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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Jan 2022 Zwi 비트겐슈타인 인무연  

19 Jan 2022 Zwi 비트겐슈타인 인무연.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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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19 전주인간무늬연마소정신분석학 사회심리학 연구모임

주제: 비트겐슈타인과 케임브리지 시절   요약 발표 콩빠

 

요약한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슈튜어트 휴즈, (김창희 옮김), 지식인들의 망명사회사상의 항해  1930 – 1965, 개마고원 2007, 2 53- 92

 

<H 슈튜어트 휴즈의 .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내용 요약>

 

영국의 사회 사상가들은 사변보다는 측정을, 인식의 문제보다는 구체적인 사실들을 선호했다. 그들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업적은 다음 세대에 케인즈 (John Maynard Keynes) 새로운 경제학으로 나타났다.

절대인 관념론을 뒤엎은 또다른 사상가 집단은 케임브리지의 철학자 무어(Moor) 러셀(Russel)이었다.(56)

나중에 영국의 학도들에게엄격한 철학적 분석사회의 성격에 관한 고찰 연결될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해준 인물은 바로 케인즈의 친구이자 그에게서 금전적 도움을 받기도 했던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이었다. (57)

20 중반에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1912년의 학기와 다음 해의 학기를 수학했다. 여기서 그는 무어와 특히 러셀을 알게 되었다.(58)   

 

1929 비트겐슈타인은 연구학생 혹은 대학원 학생이라는 변칙적인 자격으로 케임브리지에 왔다. (휴즈 71)] 

1929 박사학위를 받았고 다음 해에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특별 연구원이 되었다. 9년후에는 교수직을 얻었는데, 10 넘게 자리에 있었다. (71)

 

후기 저작들이 유고로 출판될 때까지 비트겐슈타인의 지적 입장은 아주 묘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의 변화는 그의 사고 내용에 관한 것이 었다기 보다사실 그는 자신의 초기 저작인 <논리 철학논고> 내용을 부분적으로만 논박했다무엇보다도철학 하는 방법 대한 그의 견해에 관한 것이었다.(73) , 그들은문명화된 사람들에게서 무슨 표현인가를 전해들은 야만인이나 원시인 처럼 행동하며 그것을 잘못해석하고, 마침내는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아주 기묘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것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추론과정에 속아서, 세계는 충분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74)

비트겐슈타인의 가장 유명한 경구 중에는철학은 언어를 가지고 우리의 지성이 걸려든 마술과 싸우는 거이라는 말이 있었다.(74)  

철학자가 있는 일이란 무한한 다양한 언어의 용례를 검토함으로써 보다 심원한 언어의 성질을 밝혀내는 뿐이다.(75)

 

비트겐슈타인의 개인적 종교관은 그의 인생관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황량하고 그리 안온하지 못했다. 죄의 확신이라든가 두려운 심판관으로서의 신의 형상 등을 보면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적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비트겐슈타인의 청교도적 유년시절이 남겨놓은 감상적인 흔적들이었다. 그는 어떤 특정 신앙에도 귀의할 없었기 때문에,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과 자신의 신앙의 근거에 대해 계속 회의하는 사람들을 존경했다.(83)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정신 가운데 우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정신분석학의 중심적인 가르침을 거부했다. 스스로도 정신적인 현상을 통제하는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무의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로이트주의자들은  무의식적 사고라는 표현을 씀으로 문제 전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선, 완전한 의식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에 대해서는사고라는 말을 쓰고무의식새로 발견된 심리학적 반응’이라고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86/87)   

비트겐슈타인은 자신과 프로이트 사이의 깊은 유사성을 인정하지 않을 없었다. (87)

그들은 모두 인간의 일상생활에 스며 있는 환상을 제거하고자 했으며, 공언된 진술과 그것의 숨겨진 의미 혹은 이면의 의도 사이의 불일치를 드러내고자 했다.(87) 사람 모두 탐구의 단서가 있는 언어상의 실수와 착각에 귀를 기울였다.(88)

프로이트가 인간의동물적 성질 이해하는 것이 문명의 부담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에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주장했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을 야수로부터 구별해주며 인간이 주변세계에 관해 실제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인간에게 제공해주는언어능력 그것의모호하고 부정확한 모습 그대로받아들여질 때에만 본래의 가치대로 평가받을 있다는 점을 가르쳤다.(88)  

 

 <나오며 >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해 본인은 아래의 문헌을 함께 참조하였습니다.

 

I.         비트겐슈타인의 생애           

나무위키

오스트리아 비엔나 태생의 철학자. 20세기의 위대한 천재 철학자이자 현대 영미분석철학 선구자 사람으로 꼽히며, 일상언어학파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 일반성을 갈망해 점점 일그러져 가는 지성계에 언어 사용의 다양성과 차이를 강조하였다. 또한 듀이, 하이데거와 함께 체계 철학에 대비되는 3 교화 철학자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표현은 삶의 흐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라고 스스로 말한 것과 같이, 그의 삶을 그의 철학과 분리해 고찰하기는 어렵다.

1889 4 26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카를(1847~1913) 레오폴디네(1850~1926) 비트겐슈타인의 여덟 자녀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카를은 오스트리아에서 철강 산업을 이끌던 대단히 부유한 사람 하나로 유대인이었으나 후에 개신교로 개종하였다. 어머니 레오폴디네는 유대인과 오스트리아계의 혼혈로 가톨릭교도로 성장했으며 여덟 자녀 모두 가톨릭 세례를 받게 하였다. 비트겐슈타인 가족은 대단히 저택에서 살았고 레오폴디네의 음악에 대한 열정적 관심 덕택에 당대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저택에 초대받아 연주를 하곤 했다. 그중에는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브람스나 말러도 있었다.

 

II. 비트겐슈타인의 사상

1. 위키페디아

비트겐슈타인 사상은 《논리 철학 논고》로 대표되는 전기와 《철학 탐구》로 대표되는 후기로 나뉜다. 《논리 철학 논고》에 나타난 전기 사상이 명제에 사용된 낱말의 은유다운 관계를 분석하여 기존 철학에서 잘못된 개념 탓에 빚어진 논리에 상충하는 점을 지목하는 집중된 반면, 후기 사상은 언어-놀이에서 상호 변환되는 자연 언어가 논리에 부합한 구조로 정형화한 언어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는 점을 역설하는 중심이 놓여 있다. 비트겐슈타인은단어의 의미는 주어진 언어-놀이 안에서 단어들이 사용될 가장 이해된다”[주해 1]라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다.)

 

2.        장년 비트겐슈타인: “언어는 게임과 같다.”(강신주, 철학 VS 철학, 그린출판사 2010, 289)

청년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있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혼자만의 힘으로 구별하려 했다 (강신주 292)

<철학적 탐구>에서 낱말의 의미는 언어에서 그것에 쓰임에 있다 강조하였다(강신주 294)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 그림이론과는 달리 언어를 일종의 게임으로 보는 입장을 피력하게 된다.(강신주 294)

장기나 체스에 사용되는 장기말이나 체스말은 각각의 낱말들을 상징한다고 있다. (강신주 294)

우리는 자라나면서 장기 두는 규칙을 그냥 맹목적으로 배웠을 뿐이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군대에서도, 백화점에서도, 자세히 살펴 보면 삶이 맥락을 이루고 있는 어디에나 다양한 언어들이 존재하고 그만큼 다양한 규칙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비트겐슈타인이 항상 요구하길, ‘생각하지말고, 보라 강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이다. ‘ 삶의 문맥에서는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꺼야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이곳 사람들은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만약 주어진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다면, 혹은 주어진 규칙을 발견하지 한다면, 우리는 언어가 통용되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영위할 없게 것이다.(강신주 296) 

다양한 삶의 문맥에서 다양한 언어들이 존재 가능하다는 통찰이었다. (강신주 297)

 

3. 김홍일의 서양철학 여행 -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

말할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말은 비트겐슈타인의 명저 《논리 철학 논고》라는 책에 나오는 명언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도 같은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여기서말할 없는 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에 대하여 침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이 반영된 《논리 철학 논고》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이제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들어보자.

책은 철학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내가 믿기에는, 문제들이 우리가 언어의 논리를 오해한 데에서 생긴다는 점을 보이고 있다. 책의 전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될 있다. 말해질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있고, 말할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모든 본질적인 점들에 대한 문제의 최종 해결점을 찾았다고 믿는다.’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기존의 철학은 말할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그림 이론 제시한다. 그는 언어를 실재 세계에 대한 그림으로 보았다. 여기서 그림이라는 말은 언어와 세계의 논리적 구조는 동일하며, 언어는 세계를 그림처럼 기술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어로 세계의 그림을 그릴 있다는 말은 얼핏 한자와 같이 애초부터 그림과 관련된 상형문자를 떠올릴 수도 있다. 예컨대()’ 시냇물의 흐름에서 나온 글자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그림이라고 말할 , 그것은낱말 아니라문장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밑에 민들레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을 , “ 밑에 민들레 꽃이 피어 있다 언어 표현을 있다. 이것은 언어를 통해 사실을 그려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 표현이란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라고 있다. 이렇게 세상의 사실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바로 세상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언어와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은 각각 1 1 짝을 이루고 있으며 똑같은 논리 구조로 되어 있다. 언어는 세계를 그림처럼 그려 주기 때문에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 주변의 여러 현상을 직접 보지 않고 언어 표현만 듣고도 상황을 이해할 있다는 것이다. 아닌 아니라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그림 이론을 구상하는 교통사고를 다루는 재판에서 장난감 자동차와 인형 등을 이용한 모형을 통해 사건을 설명했다는 기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모형을 가지고 사건을 설명할 있는 이유는 모형이 실제의 자동차와 사람 등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 관점에서 보면, 언어의 기능이란 보여줄 있는 세계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언어를 정확히 사용하면 그에 해당하는 세계를 정확히 설명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언어를 통해 없는 세계는 보여줄 없는 세계가 된다. 점에서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라는 것이다. 이때 언어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가 정확히 일치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사실을 왜곡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을 왜곡시키는 것은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사람이지, 언어가 갖고 있는 의미 자체는 사실을 왜곡시킬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통해서 진리를 찾을 있다는 것이다. “언어로 그릴 있는 세계는 정확히 그리고, 그릴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은 기존 철학의 문제에 대한 그의 진단과 처방이었다. 지금까지 형이상학적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언어 사용 때문이라는 것이 진단이요, 말할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 처방전이다. 기존 철학의 문제는 말할 없는 것들을 억지로 말하려고 했기 때문에 혼란과 거짓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릴 없는 세계, 말할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던 것이다.

《논리 철학 논고》 이후 철학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확신 속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그만두고 떠났다. 언어게임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이 그에게 오기 전까지 말이다.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18101267481)

 

4. 하영미, 비트겐슈타인과 프로이트 종교론 비교 연구. 철학논총 (98), 2019, 191-212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시간이 지나고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사라져야 환상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간지성의 빈곤을 초래한 것인 반면 비트겐슈타인에게 종교는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에게 종교(혹은 윤리) 과학적으로 다룰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가능해 책으로 쓰인다면세상에 있는 다른 모든 책들을 폭음을 내면서 파괴할정도의 위상을 갖는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종교는 층위가 다른 것으로 전제를 규제하는’“하나의 좌표 체계이며, 삶에 관점을 주는 , 다른 것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 프로이트가 개진한 정신분석학이 비종교적이기 때문에 위험하고 해악을 끼친다고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프로이트가 하나의 그림,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그림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오류는 자신의 그림이 유일한 그림이라고 생각한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프로이트가 대단한 재능을 지니긴 했지만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위대하지 않다고 한다.

프로이트가 자신을 알았다면 사물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어떤 것인지 알았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에 대해, 그리고 종교에 대해 유일한과학적인 설명 제공하고 싶어 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신화 불과하다. (하영미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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