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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i 15 Dec 2021 인무연 - Aesthetic Dimension - HERBERT MARCUSE
15 Dec 2021 허버트 마르쿠제, 에로스와 문명 – 프로이트 이론의 철학적 연구
2021년 12월 15일 전주 ‘인간무늬연마소’ 정신분석학 및 사회심리학 연구모임 –
주제: 마르쿠제 – 미학적 차원 요약 및 발표 콩빠
참고한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 H. 마르쿠제 지음, 김인환 옮김, 에로스와 문명 – 프로이트 이론의 철학적 연구, 나남 2017, 213쪽 – 240쪽 (제 9장 미학적 차원)
영문 원문: HERBERT MARCUSE, EROS. AND CIVILIZATION - A Philosophical Inquiry into Freud London: Hogarth Press, 1950 CHAPTER NINE: Aesthetic Dimension
EROS. AND CIVILIZATION. A Philosophical Inquiry into Freud. HERBERT MARCUSE ... Pdf'm (London: Hogarth Press, 1950), II, '-79·.
<H. 마르쿠제 글 요약>
구조적 정신 능력인 상상과 마찬가지로, 미학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비현실적"입니다. 미학은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가로 현실 원리로부터의 자유를 유지해 왔습니다. 미적 가치는 삶에서 문화적 장식과 고양을 위해 또는 사적인 취미로 기능할 수 있지만, 이러한 가치를 향유하고 사는 것은 천재의 특권이거나 퇴폐적인 보헤미안의 허세적인 표식입니다. 수행원칙 (The Performance Principle as a Tool to Desublimate the Drives in a Repressive Civilization -억압적인 문명에서 충동을 반(反)승화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수행 원칙. It is “the violent and exploitative productivity which made man into an instrument of labor” "인간을 노동의 도구로 만든 것은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생산성"이다 – 관련 내용 “Performance Principle by Marcuse” 구글 검색)의 세계를 형성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이성의 법정 앞에서 미학적 존재는 정죄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미학 개념이 수행 원칙에 반하는 내용과 진실에 대한 "문화적 억압"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213쪽) 우리는 미학의 본래 의미와 기능을 회상함으로써 이론적으로 이러한 억압을 풀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이 작업은 쾌락, 관능, 아름다움, 진실, 예술, 자유 사이의 내적 연결을 보여주는 것과 관계가 있으며 이러한 연관성은 미학이라는 용어의 철학적 역사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214쪽).
칸트의 철학에서 주관과 객관 사이의 기본적인 적대관계는 감각과 지성; 욕망과 인식, 실천적 이성 그리고 이론적 이성이란 정신 기능 사이의 이분법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실천적 이성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도덕적인 목적을 위하여 자유를 구성합니다. 이론이성은 인과율 아래서 자연을 구성합니다. 주체의 자율성은 인과율을 파괴할 수 없으며, 어떠한 감각자료도 주체의 자율성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214쪽)
그의 설명의 애매성은 주로 칸트의 시대에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둔 미학의 새로운 의미(아름다움, 특히 예술에 관한 학문)와 미학의 근원적인 의미(감각에 관한 학문)가 뒤섞여 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215쪽)
‘판단력 비판’의 제59 단락에는 "도덕의 상징으로서의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칸트의 체계에서 도덕은 스스로 주어진 법칙에 따라 실천이성이 실현되는 자유의 영역입니다. 아름다움은 자유의 현실을 직관적으로 예시한다는 점에서 이 자유의 영역을 상징합니다. (216쪽)
프로이트에 의하면 문명은 극기와 노동을 통하여, 다시 말하면 본능적 활동력의 억압적 유용화를 통하여 유지됩니다. (216쪽) 이러한 제약에서 벗어나면 인간은 작업과 질서 없이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고 자연은 문화를 파괴하게 됩니다. (217쪽) 이 주장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지배와 착취를 통해서가 아니라 리비도의 고유한 힘의 해방을 인간과 자연의 성취를 그 원형으로 상상했습니다.
우리는 칸트의 철학에서 미학적 차원이 관능과 도덕 사이의 중심적 위치, 즉 인간 실존의 두 극을 차지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학적 차원은 두 영역 모두에 유효한 원칙을 포함해야 합니다. 이 차원의 기본 경험은 개념적 이라기 보다는 감각적입니다. 미적 지각은 본질적으로 직관이지 관념이 아닙니다. 감성의 본질은 수용성에 있습니다. 미적 기능이 그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관능과의 본질적인 관계 덕분입니다. 미적 지각은 쾌락을 동반합니다. (217/218쪽) 상상으로서 미적 지각은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감각적 이상(주체적인 능력)입니다. 그것은 쾌락을 가중시키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주관적입니다. 감각적이고 따라서 수용적이지만 미적 상상은 창의적입니다. 즉, 그 자체의 자유로운 종합에서 아름다움을 구성합니다. 미학적 상상력에서 감성은 객관적 질서에 대해 보편적으로 유효한 원칙을 작동시킵니다. 이 질서를 정의하는 두 가지 주요 범주는 "목적 없는 순수성"과 "법 없는 합법성"입니다. 그것들은 칸트적 맥락을 넘어서 진정으로 비억압적인 질서의 본질을 규정합니다.(218/219쪽) 첫 번째는 아름다움의 구조를 정의하고 두 번째는 자유의 구조를 정의합니다. 미학적 상상력에서 대상은 오히려 그러한 모든 관계와 속성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그 자체로 자유로운 것으로 표현됩니다. (219쪽)
대상을 '자유로운' 존재로 해방시키는 이 경험은 상상의 자유로운 유희의 작업입니다. 주체와 대상은 새로운 의미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존재에 대한 태도의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는 대상이 이제 자신을 드러내는 형태에 의해 생성된 새로운 쾌락의 질을 형성합니다. 그것의 "순수한 형태"는 "다양함의 통일성", 즉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운동과 관계의 일치, 즉 그 "존재", 즉 존재의 순수한 표현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표현입니다. 상상력은 이해의 인지적 개념과 일치하며, 이 일치는 미적 대상의 자유로운 조화에 대한 즐거운 반응으로서 정신 기능의 조화를 확립합니다. 아름다움의 질서는 상상력의 놀이를 지배하는 질서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이중의 질서는 법칙에 순응하지만 그 자체가 자유로운 법률입니다. 그 법칙들은 첨가된 것이 아니고 특정한 목표와 목적의 획득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220쪽)
칸트에게 미학적 차원은 감각과 지성이 만나는 매개체입니다. 또한 미학적 차원은 자연과 자유가 만나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이 이중적 매개는 문명의 진보에 의해 생성된 생산적으로 낮은 능력과 높은 능력 사이의 일반적인 갈등에 의하여 이중의 매개가 부득이하게 됩니다. 따라서 미학적 차원에서 이성과 이성 사이를 중재하려는 철학적 노력은 억압적 현실 원리에 의해 분리되었던 인간 실존의 두 영역을 되살리려는 시도로 나타납니다. 결과적으로, 미학적 화해는 이성의 압제 즉 궁극적으로 판단력에 대항하여 감성의 해방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21쪽)
쉴러의 ‘인간의 심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1795)는 주로 ‘판단력 비판’의 영향 아래 쓰인 것인데, 미학적 기능의 해방하는 힘에 의한 문명을 다시 형성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서구 사상 전통의 내적 논리는 쉴러로 하여금 새로운 현실 원리와 이에 상응하는 새로운 경험을 미학적인 것으로 정의하게 만들었습니다. 합리주의의 지배 아래 감각의 인지적 기능은 끊임 없이 최소화되어 왔습니다. 미적 기능의 내용과 타당성은 축소되었습니다. (222쪽)
쉴러의 미학에서 주요 요소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노동이 놀이로, 생산성이 "전시(展示 display – Schein)"로의 변환. 여기서는 문명의 결정 요인인 결핍(희소성)의 정복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2) 두 가지 기본적 대립을 화해시키기 위한 감성의 자기 승화와 이성의 탈승화(de-sublimation) (3) 시간이 지속적인 만족에 대하여 파괴적인 경우, 이러한 부정적인 시간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을 화해시키는 요소와 동일 합니다. (237쪽)
필요 노동은 본질적으로 비인간적이고 일상적인 활동의 체계입니다. 그러한 시스템에서는 그 자체로 가치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인 노동 체계는 불가피하고 억압적인 작업 세계 밖에서 개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저축할 수 있도록 조직될 것입니다. (239쪽)
확립된 지배 체제에서 이성의 억압적인 구조와 감각 기능의 억압적인 조직은 서로를 보완하고 지지합니다. 프로이트의 용어로는 문명화된 도덕은 억압된 충동의 도덕입니다. 억압된 충동의 해방은 문명의 하락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의 하락은 인간 존재의 유기적 구조로 되돌려 놓을 수 있으며, 재결합은 이 구조 자체를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 만일 높은 가치와 낮은 능력이 분리와 원격(遠隔)을 극복한다면, 낮은 능력도 문화에 대하여 자유롭게 접근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240쪽)
<나오며 >
허버트 마르쿠제의 미철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본인은 아래의 이차적인 우리말 문헌을 참고 하였습니다. 아래에 함께 공유합니다.
1. 칸트의 미와 도덕성의 관계
칸트의 『판단력비판』은 미감적 판정의 독자적인 원리를 분석하여 미적인 것의 고유한 속성과 위상을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 놓인 핵심 물음은, ‘인간은 이 자연세계 안에 도덕성을 현시할 수 있는 존재인가?’이다. 이와 같은 물음 속에서 칸트는 현상체계와는 이질적인 감정을 주체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객관의 표상이 아닌 사물자체와 연결한다. 즉, 인간은 현상체계로 설명할 수 없는 독자적인 감정을 지닌 존재이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작동하는 판단력은 반성적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저와 같은 독특한 감정을 가지는가? 칸트는 반성을 통해 사물자체와 연결된 내 마음의 감정을 이성의 도덕적 소질로 해명한다. 미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은 자유, 비-경향성, 보편적 필연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미적인 것이 곧 도덕적인 것이라는 등가(等價)의 공식이 성립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저 독특한 감정을 이성의 도덕적 개념으로 해명해도 괜찮다는 반성적 요구조건의 성립가능성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미적 존재이기만한 주체는 자연산물의 아름다움 속에서 도덕성의 근거를 볼 수 없지만, 도덕적 주체는 자연산물의 아름다움 안에서 도덕성의 실현 가능성과 그 소질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도덕법칙의 실행자인 이성적 존재는 아름다움을 도덕의 상징으로 여기며, 윤리적 이념들의 발달과 도덕감의 교화를 아름다움의 정초를 위한 예비학으로 여길 수 있다.”(이용훈 211쪽)
이용훈 (2021)., 칸트 『판단력비판』에서 미와 도덕성의 관계 : 반성적 판단력을 중심으로. 동서인문학, 61, 189-214.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596192
2. 쉴러의 유희충동
“미적인 의사소통만이 이 사회를 단합시킨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에 관계하기 때문이다(쉴러 편지)’. 쉴러의 유희충동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자 예술의 경지이며, 그 양질의 미적본능이 예술, 문 화, 더 나아가 평생교육 역할이 되어 사회의 공동체성을 함양함으로써 이 시대에도 만연돼 있는 물질만능, 노동압박, 생산성 경쟁, 기계화의 정서 황폐, 인터넷 시대의 정신고갈과 경박성 만연을 치유할 대안이 되게 한다.” (정길수 104쪽)
정길수 (2016), 미적(美的) 이상국가를 실현하는 관광의 유희성(遊戱性) 탐구 - 쉴러(Schiller)의 ‘유희충동’을 중심으로 -. 서비스산업연구, 14(1), 97-113.
URL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543736
3. 쉴러와 이성과 감성의 조화
“쉴러가 미적 탐구 결과로 얻은 편지의 “제안들은 대부분 칸트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쉴러는 칸트가 제시한 미적 취향(취미)의 판단을 일반화한 보편적 취향의 미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여 미의 본질을 ‘주관적 합목적성’이 아니라 ‘결합과 통합의 성격’으로 제시하고 있다. 칸트가 인간을 감성적인 동시에 이성적인 존재로 보지만 ‘감성에 대해 이성이 우위한 존재’로 설명한 반면, 쉴러는 이성과 감성의 통일적인 존재로 보고 칸트가 언급한 이성에 의한 감성의 통제보다는 이성과 감성의 통일성을 우위에 둔다. 따라서 도덕적 인간에 대해 칸트가 이성과 감각을 대립시켜 이성을 따르는 인간으로 설명한 반면 쉴러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룬 상태가 온전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현민 14쪽)
이현민 (2019). 쉴러의 미적 교육과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고찰. 교양교육연구, 13(2), 11-29 URL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8009870
4. 마르쿠제의 소외 없는 노동과 놀이
“마르쿠제는 현실원칙을 벗어난 미를 대상으로 하고, 자유를 목표로 하는 충동으로서 쉴러의 ‘놀이의 충동’을 들고 있다. 즉 인간 존재에 있어서 대립하는 질서는 관능성과 이성, 質料와 형식(정신), 자연과 자유, 특수와 보편으로 주목되어, 이 두 차원은 ‘감성의 충동’과 ‘형식의 충동’에 의해서 지배된다. 감성의 충동은 본능적으로 수동적, 수용적인 데 대해서 형식의 충동은 활동적, 지배적, 압도적이다. 문화는 이 두 충동의 결합과 상호작용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런데 기성문명에서는 이 두 관계는 적대적이며, 감성을 이성에 복종시켜 왔다. 거기서 이두 충동을 화해시키는 셋째의 충동으로서 ‘놀이의 충동’을 제시한다. 이 충동의 대상은 미(美)이고 그 목표는 자유이다.” (김종호 109쪽)
… “이와 같은 억압적인 구속이나 속박에서 벗어나서 각종의 결핍과 욕구가 소외된 노동없이 만족될 때에 인간은 자유로이 자기의 각종 능력과 자연속에 잠재하는 가능성으로서 ‘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놀이에 의해서 그는 비로소 자유롭게 된다. 따라서 마르쿠제에 있어서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문명이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켜 놀이의 충동이 활동 원리로 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종호 110쪽)
김종호 (1973),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기독교사상, 1973.10, 98-111(14 pages)
URL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142300
5. 기타 참고 자료
억압문명은 가능한가 –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 산책
마르쿠제가 문제 삼는 것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현실원칙(필요노동)과 쾌락원칙(에로스)의 양립할 수 없는 갈등이 아니라, 수행원칙(소외된 노동)에 의한 쾌락원칙(에로스)의 과잉 억압입니다.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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