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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첫 번째 강의

 

 

들어가며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들, ‘인종과 역사, 문화의 관계(7) 나아가 새로운 휴머니즘-‘민주적 휴머니즘‘-형태를 환기하며 가능한 미래를 모색한다.

 

첫 번째 강의- 서구 문화 패권의 종말

 

타자로부터 배우다

- 인류학은 어떤 분야보다 현대 세계의 문제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한동안 결코 중단될 수 없는 물질적·정신적 진보로 통했던 신념이 이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서구식 문명은 스스로에게조차 더 이상 본보기가 되지 못하므로 다른 문명에게 따르라고 감히 제안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을 성찰하지만, 전통적 틀 안에(18) 갇혀 있고 더 이상 이 틀을 확대할 수도 없으며 다른 곳을 바라볼 수도 없게 되었다. 인류학은 수십여 년 전부터 서구 영향 밖에 있는 인간에게 가르칠 수 없게 되었음을 제기한 학문이며 여타의 사회과학들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19)

 

독특하고 이상한 것들

인류학은 인간 현상에 대한 연구이다. 이것은 물론 자연현상의 일부이다. 인간 현상은 항상적이고 특수한 성격을 띠므로, 별개의 독립된 방식으로 연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류학은 인류만큼 오래되었다(20).

오늘날 하고 있는 인류학적 탐색은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첫 동기는 고고학적 호기심이었다. 역사학, 고고학, 문헌학, 과학 같은 고전적인 주요 학문은 대학 교과과정으로 들어오면서 시민권을 누리게 되었다. 인류학자는 잡화를 취급하는 사람처럼 호기심에 가득 찬 사람이다. 다른 학과가 휴지통에 버린 지식 부스러기들과 문제가 될 만한 파편들과 그림이 될 만한 세부 사항들을 잘 모아놓는다. 처음에 독특하고 이상한 것들 모아놓은 것이었으나 서서히 이 찌꺼기들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4).

루소는 고유한 속성으로 보기 위해서는 우선 차이를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듯이 인간을 연구할 때는 차이들이 중요하다. 여기서 독특하고 이상한 것들이 더 큰 관심을 받는 중요한 현상들보다 훨씬 일관된 방식으로 정렬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25). 차이는 그 차이를 밖에서 다른 누군가가 관찰할 수 있을 때에만 비교 가능하다. 단순한 분류를 통해서도 인간 사회의 다양성 속에 있는 어떤 일정한 질서 체계를 끄집어낼 수 있다. 인류학자가 연구하는 사회는 일종의 축소 사회이다(27).

기술적·경제적 수준이 아무리 낮아도, 사회적 인습과 종교적 신앙이 아무리 달라도, 친자관계 명명법이나 결혼 규칙을 보유하지 않은 사회는 없다. 개별적인 개인들이 허용된 부부관계, 보호된 부부관계를 통해 서로 결연된 인척 관계를 형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사회를 구분하고 유형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28).

 

공통분모

인류학자들이 선호하는 사회는 원시사회이다. 인류의 전 역사에 해당하는 만큼 아주 오랜 기간 지속된 사회가 바로 우리(28)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일한 본보기를 제공한다. 인류가 살아온 기간의 약 99%, 지구 표면의 ¾에 이르는 지역에 살았다. ‘원시사회는 우리가 어떤 단계의 과거를 거쳐왔는지 조명해줄 뿐만 아니라 인간 조건의 공통분모라 할 일반적, 보편적 상황을 보여준다. 서양과 동양의 고도 문명은 오히려 예외성을 띤다.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뒤처지고 소외된 사회들이 도리어 본연적 삶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는 한, 완벽한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그런 원시사회이다.

기준선을 잘 설정해야 한다. 수십 내지 수백 명 정도 되는 작은 집단, 며칠을 걸어서 가야 할 정도로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인구밀도는 10.1명 정도 살아야 하고 인구증가율은 1%가 안 될 정도로 낮아야 한다(29). 실제 인원이 거의 변함이 없어야 한다. 인구의 항상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집단의 구성원 수가 많아지면 집단은 분할되고, 이전과 같은 크기와 질서 체계를 갖춘 두 개의 작은 집단이 만들어진다. 작은 집단은 어떤 병이 전염되면 즉각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어떤 병의 바이러스가 한 개체에 들어가면 한정된 일수 동안만 살아남는다. 바이러스는 생존을 위해 지속적으로 집단 안에서 계속 다른 개체로 이동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인구수는 수십만이 되어야 하고, 한 해의 출행률이 충분히 높아야 한다. 열대 적도 지방은 단위면적 당 인구수가 적(30)으므로 전염성 세균이나 기생충 역시 적다. 에이즈는 수천 년 전부터 원주민 사이에 있었지만, 그들과 적정한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발병하지 않았는데 우연하게 규모가 훨씬 큰 사회로 유입되면서 중대한 위험이 되었을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 한 세기 정도 기간에 멕시코와 페루 주민들이(31) 1억에서 4~5억에 달하는 인구가 사망했다. 식민지 개척자들 탓에 더 악성 바이러스가 생겨 천연두, 홍역, 성홍열, 결핵, 말라리아, 감기, 유행성 이하선염, 황열, 콜레라, 페스트, 디프테리아 등의 전염병이 창궐한 것이다.

이런 사회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소중한 가치를 지고 있으며 수백 개의 사회가 지표면에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경험은 모두 실제로 행해진 경험들이다. 인류학자는 오로지 이것을 다룬다. 연구 대상을 제조하거나 실험실에서 작동시킬 수 없다. 연구 대상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들로부터 추출한 경험으로 인간과 그 인간이 만들어낸 집단적 산물을 연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아(32)주 다양한 구체적 상황 안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최근 발견된 아마존의 붉은 원주민족

 

인류학이 연구하려고 선택한 사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부는 규모 면에서 작다. 안정성을 갖춘 사회이다. 지리적 의미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주 단순화된 시점을 취한다(33). 심리적 의미에서도 멀다. 인류학자가 관심을 보이는 사항들을 정작 당사자들은 거의 혹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한 개인과 집단의 무의식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사실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도 동일한 현상들이 있다(34).

서구 유럽과 일본 사이에 대칭 관계가 있다. 서구 유럽은 대항해를 통해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문화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으나 일본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골몰한다. 국학 학파가 그 뿌리일 것이다. 한국 역시 자기 나라의 시골 생활이나 민간 풍속을 연구했다. 세세한 (35) 목록을 다량 수집하고 직접적 관찰로 기록에서 누락된 것들을 보충하며 작은 집단의 현재 사는 방식을 알아봄으로써 야나기타 구니오가 분카가쿠‘, 즉 문화학이라고 말한 인류학에 진입했다(36)

 

본래성비본래성

인류학의 첫 번째 야망 -‘객관성에 도달하는 것. 관찰 대상 사회의 고유한 가치들을 객관화하며 그 사회를 바라보는 사고방식도 객관화한다(36). 인류학자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아야 하고 새로운 심성의 범주를 만들고, 공간과 시간, 반대와 모순 등에도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두 번째 야망 -‘전체성’. 사회생활의 모든 양상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하나의 체계를 보려는 것이다(37). 불변하는 속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종합적인 객관성이란 현상(40)들을 보면서 각자 의식할 수 있을 만큼 현상들이 의미가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인간들의 사적 관계, 개인 간의 구체적인 관계 바깥에 있는 추상적인 개념에도 관심을 갖고 그들이 연구하는 사회의 표지로 파악한다.

타자와의 관계는 문서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간접적 재구축의 결과물이다. 우리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데 직접 접촉해야 하는 구두 전승이 아니라 책이나 문서들을 통한다(41). 현재는 중간 매체를 통해 같은 시대의 대다수와 소통한다. 매체 덕분에 소통은 대단히 늘어나지만, 매체라는 것은 중간 역할에 불과하므로 정통성, 나아가 진정성이 결여된 것일 수 있다.(외부 요소가 끼어들어 전도되는 간접적 닿음이므로 본래성, 더 나아가 정통성이 결여된 것일 수 있다는 의미). 시민과 권력기관의 관계에도 이런 낙인이 찍히게 된다. , 사진,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같은 간접 소통 형태가 늘어남에 따라 자율성은 상실되고 내적 균형은 느슨해진다(42).

오늘날 인류학은 근현대사회의 본래적인 것을 식별하고 구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43). 인류학자에게는 5백 명 정도의 마을보다 도시가 힘들다. ‘발신자수신사의 실질적 관계가 사라진다. 그것은 코드중계뒤로 사라진다. 인류학이 미래를 위해 이론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한다면 두 사회의 존재 양식을 구분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다. 하나는 본래적이고 정통적인 사회의 삶이고 다른 것은 사회의 특성이 불충분하고 불완전한 삶, 마치 비본래성에, 비정통성에 강타당해 광대한 전체 표면에 섬처럼 떠 있는 사회이다(44).

 

내 것이기도 한 서구적 관점

인류학은 생존 형태들 간의 차이 또는 형태들과 우리의 생존 형태들 간의 차이를 연구한다. 인류학은 인문주의에서 출발한다. 유럽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그리스-로마의 고대를 재발견했을 때, 예수회가 대학 교육을 시작했을 때 이미 행로가 진행되고 있었다. 문명은 여러 개의 문명(45)을 놓고 비교하면서 살펴야 그 문명 자체를 생각할 수 있다. 한 고유한 문화를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문명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46). ’낯설게 하기기술이다.

모토오리(일본 국학 권위자)는 중국과 일본의 문화를 대비시킨다. 중국문화는 과장된 언변이라는 수사로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도교에서 보이는 임의적이면서도 단호한 확언에 대한 취향으로 본 반면 대조적으로 일본 문화의 정수는 절도, 간결, 신중, 효율성으로 보았다(47). 일본 문화의 특수성을 긍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 주제를 다룬 일본 판화들의 과장되고 화려한 화풍과 바로크적인 기법이나 세부적인 의상 묘사 등 매우 풍부한 기법에 투영되어 있다.

르네상스 초기에는 지중해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다(48). 18~19세기에 인문주의는 지리상의 발견과 함께 확대된다. 그러나 지중해 세계의 인문주의와 오리엔트와 동아시아의 인문주의는 확장이 제한되어 있다. 문헌과 유적을 통해서만 접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49).

인류학이 사용하는 수단들은 문헌학이나 역사학보다 훨씬 외부적이면서도 내부적이다.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아주 바깥에 또는 아주 안쪽에 자리 잡아야 하는데 다른 정보 수단이 없으므로 연구하는 집단에 자신을 완전히 이입시켜 공유하고 원주민의 정신세계의 미세한 뉘앙스도 잡아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 가지 인문주의가 하나로 통합되었다(50). ‘잔류한사회들의 특별하고도 독특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새로운 지식 체계를 벼려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우리 사회와 다른 모든 사회의 연구에 그 지식 체계를 적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학의 연구 수단과 방법은 더욱 풍부해졌다.

르네상스 시절 귀족의 인문주의와 19세기 부르주아의 인문주의, ‘잔류한사회들을 파악해내면서 인류학은 세 가지 인문주의를 추월하는 민주적 인문주의를 세웠다. 모든 학문에게서 빌린 방법과 기술로 총화적 인문주의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요청한다(51).

 

다양성의 최적 상태

원시인이라는 민족은 일을 할 수 있는 인원이 하루에 2~4시간만 노동을 해도 어린아이와 노인을 포함한 모든 가족의 생존을 해결할 수 있다. 원시 부족은 농민이나(54) 목축업자보 환경으로부터 훨씬 독립적이었다. 인류는 수십만 연간 이와 비슷한 상태에서 살아왔고 농업, 목축, 산업 세계를 거치면서 현실 세계와 점점 더 밀접하게 연동되어왔다. 19세기부터 이 연동성은 철학적·이념적 개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작동되고 있다(55).

각 사회가 각자 대가를 치르며 거대해지면, 사회들은 서로 비슷해지는 경향을 띠게 될 것이다. 유사하거나 다른 축 위에 자리한 차이들도 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든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인류에게 부여되는 다양성의 최적 상태일 것이다. (56)적 상태는 사회의 수에 따라, 수적 중요성에 딸, 지리적 거리와 소통 수단에 따라 변할 것이다. 다양성의 문제는 구체화되는 문화들로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동질적인 면이 생겨도 그 사회 안에서 다시 내적 다양성이 촉발될 수 있다. 격리로 인한 차이점이 아니라 인접성에 기인한 차이점도 있다. 타자로부터 구분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많은 인습들은 내적 필요성이 아닌 이웃 집단과 대면한 채로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로부터도 생겨난다(57).

인류학자는 각 사회가 자기의 제도와 풍속과 신앙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믿지 말 것을 권유한다. 인류학의 가장 큰 야망은 개인이나 정부가 어떤 지혜를 갖게 하는 것이다. 맥아더의 공보관이었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을 통해 일본 천황 제국주의의 폐지를 강요하지 않게 만들었다(58). 밖에서 문화의 구조를 파악할 줄 알았기 때문에 군사적 패배라는 결과보다 훨씬 비극적이었을 전면적 붕괴를 피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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