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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문명 마르쿠제 / 15장 철학적 간주곡 /화니짱 / 2021.11.24.

에로스와 문명 5장 (2021.11.24.).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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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간주곡

 

p136 : 프로이트 심리학은 개인이 개인이면서 동시에 유적 인간이고 현재가 현재이면서 동시에 과거이기도 한 심적 장치의 차원으로 침투한다고 논의하였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사회학적 탈개인화 아래 있는 생물학적 탈개인화를 드러낸다. 전자는 쾌락원칙과 열반원칙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후자는 현실원칙의 이름으로 진행된다.(-> 전자와 후자 앞뒤를 바꿔야 함, 영어원문 대조해보니 오역)

프로이트에 의하면 문명은 일차적인 충동들의 방법적 억제에서 생겨난다. 충동을 조직하는 두 가지 주요한 양식 - 지속되고 확대되는 집단관계로 이어지는 성욕의 억제

(137)간과 자연의 정복, 개인도덕과 사회도덕에 이르는 파괴충동의 억제 이 식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힘들의 결합이 더 큰 집단들을 더 효과적으로 버텨 줄수록 에로스는 그의 적수[타나토스]를 더 쉽게 이겨낸다.

 

문화가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된 충돌들을 거쳐서 열반원칙의 지배로 들어간다는 불길한 가설은 끊임없이 정신분석을 괴롭혀 왔다. (138) 죽음의 충동적 가치를 높이는 것은 에로스의 실패이고 삶에서의 충족의 결여이다. (139) 바로 이 지점에서 프로이트의 메타심리학은 서양철학의 본류와 만난다.

인간적 환경과 자연적 환경의 합리적 변형을 담당하는 자아는 본질적으로 공격적이고 침략적인 주체로 나타났고, 그 주체의 사상과 행동은 객체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설계되었다. 그것은 객체에 대립하는 주체였다. 이 선험적으로 적대적인 경험이 행동하는 자아뿐 아니라 생각하는 자아도 규정하였다. 자연은 외부세계만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가 투쟁하고 정복하고 유린해야 할 어떤 것으로 자아에게 주어졌고, 그것이 자기보존과 자기발전의 전제조건이었다.

-> 자연 vs 자아

 

p140 : 자아는 존재를 도전으로서, ‘계획으로서 경험한다. 자아는 하나하나의 실존적 조건을, 극복되어야 하고 또 하나의 조건으로 변형되어야 할 구속으로 경험한다.

결국 노동은 자연과 투쟁하는 선험적 권력이며 선험적 도전이다.

-> ‘존재의 목표가 노동으로 각인됨.

 

p141 : 존재의 본질인 로고스는 정돈하고 분류하고 지배하는 이성이다.(아리스토텔레스) 이성은 자연을 이전보다 더 효과적으로 변형하고 착취함으로써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의 실현을 보증할 수 있다. 소외된 노동에 바쳐지는 시간은 개인의 욕구를 위한 시간을 흡수하고 욕구 그 자체를 한정한다. 로고스는 지배의 논리로 나타난다.

 

p142 : 만족의 로고스는 소외의 로고스와 모순된다. 그 두 가지를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서양 형이상학의 내적 역사에 생명을 준다.

오직 일종의 동경, 에로스다움 만이 이 세계와 목적 자체를 연결한다.

이성의 시대 말엽에 헤겔과 함께 서양사상이(143)세계를 지배하는 이성의 범주들과 원칙들의 타당성을 예증하려는 최대의 시도를 마지막으로 감행할 때에, 서양사상은 다시 신적 정신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완성은 다시 절대이념과 절대지에 귀속된다. -> 정반합을 통해 다시 정(규칙/ 지배)생성

 

p143 : 자아는 모든 타자성과 대립하는 대자 존재에 의하여 그 자신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만족은 타자의 부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실재가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를 긍정하고 주장해야 하고, 그의 부정성’, 그의 자유를 부정하는 세계에 대립하여 분명히 드러(144)나는 개인의 개념이다.

객체의 세계에 대한 공격적 태도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의 지배는 결국 인간에 의한 지배를 노린다. 그것은 다른 주체를 향한 공격성이다. 자아의 만족은 또 하나의 자아에 대한 부정적 관계에 좌우된다.

자유는 그것이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자유의 내용 자체가 타자에 대한 상호부정의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포함한다.

인간존재 전체에 대한 공포인 죽음과 불안은 인간의 자유와 만족을 형성하는 본질적 항목들이다.

 

-> 코로나 방역에 맞서는 유럽의 개인들. 마스크를 안 쓰고, 주사를 맞지 않을 자유 이것은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그것은 바로 타자가 내 자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부정이고, 더 나아가 타자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것 까지 나아가는 것이 개인의 자유이다.

 

p147 : <<정신현상학>>은 존재론적 내용과 역사적 내용의 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존한다. 정신의 표현들은 서양문명의 중요한 단계들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표현들은 부정성의 형태를 취한다.

역사의 노동은 역사 안에서 멈춘다. 소외는 폐지되고, 소외와 함께 초월과 시간의 유동도 폐지된다. 정신은 그것의 덧없는 형태를 지양하고 시간을 부정한다.” 그러나 역사의 종말은 역사의 내용을 탈환한다.

-> 시간을 부정한다는 것의 의미는 미래 지향이 아니라 과거지향을 한다는 것 : 시초적 유토피아(자궁으로)의 회복, 역사의 내용(과거)를 탈환한다.

 

p148 : 존재는 이미 미래를 향한 고통스러운 초월이 아니고 과거의 평화로운 회복이다. 있었던 모든 것을 보존한 기억은 실체의 내적 형식 그리고 실제로 더 높은 형식이다.”

헤겔은 진보의 개념을 있는 것(what is)의 재생산과 완성 안에서 움직이는 순환적, 자기충족적 전개라는 개념으로 대치한다.

헤겔은 정신의 상처들이 흔적도 없이 낫는다고 생각했다. 이성이 승리함으로써 서양문명이 도달한 수준에서 자유는 실재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p149 : 서양철학은 관념에서 시작해서 관념으로 끝난다. 시작에서나 끝에서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나 헤겔에게서나 존재의 최고양식, 이성과 자유의 궁극적 형식은 정신(Geist)이다. 끝에서나 처음에서나 경험세계는 부정성-정신 또는 지상에 나타나는 정신의 평상들의 재료와 도구로 남아있다. 실은 기억도, 절대지도 있던 것과 있는 것(which was and is)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철학이 경험세계를 지배하는 현실원칙 뿐 아니라 현실원칙의 부정을 증언한다. 존재의 완성은 상승하는 곡선이 아니라 닫힌 원환:소외로부터의 귀환이다.

-> 자유의 박탈을 통한 회귀적 진보

p150 : 열반의 이념은 긍정을 포함하고 있다. 종말은 완성이고 만족이다. 열반은 쾌락원칙의 이미지이다.

충만한 만족은 개별화의 원리가 미치지 않는 데에 있다. 가장 격렬한 정사가 가장 격렬한 체념을 축복한다. -> 물아일체, 개인보다 꼬뮌에 행복이 있다.

 

p151 : 과거는 해방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뿐 아니라 해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모든 해방을 약화시킨다. 삶을 지배하는 시간의 힘이 파괴되지 않으면 자유는 있을 수 없다. 시간은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거짓 양심의 상처를 지속시킨다. 그 상처가 복수의 마음과 처벌의 필요를 기르고, 그것들은 교대로 과거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영속시킨다. (152) ‘정신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낫는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많은 흉터를 남긴다. 과거는 현재를 지배하는 주인이 되고 삶은 죽음에게 바치는 공물이 된다.

 

p153 : 니체는 서양문명의 현실원칙과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현실원칙의 이름으로 말한다. 목적 내재적 존재의 경험 기쁨(Lust 성욕)과 향유에 근거하여 이성의 전통적 형식은 거부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시간에 저항하는 투쟁이 수행된다.

초월이 정복될 때에만 영원이(154)지금 여기의 현재가 된 때에만 인간은 그 자신이 된다. 니체의 개념은 진보가 아니라 영원회귀라는, 닫힌 원환의 환상으로 끝난다.

이것은 일체의 도피와 부정을 물리치는, 삶의 충동들에 대한 전적인 긍정이다. 영원회귀는 필연과 만족이 일치하는 존재를 향한 에로스적 태도의 의지이며 환상이다.

 

p154 : 죽음은 존재한다. 그것은 오직 여기 지상에서 죽기 전에 존재한 모든 것들의 진정한 재생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의지와 소원이 깃들인 재창조를 수반할 때에만 정복된다. 영원회귀는 고통의 회귀를 포함한다. 그러나 그 고통은 더 많은 만족, 더 큰 기쁨의 수단이다.

 

p156 : 투쟁은 생성과 존재의 상승곡선과 닫힌 원환, 진보와 영원회귀, 초월과 만족스러운 휴식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지배하려는 논리와 만족하려는 의지의 투쟁이다. (157)다 현실원칙[에로스와 타나토스의 투쟁?]을 규정하겠다는 그것들의 요구를 주장한다.

존재의 본질을 규정하려는 프로이트의 메타심리학은 그것을 로고스로 규정하는 전통적 정의와는 반대존재를 에로스로 규정한다. 죽음충동이 에로스(존재의 원리)에 대항하여 비존재(존재의 부정)의 원리를 긍정한다.

존재는 본질적으로 쾌락의 추구이다.

생존을(158)위한 투쟁은 원래 쾌락을 위한 투쟁이다. 이러한 목적을 집단적으로 성취하는 데서 문화가 발생한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투쟁은 후에 지배를 위하여 조작된다. 문화의 에로스적 근거가 변형되는 것이다. 철학이 존재의 본질을 로고스로 인정하는 순간에, 그것은 이미 인간과 자연을 예속시키는 지배의 로고스-명령하고 정복하고 관리하는 이성이 된다.

에로스에 근거한 프로이트의 존재해명은 에로스의 억압적 승화가 아니라 에로스의 자유로운 자기발전으로 문화를 상상한 플라톤 철학의 초기단계[향연]를 탈환한다.

-> 에로스 vs 로고스

 

프로이트 자신의 이론은 일반적인 흐름을 따르고 있다. 그의 저작에서도 우세한 현실원칙의 합리성이 에로스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색들을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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