 사람을 도우려는 그의 관심이었다. 세상을 향한 지향이 열정적인 관심사가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생각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예가 의학에서 제공된다. 치유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의학적 발견이 이루어졌을까? 프로이트의 모든 발견의 기초가 되는 것도 이와 같은 관심이다. 그가 정신 질환을 치료하려는 소망에 의해 자극을 받지 않았다면, 증상과 꿈에 나타나는 다양한 변장에서 무의식을 어떻게 발견할 있었을까? 지성이 제기하는 모든 질문은 우리의 관심에 의해 결정된다. 관심은 지식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있는 능력, "그대로 두는" 능력이 결합된다면 바로 지식의 조건이다. (315/316)

나는 (에리히 프롬) 정신 분석가로서 환자의 뒤에 앉아서 그의 연상을 듣는 동안 분석하는 엄격한 정통 프로이트식 절차에 따라 훈련을 받았다. 정신 분석 기법은 실험실 방법을 모델로 것이다. 환자는 "대상"이었고 분석가는 그의 자유로운 연상, 등을 관찰하고 환자가 생산한 자료를 분석하였다. 분석가는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 거울이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오래 일할수록 나는 만족스러웠다. 우선 분석 작업을 하다 보면 피곤하고 졸리기까지 하였다. 나는 종종 분석 시간이 끝나면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보다 나쁜 것은 내가 환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줄어들었다. 확실히, 나는 "해석"하는 법을 배웠고 일반적으로 환자의 연상과 꿈이 이론적 기대에 맞는 방식으로 해석할 있을 만큼 충분히 배웠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에게 보다는 오히려 환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의심이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면서 의심이 줄어들지 않고 커지면서 내가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슷한 경험을 동료들에게 자극과 격려를 받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이것이 단순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찰자가 되는 대신에 참여자가 되어야 했다.(316/317)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진정한 도움이 되고자 하는 나는 환자가 나아지지 않을 자존감에 상처를 입거나 그가 나았을 "나의" 성취에 대해 기뻐하지 않는다. 심리학에 적용되는 것은 사회학에도 적용된다. 내가 사회에 관심이 없다면 사회에 대한 나의 생각은 초점이 없다. "데이터" 인상적인 통계의 모음에 의해 실명이 숨겨져 있더라도 그것은 맹목적으로 더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면, 개인에 대한 관심과 그가 속한 사회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분리할 있을까? (318)

사람이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면 관심은 다양한 질문을 제기한다. 사람이 어떻게 자유로울 있고, 어떻게 완전한 인간이 있으며, 어떻게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마르크스가 위대한 발견을 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관심이었다. 다른 과학적 발견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모두 정확하지 않았다. 사실, 과학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이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그렇듯이 마르크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통찰력이 반드시 진리의 마지막 단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유익하고, 많은 발견에 도움이 된다는 , 그리고 이상이다. 진리를 발견할 사람은 깨어 있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변화시킨다. 관심과 지식 사이의 상호 관계는 종종 이론과 실천 간의 상호 관계 측면에서 표현되어 왔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세상을 해석해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 한다. 사실, 변화의 의도가 없는 해석은 공허하다. 해석 없는 변화는 맹목적이다. 해석과 변화, 이론과 실천은 결합될 있는 개의 분리된 요소가 아니다. 그것들은 지식이 실천에 의해 비옥해지고 실천이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방식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 이론과 실제는 분리되기를 멈추면 속성을 변화시킨다. 이론과 실천 사이의 상호 관계 문제는 다른 측면, 지성과 인격 사이의 연결을 가지고 있다. (318/319)

 

III 에리이 프롬의 믿음 - 신조 (信條 Credo)

 

나는 (에리히 프롬) 인간이 자연 진화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이성과 자의식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연을 초월한다. 나는 인간의 본질은 확인할 있는 성질의 것임을 믿는다. 인간의 본질은 그의 존재에 내재된 모순에 있으며, 모순은 인간으로 하여금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반응하도록 강요한다. 인간은 이러한 실존적 이분법에 대해 중립적이고 수동적일 없다.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로 그는 삶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동료 인간 자연과의 일치와 하나됨의 경험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과 외부 세계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인간은 삶의 순간마다 질문에 답해야 한다. (343)

 

인간의 존재를 괴롭히는 모순과 약점을 고려할 , 인간이 그에게 확신의 환상을 주고 갈등, 의심, 책임에서 해방시키는 "절대" 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신학적, 철학적, 역사적 의복을 입은 어떤 신도 인간을 구원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삶의 목표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찾을 있다. 그는 구원의 궁극적이거나 절대적인 답을 찾을 없지만 환상 없이 살고 자유롭게 있는 힘을 주는 경험의 강도, 깊이 명확성을 위해 노력할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있는 일은 감상이나 환상 없이 진실하고 사랑스럽게 대안을 제시하는 것뿐이다. 진정한 대안과의 대결은 사람의 숨겨진 모든 에너지를 깨우고 죽음에 맞서 삶을 선택할 있게 해준다. 그가 생명을 선택할 없다면 다른 누구도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없다. 나는 (에리히 프롬) 좋은 것을 선택하는 가지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첫째는 도덕적 명령에 대한 의무와 복종이다. 이렇게 하면  효과적일 있지만 수천 동안 소수만이 십계명의 요구 사항을 충족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 있는 사람들의 명령으로 그들에게 제시되었을 범죄를 저질렀다. 다른 방법은 선하거나 옳은 일을 하는 있어 취향과 행복감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행복감에 대한 취향이란 프로이트의 즐거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힘과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고조된 생동감을 말한다. 나는 교육이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유산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346)

인류 유산의 대부분은 말로 표현되지만, 말이 교사의 인격과 사회의 실천과 구조에서 현실이 때에만 효과가 있다. 육체 속에서 실체화된 사상만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있다. 단어로만 남아있는 생각은 단어를 바꿀 뿐입니다. 나는 인간의 완전성을 믿는다. 완전성은 사람이 목표에 도달할 있음을 의미하지만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346) 악이나 자기 상실은 선이나 생기와 마찬가지로 현실적우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인간이 자기의 1 잠재력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일어나는 인간의 2 잠재력이다.(347)

우리 대부분은 선과 악에 대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향의 무게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주로 주어진 성향을 형성하고 형성하는 영향에 의해 결정된다. 가족이 가장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가족 자체는 주로 사회의 대리인이며,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자 하는 가치와 규범의 전달 벨트이다. 따라서 개인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가 태어난 사회의 구조와 가치이다. 나는 사회가 촉진 기능과 억제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타인과 협력하여 노동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역사과정에서만 자기를 창조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회는 다수를 사용하고자 하는 소수의 목적에 봉사해 왔다. 따라서 그들은 많은 사람들(간접적으로 그들 자신) 괴롭히고 위협하기 위해 그들의 힘을 사용하여 그들의 모든 힘을 개발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보편적 규범과 함께 인류와 충돌해 왔다. 사회의 목표가 인류의 목표와 동일해질 때에만 사회는 인간을 불구로 만들고 악을 행하는 것을 멈출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인류를 대표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지능, 건강, 재능이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하나이다. 우리는 모두 성인과 죄인, 성인과 어린이이며 누구의 상사도 재판관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부처와 함께 깨어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으며, 징기스칸, 스탈린, 히틀러와 함께 모두 죽이고 강탈당했다. 나는 인간이 자신의 개성을 깨닫고 추상적이고 공통된 분모로 자신을 축소하려고 하지 않고서만 전체 우주 인간의 경험을 시각화할 있다고 믿는다. 인생에서 사람의 과업은 바로 역설적이며 개성을 실현함과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여 보편성을 체험하는 것이다.(347/348)

어떤 배타적인 부분이 아니라 인류와 생명에 충성하는 세계; 인류를 사랑하기 때문에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 부족의 충성심으로 인해 판단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나는 인간의 성장은 끊임없는 탄생, 끊임없는 각성의 과정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보통 반쯤 잠이 들고 일을 있을 만큼만 깨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삶을 영위할 만큼 충분히 깨어 있지 않다. 그것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중요한 유일한 과업이다. 인류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반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다. 인류의 가장 원수는 잠을 자게 하는 자들이며 그들의 잠자는 것이 신을 숭배하든 금송아지 숭배 상관없다. 나는 지난 4천년의 역사에서 인간의 발전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발전을 해왔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이성을 자연의 수수께끼를 푸는 수준까지 발전시켰고 자연력의 맹목적인 힘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위대한 승리의 바로 순간, 그가 새로운 세계의 문턱에 있을 그는 그가 창조한 바로 사물과 조직의 힘에 굴복하였다. 그는 새로운 생산 방법을 발명했고 생산과 유통을 새로운 우상으로 삼았다. 그는 자기 손으로 지은 것을 숭배하고 자기를 낮추어 만물의 종이 되게 하였느니라. 그는 , 자유, 인류, 사회주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한다. 그는 인간의 무능함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폭탄과 기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는 인간의 무력함을 숨기기 위해 파괴하는 능력을 자랑한다. 나는 우리를 자기 파괴로부터 구할 있는 유일한 힘은 이성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관념의 비현실성을 인식하고 기만속에 겹겹이 가려진 현실을 관통하는 능력을 말한다.(348/349)

 

 

<나가며 - 나의 생각>

Tabla Rasa! -인간은 Tabla Rasa (하얀 종이) 아니다

하나님의 심성이 있다고 믿는다. 진화의 산물이라고 믿지 않는다  

 

인간의 성격구조: Ego, Superego, Id

프롬은 초자아를억압으로 보고 있다.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적인면이 있다.

초자아(Superego) 리비도(Id)  - 자아(Ego) 형성지원을 위해 중요

자아 성격구조의 핵심,

프로이트 vs 안나 프로이트, Guenter Bittner

Mitscherlich “vaterlose” Gesellschaft (아버지 없는 세계)

 

다소 논리의 비약은 있지만 Fromm 생각에 많은 부분 동의

자본의 횡포, 환경 문제, 빈부의 격차

 

나의 생각.

민주주의, 토론문화, 나눔의 문화

함께하는 교육 필요

 

지난 종교개혁일 목사님의 설교 - 감사하는 삶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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