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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4 의식과 사회 발제 개벽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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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몇 가지 예비적 고찰

 

 

이 연구는 지성의 역사에 대한 에세이다. 지성의 역사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 이성적인 논의를 다룬다. 인간적 표현의 모든 범위- , , 실천, 전통 등에 나타나는 지성의 역사 영역에 포함된다. 역사의 심오한 자료로 마르크스는 이것을 토대라고 불렀고 중요한 이유로는 가차없이 제약하는 생산제도의 성격이었다고 말한다. 사회사상가들의 경우에는 인간 감정의 비합리적이고 사실상 변하지 않는 성질이라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내용을 충동이라고 부르고 파레토가 잔여라고 부른 것에 결정적인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사상가들과 마르크스의 차이가 크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것은 대부분 단순한 반복의 유형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마르크스에게 동의했다.(18)

 

인간의 자유는 물리적 환경에 의해서든, 또는 정서적 조건에 의해서든 불가피하게 제한을 받게 된다는 것을 현대 사회과학의 대전제가 되었다. 역사가의 주제는 언제나 이루어진 일 인간의 업적 이었다. 이러한 업적을 단순히 물리적, 심리적 조건의 소산이라며 없애버린다면, 역사가가 쓸 만한 일은 무엇이 남을 것인가? 이러한 딜레마는 늦어도 1860년대부터 나타나며 이 연구에서는 19세기 말의 실증주의의 유행을 다룰 때 다시 등장할 것이다.(19)

 

아무리 많은 역사가들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로부터 인간 행위의 보다 의식적인 측면을 단순한 합리화로 여기도록 배우고, 또한 파레토로부터 이를 파생물로 보는 것을 배웠다 하더라도, 역사가들은 인간의 경험의 보다 의식적인 측면에 대해 계속해서 쓰기를 고집하고 있다. 역사가들은 사물의 합리성을 판단해내는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감각으로 익숙한 소명에 따라 글을 써왔던 것이다.(20)

 

역사의 본질은 변화다. 거대한 비개인적인 힘은 단지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통계학적인 의미에서는 수많은 선택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대체로 각자의 선택이 자유롭다고 확신한다.

 

지성의 역사는 이러한 공통된 자료를 행위의 관점에서 보다는 오히려 사상의 관점에서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을 말한다. 지성의 역사 주제는 여러 차원의 복잡한 사실에 대한 합리화이다.(21)

 

지성의 역사를 다루는 역사가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저지르는 잘못은 그가 참되게 이해하지 못한 일들 스스로 내면화해서 다시금 철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 쓰는 것이다.(22)

 

시대정신이란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가 자신의 정신일 뿐이라고 한 괴테의 규정에 동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말할 만큼 대담한 사람이 있을까? 시대정신의 발견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면서도 동시에 지성의 역사를 다루는 역사가의 최고 과제라는 것이 역설적 진리이다.(24)

 

이 연구 자체를 한정해야 할 자리에 이르렀다.

1. 지금 쓰고 있는 지성의 역사가 어떤 종류인가.

2. 특정 지역, 특정 시대, 특정 관념, 특정 인물을 다루기로 선택한 이유

 

지성의 역사 문헌을 조사하는 연구의 세 가지 유용한 범위

대중적 관념과 실천을 민속과 공동체적 감정의 광대한 역역과 함께 다루는 것으로 회고적 문화인류학

크로체가 윤리 정치적이라고 부르는 역사 지배적 소수자와 이들을 대체하려는 적대적인 소수자 활동과 포부에 대한 연구

지배적 엘리트들을 고취하게 될 여러 가지 관념의 표명과 전개의 역사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 역사는 여전히 보급되어야 할 관념을 다룰 것이다.(25)

 

이 연구의 지리적 범위는 보다 좁은 의미에서의 유럽 서양사회의 원래 중심부인 프랑스, 독일(오스트리아를 포함한), 이탈리아이다.(28)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세대에게는 이러한 사상가들이 심리적 불안이라는 광범한 경험, 곧 파멸이 임박했다는 느낌, 옛 관습과 제도는 이미 사회적 현실에 적합하지 낳았다는 느낌을 함께 갖고 있었다.(29)

 

이 시기의 많은 대사상가들 매우 이질적인 사람을 든다면 프로이트, 크로체, 파레토는 커다란 포괄적 체계를 수렴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체계 건설자 중의 마지막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들의 체계를 완결하지 않은 후계자들에게 확고한 대답보다는 검증되어야 할 가설들을 더욱 많이 남겨줌으로써, 사회이론이 전문적으로 분화되고 한정된 개별적 문제에 연구를 집중하는 시대를 열어놓았다.(30)

 

그들은 인간의 행동에서 주관적 가치가 갖는 중요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행동하는 자로서의 인간은 논리적 고려로부터 결정적 영향을 받는 일이 드물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게 되었다.(31)

 

‘1890년대의 세대를 규정할 만한 공통된 사회이고 지적인을 제시하려고 한다. 분명히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인물은 프로이트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은 베버로 그는 엄청난 지적 능력과 융통성을 가진 사람이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로 크로체를 들어야 할 것이다. 크로체는 독창성이 약간 모자라는 사상가였지만 그의 나라에서의 영향력은 반세기에 걸쳐 일종의 학문적, 철학적 독재권을 행사할 정도였고, 현대사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34)

 

우리 역사가는 그에게서 우리의 방법 및 철학적인 전제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현대적 비판을 배웠다. 이들과 함께 뒤르켐의 이름을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학의 베버와 비견되는 또 한사람의 창설자로서 그는 분명히 존경을 받지만 프로이트나 베버나 크로체보다는 덜 예리하고 덜 독창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밝히려고 한다.(35)

 

사회학자 파레토, 철학자 베르그송, 소렐, , 정치사회학자 모스카, 미헬스, 역사가 마이네케, 신학자 트뢸치, 모럴리스트 폐기, 프랑스의 에세이스트 방다, 알랭, 철학자 딜타이,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그람시, 사변적 역사가 슈펭글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사회하자 만하임, 여섯 명의 문학자 알랭-푸르니에, 지드, 프루스트, , 헤세, 피란델로를 다룬다.(36)

 

전문적인 지적 추구의 영역을 넘어서 지식의 다른 분야와 관련이 있는 관념에만 관심이 있다. 공통된 사회적 도덕적 관념의 축적에 기여한 저술에만 연구를 국한시키려고 한다. 경제학, 인류학, 논리학, 형이상학 등 다양한 분야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을 제외시켰다. 한편으로는 우파든 좌파든 간에 정치운동과 깊은 관련을 갖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저술가들을 다룰 생각은 없다.(36)

 

결국 개인이야말로 역사연구의 궁극적 단위이다. 관념 자체는 사상의 경향’, ‘운동’, ‘조류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관념은 아무리 충실하더라도 개인의 사상을 탄생시키지 못한다. 구체적인 한 개인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 관념을 산출할 때까지, 관념은 전혀 현실성을 갖지 못한다.(39)

 

이 책에서는 관념론의 한 형태가 두드러지게 공감을 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므로, 미리 나 자신의 태도를 밝혀두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이 책은 개인의 연구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평범한 개인들이 아니라 매우 뛰어난 개인들의 연구가 될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두 가지 핵심점 문제에 주목할 것이다. 표면에 드러난 외면적이고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연구 주제로는 , 20세기 초의 지도적 사회사상가들에 의해 제기된 인간의 목적에 대한 여러 이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보게 될 것이다.(40)

 

즉 사회과학이 되지 않으면 문학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전에는 철학이 결합시키고 있던 사변적 사상의 두 측면이 이제는 분리될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41)

 

크로체와 프로이트와 베버의 영향은 거의 매 쪽마다 나타날 것이다. 무엇이 역사를 구성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암암리의 사고방식은 기본적으로 크로체적이다. 하지만 크로체적 태도는 정신분석 및 사회학 이론에 의해 상당한 수정을 받았다. 크로체 자신이 기질적으로 반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에 첫 번째 모순이 있다. 수정주의는 곧 맥없는 절충주의에 빠질 위험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위험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41)

 

나 자신의 경우, 국적상으로는 미국인이지만 나의 지적 교양은 주로 유럽적이라는 정보를 말해두어야 할 것이다. 원래 그것은 영국-프랑스 적인 것이었다. 데카르트의 논리, 로크의 상식, 흄의 회의론은 내가 그들의 저술을 읽기 훨씬 전부터 이미 나의 교육적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42)

 

우리의 과제는 분명한 이론적 형식화의 배후에 놓여 있는, 반쯤은 무의식적인 태도를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서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의 여러 가지 유형을 구별하는 것도 우리의 책임을 것이다. 프로이트, 베버 크로체 등 20세기 초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이 사실상 성실한비판자였다면, 2급의 사상가들 중 일부는 불성실했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44)

 

사실상 1890년대 세대의 이른바 반계몽주의적 감정은 그 목표가 다른 곳에 있었다. 계몽주의에 대해 말하는 기계론적이고 유물론적이라는 비난이, 사실 여러 형태의 실증주의 철학에 더욱 적합한 비난임을 말해두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45)

 

엄밀과학이라는 실증주의적 신앙에 대항하기 위해, 1890년대의 젊은 사상가들은 직관에 의지하려고 했다. 직관이라는 말의 정의는 만일 적절한 정의를 찾아 낼 수 있다면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밝혀질 것이다. 지식에 이른 S 서로 다른 두 길로서 직관이성을 대립시키는 것만으로는 이 어려운 문제가 참되게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직관은 오로지 부분적으로만 의식적이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전의식과 제임스가 말하는 의식의 주변의 영역에 속한다.(46)

 

20세기 초의 중요한 사회사상가 중에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정신적 가치를 주장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과학적, 윤리적자연주의의 요청을 단지 천박하다고 비난했을 뿐이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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