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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대륙의 제국주의: 범민족 운동
- 발췌 및 요약
"히틀러나 스탈린은 통치 방식을 개발하면서 제국주의에 빚을 졌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었던 반면, 양자는 범민족 운동의 이데올로기에 신세를 졌다는 것과 그 슬로건을 모방했다고 인정하는 데 주저자하지 않았다." (419)
1880년대 서구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팽창이 승리를 거두면서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 등이 범민족 운동으로 결정화되었다. (420)
대륙 제국주의와 해외 제국주의의 비교
공통점: 국민국가의 협소함에 대한 경멸
차이점:
대륙 제국주의는 식민지와 본국 간의 지리적 거리를 허용하지 않고, 특수한 경험에 거의 의존하지 않은 채 인종사상과 유사성을 가지고 출발했고, 서유럽 제국주의와 달리 자본주의의 지원이 부족했지만, 자유 전문직 종사자들, 교사와 공무원 등 지식인층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컸음. 기존의 모든 정치 제도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었고, 이데올로기와 운동 외에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것이 없었음.
반면, 해외 제국주의는 항상 실질적인 경험에 토대를 두었고, 국민국가 제도들의 수명을 연장함.
폭민과 자본의 제국주의적 동맹 관계에서 주도권은 대개 자본에 있었다.
비록 폭민 지도자들은 총체적 지배의 가능성에 대해 꿈꾸지 않았지만, 인종사상을 조직적 목적에 이용하는 등 어떻게 군중을 조직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후 나치즘과 볼셰비즘의 세계 정복 기획에서 출발점의 역할을 함. 새로운 종류의 민족주의적 감정과 그에 따른 호소력이 생김. 어떤 사람의 민족성을 그의 정신과 동일시하는 특수한 현상이 나타나며, 내면으로 전환된 자부심이 생겨남.
순수 민족주의(쇼비니즘 등): 과거에 실제로 존재한 어떤 것을 가리키면서 이것을 인간 통제를 넘어서는 영역으로 올리려 함.
종족주의: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미래에는 완벽하게 실현시킬 사이비 신비주의적 요소들로부터 출발함.
1. 종족 민족주의
종족 민족주의: 국가 해방에 참여하지 않고 하나의 국민국가의 주권을 얻지 못한 민족들의 민족주의로 나타남.
범민족 운동의 종족주의는 국민국가 내의 자부심의 통제를 받지 않았음.
반유대주의가 전체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의 중심으로 갑자기 출현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인 사실이나 정황에 있다기보다 종족주의의 성격에 있다.
종족 민족주의는 대륙 제국주의의 배후에서 작용하던 원동력이었다.(430)
사회학적으로 국민국가는 유럽의 해방된 농민계급의 정치 단체였고,(431)
민족이 국가를 정복하는 현상: 국가가 부분적으로 법의 도구로부터 국민의 도구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431)
그래서 모든 계급과 집단이 계급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세기에 오로지 공통 기원만이 국가 전체의 이익을 보증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런 공통 기원의 감상적인 표출이 민족주의이다.(432)
국가와 민족 간의 잠재적인 갈등이 밖으로 드러난다. 동일한 기본권이 한편으로는 모든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유산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특수한 민족의 유산으로 동시에 청구되었다.(432)
민족주의는 중앙 집권적인 국가와 원자화된 사회를 하나로 접착시키는 소중한 접합제가 되며, 실제로 국민국가의 개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작용하는 살아 있는 관계임이 밝혀진다.(433)
민족의식이 아직 막연하고 불명확한 종족의식을 넘어서지 않은 민족들의 국민적 반응은 이와는 전혀 달랐다.(434)
종족 민족주의는 이런 뿌리가 없다는 박탈감에서 성장한 것이다.(435)
범민족 운동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들이 결코 민족 해방을 이루려 하지 않았지만 팽창을 꿈꾸면서 갑자기 국민의 공동체라는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었고 그 구성원들이 전 지구상에 흩어져 있어도 항상 하나의 정치적 요소로 남게 될 민족 공동체를 선포했다는 것이다.(435)
범민족 운동의 종족주의만이 유일하게 새로운 종교 이론과 성스러움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공했다.(436)
신학이 그 배후에 있었고, 초기의 범민족 운동에 추진력을 제공했으며, 현대의 전체주의 운동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했다.(437)
즉 역사와 조직의 차이는 자연적 기원에 기인하는 인간들 사이의 차이로 잘못 해석된다. 인간의 공통 기원을 부정하고 인류를 세운 공동의 목적을 부인하는 인종주의는 다른 민족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한 민족의 신적인 기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로 인해 일시적이고 변화할 수 있는 인간 노력의 산물을 신적 영원과 무한성의 구름으로 가려버린다.(438)
이런 목적에 유대인이 적합한 까닭은 명백했다. 즉 유대인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와 관련하여 중요한 지위에 있었고, 동질적인 혈통을 가진 시민들로 구성된 국민국가에서보다 다민족 국가에서 더욱 쉽게 분리된 민족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445)
이런 이분법에서 보면 유대인은 다시금 무언가르 물려받은 운 좋은 경쟁자로 보였고, 이방인들이 무로부터 시작해 쌓아야 할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인정받는 경쟁자로 보였다.(448)
그(히틀러)는 '가장 나쁜' 민족이 존재한다는 반유대주의 주장을 이용하여 '가장 훌륭한' 민족과 '가장 나쁜 민족' 사이에 피정복, 피지배 민족들을 조직할 줄 알았고, 범민족 운동의 우월 콤플렉스를 일반화하여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이 자신들보다 더 나쁜 한 민족을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449)
인종주의자들의 유대인 증오는 신이 선택한 민족, 신의 섭리로 성공을 보장받은 민족이 자신들이 아니라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우려에서 나왔다.(451)
2. 무법의 유산
법과 합법적인 제도를 공공연히 무시하고 무법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경향은 해외 제국주의의 특징이라기보다 대륙 제국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451)
러시아나 오스트리아에서처럼 자국의 통치자와 관료제가 합법 정부로 인정을 받는 곳에서만 법령 통치는 자의성과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고, 이 분위기가 효과적으로 정권의 단순한 편의주의를 은폐했다.(453)
법은 권력과 양립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죄가 많은 것이며 "신적"인 것의 발전을 방해하는 인간이 만든 "덫"이다. (459)
3. 정당과 운동
대륙 제국주의와 해외 제국주의 사이에서 눈에 띄는 중대한 차이점은 그들이 거둔 초창기의 성공과 실패가 정확하게 상반된다는 것이다. (462)
제국주의자들은 국가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또는 국민 전체의 이익이 제국주의자들에게 오래도록 열망한 대중의 지지를 발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463)
왜냐하면 사회주의 정부는 정치 제도의 결정적인 개혁 없이 영국 사회 제도의 경제적 토대를 심하게 변화시켰기 때문이었다. (465)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다수 정당 제도가 한 사람이나 한 정당에게 완전한 책임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 결과 정당 연합으로 탄생한 어떤 정부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한다. (467)
이는 각 정당이 자신의 특수 이익이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이익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를 마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469)
"정당을 초월한 정당"의 진정한 목표는 자신들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관철하여 다른 이해관계들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며, 하나의 특별한 집단이 국가 기구의 지배자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472)
히틀러가 권력을 쥐도록 지원했던 사업가들은 순진하게 한 독재자를 도와준다고 믿었고, 그들이 만든 사람이 자신들의 계급에 이익이 되고 다른 계급들에게는 불리하게 통치할 것이라고 믿었다. (473)
군대를 정치 인민 위원들이나 전체주의 엘리트 조직 밑에 둠으로써 군대의 정신을 파괴한 나치나 볼셰비키와는 달리, 파시스트들은 군대와 같은 국가주의적 도구들을 강하게 이용할 수 있었고 국가와 혼연일체가 되었던 것처럼 군대와도 그렇게 되려 했다.(476)
모든 정당이 반 파시즘 정당 아니면 반볼셰비즘 정당이 되거나, 또는 두 가지 경향을 가진 정당이 될 정도로 전체주의 운동은 몇 년이 채 안 되어 모든 정당정치를 결정하게 되었다.(478)
구 정당들의 판단 실수는 그들이 의회 내에서 안정된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고 또 국가 공직을 확실하게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대중보다는 권력의 핵심과 더 가깝다고 느꼈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480)
- 인상 깊은 부분
"그러나 역사 해명의 열쇠를 정치 행동보다 선호한 시대, 그리고 공동체가 분열되고 사회적 원자화 현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도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한 시기에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424)
450쪽, 유대인의 인종적 민족주의를 한나 아렌트가 인정하는 부분
"좋은 법에 의한 통치가 종종 지혜의 통치로 불린다면 적절한 법령에 의한 통치는 아마 영리함의 통치라 해야 할 것이다" (454)
"개인의 특수한 현실은 좀더 고귀하다고 여겨지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현실 앞에서 하찮은 것으로 오그라들거나 보편성 자체의 역동적인 운동의 흐름 속으로 가라앉아버린다."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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