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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상식에 대한 만행
- 그러므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기능을 수반하지 못하는 부는, 그것을 묵인해주어야 할 이유를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참기 힘든 것이었다. 반유대주의 역시 유대인들이 공적 기능과 영향력을 잃고 재산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을 때 절정에 달했다. (85)
- 인간은 권력이 모종의 기능을 하며 일반적으로 유용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까닭에 실질적 권력에 복종하거나 견디는 한편, 권력 없이 부만 가진 사람들을 증오한다. 착취와 억압조차도 사회가 돌아가게 만들고 나름의 질서를 확립시킨다. 단지 권력을 상실한 부와 정책적 대안 없는 냉소만이 기생충 같고 무용하며 역겨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이런 조건이 사람들을 서로 묶어주는 끈을 모두 잘라버리기 때문이다. (86)
- 어떤 반유대주의자가 전쟁을 유대인이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맞습니다. 유대인과 자전거 타는 사람이 일으켰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왜요?”라고 이 사람이 물었다. “그러면 유대인은 왜요?”라는 물음이 되돌아왔다. (87)
- 유대인은 언제나 희생양이라는 이론은 그 밖의 누구라도 유대인처럼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87)
- 세상사에 관여하는 여러 집단 중 한 집단의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집단이 세상의 불의와 잔혹함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87)
- 테러를 안전하게 자행할 수 있으려면 이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다수를, 심지어 대다수를 지지자로 확보해야만 한다. 역사가에게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 근대적 테러의 주된 희생자가 되기 전에 이미 나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다. (89)
- 자신의 과거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차후에 펼쳐질 전례 없는 실질적 위험을 과소평가한 치명적 오류에 일부 책임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정치적 능력과 판단의 결핍은 유대인 역사의 특성, 즉 정부와 국가 그리고 언어를 갖지 못한 역사가 원인임을 유념해야 한다. (90)
- 유대 민족의 정치사는 다른 민족의 역사보다 예상치 못한 우연적 요소에 훨씬 더 의존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은 비틀대며 이 역할에서 저 역할로 옮겨 다녔고, 이로 말미암아 어느 것에 대해서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91)
- 고대의 소피스트와 근대의 소피스트의 가장 현저한 차이점은 전자가 진리를 대가로 논증의 일시적 승리에 만족하는 데 반해 후자는 현실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보다 지속적인 승리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한쪽이 인간 사유의 존엄성을 파괴했다면, 다른 쪽은 인간 행위의 존엄성을 파괴했다. 고대에는 논리를 조작한 사람들이 철학자들 가운데 두통거리였다면 근대에는 사실을 조작한 사람들이 역사가에게 장애가 된다. (93)
제2장 유대인, 국민국가 그리고 반유대주의의 발생
1. 해방의 이중성과 유대인 국립은행가
- 유대인을 특수 집단으로 유지한 채 계급 사회로의 동화를 막고자 했던 국가의 이해관계가 자기 보존과 집단의 생존이라는 유대인의 이해와 일치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99)
- 유대인은 사회적으로 말해서 무소유의 땅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사회적 불평등은 계급 제도의 불평등과는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국가에 대한 그들의 관계가 빚어낸 결과였다. 그래서 사회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국가의 특별한 보호 아래 지나친 특권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고, 다른 한편으로 유대인의 동화를 막기 위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특정한 권리와 기회의 결여를 의미했다. (100)
- 제국주의 시대에 유대인의 부는 그 중요성을 상실했던 것이다. 국가들 간에 권력의 균형 감각이나 유대성이 없던 유럽에서 범유럽적 유대인이란 요소는 그들의 무익한 부로 인해 일반적인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권력의 결여로 인해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102)
- 유대 민족은 모든 유럽 민족 가운데 국가 없는 유일한 민족이었고, 바로 이 때문에 정부나 국가가 무엇을 대변하든 상관없이 이들과 동맹을 맺는데 가장 열성적이고 적합한 민족이었다. (113)
- 베를린의 유대인들은 18세기 말 부의 정점에서 동부 지방 출신 유대인의 유입을 막으려고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동등하다고 인정하지 않았던 가난한 동포들과 ‘평등’을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05)
- 반유대주의는 100여 년 동안 점진적으로 거의 모든 유럽 국가의 거의 모든 사회 계층으로 퍼져갔고 결국 다른 문제에서는 절망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여론을 하룻밤 사이에 일치시킬 수 있는 이슈로 갑자기 부상했던 것이다. (116)
- 국가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사회집단은 바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국가 자체와 갈등에 빠지게 된 사회 계급은 반유대적이 된다. (116)
2. 초기의 반유대주의
- 이런 친유대적인 요소들은 일련의 반유대주의적 정치 논쟁을 시작한 집단이 귀족이었다는 사실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든다. 경제적인 관계나 사회적 친밀성도 귀족이 평등주의적인 국민국가에 공공연히 반대하는 상황의 심각성을 덜어주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국가에 대한 공격에서 유대인을 정부와 동일시했다. (126)
3. 최초의 반유대주의 정당들
- 반유대주의 정당의 주장이 제기된 시점이 제국주의의 초기 단계와 일치하고, (...) 반유대주의에서 직접 탄생한 곳은 독일밖에 없다. (137)
- 결과적으로 그들의 국제주의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개인적 확신의 차원에 머물렀고, 국가의 주체성에 대한 그들의 건전한 무관심은 국제 정치에 대한 불건전하고 비현실적인 무관심으로 변질했다. (140)
4. 좌파 반유대주의
- 정치 운동으로서의 19세기 반유대주의를 가장 잘 연구할 수 있는 곳은 반유대주의가 거의 10년간 정치적 풍경을 좌우한 프랑스이다. 여론의 지지를 받기 위해 좀 더 훌륭한 다른 이데올로기와 경쟁하는 이데올로기적 힘으로서의 반유대주의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명료한 형태에 도달했다. 유대인이 국가 기구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곳은 오스트리아였다. (142)
- 이 범게르만주의는 독일의 다른 반유대주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깊은 영향을 나치즘에 미쳤다. (144)
5. 안전의 황금시대
- 반유대주의 운동의 일시적인 소멸에서 제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는 2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있을 뿐이다. (...) 안전의 황금시대로 서술되는데, (...) 비극적 파멸의 임박을 예시하는 모든 징후에도 불구하고 이 정치구조는 화려한 거짓 광채로 번쩍거리면서, 불가해할 정도로 한결같이 완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유럽의 모든 국가가, 모든 계층이 경제 확장에 혈안이 되어, 정치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만사가 그대로 굴러갈 수 있었다. (155)
- 산업적·경제적 역량의 엄청난 성장은 순수하게 정치적인 요소를 지속적으로 약화시켰지만 동시에 경제적 힘은 국제적 권력 게임을 지배하게 되었다. 산업과 경제의 힘이 권력의 전제 조건임을 알기 전에는, 권력이 경제력과 동의어로 간주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경제 권력은 정부를 따라오게 만들 수 있었다. (156)
- 유대인은 다른 어떤 유럽인보다 안전의 황금시대가 왔다는 사실에 현혹되었던 집단이다. 반유대주의는 과거사가 된 것처럼 보였다. (156)
- 국가에 미치는 대규모 사업의 영향력이 점차 증가하면서, 또 유대인들의 봉사에 대한 국가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유대계 은행가는 존재 근거를 박탈당할 위험에 처한다. (...) 유대인은 점차 국가 재정을 떠나 독립적인 사업을 개척한다. (...) 유대인들은 곧 모든 나라에서 이 분야의 확고한 강자가 된다. (...) 국민국가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유대계 지식인층의 탄생은 이제 놀랄 만한 속도로 진행되었다. 부유한 아버지를 둔 유대인들이 문화 영역으로 진입하는 현상은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두드러졌는데, 이 나라에서는 신문, 출판, 음악, 연극과 같은 문화의 상당 부분이 유대인 사업이 되었다. (157)
- 유대인은 그 자체 사교계의 상징이 되었고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 그것은 1914년 이후 유럽에서 좌절과 분노로 가득 찬 모든 사람의 이데올로기로 나타난다.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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