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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지식인들이 파시즘의 학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는 사실이 20세기 제2사반기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사건 (p.12)
이주로 말미암아 두 문화권 사이에 걸쳐 살게 된 결과 그들의 재능이 제한되기보다 오히려 고무되고 키워질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많다 (p.13)
일반적으로 망명자들을 볼 때 우리가 느끼는 지배적인 인상은 낯선 땅에서 이룩한 놀라운 업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어떠한 지적인 문제 앞에서도 존경으로 말미암아 침묵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보다 비판적으로 자기 검토를 할 수 있었다 (p.14)
1. 기원의 땅
무솔리니의 자기중심적인 민족적 주장은 이탈리아인들의 지극히 신중한 요구, 즉 그들은 보편적이고도 인문주의적인 문화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는 통속화하고 나아가 왜곡시키는 것이었다 (p,17)
대부분의 이탈리아 문학가들이 파시스트 정권에 대해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였고, 그에 대해 한마디도 제대로 언급할 능력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p.18)
크로체는 그 자신이 추상적인 이유 때문에 사회과학을 혐오했고, 무솔리니는 그것의 잠재적인 전파력 때문에 사회과학을 두려워했다. 크로체의 혐오와 정권의 적대감이 우연히 일치함으로써 이탈리아의 정신분석학도 처음엔 유망한 학문으로 출발했으나 나중엔 거의 소멸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p.21)
이탈리아에서도 정신분석학의 대가들 중 상당수가 유대인 혈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의 보급과 실시를 당연히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 (p.24)
올바른 길을 선택했던 사람들은 바로 이탈리아를 떠나 망명길에 오름으로써 대학교수직을 포기하고 증인의 임무를 수행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p.26)
바이마르 공화국의 열광적이고도 다양한 지적 생활 속에서 민족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세계주의적인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기본적인 격차가 있었다
사만민족인 유대인들은 천박하고 '무미건조할'뿐 심오함과 창조성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 (p.30)
납득할 만한 민족적 목적을 가진 전쟁이라는 외관을 벗어던지고, '인종적'승리를 최종의 목표를 설정한 채 일련의 끝없는, 그리고 탐욕스런 약탈과 절멸의 행위가 되고 말았다 (p.34)
2. 선구적 문학가들: 헤세와 만
망명작가들 - 헤세, 토마스 만
헤세
유리알 유희의 도입부는 이미 해체되어버린 '정신'을 함양해 나가는 것이 그의 동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하나의 복합은유를 통해 보여주었다.
미학과 지성주의의 영역으로부터 공적인 분야와 인간적인 연대성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p.38)
토마스만
유럽 문화의 분산을 이전의 어떠한 이주와도 판이하게 다른 의미를 갖는, 전세계에 통일을 가져올 '새로운 휴머니즘의 기운"까지도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했다 (p.41)
반유대주의는 그에게 "언제나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p.42)
3. 친화력
그 밖의 사상 분야에서도 이른바 독일어로 '친화력'이라고 불리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p.43)
사회사상가들은 최선을 다해 영어로 집필하려고 노력했다.
지식인들은 언어습득이 늦었으며 여전히 번역어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도달하려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통스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p.45)
독일어권과 영어권 사이에서 이렇게 친화력을 발휘했던 세 가지 접근 방식, 즉 베버.프로이트.비트겐슈타인 등에서 유래하는 접근 방식들에 대해서는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베버
베버의 유산이 사회사상의 주된 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비로소 미국에 건너와서의 일이었다 (p.46)
독일의 사회학은 초연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독일의 사회학이 보다 일관성 있는 경험적 입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의 이주가 필요했던 것이다 (p.47)
사회학적 전통의 종합에서 독일인들이 이론을 제공했다면 미국인들은 경험적 탐구를 위한 재능과 열정을 제공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국제적인 사회학의 기원이다.
베버의 전통 속에서 연구를 계속해 온 망명자들은 '새로운 경험을 과거의 전통과' 통합한다는 훨씬 더 어려운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p.48)
(2)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이미 미국의 풍토에 정착해 있어 1933년이나 1938년 이후에 건너간 연구자들도 쉽게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덜 폐쇄적이었고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온 메시지에 호기심을 보였다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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