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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예비적 물음들
제1장 종교현상과 종교에 대한 정의
종교에 대한 예비적 정의의 유용성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단순한 형태의 종교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종교를 정의해야 한다(149). 종교의 특성을 쉽게 지각될 수 있는 외적인 표지를 제시하는 예비적인 작업이다. 정의를 내리는데 필요한 요소들은 현실세계 그 자체에서 기인한다(150).
1. 초자연 또는 신비에 의해 정의되는 종교에 대한 비판, 신비 개념은 원시적이 아니다.
초자연적인 것은 신비의 세계, 불가지의 세게,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152). 초자연성에 대한 사상은 종교사에서 매우 늦게 나타났다. 원시인은 자신의 주위에서 관찰한 것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여겼다(153). 초자연 관념은 부정하는 정반대의 관념을 전제로 하는데 이는 전혀 원시적이지 않다. 사물들의 자연적인 질서가 존재한다는 느낌, 우주현상들이 필연적인 관계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미리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154). 보편적 결정론이라는 관념은 최근에 생겼다. 이것은 실증과학의 산물이다. 실증과학이 근거하고 있는 공리이며, 진보를 통해 이러한 관념을 증명했다. 결정론의 원리가 사회과학에 처음 도입된 것은 불과 1세기 전이었고 권위도 논쟁이 일어나고(155) 있다. 사물들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간에게 가르쳐준 것은 과학이지 종교가 아니다(156). 초자연성에 대한 관념을 갖기 위해서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불가능한 사건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사물들의 본질 속에 필연적으로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 질서와 화합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157).
신비 개념은 전혀 본원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본원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신(158)비 개념도 인간이 만들어냈다. 극소수의 진화된 종교에서만 신비 개념이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신비 개념을 종교 현상의 특성으로 삼을 수 없다.
2. 신 또는 영적 존재의 관념에 따라 정의되는 종교, 신이 없는 종교, 어떤 신성에 대한 관념도 함축하지 않는 이신론적 종교의례
신성이라는 말을 엄밀하고 좁은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사건을 종교로 정의하지 못할 것이다(159). 영적 존재는 보통 사람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부여받은 의식의 주체로 이해해야 한다. 영혼, 정령, 악령까지 해당된다. 이 존재들과 맺을 수 있는 관계는 부여된 본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들은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의식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특수한 존재들과 인간이 관계를 맺게 해주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라면 기도·희생·속죄의식 등이 없는 곳에서는 종교가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나 종교의 영역에 속하는 많은 사실이 있다(160).
불교에서 본질적인 모든 것은 네 가지 명제 속에 들어 있다.
첫째 | 사물들의 끝없는 변화와 관련된 고통의 존재 |
둘째 | 고통의 원인은 욕망 |
셋째 | 고통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 욕망을 누르는 것 |
넷째 | 욕망을 누르기 위한 3단계 - 올바름, 묵상, 지혜 즉 교리의 완전한 소화 |
여정의 끝 | 니르바나(해탈)에 의해 구원에 이름 |
이 원리들 중 어느 것도 신성이 문제시되지 않는다. 불교도는(161) 세상을 하나의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인다. 구원 작업을 위해 자기 자신만 의지한다. 스스로에게 의존하고 명상한다. 신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질문에(162) 관심이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무신론자이다. 존재들의 권위는 그들이 사물들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의 크기가 아니라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정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부처가 어떤 분파에서 일종의 신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부처의 성화는 북방불교의 특성이다(163). 불교는 구원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원은 오로지 인간이 훌륭한 교리를 알고 실천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계시가 이루어진 이상, 부처의 일은 완수되었던 것이다. 이 순간부터 종교 생활의 필연적 요소가 되기를 그친다. 4성제를 알게 해준 사람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하더라도 거룩한 4성제를 실행하는 일은 가능했다. 기독교와 매우 다르다. 기독교는 신도들의 공동체가 계속해서 영적 생활의 최고 근원과 교통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살아 존재하면서 매일 제물로 바쳐지는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의 논의들은 자이나교에도 적용된다. 두 종교의 교리는 현저하게 똑같은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165). 어떤 자이나교도들은 이신론(理神論)으로 되돌아갔다. 최상의 지나인 지나파티는 최초의 창조자라 불렸다. 두 종교가 파생된 브라만교에 그 맹아가 이미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처음에 인도 사람들이 숭배해왔던 많은 신은 비인격적이고 추상적인 일종의 원리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본질로 용해되었다. 인간은 그러한 최상의 존재와 하나가 되었다. 최고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 존재와 합일되기 위해 인간은 자기 존재 밖에서 외적인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몰입해서 명상하는 것으로 족하다(166).
종교진화의 상당한 부분은 신성과 영적 존재에 대한 관념에서 점진적으로 퇴보함으로써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기원·속죄·회생·기도 등이 우월한 위치를 누리지 않는 위대한 종교들도 있다. 이신론적인 종교들 안에서까지도 신, 영적 존재에 대한 모든 개념과는 완전히 무관한 많은 의례를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금지조항이 있는데 수많은 종교에서 본질상 동일한 특성을 보여준다(167). 이러한 의례들은 소극적이지만 종교적 성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도들에게 적극적인 봉사를 요구하는 의례도 있으나 본질은 동일하다. 소극적인 의례는 신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작용하는 것이다. 스스로 어떤 효능을 만들어내는데, 그것들의 존재 이유이다. 기대하는 결과는 의례를 거행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얻어진다. 베다교의 희생제는 이 경우에 해당한다.
모든 종교에는 스스로 작용하고 그 자체로서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의례를 행하는 개인들과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 사이에 어떤 신도 개입되지 않는 종교의식이 있다. 종교적 형식주의는 공언되는 일정한 말투와 수행되는 몸짓 그 자체가 효력의 근원이라는 사실에서 유래되었다. 신 없는 의례들도 존재한다. 인간과 신을 결합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을 지닌 종교적 관계들도 있다. 그러므로 신이나 영에 대한 개념으로만 종교가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169).
3. 적극적인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특성
종교는 신화, 교리, 의식, 의례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체계이다. 모든 종교의 형성 근거인 기본적인 현상의 특징은 사라진 종교들의 파편이거나 조직화되지 않는 잔존물이다. 지역적 원인의 영향으로 저절로 형성된 것들도 있다. 기독교의 경우 5월의 축전, 하지제, 카니발, 정령 또는 지방 수호신 신앙을 흡수해 동화시켰다(170).
종교현상은 믿음과 의례로 구분된다. 믿음은 사고방식의 상태이며 여러 표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례는 결정된 행동양식이다. 의례는 대상의 특수한 본질에 의해서만 정의되고 도덕의례와 구별된다. 의례 대상의 특수한 본질이 표현되는 것이 바로 믿음체계이다.
믿음은 실제적이나 관념적이거나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사물들의 분류를 전제로 한다. 두 장르 분류를 전제로 하는데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으로 분류하는 것이 종교적 사고의 변별적 특성이다. 믿음, 신화, 교리 등은 성스러운 사물들의 본질, 가치나 능력, 성스러운 것들끼리의 관계,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사이의 관계 등을 나타내는 표상이거나 표상체계이다. 어떤 사물도 성스러울 수 있다. 의례는 이러한 특성을 가질 수 있고(171) 이런 특성을 가지지 않은 의례는 없다. 성스러운 대상들의 범위를 단번에 결정할 수 없는데 끝없이 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종교가 될 수 있는 이유가 거룩한 사물들의 존재, 즉 4성제와 파생된 의례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보통 성스러운 사물은 속된 사물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성스러운 사물들에 비해 자신들이 열등하고 의존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172) 정말로 성스러운 것의 특징은 들어 있지 않다. 부적도 성스러운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뛰어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없다. 심지어 신이 자신의 숭배자의 소망에 유순한 태도를 보이게 되어 또다시 화해할 때까지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우상을 때리기도 한다(173). 인간이 신에 의존하더라도 상호적이다. 신 자신도 인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관념적으로 발달한 종교에서도 신이 신도에게 의존함을 밝히게 될 것이다.
순수하게 위계적인 구분은 그것들의 이질성만이 속된 것에 대하여 성스러운 것을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은 절대적이다. 인류 사상사에서 둘의 구분만큼 철저하게 서로 대립되는 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정신은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언제 어디서나 분리된 것으로 여긴다. 종교에 따라서 이러한 대립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인식된다(174).
두 세계는 서로 이동할 수 있다. 입문의례가 잘 보여준다. 젊은이를 종교생활에 들어가도록 하는 일련의 긴 의식이다. 단계적인 발전단계가 아니라 전 존재의 변형으로 인식된다. 다른 존재로 대치되어 새로운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적합한 예식들은 죽음과 재탄생을 실현시켜주는 것으로 여겨진다(175).
이질성이 너무 극심해서 적대관계로 전락하는 일도 있다. 절대적인 종교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속된 것과 완전히 절교할 것을 권고받는다. 이것이 수도원이다. 속된 세상에 대한 모든 집착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비적 금욕주의도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금욕주의에 의해 종교적 자살의 모든 형태들이 생겨났다. 모든 삶을 완전히 단념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부류의 대립은 표지에 의해 외적으로도 나타난다(176). 서로 가까워질 수도 없고 고유한 본질을 동시에 지닐 수도 없다.
종교적 믿음의 첫째 기준으로 두 부류는 배타적인 성격을 띤다. 종교적 믿음체계란 성스러운 것의 본질을 표현하고 성스러운 것이 서로 맺는 관계 또는 속된 것과 맺는 관계를 표현하는 표상이다. 의례란 인간이 성스러운 사물들에(177)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규정해 놓은 행동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성스러운 사물들의 상당수가 서로 등위관계나 종속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는 통일성을 지닌 체계를 형성하는데 동일한 종의 다른 체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 신앙의 총체와 의례의 총체가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게 된다. 종교란 구분되고 개별화된 부분들로 이루어진 총체이다. 성스러운 사물들의 집단이나 개개의 성스러운 사물들은 믿음체계와 의례, 특수한 숭배를 끌어들이는 조직체의 중심을 이룬다. 하나의 종교는 자율성을 부여받는 숭배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숭배들은 위계를 이루기도 하고 우세한 숭배 속으로 흡수되기도 한다. 때때로 단순하게 병렬되고 연합되는 일도 있다.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는 종교현상들이 존재하는데(178) 처음부터 하나의 종교체계에 통합되지 않았거나 더 이상 통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총체가 사라져버렸음에도 특별한 이유 때문에 이어내려올 수 있다. 살아남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민요 속에 살아남아 있는 농경시대의 숭배의식이 이 경우이다(179).
4. 종교와 주술을 구분하기 위한 다른 특성의 필요성, 교회의 개념은 무엇이고 개인 종교들은 교회의 개념을 배제하고 있는가
주술 또한 믿음체계와 의례로 만들어져 있다. 신화와 교리를 가지고 있으며 단지 초보적일 뿐이다. 기술적이고도 유용한 목적들을 추구하다 보니 주술은 순수한 사색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나름의 예식, 희생, 재계식, 기도, 노래, 춤들을 가지고 있다. 주술사가 호소하는 존재와 그가 사용하는 힘은 종교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180). 주술은 성스러운 것들을 속되게 만들면서 일종의 직업적인 쾌락을 느낀다. 의례에서도 종교적 예식과 반대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181). 주술사의 행위 속에는 근본적으로 반종교적인 어떤 것이 들어있다.
두 영역의 경계선을 추적해보면 종교적 믿음체계들은 항상 특정집단과 공통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인정될 뿐만 아니라 집단의 산물이며 통일성을 형성한다. 개인들은 공통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 결합되어 있다고 느낀다. 그러한 사회가 교회다. 구성원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사실, 자신들의 공통적인 관념을 공통적인 의례로 함께 옮긴다는 사실에 의해 결합된 사회다(182). 교회는 특정집단을 기초로 한다. 특정 가족이나 단체의 성원들만 신봉자가 되는 사적 형태의 예배에서도 이러한 조건은 충족된다.
주술적 믿음체계는 민중의 넓은 계층 속에 확산되어 있고 주술을 충실하게 믿는 신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신봉하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지 못하며 하나의 집단으로 결합시키지 못한다. 주술은 교회를 만들지 못(183)한다. 지속적인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고객들이 주술사와 맺고 있는 관계조차 우발적이며 일시적이다. 주술사가 공공연하게 일을 한다 할지라도 주술사를 의지하는 사람들과 그를 지속적으로 결합시키지 못한다. 또 그의 기술을 실행하기 위해 동료들과 결합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주술사는 일종의 고립된 인간이다. 단체를 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한다(184).
주술적 단체들은 오로지 주술사들만 포함한다는 점이다. 의례의 수혜자이며 정기적 예배에 참여하는 평신도들은 주술사들의 단체에서 제외된다.
개인적 종교가 발견되지 않는 사회는 거의 없다(185). 개인 숭배들은 변별적이고 독자적인 종교체계가 아니라 개인들이 속해 있는 교회에 공통되는 종교의 단순한 양상에 불과하다. 개인이 수호신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영혼에 대한 개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개인들이 임의로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격적인 신들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그들이 속해 있는 교회다(186). 교회와 개인숭배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종교가 아니다. 그러한 종교들은 동일한 이념과 원칙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 집단에 이익이 되는 상황에 적용되고 한편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되는 상황에 적용되기도 한다.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신자가 수호신과 교류를 갖는 예식이 입문의례와 섞이게 된다(187).
종교란 성스러운 사물들, 즉 구별되고 금지된 사물들과 관련된 믿음과 의례가 결합된 체계다. 이러한 믿음과 의례들은 교회라고 불리는 단일한 도덕적 공동체 안으로 그것을 신봉하는 모든 사람을 통합시킨다. 종교 개념은 교회 개념과 분리될 수 없으며 종교는 본질적으로 집합적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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