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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연구
개요
그람시의 접근 방법의 요체는 지적 혁명이란 어떤 한 철학을 다른 철학에 단순히 대항하게 하는 것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데에 있다. 타개해야 할 것은 사상은 아니고 그 배후에 있는 사회 세력,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들 세력이 만들어 내어 이제는 그람시의 말대로 소위 ‘상식’의 일부가 되어 버린 이데올로기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람시는 상식이란 용어를 어떤 특정 시기에 일반화된 무비판적이고 대체로 무의식적인 세계 인식, 이해 방식이란 뜻으로 사용한다.(160)
1절. 몇 가지 기본적 논점
단순한 지적 활동에서도 특정 세계관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일단 모든 사람이 철학자임이 밝혀졌다.(161) 비판적 작업의 출발점은 자신의 참된 모습을 자각하는 데, 곧 ‘너 자신을 알라’는 데 있다.(162) 자신 안에 무한의 흔적들을 침전시켜 놓은 현재까지의 역사 과정의 산물로서 자신을 파악하는 데 있다.
철학의 역사성을 깨닫지 못하고서는, 지금 자신이 발전의 어떤 국면을 대변하고 있으며 또 자신이 어떤 세계관 또는 그 기반과 대립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고서는 철학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163)
철학은 종교와 ‘상식’에 대한 비판이며 대치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은 ‘상식’과 대립되는 듯에서의 양식(good sense)과 일치한다.(164) 세계관은 평상시에(<->크로노스, 혁명적 시간), 즉 그들의 행위가 독립적이거나 자율적이지 못하고 복종적 예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에 추종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철학은 정치와 결별할 수 없다.(166)
p170 : 지식인들이 대중을 위한 지식인으로서 대중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 (171) 상식에 기초를 두고 출발할 수 밖에 없다. 즉 한 순간에 과학적 사고 방식을 각자의 개별적 사람 속에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개혁을 통해 기존의 활동에 비판적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상식과 한층 고차적인 철학 사이의 연결은 ‘정치’에 의해 보장된다. (173) 실천 철학의 위상은 카톨릭에 대한 반정립이다. 실천 철학은 상식에 기초를 둔 원시적 철학에 사로잡혀 있는 ‘순진한’ 대중을 떠나려고 하기 보다는, 그들을 한층 높은 세계꽌으로 이끌어 올리고자 한다.
p174 : 자아에 대한 비판적 이해는 한층 높은 수준의 독자적 현실관을 인출해 내기 위해 수행하는 정치적 헤게모니 투쟁 및 대립노선들과의 투쟁을 통하여 우선은 윤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는 본연의 정치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특정한 헤게모니 세력에 속해 있다는 의식은 이론과 실천이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일되는 한층 진보적 자기 의식을 향한 첫 단계이다.
p175 : 조직은 지식은 곧 조직가나 지도자 없이는 형성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이론과 실천의 연관에서의 이론적 측면, 즉 개념적, 철학적 사고로 단련된 ‘전문적인’ 집단의 존재로 구체화되는 이론적 측면이 없이는 조직이 만들어질 수 없다. (177) 혁신의 바람은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는 엘리트를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대중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181) 대중 자체에게는 철학이 단지 신념으로서만 경험된다. (182) 세계관 일반을 대체하고자 하는 문화운동은 반드시 다음의 특징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논지를 반복하는 데서 지칠 줄 몰라야 한다. 반복은 대중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좋은 설교 방식이다.
더 많은 대중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즉 무정형의 대중에게 인격을 부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 이는 대중으로부터 직접 배출된 새로운 형태의 엘리트 지식인을 키워 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때 말하자면 실과 바늘의 관계처럼 이 둘의 관계를 뗄레야 뗄 수 없게 해놓아야 한다. 만약 달성되기만 한다면, 당대의 이데올로기적 판도를 사실상 변모시킬 것이다.
2절 철학과 역사의 문제
p187 : 과학적 논의에서 가장 진보적일 수 있는 사람은 논적의 견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입장과 논리를 사실대로 이해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나쁜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적 감옥에서, 다시 말해서 맹목적인 이데올로기의 광신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비판적’ 관점을 취함을 뜻하며, 이럴 때에야 비로소 과학적 탐구의 본래 목적에 유용하게 된다.
p189 : 철학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수용적인 활동이거나 기껏해야 질서를 부여하는 활동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단연코 창조적인 활동인가? (190) 창조적이라는 말은 상대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즉 대중의 지각 방식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대중없이는 생각될 수조차 없는 현실 자체를 변화시키는 사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 창조적이라는 말은 현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함을 시사해 준다. (191)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는 정도가 철학의 역사적 중요성을 가늠하는 척도이며, 또 철학이 개인적 작품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주는 척도인 것이다. (192) 철학은 곧 세계관이며 따라서 철학적 활동이란 단순히 개별적으로 정합적 개념들을 체계화하는 작업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대중의 정신상태를 개조하고 철학적 혁신들을 확산하고자 하는 문화투쟁이다.
p195 : 학문과 삶의 통일만이 사상의 자유가 유일하게 실현될 수 있는 바로 그 동적인 통일(196)이다. 이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기도 하고, 철학자와 그가 작업하고 또 그로부터 어떤 필수적 문제를 끌어내고 해결해야 할 문화 환경과의 관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이는 철학과 역사의 관계인 것이다.
p197 : 인간은 한정된 유한의 개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모든 철학들은 이러한 카톨릭 교리의 입장을 재생산했을 따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 역시 인간을 개별성에 사로잡(198)혀 있다고 보았다. (199) 각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들이란 생각보다 훨씬 많다. 각 개인은 바로 이 사회들을 통해 유적 인간이 된다. (200) 즉 스스로를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지 않고, 어떤 지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사물 세계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제공되고 있는 풍부한 가능성에 가득한 인간으로 자신을 믿는 각 개인의 의식 속에 이 운동성의 원천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모든 인간이 철학자이듯이, 모든 인간은 과학자이기도 하다.
p204 : 진보가 민주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근대 입헌 국가 등을 형성하는 데서 정치적 기능을 발휘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이미 그 전성기를 넘어섰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205)이 것은 어떤 의미에서인가? 자연과 우연을 이성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시들었다는 의미에서가 결코 아니라 단지 이 진보의 민주적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다시 말해서 진보의 공적인 ‘표준 척도들’이 그 기능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진보와 이념은 정치학(프랑스)이자 철학(독일 이어서 이탈리아)으로서 동시에 탄생하였다. 생성 개념 속에는 진보의 가장 구체적인 측면을 구제하고자 하는 시도가 들어 있다. 왜냐하면 생성은 진보가 보통 천박한 진화 개념과 연결되는 것을 막아 줌으로써 더 깊이 있는 발전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206) 비관론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생성이라는 관념론적 개념은 낙관론과 감상에 빠진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p208 :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사람을 의식적으로 지도하고 변형시키는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인간성과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211) 우리는 근대적 민주주의와 나란히 독특한 형태의 형이상학적 유물론과 관념론이 전개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인간을 자연사적 범주로 환원시킴으로써 평등하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생물학적 류로서의 개인은 사회 역사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자연적 소질 면에서만 구별될 뿐이고 따라서 어쨌든 본질적으로는 평등하다는 것이다.
철학이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이성 능력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특히 민주적인 과학이라는 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철학이 이렇게 인간의 보편적 이성 능력을 다룬다는 사실에서 철학에 대한 귀족의 증오를 이해할 수 있으며, 또 구제도의 특권 계급에 의해 부과된 교육과 문화가 철학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p215 : 헤게모니 기구의 실현은, 그것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영역을 창조하는 한에서 의식과 인식 방법의 변혁을 결정한다. 즉 이것은 인식의 문제 곧 철학적 사건인 것이다.
p224 : 만약 모든 철학은 곧 정치학이며 모든 철학자는 본질적으로 정치가란 주장이 진실이라면 이것은 그 직접적 의미에서 공리주의적 방식으로 철학을 구성했던 실용주의자들에게 곱절로 타당하다.
실용주의는 상식보다 우월한 대중철학을 창조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철학 체계라기보다는 곧바로 ‘이데올로기 정당’이다.
p228 : 이데올로기는 감각주의, 곧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의 한 양상이었다. 그 원래 의미는 관념학이란 뜻이었으며, 당시는 과학에 의해 인정되고 적용된 유일한 방법이 곧 분석이었으므로, 이것은 곧 ‘관념의 분석’, 관념의 발생에 관한 탐구‘를 뜻했다. 관념은 원초적인 요소들로 분해되어야 했으며, 따라서 이 분해된 것이 다름아니라 감각들이었다. (229) 이데올로기 개념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 변형되고 변질된 결과로 이 단어의 나쁜 의미만이 확산되었다. 이같은 오류로 이끌어 가는 과정(230)을 다음과 같이 쉽게 구성해 볼 수 있다.
1. 이데올로기가 구조와는 별개의 것을 확증되고, 따라서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가 참이라고 주장한다.
2. 정치적 해결이란 ’이데올로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생각과는 달리 정치적 해결은 구조를 바꾸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해결은 쓸모없고 어리석다는 주장이 나온다.
3. 이상의 결과로 그 모든 이데올로기는 순수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쓸모없고 어리석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유기적인 이데올로기들, 즉 어떤 구조에 필연적인 이데올로기와 단지 자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이며 심지어 의지의 산물일 뿐인 이데올로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는 대중적 신념의 견고성이 필수적인 요소임을 누누이 강조한 마르크스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물질적 힘을 내용으로 갖고 또 이데올로기를 형식으로 가지는 역사적 블록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이때의 내용과 형식은 편의상 나눈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형식 없는 물질적 힘이란 생각할 수 없으며, 물질적 힘이 결여된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환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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