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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서론 발제문(2018.01.03).hwp


1) 전체주의와 ‘정치적 자유’의 의미 - 이진우

“전체주의 지배는 시민의 자유를 축소하거나 기본적인 자유를 말살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제한된 지식에 의하면 전체주의는 인간의 마음에서 자유에 대한 사랑을 뿌리뽑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은 모든 자유의 전제가 되는 단 하나의 본질적인 필수조건, 즉 공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운동 역량을 파괴한 것이다.”(13)

한나 아렌트는 이 방대한 저서에서 “정치는 여전히 의미를 갖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아렌트에게 전체주의는 가장 극단적 형태의 정치부정이다. 전체주의는 인간의 행위를 블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총체적으로 폐지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 년의 도래와 함께 마침내 ‘악의 시대’를 극복했다고 자위하는지도 모른다. 과거와 미래, 이미 일어난 것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구분하는 이 시대적 전환기에 아렌트가 더욱 의미 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렌트가 정치와 자유의 문제를 그 뿌리로부터 근본적으로 사유하고 있기 때문이다.(14)

전체주의가 우리 사회를 총체적으로 정치화함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파괴했다면, 전체주의 이후의 현대사회는 정치 자체를 진부하게 만듦으로써 자유의 문제를 왜곡시킨다. 아렌트는 정치와 자유의 관점에서 전체주의를 해부하고 그 조건들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했다. 간단히 말해서 아렌트는 정치와 자유를 분리시키는 사회적, 역사적 조건들을 전체주의의 요소로 파악했던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도 자유가 문제된다면, 아렌트는 여전히 우리의 동시대인인 것이다.(15) 그녀는 우리에게 이렇게 간단히 경고한다. 정치가 무의미해지면, 자유 역시 위험에 빠진다. 자유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정치를, 정치적인 것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아렌트의 근본 정치사상이다.(16)

우리는 전체주의의 마지막 문장을 통해서만 아렌트의 기본 의도에 도달할 수 있다. 마치 하나의 기적처럼 새로운 시작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야만 되는 상황, 그것이 바로 아렌트가 온몸으로 겪은 전체주의의 실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실제로 자신의 저서 곳곳에서 “지상에서 인간의 실존은 일종의 기적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모든 일은 본성상 기적과 같다. 아렌트는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전체주의를 통해 이러한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22)

아렌트는 인간학적 관점에서 자유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동시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의 시작을 의미하는 탄생은 근원적 의미에서 자유 행위 자체라는 것이다. “인간이 행위를 하는 한, 사람은 자유롭다. 행위와 자유존재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론 신처럼 완전히 자족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와 행위는 다른 사람의 존재, 즉 다원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렌트의 자유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유를 실천하는 생활방식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위를 하면서 정체성을 획득하고, 인간의 자유를 실현하고 확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간다.(24)

전체주의 운동을 구성하는 대중들은 정당이나 조합과 같은 확고한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표류하는 모래처럼 사회를 떠다닌다. “조직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은 대중,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개인들의 대중”이 생겨난 것이다. 아렌트가 주목하는 것은 이처럼 사회적으로 분리되고 원자화되고 그래서 지도자에게서 구원을 기대하는 대중을 둘러싼 전체주의적 운동이다.(25) 전체주의 정권은 개인을 쓸모없는 ‘잉여 존재’로 만드는 정치적 도구와 장치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아렌트는 ‘폭민’ 개념을 사용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폭민은 사전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거대한 폭력적 군중’을 의미한다.

폭민은 기존의 사회계급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계급과 국가,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 조직되지 않은 잉여 집단이다. 자본주의는 잉여자본과 잉여 인간을 발생시켰는데, 제국주의가 잉여자본의 조직이라면 전체주의는 잉여 인간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주의는 간단히 말해 폭민의 정권이다. “인간을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전체주의의 시도는 과잉 인구로 시달리는 지구에서 자신들이 별 쓸모없다는 것을 알게 된 현대 대중의 경험을 반영한다.” 전체주의 정권은 이들에게 개인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대신 역사적 운동의 주체라는 허위의식을 심어준다. 그들은 거대한 운동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인격과 개성을 희생한다. 이 운동이 강조되고 절대화될 때 모든 개인의 유일무이한 개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26) 전체주의 국가의 모범적 시민은 파블로프의 개이고 가장 기초적인 반작용으로 축소된 인간표본이다. 그들은 행위 대신 반응을 할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양성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면 언제든지 전체주의가 태동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27) 전체주의가 20세기의 저주가 된 것은 전체주의가 이 세기의 문제를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잉여 존재의 만연이다. 실업, 인구 과잉, 사회적 아노미, 정치적 불안. 개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전체주의적 해결방식에 대한 유혹을 부추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력이 증대하고 모든 일에 간섭하려는 기술문명의 경향이 심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동의 운명에 맡겨져 있을 정도로 세계의 모든 시민들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전체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개인들의 자유와 유대를 발전시킬 수 있는가?(28)

2) 제1판에 대한 서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은 역사를 상투적인 틀로 해석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란 잔악무도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례에서 전례 없는 일을 추론하거나 현실의 영향과 경험의 충격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유추와 일반화를 통해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는 오히려 우리 세기가 우리 어깨에 지운 짐을 검토하고 의식적으로 떠맡는 것을 의미하지 짐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무게에 패기 없이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34)

3) 제1부 반유대주의에 대한 서론

19세기 반유대주의의 직접적이고 순수한 산물은 나치즘이 아니라 오히려 시오니즘이다. 시오니즘은 적어도 서구적 이데올로기의 형태로는 일종의 반대 이데올로기, 즉 반유대주의에 대한 대응이다. 그렇다고 유대인의 자의식이 단순히 반유대주의의 창작품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44)

4) 제2부 제국주의에 대한 서론

민족 해방에 필요한 모든 전제 조건이 부족할수록 사납고 메마른 쇼비니즘이 극성을 부리는 후진 지역에서의 국가 형성 과정은 거대한 권력 진공 상태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진공 상태를 차지하기 위해 초강대국들이 벌이는 경쟁은, 모든 갈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해결책으로서 폭력 수단에 의한 직접적 대치가 핵무기 개발과 함께 불가능해지면서 더더욱 맹렬해졌다.(49) 유럽 몰락의 요인은 바로 제국주의 정책이었다. 동쪽과 서쪽에서 유럽인의 측면에 접해있는 거대한 두 국가가 결국 유럽 권력의 계승자로 출현할 것이라는 정치인과 사학자의 예언이 현실이 된 것처럼 보인다.(50)

해외 원조는, 설령 순수하게 인도주의적 이유에서 제공되더라도, 이윤 추구라는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원래 정치적이다. 수조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이 정치적, 경제적 불모지에 쏟아 부어졌고, 그곳의 부패와 무능은 생산적인 일이 시작되기 전에 이 자금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달리말하면 제국주의 정책에서 이윤 추구의 동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과거에도 종종 과대평가되었지만, 이 동기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극히 부유하고 극히 강력한 국가만이 제국주의가 야기하는 막대한 손실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51)

5) 제3부 전체주의에 대한 서론

우리의 맥락에서 결정적인 것은 전체주의 통치가 독재나 전제정치와 다르다는 점이다. 그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이론가들’에게 편안하게 맡겨둘 수 있는 학술적인 논점이 아니다. 왜냐하면 총체적인 지배는 공존이 불가능한 유일한 통치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체주의라는 단어를 아껴서 신중하게 사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64)

테러는 모든 조직적 반대파가 제거되고 전체주의 지배자가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촉발되었다. 이는 특히 러시아의 상황 전개에 특별히 해당된다. 스탈린이 1928년 “우리에게는 아직 내부의 적이 있다”고 인정하고 실제로도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을 때에는 대숙청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1934년, 과거의 모든 반대파가 자신들의 실수를 자백했고 스탈린 본인이 제17차 당대회에서 “더이상 입증할 것도 없고 싸울 사람도 없는 것 같다”고 천명하면서 숙청을 시작했던 것이다.(67)

페인소드는 대중의 불만이 만연해 있을 뿐만 아니라 정권 전체에 대항하는 충분히 조직적인 반대파의 부족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지 못했던, 그리고 내 의견으로는 명백한 증거가 뒷받침하는 사실은,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여 일당 독재를 총체적 지배로 전환시키는 길에 대한 명백한 대안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레닌이 시작한 신경제 정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스탈린이 당을 완전히 통제하게 된 1928년, 5개년 계획을 도입하면서 취했던 조치는, 계급을 대중으로 바꾸고 이와 병행하여 모든 집단의 연대를 제거하는 것이 총체적 지배의 필수 조건임을 입증한다.

소련의 모든 지역과 구역은 5개년 계획에서 활당한 허구적인 규범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못지않게 허국적인 공식통계자료를 전달받는 과정은 사실과 현실을 경멸하는 전체주의의 경향과 거의 일치한다.(69)

항상 의혹은 가졌지만 지금에야 정확하게 알게 된 사실은 정권이 결코 단일 조직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겹치고 중복되는 유사한 기능들을 주변에 의식적으로 세웠으며 이 괴상한 무정형 구조는 우리가 나치 독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른바 개인 숭배와 같은 동일한 지도자 원칙에 의해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특수한 통치의 집행부서는 당이 아니라 경찰이었고, 경찰의 작전활동은 당 계통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정권이 죽인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 볼셰비키 용어로 객관적인 적은 자신들이 죄 없는 범죄자 임을 알고 있었다. 정권의 옛 적과는 구분되었던이 새 범주의 사람들은 나치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수동적으로 반응했다. 우리는 이 점을 테러 희생자들의 행동 유형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대숙청 동안 ‘상호 고발의 홍수’는 전체주의 지배자의 입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던 것만큼 나라의 경제와 사회적 복리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는 데에는 한 점의 의혹도 없다.(70)

그러나 우리는 이제야 스탈린이 얼마나 고의적으로 이 고발의 불길한 연쇄 고리를 작동시켰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그는 1936년 7월 29일 현 조건 하에서 모든 볼세비키의 양도할 수 없는 자질은 당의 적이 아무리 정체를 감추고 있어도 그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히틀러의 최종 해결책이 실제로 나치당의 엘리트에게는 너희는 죽이게 될 것이다라는 명령에 구속된다는 의미였던 것처럼, 스탈린의 선언은 이렇게 규정한다. “너희는 거짓 증언을 격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볼세비키당의 모든 당원들에게 주어진 행동지침이다.(71)

불안정은 이데올로기적 허구에 근거하고 있으며, 당과 구분되는 운동의 권력 장악을 전제로 삼는 총체적 지배의 기능적인 필수조건이다. 이 체제의 현저한 특징은 실질적인 권력, 물질적 힘과 국가의 복리가 조직의 권력에 의해 꾸준히 희생되어 왔다는 것이다. 마치 모든 사실적 진리가 이데올로기의 일관성 요구에 희생되었듯이, 물질적 힘과 조직 권력의 경쟁에서 또는 사실과 허구의 경쟁에서 후자가 실패하는 이런 일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에서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발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주의 운동의 힘을 과소평가할 이유는 아니다. 위성 체제를 조직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영구적인 불안정의 공포이다. 소련이 현재 지닌 물질적 힘에 크게 기여한 것은 소련 사회의 안정과 탈전체주의 과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바로 위성국가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게 만들었다.(72각주)

그러나 동기가 무엇이든, 이렇게 권력 게임의 중심이 경찰에서 군대로 옮겨간 사건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비밀경찰이 군대 기구보다 우세하다는 것은 전체주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재 정권의 특징이다. 그러나 전체주의 정부의 경우 경찰의 우세는 국내 주민을 진압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대응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통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권리 주장에 적합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구를 미래의 영토를 간주하는 사람들은 국내의 공적 폭력 기관에 무게 중심을 둘 것이며 정복한 영토를 군대가 아니라 경찰의 인력과 방식으로 다스리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치는 점령 지역을 다스리고 심지어 정복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경찰 병력으로 나치 친위대를 이용했고 그 궁극적 목표는 군대와 경찰을 통합하여 나치 친위대의 지도 아래 두는 것이었다.(75)

덜 알려진 만큼 더 확실한 사실은 탈전체주의의 과정을 다시 뒤로 돌려놓으려던 흐루시초프의 가장 야심적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1957년 그는 사회적 기생충 퇴치법이라는 새 법을 도입했다. 이 법을 통해 정권은 주민을 대량으로 강제 추방시키고 대규모 노예 노동을 재건할 수 ldT으며, 그리고 대량고발의 홍수를 다시 유발시킬 수 있었다. 왜냐하면 국민들 스스로 기생충을 대중 집회에서 골라내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76)

우리가 이 이야기의 내막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해도, 대숙청과 같은 파멸작전이 고립된 에피소드나 예외 상황으로 유발된 정권의 과잉 행동이 아니라 테러의 제도로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어날 수 있는 정기적 행사라는 나의 원래 확신을 충분히 입증할 만큼 알고 있다. 스탈린이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계획했던 이 마지막 숙청에서 가장 극적인 새 요소는 이데올로기의 결정적인 교체였다. 다시 말해 유대인의 세계음모라는 요소가 소개되었다.

고위 당 관료들이 유대인 부르주아 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축출되어 시온주의의 죄를 추궁당한다. 이 비난은 서서히 비시온주의 기관을 연루시키는 방향으로 변했는데, 그것은 모든 유대인은 시온주의자이고 모든 시온주의 집단은 미제국주의의 고용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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