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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론 (아렌트)

5. 건국. : 새로운 정치질서 발제 바다사자

 

1. 18세기 법의 기능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재산이 공적 자유를 보장했다. 사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재산을 보유하지 않아도 자유로운 사람들이 등장해서야 법은 개인과 개인의 공적 자유를 직접 보호하는 데 필요해졌다. 자신의 재산권을 복구하거나 보호하는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그러한 고대의 자유를 복구하려는 뚜렷한 유사성을 보였다. 왕과 의회 사이의 균열은 프랑스 국민을 자연 상태로 몰아넣었다. 정치 구조뿐만 아니라 주민들 간의 유대마저 자동적으로 해체했다. 유대는 사회의 각 신분과 질서에 부응하는 다양한 특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294) 구성조직 자체는 구대륙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유럽인들의 필요성과 영민성에서 잉태된 혁신이었다. 영국과 식민지 사이의 갈등은 영국인으로서 향유하는 특권을 소멸했을 뿐, 입법회의는 해체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 참가자들은 권력을 정치 영역 밖에 근원과 기원을 갖고 있는 자연적 강제력으로 이해했다. 강제력은 혁명을 통해 폭력 자체로 노출되었으며 구체제의 모든 제도를 휩쓸어갔다.(295) 폭력과 권력을 구별하는 법을 알지 못한 채 모든 권력이 인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확신했던 프랑스 혁명 참가자들은 전정치적, 자연적 강제력에 정치 영역을 개방했다. 미국 혁명 참가자들은 권력이 자연적 폭력과 대립된다고 생각했다. 인민이 약속, 서약, 사호 맹세를 통해 결속할 때 그곳에만 권력이 존재했다. 호혜성과 상호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권력만이 실질적이고 정당한 권력이다.(296) 그러나 새로운 권위를 정립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권위 문제는 실정법을 허용할 상위법을 가장한 채 등장했다. 국민과 그 대표자들은 상위의 근원을 대표할 수 없었다. 국가의 새로운 법을 확립하는 임무는 인정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위법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풀뿌리인민 대중에서부터 분출하는 권력의 기원과 약간 상위의 선험적 영역인 에 기반을 두고 있는 법의 근원을 명료하고 명확히 구별했다.(298) 프랑스 혁명에서 인민의 신격화는 법과 권력을 모두 동일한 근원에서 도출하려는 시도의 불가피한 결과였다. 루소나 로베스피에르의 일반의지는 여전히 법을 생산하기 위해서만 작동할 필요가 있는 신적인 의지다. 실천적 관점에서 볼 때 혁명 과정 자체가 모든 의 근원이자 새로운 ’(칙령과 법령)의 근원이 되었다.(298) 입법 행위에서 악순환은 통상적인 법 제정에 있지 않고 궁극적으로 모든 법의 근원이 되는 국법 또는 헌법을 기초하는 데 있다. 공화국 정치체는 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일반 사면의 선포를 촉진할 만큼 강력하지도 않았고, 최소한의 관대함을 보여줄 만큼 강력하지도 않았다.(299)

근대 혁명은 정치 영역에서 종교적 신념의 연관성 상실을 전제했다. 로베스피에르는 불멸의 입법가가 필요했다. 이는 미국혁명에서 입증되었다.(300) 19세기 계몽된 사람들이 교회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하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려고 한 순간 이들에게 종교적 승인에 호소하도록 자극했던 요인은 혁명, 위기, 긴급 사태였다.(301) 그리스 입법가는 정치체 밖에 존재했지만 그것을 초월한 곳에 존재하지는 않았으며 신적이지도 않았다.(303) 로마법은 권위의 초월적 근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304) ‘은 평화를 확립하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새로운 동맹체, 통일체를 구성케 하는 조약과 합의였으며 완전히 상이한 두 실체의 통일체였다. 로마의 야망은 지구상의 모든 국가에 로마의 동맹 체계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귀족과 평민 간의 영구적인 제휴에 기초한 로마 공화정은 조약을 위해, 로마 사회를 형성하며 로마 동맹 집단에 속하는 지역과 공동체를 위해 법이라는 수단을 사용했다.(305) 몽테스키외는 법을 관계 즉 상이한 실체들 간에 유지되는 관계로 정의하고 있다. 실정법, 즉 인정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절대자의 문제는 부분적으로는 절대주의의 유산이었다.(306) 법 자체가 명령으로 이해되었고, 인간들에게 명령하는 신의 목소리에 따라 해석되었다. 모든 법의 기원은 유대인의 모델이었으며, 십계로 대변되었다. 17, 18세기에 자연법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 모델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307) 인정법에 필요한 종교적 승인은 도덕의 기초로서 미래의 보상과 처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요구했다. 인민이나 국민이 절대군주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고 불멸의 영혼(입법자)’이라는 개념은 자신이 만든 법으로부터 면제되는 새로운 주권인 절대 통치자가 범죄 행위를 못하게 하는 유일하게 가시적인 제약이었다.(308) 독립선언서전문이 새로운 정치체의 법을 위해 권위의 초월적 근원과 연관된 하나의 문장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이 진리가 자명하다고 주장한다.”는 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 간의 합의 때문에 역사적으로 특이한 방식으로 관계적인 합의의 기초를 합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진리에 연계시키고 있다. 이 진리들은 이성의 산물은 아니며 진리의 자명함은 진리를 설정하기 때문에(310) 이 진리는 전제적 권력보다 더 강압적이며 종교의 계시된 진리와 수학의 공리적 진실보다 더 강압적이다.(311)

 

2. 신세계의 정착민들은 전통의 무게와 부담에서 벗어났다. 알려지지 않은 황무지를 두려워하고 식별하기 어려운 인간 마음의 어두움으로 경악했던 상황 속에서 시민적 정치체를 구성하고 모험을 시도하기로 상호 맹세를 했을 때 전통에서 벗어났으며 서구 인류사의 새로운 시작이었다.(313) 미국은 국민이라는 위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정치적 해방이 서구 전통의 개념적, 지적 틀로부터 해방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절대자의 문제는 피할 수 없었다. 법의 전통적 개념에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속법의 본질이 명령이라면, 자연의 신, 신적으로 개명된 이성이 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필요했다.(314) 미국 혁명이 전통에 얽매여 붕괴했을 지도 모르는 운명에서 구원했던 것은 건국 행위 그 자체였다.(315) 혁명 참가자들이 고대에 관심을 돌린 이유는 낭만적 열정이 아니었다. 낭만적 보수주의는 혁명의 결과였으며, 혁명 실패의 결과였다. 그들을 서구 역사의 시초로 복귀하게 만든 것은 전통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 자신의 경험이었다.(316)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 혁명참가자들은 고대의 권리와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단순히 초기(317) 복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범했으나 정치적으로는 특정한 정치체의 안정과 권위를 그 최초로부터 도출했다는 점에서 올바르게 행동했다. 건국 행위가 자체로 지니고 있는 권위였다.(318)

미국의 혁신적 제도들 중 가장 중대한 것은 권위의 소재지가 원로원에서 사법부로 이동한 것을 꼽을 수 있다.(319) 진정한 권위는 대법원에 있음은 공직의 항구성과 관련된 권력의 결여다. 권위의 기능은 사법적이며 해석을 하는데 있다. 대법원은 성문화된 문서인 헌법에서 자신의 권위를 도출했다.(320) 건국과 확장, 보존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은 혁명 참가자들이 고전을 통해 배양하고 채택한 가장 중요한 단일 개념이었다.(321) 로마의 권위 개념은 건국 행위가 불가피하게 자체의 안정과 항구성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권위는 필연적인 확장이며 모든 개혁과 변동은 확장 덕택에 건국과 다시 연계되며 동시에 건국의 의미를 보강하고 증대시킨다. 따라서 미국 헌법 수정 조항들은 미공화국의 최초 건국의 의미를 확장하고 증대시킨다. 미국 헌법의 진정한 권위는 수정되고 확장되는 그 내재적 능력에 있다.(323) 헌법은 입헌 행위와 성문화된 문서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한다. 미국 헌법에 대한 숭배는 경외의 분위기 속에서 문서 자체를 계속 감추어왔고 시초 자체의 행위만 기억하고자 한데 있다.(324) 권위의 근원이 되는 절대자는 행위 자체에 있기 때문에 모든 시작이 불가피하게 포착되는 악순환을 해체하기 위해 절대자를 추구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임을 도출한다. 혁명 시대 이전에 시작 행위는 항상 알려져 있었고 전설의 대상이 됐다. 그 전설의 역사적 의미는 시작에서 이와 단절된 새로운 사건 사이의 역사적 시간의 연속을 해결하느냐였다. 혁명 참가자들이 잘 알고 있었던 건국 신화는 출애굽과 방랑하는 아이네아스에 관한 베르길리우스의 이야기뿐이었다. 두 이야기는 모두 낡은 질서의 종말과 새로운 질서의 시작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시간적 간격)를 주장하고 있다. 그 교훈은 새로운 시작이 끝의 자동적 결말이 아닌 것처럼 자유도 해방의 자동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혁명은 정확히 끝과 시작, ‘더 이상 아님아직 아님사이의 전설적인 틈새에 존재했다. 틈새에서 역사 무대에 출현했던 위대한 지도자들에 대해 말한다. 명백히 연속적인 흐름이라는 시간 개념에서 이탈한 모든 시간에 관한 사유 속으로 몰래 숨어든다.(326) 시작의 문제는 개시자가 영원에서 영원까지존재하기 때문에 시작 행위를 더 이상 의문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개시자의 소개를(328) 통해 해결된다. 이 영원성은 시간성의 절대자이다. 건국 행위의 난관을 위한 노력은 고대 로마에 집중되었다. 로마의 역사는 건국의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영구적인 도시의 건국이었고 공공 영역을 재구성하기 위해 독재를 확립하라고 요청했다.(328) 로베스피에르의 자유의 전제정이라는 영감을 제공한 실제적 근원이었다.(329)

로마의 건국도 전적으로 새로운 시작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로마는 트로이의 부활이며, 과거에 존재했고 연속성과 전통의 실마리가 결코 끊어지지 않은 어떤 도시국가의 재건이었다.(333) 미국 혁명은 새로운 정치체의 건국일뿐만 아니라 특정한 국사(national history)의 시작이었다.(336) 시작 행위를 자의성에서 구원했던 것은 시작과 원리가 서로 연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시작은 절대자로부터 그 정당성을 도출해야 하며, 이러한 절대자는 세계에 시작을 드러내는 원리다. 개시자가 모든 것을 시작하는 길은 활동을 분담하고 그 성과를 가져오기 위해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행위의 법칙을 부여하는 것이다. 원리는 행위가 지속되는 한 이어지며 드러난 행적을 촉진한다.(337) 미국 혁명 과정은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공동의 심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 상호 맹세의 위력으로 이루어졌다. 건국의 원리는 상호 약속과 공동 심의라는 상호 연계된 원리였다.(338)

아렌트의 혁명론5장 건국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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