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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기원 7장 본능 찰스다윈 / 닥홍 / 220114

 

 

이전에 겪어 보았어야만 할 수 있는 행위를, 특히 전혀 경험이 없는 아주 어린 동물이 행했을 때, 그리고 수많은 개체들이 목적도 모르는 채 같은 방식으로 그 행위를 행했을 때, 그런 행위를 보통 본능적이라고 일컫는다. 그렇지만 본능의 이러한 특성들 중 그 어떤 것도 보편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자연의 계층 구조에서 대단히 하등한 위치에 있는 동물들조차 때로는 판단력이나 이성을 약간은 사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몇몇 형이상학자들은 본능을 습성과 비교했다. 내 생각에 그러한 비교는 본능적인 행위를 하게 만드는 심적 상태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상당히 도움이 되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그렇치 않다. 만약에 습성적인 행동이 대물림된다고 가정한다면 원래 습성이었던 것과 본능은 서로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상당히 유사해진다.

현재의 생활 조건에서, 각 종의 안녕에 본능이 신체 구조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생활 조건이 변화하는 경우라면 본능을 약간 변화시키는 것이 종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본능이 조금이나마 변해 간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본능의 변화가 이익이 되는 한 자연 선택은 그것을 보존하고 계속해서 축적한다는 사실을 무난히 인정할 수 있다. 본능 또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신체 기관뿐만 아니라 본능에도 동일한 효력을 가진채 적용된다.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각 종의 본능은 그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지 순전히 다른 개체의 이익을 위해 생겨나지는 않았다. 개미와 진딧물의 예에서 진딧물들은 순전히 개미들만 좋으라고 본능적으로 분비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록 나는 이 세상에 자기와 상관없이 오로지 다른 종의 개체를 위해서 어떤 행위를 수행하는 동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개체가 다른 개체의 신체 구조상의 약점을 이용하려 하듯이, 종이 다른 종의 본능을 이용하려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자연 선택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본능의 변이가 자연 상태에서 어느 정도 일어나고, 그러한 변이가 대물림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본능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가축화된 동물에서 습성 또는 본능의 대물림된 변화

 

자연 상태에서 본능의 변이가 대물림될 가능성 혹은 개연성에 대해서는 단순히 가축화된 동물에 관한 사례 몇 가지만 생각해 보아도 납득할 수 있다. 그로써 우리는 습성 그리고 이른바 우연적인 변이의 선택, 이 둘 각각이 가축의 정신적 특질을 변화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길들여진 본능은 확실히 자연적인 본능보다 훨 씬 덜 고정적이거나 변동 가능하다. 길들여진 본능은 덜 고착된 생활 조건에서 훨씬 덜 엄격한 선택의 영향을 받으며,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짧은 기간 동안에 전해 내려왔다. 길들여진 본능이라는 것이 순전히 오랫동안 지속된 강제적인 습관으로부터 대물림되는 행위라고 여겨지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가축회되면 동물의 자연적인 본능은 사라진다. 가금류는 알 위에 앉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연히 처음 나타난 특정한 정신적 습성이나 행위들이 일부는 습성에 의해 일부는 인간에 의해 선택되고 축적된 것이 여러 세대를 거쳐 계승되면서 가축의 본능은 습득되고 자연적인 본능은 상실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특별한 본능들

 

새들이 자기와 같은 종인지 다른 종인지를 막론하고 더러 다른 새들의 둥지에 자기 알을 낳는 습성은 가금류에게는 드문 것이 아니다. 벌 중에는 자기의 알을 항상 다른 종류의 벌의 둥지에 낳는 기생종이 많이 있다. 이 번들은 그저 그런 본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기생적인 습성에 걸맞도록 변형된 신체 구조까지 가지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뻐꾸기의 경우보다 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종이 이득을 얻는 한 그리고 둥지와 저장된 식량을 불법으로 전용당한 곤충이 그로 인해 멸종하지 않는 한, 나는 자연 선택이 우연적인 습성을 영구적으로 고착화한다는 이론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노예를 만드는 본능

 

무사개미는 노예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노예들의 도움 없이는 1년 안에 멸종할 것이 분명하다. 노예를 키우는 본능의 획득으로 인한 변화가 늘 그 종에게 유용했다고 가정한다면, 영국의 분개미보다 그러한 본능이 훨씬 덜 발달된 개미라 하더라도, 그 개미 종이 무사개미처럼 노예들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때까지 자연 선택이 그 본능을 확대하고 변화시키는 것도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고 본다.

 

꿀벌의 방 만드는 본능

 

벌들이 어떻게 그 모든 필요한 각도나 면들을 만들 수 있는지, 심지어 어떻게 그것들이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를 인식할 수 있는지는, 그 어떤 본능을 생각하든 처음에는 상상조차 힘들 정도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모든 아름다운 작업은 사실 무척 간단한 본능 몇 가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

자연 선택은 오로지 개체가 처해 있는 생활 조건에서 그것들에게 이로운 구조나 본능의 사소한 변화가 축적되는 것을 통해서만 작용한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점차 이어져 내려오며 현재의 완벽한 건축 계획을 지향하는 경향에 따라 변화된 집짓기 본능이 어떻게 꿀벌의 조상들에게 이득이 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질문은 적절한 질문이다. 밀랍을 절약함으로서 벌꿀을 절약하는 것은 과를 막론하고 모든 벌에게 가장 중요한 성공의 요소이다. 물론 어떤 종인지를 막론하고 벌의 성공 여부는, 그것에 기생하는 동물이나 적은 수나 매우 다른 요인에 좌우될 것이고, 이 모든 요인은 벌들이 모으는 꿀의 양과는 전적으로 독립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꿀의 양이라는 이러한 조건이 한 지역에 존재할 수 있는 땅벌의 수를 결정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무리가 겨우내 생존했고, 그로 인해 상당량의 꿀을 필요로 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때 만약 본능의 미세한 변화가 땅벌로 하여금 밀랍 방들을 서로 가깝게 만들어 약간씩 교차하도록 한다면 의심할 방 없이 땅벌에게는 그것이 이로울 것이다. 따라서 내가 믿는 바, 알려져 있는 모든 본능 중에서도 가장 경이로운 꿀벌의 본능은, 단순했던 수많은 본능들이 자연 선택을 통해 계승되고 약간씩 변화하면서 완성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자연선택 절차의 원동력은 밀랍 절감이었다.

 

요약

 

나는 이번 장에서 우리 가축들의 정신적 특질이 변이하며, 변이들이 대물림된다는 것을 짤막하게나마 보여 주고자 노력했다. 또한 그보다 더욱 간단하게, 자연 상태에서 본능이 약간씩 변이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 했다. 각 동물에게 본능은 너무나도 큰 중요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반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따라서 나는 변화하는 생활 조건에서 자연 선택이 경미한 본능의 변화를 어떤 유용한 방향으로, 어느 정도까지 축적해 나간다고 주장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몇몇 경우에는 아마도 습성이나 용불용이 작용을 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본능들이 늘 절대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며 오류도 있다는 사실, 오로지 다른 동물들을 위해 만들어진 본능은 없고 각 동물은 다른 동물들의 본능을 이용한다는 사실,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라는 박물학의 근본 원리는 신체 구조와 마찬가지로 본능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앞서 말한 관점에 따르면 명확히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이 모든 사실들이 자연 선택 이론을 확실히 지지한다. 또한 이 이론은, 본능에 관련된 몇몇 다른 사실들을 통해 강화된다. 가까운 관계에 있지만 확연히 구분되는 종들이 지구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로 매우 다른 생활 조건에서 살고 있을 때도 거의 동일한 본능을 유지하는 경우는 흔하다.

마지막으로 어린 뻐꾸기가 의붓형제들을 밀어내거나, 개미가 노예를 만들거나, 맵시벌과의 유칭이 살아 있는 애벌레의 몸을 파먹는 것 같은 그런 본능들은 특별히 주어지거나 만들어진 본능들이 아니라, 말하자면 배가시키고 다양화하고 강한 것을 살리고 약한 것을 죽이면서 모든 유기체의 진보를 이끌어 내는 일반 법칙의 작은 결과들로 보는 편이 나로서는 한결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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